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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명소 스크랩 도성답사 숭례문을 뒤로 하며(11.14)
숲길(吉) 추천 0 조회 19 10.01.07 14: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번에 쓴 도성답사 이야기를 올려 본다.

 

도성성곽답사(11.14)

 

도성성곽답사는 서울KYC 도성길라잡이가 회원과 일반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연례행사라고 한다.

우리같은 시민들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번 서울디자인문화재단에서 서울KYC 도성길라잡이의 도움을 받아 흥인문에서 낙산까지 도성성곽 답사를 하고 해설을 들은 바 있다.

그 다음날은 돈의문에서 인왕산까지 한다고 해서 갔다가 오지도 않는 비를 핑계로 일정을 취소하여 혼자서 돈의문에서 인왕산까지 갔다 온 바 있다.

그러니 전문가들이 안내를 하는 도성성곽답사는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이 연초에 새해 마음을 다지기 위해 도성성곽답사를 했다고 한다.

그동안 양쪽 발목이 좋지 않고 왼쪽 다리도 갑자기 지난 토요일부터 통증이 시작되어 병원에 가서 약을 지어 먹기도 했다.

처음의 목표는 혜화문까지 다녀오는 것이다.

그 정도만 다녀오면 잘하면 혼자서도 다녀올 것같았기 때문이다.

7시 40분까지 숭례문에 도착하니 많은 분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다 모이다 보니 30명 내지 40명 정도는 되는 것같았다.

먼저 숭례문에 대하여 이달수 선생님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숭례문 바로 밑까지 가서 보았다.

홍예문 안의 용인가 하는 그림은 그대로 있는 것같았다.

생각해 보면 숭례문에 불이나기 1주일전쯤인가 남산 야외식물원에 다녀오다가 숭례문 사진을 담은 것이 내가 본 숭례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구석 구석을 담았으면 좋았을 껄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 후로 어디를 가든 1장의 사진이라도 더 담을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남지 설명도 이달수 선생님이 해주셨는데 중종때 이한로라는 역신의 집을 파서 연못을 만들었다고 하시는 것같았다.

남지에서 마포쪽으로는 어물전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생선은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함부러 도성안으로 가지고 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생선이 오지 않고 지금같으면 생선 냉동차량같은 많은 물량의 어물이 한꺼번에 들어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음에 간 곳은 소덕문터인데 나중에 소덕문이 소의문이 되었다는 것이다.

언제 없어진 지는 모르고 지금은 표지석만 있을 뿐이다.

원래 성곽은 이화여고 원형극장을 통과했다고 하는데 이화여고 들어가는데 허락을 맡고 들어갔다.

이유철 회장님은 일정관계상 그냥 갈려고 했지만 이달수 선생님의 열정 때문에 우리는 이화여고 원형극장 구경을 했다.

성곽길은 원래 러시아공사관인가 그 쪽으로 이어졌지만 그리 갈 수가 없어 돌아가게 되었다.

돈의문도 이달수 선생님이 해설을 하셨다.

돈의문은 전차가 생기면서 없어졌다고 하는데 어떤 분은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기억된다.

경교장이 강북삼성병원 안에 있는데 그 옆으로 해서 길은 이어졌고 사직터널 위 부근에서 조망대가 있어서 서울을 조망하고 갔다.

그러고는 성곽밖으로 갔는데 지난번에 안으로 갔으니 밖으로 가니 더 좋았다.

인왕산 밑을 지나가는 도로까지 갔는데 그 곳에서 화장실이 있어 일도 보고 갔는데 어떤 노인분이 혜성같이 나타나 선바위, 국사당 등을 쳐다보면서 그 근처의 바위 하나 하나와 절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는 것이다.

원래는 그 곳에서도 성곽밖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지금 공사중이서서 안으로 돌아서 갈 수 밖에 없었다.

지금 하는 공사는 12월이 지나야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도 도성성곽은 계속 재현중이었고 어떤 분은 복원이 아니고 재현이라고 써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

어찌되었든 길이 공사중이니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인왕산 등산을 시작해야 한다.

인왕산 등산을 하고 정상에 올라가 간식을 먹었다.

이유철회장님은 손수 배를 깍아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보니 회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곽답사 오신 분들 중에서는 30살 아들과 오신 여성분이 기억에 남았는데 얼마나 사이좋게 가는 지 부러운 모자였다.

친구와 같이 오신 분도 있고 김명옥 선생님은 궁궐 해설을 10년을 했다는데 도성성곽해설은 1, 2년 쯤 되었다고 하시는 것같았다.

김명옥 선생님은 A3 용지 크기의 클리어화일에 도성관련 사진과 그림을 넣어갖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곤 하였는데 사직터널위 조망대에서는 직접 해설을 시작하기 시작하셨고, 인왕산 정상에서도 도성 성곽에 대해 해설을 시작하였다.

