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암 가는길
9반 전명수
오도암(悟道庵)은 경북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팔공산 북서면 깊은 산속에 묻혀 있는 작은 암자이다. 대구에서 칠곡 동명을 거쳐 한티재를 넘는다. 대구의 북쪽에 팔공산이 우람하게 버티고 서있어 군위에서 대구로 내왕하려면 중앙고속도로나 옛날부터 통행하던 국도를 이용하여 왔는데 굳이 높은 산정 너머로 구불구불 고갯길을 터놓은 것은 편리함과 급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이 한티재 길을 통하여 명물 팔공산 너머로 드라이버 하는 요즘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한 편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천천히 꼬불꼬불 고갯길은 험하고 가파르다. 아직은 신록이 정겨운 계절인데 그늘이 더 좋은 여름날처럼 무덥기 까지 하다. 한티재 고개 마루 주차장에는 승용차량이 가득하다. 아마도 토요일이라 나들이 족들이 시원한 산정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쉬고 있는 모양이다. 다시 꼬부랑길을 따라 군위군 부계면 쪽으로 내려간다. 제2석굴암이라 불리는 곳을 지나 청운리 삼거리에 세워둔 동산계곡 안내표지판을 보며 우회전한다. 이곳에서 부터는 팔공산 산정에 위치한 군부대로 올라가는 군사도로이다. 한적한 산촌 풍경이 그대로 다가온다. 좁은 도로이지만 시원하게 뚫려있기도 하다가 꼬부랑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도 급 커버 길에는 도로 반사경을 설치해 놓아 운전하기가 편하다. 청운리 입구에서 약5km정도 오르니 도로 오른편에 오은사(悟恩寺)가 나타나고 한 참 더 오르면 도로 왼쪽 편에 아무런 안내 표지판이 없는 작은 주차 공간이 나온다. 그곳에 주차를 해 두고 길을 건너 좁은 오솔길을 잡고 들어선다.
어디를 가도 크고 작은 사찰에는 격에 맞는 안내표시판이 있기 마련인데 이곳에는 그런 안내표시가 없다. 다만 오솔길 초입에 잘생긴 화강암 바위위에 강바닥에서 가지고온 듯한 돌덩이 5개를 쌓아 탑을 올려둔 게 표시라면 표시 같아 보인다. 아마도 이것이 오층탑이니 오도암의 상징인 듯하다. 이쯤만 올라와도 산속 깊숙이 들어온 느낌이 드는 것이 사방은 울창한 숲이고 산새들의 노래 소리가 아니라면 적막강산이 바로 이런 경지가 아닌가 싶다. 잘 자란 소나무가 하늘높이 솟아 있고 그 아래 오솔길에는 솔잎 갈비가 자욱한데 길 걷기가 좋은 것이 마사토나 흙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참을 걸어 오르니 숨이 차오르는데 길옆에 인연, 오대광명, 사랑 등의 경전일부나 좋은 글귀들을 걸어 놓았다.
평탄 길을 지나니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난다. 스틱을 짚어가며 부지런히 걸었더니 길손들이 쉬어가라고 어느 처사님의 손길인지 통나무를 다듬어 길게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거기에 걸터앉아 건너편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우리의 산하가 아름다움을 다시 느껴보기도 한다. 계곡에는 흐르는 물이 보이지 않으니 이 봄에 많이도 가문듯하다. 오솔길 옆에는 연등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여느 사찰 입구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하여 요란하게 줄을 지어 걸어놓은 흔한 연등과 달리 외롭게 하나만 걸어 둔 게 소박한 마음인지 연등을 걸 신도가 없음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길옆에는 문수보살의 게송이 걸려 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 같은 부처님 마음 일세
쓸데없는 생각 말고 부지런히 공부하라
날마다 하루 종일 무엇 위해 바쁠 건가
바쁜 중에 한가로운 소식을 알면
한 그루 연꽃이 끓는 물에 피리라.
