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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러하지만
여행은 깨어나고싶지않은 꿈,
달콤한 유혹이다 .그러기에
끝나는즉시 밀려드는 공허는
나를 이내 갇히게한다.
탈속과 환속의 경계, 어느 틈새
한구석에서 헤매이는 나..
언제쯤 쉬이 빠져나갈수있을까~
시베리아행 열차
기적소리는멈추었지만, 난
전리품과도 같은 기억들을 품에 안은체,쉽게 역사를 빠져나오지
못한체, 다음 목적지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토로만 여겨졌던 땅, 러시아
그곳은 내가 경험한 그 어떤 지구상의 번지보다
휴머니티와 오랜자존감으로 무장한 체, 깊은 문화적 단층들로
빛나고있는 거대보석이었고,
오래 머무르고싶은 유혹들로
여기저기서 비교를 거부한체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펼쳐보인,
대파노라마의 무대..
다시가고싶은 따스한 나라였다
~~~ ~~~ ~~~ ~~~ ~~~
새벽 네시경,
그전날 라우다떼(카톨릭연합성가대)공연에서
늦게돌아온탓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세웠지만, 설레임으로 가뿐히 약속장소로 향했는데,
하지만
이게 웬 일~ㅎ 서천둔치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데 한쪽발바닥의 이상징후포착~ㅎ
아뿔사,웃지못할 돌발사태발생..
발굽이 떨어져나간게 아닌가~
오랜동안 신발장속에서 잠자던 부츠를
택한게 화근이었다.
걸음을 띨때마다 마치 허물을벗듯 뚝뚝
떨어져나가는 고무조각들이 온몸으로 먼길동행을 거부하는게아닌가~ㅎ
이내 수북하게 재가된체 난감하게 나를 몰아댄 이 사건은 공항 입국장 면세점에서 새신발을 사 신음으로써
사태종료...ㅎ
생전처음 겪는,잊지못할 해프닝이었다.
경주를 찍고 도착한 포항,
가장 많은 인원이 정시에 탑승,하지만 버스는 한동안 출발을 모른다. 알고보니, 대형캐리어 일색의 커단 짐가방을 싣는데 이십여분의 새벽노동이 요구될줄이야~ㅎ
답사역사상 처음인 동절기행, 게다가 행선지는 극한의 땅, 시베리아임을 실감케하는 새벽이었다.
짧은 비행끝에 도착한 첫목적지
블라디보스톡.."동방을 지배하라"는 어원이 말해주듯, 군사적요충지로써
부동항이 절실했던, 제정러시아의 열망으로,치열한 근대사를 담고있는 도시로서
포항공항과도 흡사하게 닮은 공항은
몇년전 열렸던 APEC덕에 말끔하게
단장된 모습으로 아주 가깝고도 먼나라에서 온 이방인들을 맞고있었다
이미 나목인 거리의 가로수들,
우리일행은 두시간여만에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을 갈아탄체, 이국에서의
첫 목적지, 독수리전망대로 향했다.
두형제의 동상(9세기경 들어온 선교사로 러시아문자인 키릴문자를 처음으로 고안해낸 성인상)이 내려다보는 항구는 절묘한 지리적 생김으로
부동항이란, 프리미엄을 얻었다는데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과 남루하지 건물들로 극동개발 정책의 에너지가 느껴지는게 한켠에 정박해있는 대형군함들은 현재진행형인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이곳의 입지를 대변 , 남북한의 길이 하루빨리 열려 극동과 유럽을잇는,천혜의물길로
거듭나주기를 간절히 염원할밖에~
그런데, 난간여기저기에 걸려있는 자물쇠들이.. 이곳도 연인들의 데이트코스인 모양~ㅎ
저렇게 해서라도 지키고싶은
사랑이란 녀석은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그 위력을 발휘하는모양이었다...ㅎ
전망대답사를 마치고 다음코스는 저녁식사, 킹크랩이 준비되있는 식당으로 향하는 거리는
주택가인듯했는데,
서구적 느낌의 거리풍경이 유럽의 한지점을 거니는듯한 느낌이었고,
첫식사로 나온 킹크랩은 양도 맛도 굿~ㅎ, 첫식사의 점수는 A..
게다가 곁들인 해물탕 또한
싱싱한 해물들로 꿀맛의 이중주,
여기저기서 성급하게 보드카한잔을 주문했지만, 다소 비싼가격에 일단은
유보,다음을 기약하고 식사끝~ㅎ
2박이 예정된 호텔로의 이동순서..
꽤나 큰규모의 호텔은 몇분만 나가면 바닷가산책로를 끼고있는,
뷰티플 자리매김.. 첵크인에 가방던져두고는 곧바로 중무장한체
고우아웃...ㅎ
송정바닷가를 연상시키는 둥그런물길이 부드럽게 흐르는밤..
서천에서 바라보던 그달이 샤워를하고 이곳까지 왔을까~ㅎ
유난히 하얀 살빛의 보름달이 이국에서의 첫날밤을 흔들어대니
맥주한잔이야 당연지사~ㅎ
추위를 불사한 야반이탈의 낭만객, 십여명은 아주 순한 가격에
맥주몇병과 과일안주로 첫날밤을
자축..펼쳐질여정의 성공을 위한 잔을 들었다
둘째날
본격적인 연해주답사의 시작
우리가 향한곳은 우수리스크지역
블라디보스톡과 더불어 초창기 한인들의 옹골진 삶의 뿌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역사의 땅으로,가는 버스내에서 나는
'최재형'이라는 한 영웅의 생애를 담은
동영상 한편을 만날수 있었다
1863년,
13명의 함경도 출신 첫이주자중 한명이었던 그의 부친은 기근을 피해 먹고살기위해 이주해온 노비였고,
10살때 가출을 시도한 그는 운좋게
선장부부에게 입양, 서구화된 환경에서 성장, 교육을 받을수있었고
러시아어와 중국어에 능통한덕에 사업수완을 발휘,천문학적인 부를 쌓았지만 한 개인의 영달을 떠나 32개의 학교를 세우고, 연해주지역 독립운동의 한 축으로 전재산은 물론 온몸을 불사르다 끝내 러시아인의 국적을 지닌체 일본인의 총탄에 스러져간 인물로 그의딸이
쓴 자서전에 의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단다.
