- 과나후아토, 세르반테스의 영혼이 깃든 도시
따뜻한 수프로 속을 달래고 도착한 과나후아토(Guanajuato)는 그야말로 예술의 도시였다. 과나후아토는 멕시코 과나후토주의
주로, 멕시코 시티에서 북서쪽으로 273㎞, 해발 2040m에 위치해 있다. 1548년에 은 광산으로 발견되어 스페인에 의해 건
설된 식민 도시이며, 18세기에 세계 최대의 은 생산지로 번영을 누렸다. 우리 일행의 오늘 저녁은 만찬이었다. 근사한 식당
에서 코스요리를 먹고 안나와 함께 마리아치 공연을 보기 위해거리로 나섰다. 솜브레로를 쓴 악사들의 노래는 거리를 단숨에
낭만으로 물들였고, 우리는 그 뜨거운 에너지에 취해 밤거리를 거닐었다.
- 마리아치, 삶의 한복판에서 올리는 응원전
광장 한편에서 마리아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던 신비로운 예술가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부지런히 호객을 하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자 마치 큰 경기
를 앞둔 선수들처럼 서로 기운을 북돋우며 응원전 같은 전초전을 벌였다.
그것은 단순히 관객을 모으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영혼을 예열하는 의식처럼 보였다. 삶의 비애를 기쁨으로 바꾸
기 위해, 그들은 먼저 자신의 목소리를 가장 높은 곳까지 끌어 올리고 있었다.
- 길 위로 나부끼는 뒷모습의 잔상
이윽고 충분한 에너지가 모이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당당하게 광장을 가로질러 거리로 나섰다. 나는 그 행렬을 끝
까지 따라가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이 떠난 자리에 서서, 점점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화려한 은장식이 박힌 바지, 넓은 챙의 솜브레로 아래로 살짝 보이는 굳은 살 밴 목덜미, 그리고 악기 가방을 든 묵직한
손. 그들의 뒷모습은 노래를 부를 때의 화려함보다 훨씬 더 뭉클하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슬픔을 대신 울어주고, 누군가의
기쁨을 대신 외쳐주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의 등을 보았다. 그 뒷모습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악기를 들고 이름 모를 거리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일이라고. 내가 머무는 자리뿐만 아니라, 내가 지나온 뒷모습
에도 꽃은 피어나야 한다고 말해주는 듯 보였다.
광장에는 여전히 그들이 남기고 간 호쾌한 그리토(외침)의 잔향이 감돌고 있었다. 비록 몸은 멀어졌지만, 그들이 나아가는
길목마다 멕시코의 뜨거운 태양을 닮은 노란 꽃들이 피어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들의 활기찬 몸짓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저들은 열정을 발산하는 뜨거운 청춘들일까, 아니면 가족의 저녁 식탁을 책임
지는 고단한 가장들일까.
정보를 찾아보니, 그들은 대대로 악기를 잡고 거리를 지켜온 전문 음악인들이라고 했다. 그제야 그들의 호객 행위가 예사롭
지 않게 보였다. 그것은 단순히 손님을 끄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정직하게 팔아 생을 일구려는 이의 치열한 삶의
소리였다.
예술과 생계가 분리되지 않은 채 광장의 먼지 속에 뒤섞인 그들의 당당한 뒷모습에는 지켜야 할 가족과 이어가야 할 전통
이 묵직하게 실려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뒷모습을 뒤로한 채 돌아오는 길, 가로등 불빛 아래 창을 들고 당당히 돌진하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이 있다.
이곳 과나후아토는 스페인의 대문호 미겔 데 세르반테스를 기리는 ‘세르반테스의 수도’와 같은 곳이다. 비록 소설의 집필지는
스페인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세르반테스의 정신을 세계 어느 곳보다 열정적으로 계승하며 매년 거대한 문화 축제를 연다.
-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한 돌진
창을 치켜든 돈키호테의 동상 앞에서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풍차를 향해 무모하게 달려들던 그 기사의 모습이, 어쩌면
이 나이에 무거운 짐을 꾸려 멕시코까지 온 나의 모습과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 불렀으나, 그는
세상이 보지 못하는 거인을 보았고 누구보다 당당히 자신의 정의를 향해 나아갔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견딜 수 없는 슬픔을 견디는 것.”
소설 속 그의 다짐이 오늘 밤 나에게 새로운 창작의 영감을 준다. 우리 순례자들도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라는 보이지
않는 거인을 찾아 이 먼 길을 달려온 것이 아닐까.
동화 속 주인공 돈키호테의 기개를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밤바람이 시원했다. 오늘 나는 세월에 바랜 성당의 침묵
속에서 나를 만났고, 돈키호테의 동상 앞에서 다시 꿈꿀 용기를 얻었다. 멕시코의 밤은 그렇게 동화보다 더 뜨거운 온기로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