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서 그렇지 다른 곳도 반대했다
이응인(시인, 밀양시 부북면 주민)
밀양의 시골 어르신들이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해 온 게 벌써 8년째다. 최근 밀양의 송전탑 문제가 언론 매체에 떠오르면서, ‘다른 곳은 안 그러는데 왜 밀양만 반대하지?’, ‘결국 보상을 더 받자는 것 아니냐?’, ‘밀양은 전기 안 쓰고 사나?’ 하는 반응을 보고 참 황당했다. 셋 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765kV 송전탑 문제는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1~4호기 옆에 신고리 핵발전소를 세우면서 생겨났다.(현재 신고리 1,2호기가 완공되었고, 3,4호기는 건설 중이며, 5,6호기는 건설을 준비하고 있단다.) 한전은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공사를 시작했다. 한전은 이러한 사실을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은 채, 2007년 11월 30일, 산업자원부로부터 건설사업 승인부터 받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보아온 송전탑은 154kV나 345kV를 보내는 송전선로이다. 그러나 765kV 송전선은 154kV 송전선의 18배, 345kV의 4배가 넘는 대용량 전류가 흐르고 송전탑 높이만도 80~140미터(아파트 40층)에 이른다. 이런 초고압 송전 선로를 만들면서, 한전은 송전탑이 들어서는 자리와 송전선 아래쪽 땅(선하지)만 보상한다고 알려왔다. 집 앞 40미터 거리에 송전선이 지나가도 피해 지역이 아니다. 논 한가운데 송전탑이 들어서 몇 천 평의 논에 농사를 못 짓게 되어도, 대추밭을 가로질러 지나가도, 밤밭에서 더 이상 밤농사를 할 수 없게 되어도, 마을 뒤로 송전탑이 휘돌아 지나가도 철탑 들어선 자리와 송전선 아래만 보상 대상이었다.
칠팔십 대 노인이 대부분인 주민들과 한전의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2009년에 ‘갈등조정위원회’를 통해 해결을 시도하고, 2010년에 ‘제도개선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답을 찾으려 했으나 허사였다. 한전이 진입로를 내고 나무를 베어내는 공사를 시작하자 주민들은 온종일 산에서 버티며 전기톱을 막아섰다. 한전은 주민들 앞으로 공사 방해 가처분 신청,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내는 사건들이 이어졌다. 올 2월부터 주민 대표와 한전이 국회에서 6차례에 걸쳐 간담회를 열었지만 입장 변화는 없었다. 한전의 입장은 ‘공사는 계속되며 보상 협의 외에는 어떤 협의도 할 수 없다.’로 요약된다. 주민들은 공사를 중단하고 주민들이 제시한 해결 방안을 전문가에게 맡겨 검토, 확인해 보자며 ‘전문가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한전은 이 제안을 거부하고 5월 20일부터 공사를 강행했다. 산에서 굴삭기를 막아서던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날마다 헬기에 실려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한전은 ‘765kV 송전선로 주변의 전자파는 833mG(미리가우스) 이하로 안전하다.’고 말해왔다. 송전선 주변은 24시간, 365일 전자파에 노출된다. 세계보건기구는 3mG 이상의 전자파에 노출되면 소아 백혈병이 1.7배 증가한다는 점을 인정해, 4mG 이상의 지속적인 전자파를 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전자파 방출량을 보면 전자레인지는 76.9mG, 진공청소기는 52.7mG, 냉장고가 3.3mG이다. 그런데 한전이 말하는 허용 기준치 833mG는 전자레인지 방출량의 10배가 넘는다. 그래도 괜찮다는 말이다.
몇 차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지만 송전선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암 발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월등히 높았다. 게다가 소나 돼지 등 가축이 기형인 새끼를 낳거나 사산하는 경우가 많아 축산이 불가능하다고 주민들은 증언했다. 765kV 송전탑 문제는 핵발전소의 장거리 송전 때문에 생긴 것이다. 부산에서 만든 전기를 서울로 보내자니 온 국토에다 송전탑을 세우게 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순박한 시골 어른들만 피해자가 되고 만다.