인왕산에서도 기념사진을 찍은 것으로 기억된다.

인왕산에서 창의문쪽으로 갔는데 가다보니 기차바위쪽으로 가는 길도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는 잘 몰라서 기차바위로 가서 부암동으로 내려갔던 것같다.

이런 일을 겪지 않을려면 모든 길에는 안내하시는 분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느끼었다.

창의문에 갔었는데 편액이 있는 맞은편쪽에 홍예 위에 무슨 문양이 있었는데 봉황이라는 이야기와 닭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창의문에서 신분증으로 출입팻찰을 바꿔 주어서 그것을 차고 갔다.

창의문에서 백악산까지 가는 것은 너무 힘든 계단코스였고 사진도 마음대로 찍지 못하게 하였다.

백악산에 가니 그 곳에도 바위가 있어 그 위에서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찌고 백악산에도 백악산이라는 표지석이 있었다.

그 표지석을 기념으로 기념사진을 사람들이 많이 찍고 있었다.

백악산을 지나 청운대에 갔는데 그 곳은 사진찍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백악산을 지났는가 아니면 청운대에서 그랬나 하여간 백악산에서는 아닌데 그곳에서 보니 광화문 거리가 우리가 광화문 거리에서 볼 때는 백악산이 정면인가 했는데 그곳에서 보니 백악산을 비켜난 것이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아니면 사연이 있는지 나중에 연구, 확인해 보아야할 일이다.

하여간 청운대에는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 소나무가 푸르러서 청운대인지는 알 수가 없다.

청운대에서 내려가서 곡장있는 곳으로 갔는데 곡장이니 치니 하는 것은 성곽에 달라붙는 적을 옆에서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런 치를 가장 잘 만든 곳이 수원 화성이다.

곡장을 지나 드디어 숙정문으로 갔는데 이 문도 복원된 문이라는 것이다.

참 이 구간에서는 소나무에 때운듯한 표식이 있었는데 김신조 일당이 총을 쏜 곳이라고 한다.

숙정문에 갔더니 어린이들이 많이 공부하러 왔는데 기억나는 이야기는 여성들이 이곳을 3번 드나들면 좋다는 것이다.

이 숙정문은 이괄의 난때 병력이 들어온 곳이라고 해서 조선후기에는 거의 폐쇄된 문이라는 것이다.

숙정문을 지나 혜화문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좋은 길이었는데 숙정문 근처에서 그 유명한 삼청각이 보이는 것이다.

그 밑에 길상사, 간송미술관, 최순우 고택이 있는 곳이다.

혜화문도 없어진 것을 복원했는데 길가에 복원할 수 없어 옆에 복원하였다.

혜화문에서 낙산으로 가는 길은 많이 재현중인데 아직도 시간이 걸릴 것같았다.

그렇지만 지난 9월보다는 많이 재현이 되고 길도 새로 만들었다.

낙산 정상에 있던 나무가 무슨 나무인가 했더니 지난 9월 사진을 보니 가죽나무였다.

그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지 않고 좀 더 가서 팔각정 위의 휴게시설에서 해설을 들었다.

그곳에서 보니 안산, 인왕산, 백악산, 남산 등이 잘 보였다.

낙산에서 내려가는 길에 일제시대의 주택 구경도 하고 암문으로 해서 성 밖으로 나갔다.

흥인문 가까이 가서 각석인지 각서인지 각자인지를 구경하고 이것은 요즘 말로는 공사실명제라는 것이다.

흥인문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흥인문에는 옹성이 있는데 그 지역이 낮다는 이야기, 지대가 낮아 지반을 보강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동대문이라는 말은 예전에도 쓰던 말이어서 꼭 흥인문이라고 안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낙산이 낮아 비보사상으로 지자를 넣어 흥인지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여간 우리 조상들의 풍수사상에 대한 신념은 대단한 것같다.

흥인문과 숭례문이 살아 남은 것은 일본의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이 입성한 개선문 성격이어서 살아 남았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흥인문과 숭례문은 대단한 것이다.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은 많이 복원이 되어 가는데 이간수문은 볼 수 있도록 조금 재현이 되었다.

역사관에서 사진 구경도 하고 유물구경도 하고 그곳을 떠났는데 광희문으로 향하였다.

광희문은 전에 유행했던 단이란 책에서 광무, 융희의 글이 합쳐서 조선은 광무와 융희때 망하게 되어 있다고 예언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사실을 확인이 곤란하다.

종묘의 출입문이 예전에 창엽문으로 조선은 28대, 20세대에 끝나게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광희문을 지나 올라가다가 국립극장쪽으로 가다가 남산으로 올라갔는데 사실 나는 혜화문가기전에 다리가 아파 지팡이를 짚기 시작하였다.