물질적욕망의 바벨탑들이 난무하는
세상에 구국의 일념 하나로 자신의 모든것을 내어던짐은 얼마나 빛나는
생애더냐~ 그의 이름석자는 화석처럼 내안에 오랜동안 각인되리라..
뭉클했던 그날의 울림과 함께~
첫도착지 고려문화센터
연해주에 정착한 초창기 한인들의
삶의 역사가 씨앗에서부터 항일의 불꽃같은 투쟁의 시간을 지나,들꽃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성장,마침내
평화를 일구기까지 험난한 역사의 현장들이 고스란히 전시되어있었는데,
연해주는 꺽이지않는 희망으로
승리를 일구어낸 자랑스런 한민족의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 그 자체였고,
전시관을도는 내내 젊은 시절 항일 전선에 뛰어들어 만주벌판을 헤매이셨던 돌아가신 내아버지가 드문드문 오버랩되곤했다.
뒤이어 찾은 이상설선생유허비
앞서 만난 최재형선생보다는 익숙한
이름으로 저유명한 헤이그밀사의 세분의 주역중 한분으로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못한체 돌아가실때가되자 무덤조차 쓰지못하게해 솔빈강물에 한줌의 재로 뿌려졌단다.
동해로 흐르는 강물줄기~애닯은 넋이라도 조국의 산하에서 편안하게
잠드셨을까~우리일행은
잡풀더미만이 무성한체 쓸쓸한 선생의 유허비앞에서 만세삼창과 아리랑을 전심으로 목청껏 불렀고, 예정에도 없던 발해산성지를 향해 자연스레 발길을 옮겼다.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 발해의 영토가
오늘날 중국을넘어 연해주까지
이르고있음을 우리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역사는 때로 힘있는 자에의해 잠시 왜곡의 수난을 겪지만, 출토된 유물들은 거짓을 모르는법,
대조영의 말발굽소리가 들릴것만 같은
언덕위에서 나는 취약한 역사의 장, 발해에 관해 파헤쳐보리라는 열망하나를 품고 내려왔는데 가이드 유승호님에게서 들은
발해 멸망원인에 관한 새로운사실,즉
외침이 아닌 지진에의한 것이었다는
내용으로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재미있는 대목이었다.
예정에도없던곳을 방문하느라
다소 늦어진 점심식사는 돼지고기탕수육에 고사리나물과 기타 반찬들이 자웅을 겨룰수없는
꿀맛이었고 식후 향한곳은 때마침 열린 노천시장 방문..
잡다하게 늘어선 품목가운데 우리 일행에게 단연 인기짱은 순도100프로의 러시아산꿀(이때 산 꿀은 유용하게 쓰여 우리일행에게 톡톡히 효자노릇을 함) 과 화분가루,
나는 자두의 일종인 프론 한상자를 꿀대신 사들고 버스로 돌아왔다
다음행선지는
최재형선생이 숨지실때까지 사셨던 남루한 생가와 대한국민의회 발상지 기념관.. 그리고, 1937년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시 처음으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는 한이 서린, 역사를 잠시 들러본후 블라디보스톡으로 귀환,김치찌개로 저녁을 먹었는데 이때의 김치찌개는 서막, 우린 이후 서너번의 김치찌개를 섭렵..도착날
점심까지..그야말로 김치찌개 퍼레이드
맛들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가 먹을만한 수준급이었다.
저녁식사후 호텔에서 잠깐 휴식,
전원이 어제의 그 장소로 수평이동..
맥주파티는 밤10시가 되서야 끝이났고,
난,인디파트너로부터 받은,분홍색 장미한송이를 안고, 아드리아만의
해변을 지나 내숙소로 컴백했다
세째날
본격적인 블라디보스톡 시내답사후
하바롭스키로의 이동이 예정,
첫번째로 향한곳은 에이팩대교를 건너 다다른 루스키섬의 요새박물관..
금방이라도 여우가 튀어나올것같은
청정숲을 지나자 목적지 도착~
2차세계대전후에 지어졌다는데
서너차례 실전에 투입, 포성을 울렸다는 이곳은 지하 3층까지 연결된
미로구조가 어찌나 치밀하고 집요하던지~죽여야만 내가 사는 절대원리, 전쟁은 생활이었고, 때로는 오락과도 같은 유희였을까~전쟁과
인간과의 함수관계에 관해 다시한번 묻고 또 물었다. 인간이지닌 잔인한 본성에 관해서도~
박물관을 나와 이른곳은 에이팩회담이 열렸던 국립대학교, 겉모습은 단조롭기
짝이없는 허술함이었는데 가이드말로는 꽤나 아름다운 캠퍼스라고하니 의아할밖에~
하지만, 본관인듯한 건물의 현관문을 열자 나는 깜짝놀랐다. 방호원인듯한
사람들에의해 이내 제지당해 들어가진
못했지만 바다가 전면으로 보이는 실내는 차라리 근사한 연주회장의 그것, 저런곳에서 과연 공부가될까~
문화적갭은 아카데미에도 유효..ㅎ
재밌는 목격이었다.