“핵발전소가 안전하고 송전탑 전자파가 문제 없다면 서울의 한강 옆에다 핵발전소를 세우면 되질 않는가!”
어르신들이 한전 직원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그 동안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나름으로 지혜를 모아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놓았다.
첫째,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3~4호기에서 생산하게 될 전기는 기존 노선에 증용량(전선을 교체하여 용량을 늘임)으로 보내든지, 지금 건설 중인 신양산-동부산, 신울산-신온산 간선 송전 선로를 신고리와 연결하여 계통 편입시켜 보낸다. 둘째, 아직 착공도 되지 않은 신고리핵발전소 5호기, 6호기가 완공될 10년 동안 주민들이 요구한 지중화 3대안(초전도체, 밀양구간 345kV 지중화, 울산-함양고속도로 지중화)을 그 동안 향상된 기술력으로 검토한다. 셋째, 공사 강행 즉각 중단하고 주민들의 대안을 검토할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한다.
한전은 공사를 강행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방안이 없다고 하다가 최근 여론에 몰리자 전문가 협의체 구성에 동의했다. 이제 앞서 말한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차례다.
‘다른 곳은 안 그러는데 왜 밀양만 반대하지?’ 몰라서 그렇지 다른 곳도 다 반대했다. 송전선이 지나가는 창녕도, 양산도, 정관도 반대했다. 다만 밀양의 어르신들은 보상(돈)이 아니라 고향을 지키며 사는 삶을 선택했다. 그분들은 ‘나 혼자만 살 곳이 아닌데.’라는 말을 자주 한다. 후손들이 대를 이어가며 살아야 할 땅이 영원히 망가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결국 보상을 더 받자는 것 아니냐?’ 아니다. 지금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목소리는 간단하다. ‘보상은 필요 없다. 여기 그냥 이대로 살고 싶다.’ 돈 몇 푼으로 때우고 넘어가려 하지 말고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개 눈에는 똥밖에 안 보인다고, 돈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에게는 보상금밖에 안 보일 것이다. 보상을 선택한 몇몇 마을은 돈 때문에 마을 공동체가 깨졌다.
‘밀양은 전기 안 쓰고 사나?’ 지금 밀양을 관통하는 765kV 송전선은 밀양에 필요한 전기를 끌어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수도권으로 전기를 끌어가기 위해 순박한 시골 어른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시골 어르신들은 엘리베이터를 가동하지도 않고, 에어컨을 쓰지도 않고, 냉장고를 두 개씩 돌리지도 않고, 외등을 밤새 밝혀 두지도 않는다. 밤중에 혼자 텔레비전을 볼 때도 전등은 끈다. 전기를 거의 안 쓴다.
우리가 핵발전소에서 보내온 전기를 쓰는 만큼, 전국 곳곳에서 송전선으로 인한 피해 주민은 끝없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23기의 핵발전소 가운데 10기가 멈춰버린 나라, 그런데도 핵발전소를 계속 짓겠다고 하는 나라, 그 위험한 질주를 지금 밀양의 어르신들이 막고 서 있다.
- 월간 <작은책> 2013년 7월호
첫댓글 흔히 송전탑반대를 지역이기주의로 보지만, 반대로 나는 그동안 밀양의 어르신들과 같은 분들의 외침을 그분들의 이기주의로 바라보지는 않았나?하는 반성도 하게되는 요즈음입니다...좋은 글 감사합니다^^
송전탑 들어선다는데 찬성하는 마을 전국에 한곳도 없습니다!!
찬성하는 마을로 철탑 짓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찬성하는 마을은 보상금 받아서 좋고, 반대하는 마을은 철탑 안 들어서서 좋고 서로 다 좋은 것 아닙니까?
우리는 보상금이 필요없습니다. 보상금 받으면 주민들 간에 분쟁만 생기게하는 애물단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