두 번이나 쉬어가며 오른 길이 너무 정겹다. 앞서가던 등산객도 보이고 암자에 오르는 보살님도 보인다. 작은 능선에 오르니 오두막 해우소가 보이니 암자에 닿은 모양이다. 오도암은 팔공산의 제일 명당으로서 비로봉의 청운대 절벽아래 자리 잡고 있는 암자로 신라 태종무열왕 원년(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오도(悟道)한 곳이라 하여 오도암이라 전해지고 있다. 1963년 폐사 이래 유허만 남아 있고 빼어난 상호의 불상과 탱화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절 뒤편 청운대에는 원효대사가 6년간 수행 끝에 득도한 원효굴과 김유신 장군이 젊은 시절 기거하며 물을 마시면서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였다는 장군수가 있다고 한다. 원효굴을 서당굴(誓幢窟)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서당은 원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암자 입구에는 두 개의 돌탑이 가지런히 서 있고 암자로 들어서는 사립문이 정겹게 다가온다. 그리 크지도 않고 자그마한 사립문이 경계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것이 어릴 때 시골집 대문을 회상하게 하는 때문인 듯하다. 사립문 위는 ‘묵언’ 이라 써 붙여 놓았다. 수행공간은 좁은데 속세 사람들이 많이도 재잘거려 득도의 길에 나아가는데 지장을 주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사립문을 당기고 들어서니 양쪽에 바위가 좁은 통로를 만들어 놓고 서 있다. 마당에는 지장보살입상이 서있고 그 양편에는 두 개의 돌탑이 정성스럽게 세워져 있다. 오도암의 분위기는 암자라기보다는 산골의 여염집 같이 다가오는데 법당은 조립식 건물위에 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고 요사채는 토담집이다. 법당에는 悟道庵(오도암) 현판이 걸려 있고 요사채에는 佛印禪院(불인선원)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불인선원 현판은 초서의 글씨라 한참을 들여다보니 겨우 알 수 있는 명필인데 일타스님의 휘호라 한다. 법당 안에는 화강암으로 빚은 약사여래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주지 금오스님이 전국에 다니면서 가장 못생긴 부처를 모셔왔다고 어느 보살님이 웃으며 귀띔 해 준다. 얼핏 보기에는 머리위에 쓴 갓의 모양이나 중후한 얼굴, 길게 내려온 귀의 모양은 갓바위 부처와 많이도 닮았다는 느낌이다. 조립식 건물이라 낮은 천장이고 불상 좌우에는 탱화가 걸려 있다. 아마도 이곳은 수난의 암자였나 보다 1963년도에 사찰이 완전히 훼손되었다가 지금의 주지승 금오 스님이 우연히 이곳에 왔다가 팔공산 중에서 가장 기(氣)가 좋은 명당이라 느끼고 암자를 다시 지었다고 한다.
마당에 서서 앞뒤로 올려다본다. 뒤에는 1,050m의 청운대가 깎아지른 듯 버티고 있고 앞의 팔공산 산정 비로봉에는 군부대의 높고 낮은 통신철탑 9개가 하늘 높이 솟아있다. 이곳에 서 있으니 참으로 편안한 느낌이 드니 분명 명당인 듯하다. 마당에 앉기 좋은 바위가 여러 개 있는데 이곳에 오는 신도들은 그 바위위에 앉아 기를 받아간다고 낯모른 보살님이 얘기해 준다. 특히 새해가 되면 모두 그 바위위에 앉아 기를 받아 간다고 한다. 마당 한 곁에는 상추랑 고추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올라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오는 시간은 불과 30여분이 걸렸다. 점심때가 지난시간이라 배고픔을 느꼈나보다. 제2석굴암 입구에 시원한분수가 있는 시골밥상 집에 들려 비빔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면한다. 팔공산 오도암 길을 오르내리며 고향인 경산 출신 원효대사의 숨결을 느끼며 뜻있게 보낸 산행을 겸한 테마여행길이었다.
첫댓글 팔공산 뒺자락애 위치한 조용하고도 아늑한 오도암을 다녀 오셧네요. 저도 면년전에 기회가잇어 들러 보앗읍니다 만 정말 아늑하고 편안한 조그마한 암자엿읍니다. 금오 스님이 우연히 이곳에 왔다가 팔공산 중에서 가장 기 가 좋은 명당이라 느끼고 암자를 지엇다고 하더군요 송하선생님의 좋은글 잘읽고 지나 갑니다 늘 건강 하시고 행복하십시요.
송하님 좋은 곳 다녀오셨네요. 원효대사와 관련된 오도암이 눈앞에 그려지네요.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 고즈녁히 서 있는 오도암이 너무 좋아보이네요. 언제 시간 내어 한번 다녀오고 싶네요. 잘 읽고 갑니다. 송하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