세계에서 가장긴 사장교라는 다리를 지나 이른곳은 바닷가 추모공원
쌀쌀함에불구,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어머니들이 산책중이었는데
이곳에도 자물쇠꾸러미들이 난간여기저기에서 달아날것만 같은 사랑을 걸어잠구고 있는게 보였다
점심식사지로의 이동
두번째 김치찌개가 우릴 반겼다
식후 찾은곳은 백화점
쇼핑목적이 아니라 그보다 더욱 절실한욕구,
해우의 장소였다. 화장실찾아 삼만리~ㅎ
에스카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몽땅동원 ,이윽고 건물꼭대기층에서야
만날수 있었으니.. 그래도 공짜로 소기의목적을 달성, 고마워할밖에~ㅎ
시원하게 비우고 찾은곳은 러시아여행중 첫번째로 만난, 영원의 불꽃, 2차세계대전으로 번진 독ㆍ소전쟁에서 먼지처럼 스러져간 수많은 이름들을 추모하는 이 장치는 도시곳곳마다 수없이 목격되었고, 그곁에는 여지없이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국을위해 산화되버린 목숨들과 영원히 꺼지지않는 불꽃으로 그들을
기억하고있는 조국,희생은 끝내 헛되임없이 아름다운약속으로 영원히 타오르리라..
저들의 휴머니티가 뜨겁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몇발짝 거리에있는 잠수함박물관,
2차대전당시 독일군함 10대를 침몰시킨 전쟁영웅을 그대로 박물관으로 개조,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블라디를떠나기전 마지막으로 들른곳은 신한촌기념비,
다시일군 한인촌에 흝어져버린 동포들을 한데모으자는 정신을담아
건립되었다는데,
매일아침 불편한몸을 이끌고 나와
이곳을 관리하시는 분은 역락없는
의사, 안중근이었다
우연이라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꼭빼닮은 모습이 흠모의 념이 만들어준 결과일까~우리는 하얀국화꽃다발로 헌화의 예를 치른후, 즉석에서 그분에게 전달할 성금을 모아(15,000루블 한화로 삼십여만원)그분에게 전달하는것으로
부끄러운 동포애를 대신했다.
빼앗겨버린땅, 연해주
그곳에서 고려인들은 그들만의 터전을 닦고 있으리라..
"한민족의 후예여, 영원하라~" 방문록에 쓴 국장님의 글귀에 우리들모두의 마음을 담고 돌아서는데 마음은 내내 무겁기만 했다.
드디어,
기차역으로의 이동순서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첫번째구간
블라디보스톡에서 하바롭스키까지..
본격적인 열차행을 위한 예행연습인셈, 고맙게도 우리의 듬직한 우군,가이드
유승호씨가 동행해준덕에,
염려할건 아무것도 없는, 가벼운 걸음으로
4인1실의 쿠페, 각 방마다 보급할 생수를 구입해서 기차에 올랐는데
우리일행은 한부부말고는 한칸을 독채로 전세, 온통 우리세상..ㅎ
각방마다 신방꾸미기작업 돌입, 종료하자마자 드디어 식사시간
8끼니의 전투식량중 첫번째
보급품 개봉, 물론 그맛은 슈퍼급..
차창밖으로 이어지는 자작나무숲들의 행렬을 배경으로한 모바일레스토랑~
5성급호텔의 뷔페가 이보다 더 근사할까~ㅎ
기차여행의 진수가 저녁식사 시작을 필두로 서서히 달아오르는 저녁, 기차는 달리고,
우리들의 잠들지않는기쁨 또한 멈출줄
모르는 밤~얼마쯤 잠이 들었을까..
새벽4시경,
꿈속인듯한데 눈이내렸다.
바로 그때 새벽어둠을 뚫고 들려온 음성,
복도에서 누군가가 "눈이온다~"소리를 질렀다.
벌떡일어나 창밖을 보니, 아~!!
분명, 하얗게 나부끼는 눈발이었다
도저히 해독불가의 사태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더니~ㅎ
꿈속에서 본 그눈이 내앞에서 현실이
되다니..난, 그대로 기상, 세면후 꽃단장완료, 하지만 주위는 여전히 한밤중의 고요.난 얼마쯤 서성이다 또다시 베드레스트..
하얗게 뒤덮인 역사, 하바롭스키역은
멀리서 온 이방인들을 설레이기에
너무도 충분한 아름다움으로 우릴맞고 있었다. 처음으로 느껴진 칼추위조차도
눈덮인 정경이 가져다주는 흥분앞에서는 미풍일뿐, 우리는 연속계단의 구조때문에 현지 포터들에게 짐을 맡긴체, 역사를 빠져나왔다
작은호텔 한켠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들린곳은
두어곳의 성당과 천국의 계단,
그리고 그 아래로 흐르고 있는 아무르강변,
붉은 대리석조각을 두르고있는
영원의 불꽃도 있었지..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광만으로도 난 눈물겹도록 행복한
아침을 만나고 있었고,정교회 성모승천성당의 푸른빛은 눈속에서 보석처럼 빛나고있었다.
난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의 두손을
모을밖에~"아베 마리아~!!"
성가대원 서너명이 사제보다 위편에서
노래부르는게 이채로왔고,
미사를 마친 사제와 사진까지 찍는 자유로움이라니~정교회는 꽤나 개방적인 모습으로 이방인들을 따스하게 반겨주었고, 성물방에서
물건을 파는 할머니도 상인이라기보다는 수도자와같은 자태의 차분함이어서 살짝 낯설기까지했다.
한바탕 천국인듯한 지점에서의
답사를 마치고 들린곳은 육개장이 준비되있는 점심식사장소,
보문의순두부찌개와 육개장이 믹스된듯한 묘한 맛이었는데 개인마다
뚝배기에 담아주는덕에 먹는내내 뜨겁게 먹을수 있었다.
짧은 하바.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시베리아열차여행에 오를 차례,
우린 남자10명이 각각 나누어옮긴,
많은양의 생수와 보드카두병을 사서 포터에게 짐과함께 맡기고는 장도에 오르기위해 역사를 빠져나갔다.
