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절벽과 120m 폭포, 수묵화 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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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한 시대 아홉 장수가 목숨을 바치기로 결의하고 전쟁에 나갔다는 구장군폭포. 깎아지는 절벽을 타고 내리는 물보라가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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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비경이 짜릿함을 선사한다. 전북 순창의 강천산은 대표적으로 그런 곳이다. 강천산은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그런데도 국립공원은커녕 도립공원도 아니다. 전국 최초의 군립공원, 순창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순창군민은 그런 강천산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천산을 찾아가는 길은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아 있는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24번 국도 양측으로 나란히 서서 인사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강천산에 들어서면 평탄한 길이 펼쳐진다.
계곡길 따라 봄 기운 속 맨발 트레킹
향기로운 숲 그늘에 안겨 '힐링'
진성여왕 때 창건한 강천사 품 안에
수많은 시련 속 살아남은 오층석탑
한국전쟁 때 맞은 총탄 자국 또렷
인근엔 고추장 지존 순창 민속마을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계곡길
깊은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걷는 길이다. 매표소를 지나 처음 만난 병풍폭포. 높이 40m 지점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여기서부터 맨발 트레킹 코스가 시작된다. 신발을 벗어 매표소에서 나누어 준 주머니에 넣고 걷는 순간부터 온몸에 상쾌함이 전해진다. 계곡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경쾌함이 더해진다.
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폭포 소리를 뒤로하고 걷다 보면 강천사가 나온다. 신라 진성여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고려 시대에는 승려 1천여 명이 머물렀을 정도로 큰 절이었다. 그 울력으로 본래 용천산이었던 산 이름까지 강천산으로 바꾸어 놓은 절이다.
하지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했던가. 강천사는 절이 컸던 만큼 사연도 많았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완전히 불탔다가 선조 37년에 재건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매일 밤낮으로 점령군이 바뀌는 시련 속에 잿더미로 변하는 아픔까지 겪었다. 그런 시련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목격자가 절 마당에 의연히 서 있는 지방유형문화재 92호 오층석탑이다. 하지만 그 오층석탑도 저세히 살펴보면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한국전쟁 때 맞은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 그런 세파를 지켜본 순창 주민이기에 '용이 하늘로 오르는 큰 뜻'을 품었다는 '용천산'보다 '옥을 굴리듯 아름답다'는 '강천산'이라는 이름을 더 선호했을지도 모른다.
강천사를 지나 10분가량 걸으면 구름다리가 나타난다. 지상 50m 높이에서 계곡을 가로지르는 붉은색 현수교다. 협곡을 통과하는 바람이 불 때면 다리가 흔들거려 정신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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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산 구름다리에 서면 협곡을 통과하는 바람이 스릴을 더해 준다. |
구름다리에서 10여 분 걷다 보면 구장군폭포가 나온다. 높이 120m. 마한의 아홉 장수가 죽기를 결의하고 전장에 나가 승리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쏟아지는 구장군폭포는 쌍 폭으로 장마철에는 장관을 이룬다. 비가 적은 봄철에도 장엄함을 잊지 않는다. 강천산을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것도 구장군 폭포의 매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푸른 빛 계곡에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강천산. 금수강산이라는 표현이 혹시 이곳에서 나왔을까.
강천산에도 예닐곱 시간씩 걸리는 일주산행 코스도 있지만 대부분 병풍 계곡에서 강천사를 지나 현수교 전망대를 거쳐 구장군폭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이 코스를 선호한다. 매표소에서 구장군폭포까지는 약 5㎞ 남짓. 왕복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
■고향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고추장 마을 강천산 입구에서 차로 10여 분 달리면 순창 고추장 민속 마을이 나온다. 순창 일대에 있던 고추장 제조 장인을 순창군청이 1997년에 이곳으로 불러들여 조성했다. 그렇게 모인 전통장류 기능인 50여 명이 재래식 고추장과 각종 절임류를 포함한 20여 가지 전통식품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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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냄새가 가득한 순창 고추장 민속마을. |
순창에 고추장 민속 마을이 조성된 배경도 재미있다. 현지 향토 사학자들에 따르면 고려 말 역성혁명을 꿈꾸던 이성계 장군이 왜구 토벌을 마치고 무학대사가 수도하던 순창 '만일사'에 들렀다. 그 때 이성계가 절 아래 민가에서 '초시'(고추장의 전신)를 맛보았단다. 훗날 왕이 된 이성계가 그 맛을 잊지 못해 순창 초시를 진상할 것을 요구해 '순창 고추장'을 명품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것이 전설의 요지다. 우리나라에 고추가 처음 들어온 것이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전설에 신빙성이 있는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순창이 전통 고추장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순창 고추장 민속마을에 들어서면 집집마다 장독대가 즐비하다. 한옥 대청마루 앞에 메주를 매단 모습이 고풍스럽다. 고즈넉한 한옥과 장독대, 메주 익는 냄새가 정겹다. 장독대 안에는 고추장, 된장, 간장, 매실 장아찌, 감 장아찌가 가득하다. 현장에서 판매하고 인터넷 주문도 받는 다. 품질 관리는 순창식품과학연구소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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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에 건립돼 수차례 잿더미로 변한 아픔을 간직한 강천사. |
그런 절차보다 마을 주민들의 인심이 더욱 깊은 맛을 낸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아 맛을 보고 가라고 붙잡는 모습에서 넉넉함이 묻어 난다. 장맛과 인심은 깊을수록 좋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글·사진=정순형 선임기자 junsh@busan.com
취재 협조=코레일부산경남본부
여행 팁
■교통편
부산에서 순창까지는 직행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이 없다.
자가운전을 하면 남해고속도로(순천분기점) →순천완주고속도로(남원 분기점)→88올림픽고속도로(순창 나들목)로 가면 된다. 240km로 3시간 10분 소요. 통행료 9천 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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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산 맨발 트레킹 코스에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나무. |
■맛집 순창 음식은 밑반찬이 푸짐하기로 유명하다. 한정식을 시키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많은 반찬이 따라 나온다. 주꾸미에 낚지 볶음, 돼지 두루치기, 소 불고기, 계란찜, 파전, 고등어 무조림 등등. 마지막에 된장국과 구운 조기가 약밥과 함께 나온다. 한 젓가락씩 맛을 보기도 전에 배가 부를 정도다. 산경가든 1인분 1만 3천 원. 063-653-6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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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만큼 푸짐한 한정식 밥상 |
■잠잘 곳 소듐펜션:010-4662-4582
오쏘펜션:063-383-1012
수목원펜션:010-8600-9097
강천산풍경펜션:063-652-2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