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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크리스챤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사업체의 이름을 기독교적인 이름을 짓게 되는 것을 흔히 보는데 참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만 사용될 수 있는 거룩한 말을 거룩 되지 못한 일에 사용하는 것은 참으로“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7:6)라는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든다. 어느 곳에 가니 교인들 끼리 모인 골프 클럽이라 하여 [할렐루야 골프클럽]이 있는가 하면 [할렐루야 식당], 할렐루야 양복점], [호산나 제과점]등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용어를 뜻도 모르고 남용하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쳐서 그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거룩한 이름에 일치하는 일을 하여 한층 더 빛나게 하고 있는 곳이 있다. 즉 [할렐루야 합창단], [벧엘 교회], [가나안 농군학교]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에 알맞은 일을 하는 곳이 이 찬송과 관계되는 [생명의 말씀]사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기독교 서적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 가운데 [생명의 말씀사]라는 곳이 있는데 이는 미국에서 유래했다.
요한복은 6장 67~68절에:
예수께서 열두제자에게 이르시되“너희도 가려느냐?"라고 하시니 시몬베드로가 성급하게 대답하기를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리이까?”
라고 반문형식으로 대답했다. 이 말씀이 미국 시카고의 뤠벨 출판회사 사장 푸레밍 뤠벨(Fleming H. Revell)에게 큰 감동을 주어 1874년 주일학교 기관지를 시작하려고 준비하면서 그 강행물의 이름을 [생명의 말씀(Words of Life)]이라고 하였다. 뤠벨은 자신이 이 말씀을 통해 은혜 받은 사실을 찬송가 작가 블리스(Philip Paul Bliss, 1838~1876)(31장)씨에게 설명하면서 이에 적절한 찬송시를 써 줄 것을 요청했다. 블리스씨도 이 구절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는 동안 “주야, 영생의 말씀이 주께 계시매 우리가 뉘게 로 가오리까?”라고 베드로의 간증이 블리스 자신의 간증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말씀에 근거하여 3절의 찬송시를 써서 1874년 주일학교 기관지 [생명의 말씀]의 첫 호에 실리게 되었고 1878년 그가 시작했던 [복음 찬미가집(Gospel Hymns)]제 3권에도 실었다. 번역 찬송시와 우리 찬송시를 보자
(우리 찬송시)
1절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 주니
(번역 찬송시)
1절 생명 되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
노래하고 또 노래해 주시오
생명 되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
그의 아름다움을 좀더 알게 하시오
생명의 말씀과 미(美)
믿음과 의무 가르쳐 주시오
요14:6절에“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고 주님께서 말씀 하셨다. 주님이 바로 생명이시다. 그러기에 작시자는 Life 라고 대문자로 썼던 것이다. 이 말씀을 통상적인 뜻의 생명(life)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라갈자 없느니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작시자가 이론대로 주님의 말씀을 좀더 알아서 확고한 믿음에 들어가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할일을 다 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고 하셨다. 믿음이 있노라고 하며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되어 주님의 저주를 받아 말라죽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주님은 허영을 싫어하셨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며 교회가 온통 떠들썩하게 굴며 열매가 없는 사람을 주님은 싫어하신다. 헌금을 좀더 했다고 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내 사유물인양 잘못 생각하는 사람의 헌금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신다. 무학교회에 계시다가 이미 하나님 품으로 가신 황종원 장로 그는 자신이 가진 것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을 하나님께 바쳤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을 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분은 너무나 말이 없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고 행동했다. 그런 충실한 종을 세상에 56년 밖에 두지 않고 데려 가셨으니 아무리 세상이 좋다 해도 역시 천국은 이곳보다 좋은곳인가 보다.
(우리 찬송시)
후렴 아름답고 귀한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말씀 생명 샘이로다. ~~ 아멘.