꿈만같은 시베리아횡단열차탑승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모스크바가아닌,
이르쿠츠크. 수십개의 역을 지나
57시간에 이르는장도끝에 다다르는, 이른바,바이칼을 끼고있는 도시다
끝도 없이 지치도록 이어지는 자작나무행렬, 게다가 간밤에 내린눈으로 설경의 운치까지 더하니~
닥터 지바고의 그숲들은 수십년의 공백을 딛고, 그대로 눈앞에서 되살아나는데...다른건 영화속 트레지디(비극)가 아닌,잔치집의
리얼리티...ㅎ
떡국에 비빔밥, 어디그뿐이랴
집에서도 못먹는 팥죽에 호박죽까지
다양한 밑반찬 넘쳐나고, 말려서 챙겨온 형주씨 김치덕에 컵라면도 특급..게다가, 날쌘돌이
울 나국장님 일찌감치 차장꼬시기 작업에 돌입,급기야 시커먼 걸레까지
뺏어서 빨아주는 전무후무한 서비스에
인텔리전트한 미녀 차장, 마리나는
무장해제,우리식구나 매한가지~~ㅎ
게다가,
스피커까지 동원한,울아의
이종덕님이 운영하는 일명, <별그대카페>는 금상첨화의 한수..
"파워 오브 러브"~ 애절하고도 강렬한 멜로디에 무너져내린 여심들.. 여기저기서 감동의 눈물 훔치느라,
정신없고, 순도 100프로의 무결점행복은
끝도 없이 밤낮으로 달리는 기차와 함께 영원히 멈추지않을것만 같았다
적어도
시월의 마지막날밤,
꿈이었기를...제발, 꿈이었기를 하고
바랐지만 현실이 되어버린, 그사고가
발생하기전까지는...
무심히 달리는 열차가
원망스럽기만 했던 그밤.
하지만, 사고에 대처하는 저들의 자세와 태도는 실로 놀라운 그것이었다 사고발생후
한시간 반쯤 달려서 도착한 첫역에서 무장한 경찰을 대동하고 탄 의료진의 진지한 자세와 빠른 대처는
일시에 나를 러시아를 사랑하게 만들었고, 돈에 앞서 사람이 먼저인게
분명, 잘난 우리네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놀라운 발견,
소위,
사회주의가 낳은 잔재는 적어도 이곳에서만은 사람이 우선인쪽으로
기운체,어쩔줄몰라 허둥대는 나에게
커단 위안이 되주었고,
우리모두는 한마음으로 국장님의
성공적인 수술을 빌고,또 빌었다
다음날 아침,
밝은 표정의 마리나가 국장님 소식을
전한다. 밤새 병원측과 연락을 시도했는데, 아침이 되서야 의사와 통화를 한 모양~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에 나는 당장에라도
국장님께 달려가고싶었지만,
잠시후 다음열차를타고,우리보다 9시간후에 도착한다는 소식만으로도
만난거나 다름없는 안도의 기쁨이었다
또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기차는드디어 우리들의 목적지 이르쿠츠크에 도착, 최강의 중무장으로 내린시각은 새벽 1시 10분,
하지만,따스한 밤공기는 겨울이아닌,
봄날 같았다
현지여행사 소장과 예쁜 러시아아가씨가 함께 우릴 마중나왔는데 알고보니 이둘은 결혼을 전제로한 연인관계란다.
그럼그렇치 야심한 시각의 남녀동행
이라니~
이십여분쯤 달려 도착한 숙소는
사전설명때와는 달리
마치 숲속의 펜션과도 같은 자리매김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나무냄새와
깔끔한 실내가 소박하지만 정겹기만했다.
사흘간을 못씻은 탓에 난 짐도 푸르기전에 샤워준비, 가이드말이 5분정도 녹물이 나오다가 깨끗한 물이
나온다길래, 홀랑 벗은체 수도꼭지를틀었는데,아뿔사..이게 웬일
삼십분을 지나 어언 오십여분이 지나도록 약간의 차이만 있을뿐,
누런물만 나오는게 아닌가~
세면대물만 틀어놓고, 생수로 양치만 한후 포기하고 다시 옷을 입으려다
행여나하고 욕실로 가봤더니,드디어
깨끗한 물이 나온다.무려 야밤에 벌어진 녹물과의 한시간에 걸친, 사투였지만, 그래도 씻고 잘수있어서
다행이라 여기곤 잠을 청했다
서너시간의 잠에서 깨어난 아침,
숙소뒤로 흐르는 앙가라강인지 호수는
식전산책코스로는 그만,
난 삼십여분간 전나무숲속을 거닐었는데, 앞서 나오셨는지 청명샘이 여기서 일주일만 더 머무르자며
아침인사를 건네오신다
산책로 한켠으로 나있는식당에서 다함께 여는 하루~우유로 끓인 옥수수가루죽이 입에 맞아 빵없이도 든든한 한끼의 아침식사였다.
바이칼투어
드디어, 이번 여행의 최대관심지중
하나인 바이칼을 친견할 순서,도중에
들른 딸찌 박물관은
땜공사로 수몰지역의 건물들을 옮겨와서 조성한 곳인데 우리네 민속촌과 같은 형태로, 17세기 황제의 명령을 받은 특수대원들이 우랄산맥을 넘어 그곳에 살고있던 원주민인 브리야트족을 정복하고 세운 집들이 여기저기 세워져있었다.
페치카와 고운 수가 놓여진 거실과 주방은 잠시 안주인이 외출은 나간듯 안온한 분위기의 자연스러움이었고,
마당한켠에 걸어둔 사냥한 가죽들이
당시 정복의 목적이 담비사냥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걸린체,
당시의 생활상을 말해주는듯 했다
제정러시아 시대때 귀족들의
자녀가 다녔다는 학교와 지금의
동사무소와도 같은 공공건물들은 생각보다는 꽤나 고급스러운 유럽풍 실내장식들로 제정러시아의 생활상을
말해주고 있었는데
기다렸던 자유시간...휫슬 불자마자 약속이나 한것처럼,
박물관 뜨락에있는 노천상점으로 삼삼오오 흩어진체, 너나할것없이
다양한 기념품 사들고 모여드니,
분명, 여행이주는 재미중 물건사는
재미가 빠져서는 아니되는법..ㅎ
드디어 국장님과의 재회순서,
일행들을 태운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입구에서 주치의 김매자님과 함께 기다리고 계신 국장님이 보였다
얼마나 반갑고,고맙던지..
