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30.水. 맑음
세 절, 네 스님 이야기.
토굴.
한서대 정문 앞에서 왼편으로 길을 꺾어 안쪽 길로 들어서면 차 한 대가 다닐만한 은밀하고 숨어있는 길이 나타났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예전 별장풍의 낮은 일층 집과 손 떼 묻혀 가꾸어놓은 아담하고 낡은 정원들이 보이고, 길 양측으로는 작은 계곡과 비탈길이 다소 수줍게 늘어서 있었다. 차가 꼭 한 대씩만 한 방면으로 굴러가야할 숲길에 하얀 차가 한 대 떡 하니 주차되어 있었다. 그 차를 길 한켠으로 치우기까지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곳을 지나자 옴팍한 빈터가 홀연 나타났고, 어느 스님께서 홀로 16년 동안 정진하면서 살고 있다는 애잔해 보이는 작은 집이 보였다. 오른편 단층집은 요사, 왼편 황토집은 인법당인 셈이었으나 토굴이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는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숨어 있고 싶은 수행처修行處였다. 예전에는 형무소 교도관이었으나 마흔이 되는 나이에 수덕사로 출가를 하여 법랍法臘이 늘자 저절로 독선獨禪을 즐기는 토굴 스님은 교도소에서 알고 지내던 수감자를 출가한 수덕사에서 이번에는 사형師兄으로 상봉하게 되는 기연奇緣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러한지 그 사형스님은 이따금 토굴로 스님을 찾아와 예전 형무소 시절의 배려에 감사를 표하기도 하고 사형제간師兄弟間의 우애도 확인하면서 한 잔 술과 낮잠을 즐기다 돌아가고는 했다. 어쩌다 숲길에 차를 세워놓고 술에 취해 잠에 골아 떨어져 다음날 오후까지 잠을 잔적도 몇 번인가 있었긴 하지만. 요사의 복도와 방 천장은 헤진 곳을 낡은 잡지로 도배를 해놓았으나 공양간은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었고 찬장에는 일회용 스티로폼 팩까지도 차곡차곡 먹은 순서대로 깨끗이 씻긴 채 쌓여 있었다. 마땅히 우리에게 대접할 것이 없었던 토굴스님은 사형스님의 권유에 따라 읍내 해미다방에서 마즙을 시켜주었다. 주머니가 달린 어벙벙한 회색 홋바지를 입은 사형스님의 거친 입과 까만 초超 미니스커트 해미다방 미스 김 아가씨의 출현도 나름 신선했지만 그 사이에 빛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초연超然한 토굴스님의 수동적受動的인 의연毅然함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던 것은 인법당 옆에 차려놓은 기도실의 정갈함과 엄숙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노老 보살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도를 많이 받은 부처님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고 말했던 것처럼 기도를 많이 한 기도실도 그와 꼭 마찬가지로구나!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감돌았다. 우리들에게 간화선看話禪이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했던 사형스님의 일갈一喝은 어쩌면 우리들 사찰순례의 틈새로 끼어든 낯선 침입자의 표식標式 같은 것이었든가?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무관세음보살!
자비사.
토굴에서 빠져나와 산길을 조금 올라가면 널찍한 바위와 작은 소나무를 잘 가꾸어놓은 정원을 갖추고 있는 전원주택 같은 절이 한 채 보였다. 그곳은 유기견遺棄犬을 여러 마리 분양받아 기르고 있었고 넓은 채마밭과 눈 시원한 전경을 가지고 있었다. 주지이신 비구니 스님 눈가에 세속의 애틋한 정情 같은 세월의 주름이 몇 가닥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법등사.
언제, 누가,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신도들이 찾아올까? 하는 생각이 일어났으나 법당 안에는 연등이 여러 개 걸려있었다. 주지인 비구니스님께서는 붓글씨를 쓰다 나오셨는지 작업용 앞치마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제법 높은 산 중턱인데도 하늘 쪽이 확 트여있어서 기도를 하면 몽땅 하늘로 날아가 버릴 듯한 개활지開豁地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도량이었고, 왠지 토굴스님 못지않게 홀로 정진하면서 살기를 소망하는 비구니 스님이시구나. 하는 분위기가 뭉클 풍겨났다.
(- 세 절, 네 스님 이야기. -)
첫댓글 주지스님과 도반들과 늘 같이하는 길엔 어떻한 어려움도 어려움이라 느껴지지 않았어요.
험한길도 ,평소에 스님들께 못느끼던 일상도....
어려움이라 느껴지지않고 오히려 도약의 기반이란 생각까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