(번역 찬송시)
후렴 아름다운 말씀 놀라운 말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
아름다운 말씀 놀라운 말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아름다운 말씀이요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시오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이시다. 흉흉했던 갈릴리바다를 잔잔케 하신 말씀이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말씀이시며 군대귀신 들렸던 자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깨끗케 하신 말씀이시다. 5병2어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의 말씀이시며 많은 병자를 고치신 말씀이시다. 죄지은 여인의 죄를 용서하신 말씀이며 십자가상에서 만민의 죄를 용서하신 말씀이시다. 어린이를 축복하신 말씀이시며 그를 쫓던 많은 무리에게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내 하나님 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들을 찌어다 너의 파숫군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 찌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사52:7~9)
이 아름다운 소식이 울려 퍼지고 또 퍼져 이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미쳤을 때 우리 주님은 다시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리라.
(우리 찬송시)
2절 귀한 주님의 말씀은 내 노래되도다.
모든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을
값도 없이 받아 생명 길을 가니
(번역 찬송시)
2절 복 되신 그리스도가 생명이신 자신의 놀라운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주시도다
생명이신 주님의 놀라운 말씀
죄인을 사랑의 부르심에 귀기울여라
우리를 하늘에 가게 하시려
모든 것 그토록 값없이 주셨다
요 5:24 ~ 25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자들이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고 하셨고 요6:63절에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고하셨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이 아니고는 구원받을 길이 없음을 말씀 하셨다. [젊은이의 사는 이상(Youth's Liuing ldeals)]지에 소개된 이야기다. 어느 할머니가 젊었을 때 많은 성경귀절을 외웠었다. 그러나 연로해지자 그의 다 잊어지고 딤후1:12절의 말씀: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라는 말씀만 명확하게 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말씀도 거의 다 기억에서 하나, 하나 새 나가 버리고“That Which I have committed unto Him -내가 주께 의탁한 것 -.”이란 말씀만이 굵은 체에 남은 큰 돌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임종의 임상에서 그의 입술 움직여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가까이 귀를 대니“Him, Him, Him - 주께, 주께, 주께”라는 마지막 말씀 하나만이 그의 입 언저리에서 살아 있었다. 다른 말은 다 잃어버렸으나 가장 귀한 말씀“주님”만은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잃었다 해도 오직 한 말씀“주님”을 되 뇌이고 있었으니 구원의 열쇠는 바로 잡고 있었던 셈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우리 찬송시)
3절 널리 울리어 퍼지는 생명의 말씀은
맘에 용서와 평안을 골고루 주나니
다만 예수 말씀 듣고 복을 받네.
(번역 찬송시)
3절 생명이신 주님의 놀라운 말씀
복음의 부르심 감미롭게 울리도다.
생명이신 주님의 놀라운 말씀
만민에게 용서와 평화를 주시도다
유일하신 구세주 예수여
영원히 거룩하게 하소서
가끔 신문에 심인(尋人)광고란에“@@엄마 모든 것 용서하니 속히 돌아오시오.”라는 광고가 실린 것을 본다. 어느 가정주부가 남편이 해외 근무하는 동안 영원히 씻을 수 없는 탈선행위를 하였다. 시가에서 이 사실을 알고 해외 근무하는 남편을 속히 귀국하게 했다. 겁에 질린 주부는 남편이 도착하는 전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귀국한 남편은 기가 막혔다. 피땀 흘려 벌어 보낸 돈은 다 탕진되었고 아내마저 잃었으니 세상살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날부터 술집에 가서 위로를 찾으려 했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더운 곳에서 마시지 않던 술을 폭음하니 몸만 견딜 수 없게 나빠졌다. 그의 나이가 50을 넘었으니 자식들도 적지 않게 크다. 술집에서 회포를 푸는 그에게 친구들은 권한다. 이제 그 나이에 처녀장가 가도 불행하고 또 갈 수도 없으니 결국 과부나 이혼녀와 재혼해야 되는데 그런 여자와 집 나간 여인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그럴 바에야 집 나간 여인을 용서하고 다시 사는 것이 자식들에게나 혹은 본인에게도 나을 것이라고 하는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심인 광고를 냈다. 