작은 산 하나를 넘어
다시 만난 평화의 지대.. 잘회복될거야~!
희망하나가 깃발을 펄럭인체
환히 빛나고 있었다..
하루간의 공백을 채운 버스가
점심식사를 위해 당도한곳은
바이칼호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의 근사한 레스토랑..
오랜만에 현지식이 제공되었는데
메뉴는 바이칼호의 주인공인 오물고기스테이크와 감자퓨레
맛도 분위기도 수준급,
난 국장님곁에서 함께 했는데 시장하셨는지 평소 소식인점에 비해
화이팅 백배.. 맘이 다소 놓였다.
바이칼 호수 박물관으로의 이동
'위대한 골'이란 뜻의 바이칼은
현지인들에게는 풍요로운 호수,
영광의 호수로 인식되어있단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만날수있는 구간은 불과 2km 남짓, 바이칼의 머리카락한자락에도 못미치는 길이인탓에 우린, 박물관내 모형도를
통해 그 아쉬움을 달랠밖에~
시원지인 레나강과
원래 한몸이었는데 화산과 지진활동으로 둘로 나뉘었단다
10만여마리의 물개가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 바이칼은 지구상의 인류가 50년간을 마실수있는, 담수량으로 세계최고의 깊이를 지닌
청정호수란다.
바이칼의 심장인 알혼섬,
샤만의 성소, 시원지로 그곳에 있는
부르한바위는 지상에서 가장 기가쎈
성소중의 성소라는데 ,
짧은 우리일정으로는 접근불가의
아쉬움..수십차례 알혼섬을 다녀왔다는
가이드는 아예 무당굿의 축제가 벌어지는 삼월을 택해다시 오란다.
박물관을 나와
노천시장으로 이르는 길은~분명,
북부 해수욕장일대의 그것과 흡사, 바닷가를걷는듯한 착각에 ..
바이칼에 가면,
바이칼은 없고, 바다만 있다더니,
지금의 내가 딱 그꼴인셈.~~
되돌아나가는 길에 난 내려가
호수물에 두손을 담그었다
생각보다는 차지않았고, 몹시도 깨끗했다.
짧은 일정으로는 그 일단조차도 내주지않는, 오만함..내가 흔쾌히 백기를 든건, 다음에 찾고야 말겠다는
내안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집채만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는 반야체험을 하러갈 차례,
러시아식사우나다.
세그룹으로 나뉜체 훝어졌는데
내가 속한 조는 아무런 사고없이
자작나뭇잎 뭉치로 신내림의 예식까지
치르는~ㅎ, 재밌는 체험의 시간이 되었다.
반야를 마치고 나오니 이미 칠흑처럼
내려앉은 어둠, 우리들은 핸폰 조명등에 기댄체 식당에 당도,
식당안은 활활 타오르는 페치카에
고운 수가 놓여진 정갈한 커튼이
꽤나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마치
크리스마스 파티장같은, 따스한 밤을 선물하고 있었다
샐러드와 빵,
토마토 수프, 게다가
바베큐꼬치구이와
가이드가 서비스한 보드카한잔까지..
완벽한 성찬의 저녁식사를 흥건히 즐기고 숙소로 돌아온 시각은 여덟
숙소로 돌아와 난 곧바로 안주로 산 포도한상자를 비닐봉지등에 나누어 씻어 맥주파티를 준비했다.
이른바,
시베리아구간(우랄산맥동쪽에서부터극동의 사할린과 캄차카 반도까지를
말함)에서의 마지막날 밤이었고,
누구보다 힘든시간을 보내고 계실 울국장님의 마음또한 조금이나마 위로해드리고 싶었다.
두시간여 지속된 맥주파티는
말미에 합류한 호기심천국,김매자샘의 발리댄스강습으로 졸지에 댄스장으로
확산..화룡점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다음날 아침.
알람예정시간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왠지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는듯해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깨었는데, 아뿔사,~~!!!
커텐을 걷어제친 나는 깜짝놀랐다
밤사이 내린눈에 창밖은 설국..
전나무숲속은 동화속 또다른 세상으로
개벽이 따로 있을까~~ㅎ
몇년전 2월이었던가.
일본답사길에 만난 센다이에서의
아침에 이은 두번째 맞닥드림..
난 애써 진정해야했고,서둘러 세면과 화장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몇몇의 일행들이 벌써 전나무와 자작나무로 가득찬 숲속의
눈밭에서 꿈같은 아침을 열고 있었다.
이르크츠크에서 만난 따스한 봄이
하루밤새 겨울로 환생할줄이야~ㅎ
이리도 순결한 목숨으로..
흰눈 아니,폭설이라 부르는게 옳겠지..
폭설하나로 완성된
이르쿠츠크의 겨울~
그것은 아무리생각해도 감당불감당의
행운, 기적이었다.
약 삼십여분을 헤매이다 들어오니
가이드로부터 많이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어왔단다.
난 내색은 안했지만,
솔직히 아예 이곳에서 한나절쯤
갇히는 행운을 빌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같은 날은
무엇인들 특미였겠지만, 마지막남은 컵라면의 맛 또한 기가 찼다
돌아와서 얼마되지않았는데, 늦을지도
모른다는 가이드가 일찍 당도,
우리는 예정대로 첵크아웃,
이 기찬풍경의 숙소와 이별을 해야만했다.
조금씩 질퍽거리는 시내를 지나 당도한 곳은 발콘스키공작의 저택
전제정치에 대항한 청년장교들의 혁명이 12월에 일어났기때문에
이들을 데카브리스트라 부른다.