혜화문에서 집으로 가기로 하였으나 갑자기 지팡이를 짚으니 조금 괜찮은 것같아서 계속 가기로 했는데 이 지역부터 오른쪽 다리 무릎안쪽이 아주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였다.

그러는데 남산에서 갑자기 엄첨난 나무 계단이 나타난 것이다.

죽을 힘을 다해 겨우 올라가니 남산산악회가 이용하는 공원이 있었다.

거기서 쉬었는데 추워서 오래 쉴 수가 없었다.

거기서 다시 남산 허리를 이용해서 올라갔는데 가기전에 재미있는 것은 3년 개근 기념석이 있어 웃으면서 갔다.

하긴 남산 등산 3년 개근이면 대단한 것이긴 하다는 공감대로 웃었다.

남산 허리를 통과하여 가는 길은 낙옆과 단풍으로 너무 멋진 길이었고 봄에 오면 혹시 꽃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도 생겼다.

그 길로 가니 남산타워로 가는 도로가 나와 그 길로 계속 올라갔다.

마을버스가 올라갔는데 버스가 얼마나 부러웠는 지 모른다.

남산타워로 가는 길도 단풍이 너무 좋았다.

팔각정에 올라가니 거기에 무슨 통신회사에서 이벤트 행사를 하고 있었다.

팔각정에서도 너무 추워 오래 있을 수가 없었고 봉수대와 막 어두워지는 서울 야경을 몇장 찍고 내려왔다.

예전 어린이회관 지금은 서울시 정보무슨 센터 그 앞이 바람이 불지 않아 그곳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우리의 구수한 연사인 광화문연가님의 예전 이 중앙도서관에서 사서누나들에게 잘보여 줄서지 않고 열람권을 얻던 무용담을 들으면서 기다렸다.

일행 모두가 모여 남산을 내려오며 드디어 숭례문에 도착하였다.

오늘 수고 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회원들은 식사를 하고 가신다고 하여 나는 인사만을 남긴 채 바람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막 숭례문을 지나는데 어느 마스크 쓰신 분이 있는데 장경상 선생님이셨다.

일행이 저기 보이는 건물 맞닫는 곳에서 왼쪽으로 식사하러 갔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역으로 갔다.

지나와 보면 오늘 하루 평생 추억에 남는 날이 되었다.

악조건을 무릅쓰고 도성성곽 일주를 한 것이다.

오늘 수고하신 서울KYC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 너무 고맙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사셔서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에게 우리 소중한 문화 이야기 많이 전해 주셔요. ^^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숭례문쪽에서 서울역쪽으로 보니 단풍나무가 노란 물을 들이고 있다.

 

 

숭례문 공사중인 벽에 사진을 전시시켜 놓았다.

 

 

도성답사를 가는 분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각자 인사소개를 하는 중인데 무슨 동 누구입니다가 소개의 전형이다.

 

 

이달수 선생님이 숭례문에 대하여 해설하시는 중이다.

 

 

 

 

숭례문의 홍예문 안에 벽화를 담았는데 너무 어두웠다.

 

 

남지쪽을 향하여 가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이다.

 

 

남지터이다.

 

 

남지터를 지나 성곽을 따라 가는데 여기는 성곽이 거의 없어진 곳이다.

 

 

남지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하시는 이달수 선생님이시다.

 

 

숭례문쪽을 쳐다본다.

 

 

저길이 성곽길을 가는 길이다.

 

 

성곽 재현을 일부 한 곳이다.

 

 

저 곳은 특히 예전의 성곽이 일부 있다.

 

 

소덕문터 표식이다.

 

 

김명옥 선생님이 차트 들고 계시고 이달수 선생님이 해설을 하고 계신다.

 

 

하준태 처장님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

 

 

소덕문터 다시 담는다.

 

 

이 교회 무진장 오래된 것같다.

 

 

여기가 신문화의 요람지인가 보다.

 

 

이 곳이 배재공원이다.

 

 

이달수 선생님이 러시아대사관에 대하여 설명하고 계신다.

 

 

보이는 곳이 러시아대사관이다.

 

 

이 나무 이름이 궁금하다.

 

 

이달수 선생님의 해설은 계속된다.

 

 

저기 담 밑에 성곽의 흔적이 보인다.

 

 

여기가 정동교회인가 보다.

 

 

정동교회 옆 길인데 이 거리가 1800년대 후반에 신문화가 범람하던 거리이다.

 

 

이 돌담길을 가면 이화여고이다.

 

 

 

이화여고 정문인데 이유철 선생님은 일정을 생각해서 패스 패스를 외쳤지만 이달수 선생님이 성곽길을 보여주기 위해 양해를 구해 입장했다.

 

 

이화여고에도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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