집을 나간 여인이 죽을 길을 찾다가 어쩌다 그 광고를 보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집에 전화를 걸었다. 부인의 잘못으로 고민하여 죽도록 쇠약해진 남편이 전화를 받으며 용서할 뿐만 아니라 데리러 온다고 까지 하였다. 죽음의 길을 찾아 헤매던 여인에게 살길이 열린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조를 지키지 못하고 때로는 세상의 돈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때로는 가정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여 음행한 여인처럼 마땅히 버려야할 우리에게 용서와 평화의 기쁜 소식을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이 사랑의 글, 용서의 편지, 구원의 복음을 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으니 우리의 영원한 구세주가 아니겠는가? 우리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자가 그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있을 때엔 기어이 제거하시고 만다. 하나님은 결코 짝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심을 말해 주며 우리의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결코 허락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305)의 작시자 죤 뉴턴 (John Newton)목사는 어찌나 끔찍이 부인을 사랑했는지 부인이 임종할 때 반지를 만들어 끼어줄 정도였다. 이토록 지나치게 부인을 사랑하니 하나님은 그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우상을 제거하셔야 했던 모양이다. 부인을 하나님이 데려 가시자 뉴톤 목사는 그제야 또 다시 회개하며 “나의 아내는 나의 우상이었으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지 않을 수 없었구나!”라고 하며 아내를 잃은 것은 자기 때문이라고 애통해 하였다. 하나님은 뉴톤을 사랑하셔서 그토록 타락하여 노예의 노예로 전락한 그를 구원해 주셨건만 구원받은 그가 하나님보다 아내를 더 사랑하자 하나님은 그를 데려 가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자리는 결코 그 무엇에게도 양보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 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4~6)
고 하셨고,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멸절시킬까 두려워 하노라(신6:15)
고 하셨고.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하고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께로 돌아와야 진정한 삶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복음찬송은 블리스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영국에서도 많이 부르고 있고 작시 작곡자 블리스 부부도 자주 뚜엩으로 이 찬송을 부르곤 했다.
죠지 콜즈 스테빈스(George Coles Stebbins)박사는 1878년 콘텍티칼 주 뉴 헤이븐에서 펜티코스트(Dr. George F. Pentecost)박사와 둘이서 인도했던 복음 전도 집회 때 이 찬송이 사용된 것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그의 저서[추상록(Memoirs and Reminiscence)]에 기록했다.
내가 복음 전도 사업을 하던 두 계절기간 성가를 가지고 다녔으나 이 찬송이 지니고 있는 훌륭한 진리를 결코 깨닫지 못하였고 특별한 용도의 소요가 내포되어 있는 것도 몰랐다. 더욱이 이 찬송이 독창곡으로 더 없이 훌륭하다고 하는 것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나 뉴헤이븐에서 전도 집회를 가지던 어느 날 한번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뚜엩으로 불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청중들이 감격적으로 이 성가를 받아 드리는 것이다. 그로부터 이 집회가 끝날 때까지 집회에서 많이 사용한 찬송 중 가장 많이 애창되던 찬송이 되었고, 이 찬송가가 지닌 힘이 얼마나 크다고 하는 것은 그 지방의 모든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전달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 후 나는 콘넥티칼 주 주일하교 협회 총무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만약 당신의 아내와 같이 그 주에서 열리는 주일학교 연차 대회에 오셔서 그 성가를 한번 불러 준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금액의 헌금을 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전도자들의 전도 사업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의 많은 헌금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찬 송 곡 WONDERFUL WORDS
전술한 대로 블리스가 작시하고 이 찬송곡으로 작곡하여 1874년 [생명의 말씀(Words of Life)]지에 처음 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