이집주인이었던 공작도
데카브리스트중 한사람으로
상트에서 이곳 시베리아까지 유배를와
이곳에서 살았다는데 18살이나 어린 신부 마리야부인은 귀족출신으로 첫아들을 낳을때까지도 남편이 혁명군인줄도 몰랐으나, 이혼을 거부하고, 종신유배형을 받은 남편을 찾아 시베리아까지 가서 유배생활을 한 순애보의 주인공이다.하지만,
귀족의 핏줄을 지닌 자의
어쩔수없는 결과였을까~
집안은 혁명가의 아내답지않은, 호화로운 가구들과 집기들로 가득했고,
청나라풍의 도자기들도 눈에 띄었다
건너편 또다른 데카브리스트의
저택은 이와는 반대로 변변한 집기하나 없다는데, 난 차라리 그곳이 더
신념대로 살다간 아름다운 일생인것만
같은 생각에 마음이 기울었다
공작의집을 나와
수도원과 서너곳의 성당 그리고
영원의 불꽃을 모두 섭렵했는데
어느것하나 쌓인눈속에서 아름답지않은건 없었다.
갑작스레 들어닥친 추위에
언몸을 녹인후,
푸짐한 중국음식으로 점심식사까지 마치고 이젠 본격적인 이르크츠크 중심가 산책순서,
이번 여행중 최강 추위속 도보의 강행군이었지만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 이유를 조금은 알것같은,
유럽풍의 건물들이 고만고만한 높이를 지닌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린 103번가 카페거리에 위치한
노천 카페에서의 따스한 커피한잔의 여유를 마지막으로 저녁식사장소인
북한식당, 평양집으로 향했는데
메뉴는 돼지삼겹살 구이와 김치찌개.
구이는 훌륭했지만 찌개는 너무달아
거부감이 들었다.
식사를 마친 다음순서는 호텔 첵크인.
하지만, 잠자리에 들기엔 너무이른 시각, 일행 대부분이 호텔바로 곁에있는 대형마트로 이동..
장보기에 나섰다.
쇼핑카트 하나씩 끌고 다니며
홍차며. 꿀. 보드카. 쵸콜릿등을 싹쓸이.. 한국 아줌마들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밤,
이젠 모스코바로의 이동을 위한
공항행만이 남아있는 밤이었지만
호텔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야경이 어찌나 매혹적이든지~
시베리아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보석을 만날줄이야~
아쉽기만한 마지막 밤
난 기꺼이 뜬눈으로 이 아름다운도시와
이별을 택하기로했다.
가이드와 약속한 미팅시간은
새벽5시, 하지만, 이건 큰일날 일이었다.
이상을 감지한 김선섭님의 첵크가 없었던들..부라부랴 3시로 정정, 이교수님과 나국장님, 일일이 방마다 돌아다니셔야 했으니~ㅎ
영하 18도의 수은주
저마다 도시락하나씩 챙겨들고 공항으로 향한 시각은 새벽 3시,
5시 30분에 티켓팅 마감..
만약 5시에 나왔더라면..
상상조차 하기싫은 대형사태가 벌어질뻔한 절대절명의 위기였던 셈,
그러나 이번엔 영문까지 똑같은
동명 2인, 김정희1과 3가 문제였다. 티켓을받는데 걸린 시간은 족히
1시간여, 가까스로 모스크바행
트랩에 올라야했다.
6시간의 비행끝에 다다른 모스크바
이르크츠크에서 한국으로 오는 시간보다 1시간이 더 걸리는 거리였다
지금까지의 여정과는 사뭇 다른,
대도시로의 이동
변방에서 중심으로의 도움닫기.
착지후 우리가 맨처음향한곳은
크램린궁,때마침 민족화합을 기념한 공휴일인데다
푸친대통령이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만난다나~러시아경제를 끌어올린
푸친은 자국민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거대한 붉은 성벽아래로 펼쳐진
가을, 시리도록 아름다운 설경으로
호사를 누린 우리일행에게
이번엔 모스크바가 붉은 가을빛으로 점잖은 인사를 보내오고 있는게 아닌가..절묘한 바턴탓치..
러시아의 사계중 한여름을 제외한
풍경들의 하모니였다.
정교하게 쌓아올린 붉은성벽과
보석이 박혀진 첨탑들~
20세기 한때 세계 최강대국중
하나였던 그때 철의장막의 위용은 어디서도 보이질않았고,
다만, 자본주의의 거대한 손과
재빠른 악수를 건넨체, 부드러운
인사를보내올 뿐이었다
성벽앞은 원래 해자기능의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는데,
프랑스를 제압한 알렉산더가 기념으로 이곳의 물길을 모스크바강으로 우회시키고 메워 정원을 조성했단다.
10시 개관까지 삼십여분을 기다려서야
삼위일체망루를 지나 크램린 안으로
입성, 무기고와 대통령 관저를
지나자 사방이 성당으로 둘러쌓인
광장에 닿았다. 마치, 물감으로 색칠하듯 순금으로 입혀진 돔장식의 성전들, 얼마나 많은 노예와 농노들의
피를 담보로 지어진것일까~
이곳에서 종교는 권력의 시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체, 막강권력에 기생했으리라..
돌아나오는길에 본, 비극의 종
이반대제의 종은 지상위로 내어걸리지도 못한체, 기구한 운명으로
지상에서 애처로운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크렘린궁 답사를 마치고 향한곳은
한식이 준비되있는 식당
메뉴는 김치찌개, 벌써 세번째의
반복이었지만 새벽부터 이동하느라
변변한 식사를 못한 우리는 꿀맛으로
싹싹 비운후, 다음행선지 푸시킨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는 투어시작하자마자 불쑥 꺼낸
써커스카드를 정리하는 일...
인생은 타이밍이라했거늘 안그래도 피곤에 지친 상태인데 만나자마자
70유로 짜리 구경을 하자하니
역효과의 황당함, 결과는 단 두명의 신청으로 일찌감치 불가판정,
나중에 알고보니 러시아서커스는 세계적 수준이라 모스크바에서는 반드시 보는게 정답이란다.
푸시킨박물관앞은 티켓을 구매키위한 긴 행렬들이~우리네처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보다는 대부분이 중장년의 성인들로 문화대국으로서의 저들의
두터운 저변이 확인되는 대목이었다
외투를 일일이 맡기고서야 입장할수있었는데
재밌는건 푸시킨박물관에 푸시킨은
없었다는 사실, 기원전 바빌론유적들과
트로이 출토 유적들, 익숙한
이집트미이라들과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신상들, 또한 루벤스와 렘브란트를 비롯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된방등을 둘러보았는데
가이드말로는 모두 약탈한 유물이 아닌, 구입했거나 발굴에 참여해서 가져온 유물이란다. 발굴에 참여했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이것 또한 넓은 의미의 약탈임을
어찌 부인하랴~뭏든,
전시된 유물의 규모나 내용 모두
문화강대국다운 모습이었는데
푸시킨이 러시아인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으면 국가가 나서서 사기를 칠까~? 재밌는 사실이었다
(푸시킨이란 천재 이전에는 러시아문학에서 모국어로 작품이 쓰여지질 않았다고 한다)
다음 행선지는 유명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백조의 호수"가 쓰여진 장소, 그 호수로의
이동이었는데.. 청둥오리들만 노니는
조촐한 호수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다음 버스가 선곳은 모스크바대학.
스탈린 시대에 지었다는 이 대학은 폭정을 일삼은 스탈린의 정신세계를 의심케하는,수직일변도의 구조가
낯설기만했는데, 그래도 이곳출신의 노벨상수상자들 동상이 즐비했다
공휴일이라 붐비는
참새의 언덕 관광을 서둘러 마치고 우리일행은 육계장과 비빔밥 설렁탕등으로 이른 저녁식사를 했는데 러시아에서 먹는 한식은 도시불문,
메뉴불문 전부 수준급으로 맛이 좋았다
드디어 호텔 첵크인
선섭씨 부인,김용희 님의 해피버스데이였지만, 새벽 부터의 강행군에 극도로 피곤, 생일파티를 극구사양, 나도 그에 흔쾌히 동의한체 야경구경은 엄두도 못내고 일찍 베드인~
새벽 네시경 눈을뜨니 정명섭교수님으로부터 톡이 들어와 있었다
내친김에 가족을 비롯, 여기저기
톡톡~!!두드려대니 이윽고
여섯시 반, 어느덧 아침식사시작 시간이었다
벌써 여러쌍의 룸메들이 와있는 식당은 이번 여정중 최고의 메뉴로 럭셔리한
모닝뷔페를 즐기기에 충분했다
모스크바에서의 둘째날, 첫행선지는
붉은광장. 모스크바 관광의 일번지다
동화속 요술의 집같은 둥근 양파모양의 돔양식을지닌,바실리성당(몽고
와의 승리를 기념키위해 지어짐)과
굼백화점, 역사박물관으로 둘러싸인
광장한켠에는 레닌의 영묘와 처형장소로 쓰였던 황제의 연설장소가
있었는데, 레닌묘를 참배하기위해 늘어선 긴 행렬속엔 젊은이들도
여럿 눈에뜨이는게, 혁명가 레닌은
여전히 러시안들에게 지지않는 별로
살아있음을 느낄수있었다.
무수하게 세워진체 건재한 그의 동상도 그 사실을 입증하긴 매한가지~
자유시간을 이용, 나는 바실리 맞은편의 작은 성당을 찾았는데
때마침 미사가 진행중인듯 성가가
흘러나왔고, 윤창준샘의 녹음하는 모습도 일품의 한컷이었다
동네슈퍼만큼이나 많은 성당들..
러시안들에게 종교는 깊숙한 저들의
일상인듯했다.
붉은광장 다음으로 향한곳은
아드바트거리,이른바 우리네 대학로같은 문화예술의 거리로
한켠에 푸시킨이 3년간 거주했다는그의 생가가 굳게 닫힌체
자리하고 있었고, 거리맨끝에는 이주한인 3세 가수 빅토르최의 추모벽이 어지러운 낙서들로 장식되있었는데, 음산한 골목한켠에 버려진듯한 분위기가 울분인지 회한인지모를 낱말들이 떠다니는듯 했다
우리일행들은 한시간여의 자유시간을 이용, 본격적인 쇼핑타임에 돌입‥대표보석 호박과 밍크모자 등을 사들고 돌아왔는데 나는 아무리봐도
사고싶은게 짚히질않아 돈굳고, 짐안들고..빈손으로 버스에 올랐다
다음 이동장소는 톨스토이 생가..모스크바답사중 가장 관심이 가는곳중 하나였다.
두팀으로 나뉘어 입장해야했는데
그가 사십대에 살았다는 이집은 16개의 방이 미로처럼 연결되어있었고
1층에는 다이닝룸과 그의 침실, 자녀들의 방들이 있었고.2층에는 응접실같은 용도의 거실과 집필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13명의 자녀를 둔
한가정의 가장은 자기침실보다 큰방을 음악원교수였던 장남과 화가였던 큰딸에게 할애하고 있었고,
자녀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대로
노출, 숨소리까지 들릴듯한 구조였는데
철저한 리얼리스트로서 매일아침 운동을 거르지않음은 물론. 구두도 직접 만들어 신고, 음악도 작곡했다고 하니 꽤나 부지런했던 모양~
위대한 문호, 톨스토이의
가감없는 실체가 집안 곳곳 여기저기서 감지되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2층거실에 놓인 피아노
저 유명한 피아니스트겸 작곡가 "라프마니노프"가 이곳에와서 연주를 했다고하니 새삼 흥미를 끄는 대목~. 또한, 그의 80세 생일을 기념방문한 어린이들에게 전했다는 환영인사말이 녹음테잎을 통해 흘러나왔는데, 내용을 물어보니
부모말씀 잘듣고 공부열심히 하라는 뜻이란다.
동서 고금에 부모맘은 매한가지, 위대한 문호라고 다를리
만무..
작품이 아닌,생활인으로서의 톨스토이를 맘껏 탐닉할수 있었던 기쁨들은 정원에서 그가 직접 식수한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더한층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생가를 나와 점심으로 된장찌개를
먹었는데 해물이 섞인 찌개는
이번에도 실망을 주지않는, 괜찮은 맛이었다
녹용과 차가버섯을 파는 식당을 나와
드디어 상트페테르부르그로의 이동을
위해 공항행..
1시간 반여만에 도착한 마지막 여정지
페테르부르그,,
제정러시아의 수도이자,문화의 중심지로 기념비적인도시로서,
오늘날의 이 도시를 처음건설한 표트르대제를 칭하는 지명인데,
바닷가 뻘밭에 도시를 건설하자니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희생되었을까~
무수한 주검위에 주검을 더한후에야
암스테르담을 모델로한 이 도시는 모습
을 드러냈고,
거룩한 그들의 희생위에 건설된
도시라 하여,
쌍트(쎄인트)페테르부르그라고 명했단다.
표트르대제는 서자출신으로 이복누이였던, 소피아의 미움을사는 바람에 일찌감치 추방, 외인촌에서 성장, 서구문물을 접하면서 성장했다고한다. 소년병들을 조직, 전쟁놀이를 일삼던 그는 군대로 전환
누이 소피아를 몰아내고 왕위에 등극
영토를 확장시키고 ,
정치적 암투가 횡행하는 로마노프왕조의 모스크바를 떠나 이곳에서 새로운 도시를 꿈꾸었으리라
도시전체 건물하나하나가 모두 박물관이라해도 과언이 아닌.이
도시에 도착,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데
곡선모양의 다리가 예술작품, 그자체 다리하나에도 예술혼을 담은게 역력했다.
늦은저녁을 위해 도착한 중식당한켠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벌써 점화, 반짝이고 있었는데,
중식의 9가지 메뉴들은 맛이 별로
이번 여정중 최하위로 기록해도 무방한 맛이었다
식사후 호텔로 가는내내 펼쳐진
네바강가에 위치한 이 도시의 야경은
시선을 띨수없을 정도로 매혹적인 자태로 우릴 유혹했고, 서너곳에서 하차, 연신
샷터를 눌러댔다. 저멀리 뾰족하게
빛나는 탑이 하도 아름다워 물었더니..
다음날 몽땅 설명해준단다.
밤늦게 도착한
호텔에는 이미 버글버글한 인파들로
이 도시가 지닌, 위상을 실감케하고도
남는 풍경이었다.
담날아침,
조식후 찾은 첫번째 목적지는 "피의구원의 사원으로 알려진, 그리스도부활성당"
10시부터 입장할수 있다는데, 250루블을 별도로 지급하고 들어가야했다
1881년 테러리스트에의해 치명상을 입은 알렉산드르2세의 저격장소에
세워졌다해서 지어진 이름인데
섬뜻한 이름과는 달리 성당은 온통
아름다운 황금빛모자이크장식들로 넘쳐났고
아들인 3세가 공모를 통해 건축가를 선정해서 아버지께 바쳐진 성전이란다
형용키어려운 아름다움앞에 난
그저 보고 또 쳐다볼뿐, 대체 무한한것은 어찌 창조주 신 한분뿐이랴~실로 놀라운 인간의 능력이 거기 있었음을..
다음으로 들른곳은, 저 유명한 카잔의 성모상 진품이 있는 카잔성당으로 예배장소로 이용되는 곳이었다
이콘에 입맞추기위해 많은 인파들이 줄을선 곁으로 우리일행은 친견만한체 돌아나와야 했는데, 카잔은 몽고지배시
점령당한 난공불략의 지역 타타르에 있던 섬 지명에서 유래된것으로
탈환당시 이 성화가 발견되었다는데 상트사람들은 이 성화가 이곳에 있는한 적군에 한번도 항복하지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 성당 입구엔 소설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두장군
쿠트조프와 돌리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카잔성당을 빠져나온 우리에게
마침내 ,30분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화장실을이용하기위해 들른 대형서점에서 난 도록 두권을사는것으로 종지부찍고 버스로 귀환. 다음행선지는 이삭성당이었다
로마카톨릭적 요소가 많이 믹스된듯한
이곳은 외관부터가 많은 성상들로 웅장했는데.,난
피의구원의 성당에서 받은 감동에 덧칠을 입히기 싫어 주변공원산책으로
대신했다. 금요일이어서일까~대여섯 쌍의 커플들이 웨딩사진 찍느라 추운줄도 모르고 짧은 웨딩드레스에
연신 웃어대는 광경들이 줄줄이 보였다
점심식사를 위해들른 대공의 저택
이 도시는 이런 주택들이 즐비했는데
정갈하게 나온 생선스테이크와 곁들인 감자요리가 우아한 분위기만큼이나
훌륭했고, 게다가 폭설의 구덩이에 빠져 고생한 형미샘이 도와준 도반들을 위해 와인까지 쏜덕에
우아함은 완벽갖춤의 그것,
이젠 대망의 에르미타쥬(겨울궁전)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폰하나씩을 지급받고 입장한 대단한 여걸,
예카테리나 2세(캐서린)의 궁전은
박물관이면서 한 인간의 끝모를 사치와 욕망들로 점철된 마법의 성이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일부러 딸을 시원찮은 사위감(이반뇌제)에게로 보냈고,
진실한 사랑대신 권력을 택한 그녀는
막강한 힘으로 맘껏 남자들을
사들이는 창부와도 다름없는, 생활을 일삼았으나 말년에는 손자에게 황금으로 된 방을 지어주고.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에 심취, 그의 임종 얼마전 모습을 조각한 조각상을 구입, 매일 봤다고 한다
3,000여개의 방으로 구성된 이 궁전중 기억에 남는것은 일명,역사의방으로 1917년 10월 혁명당시 새벽 2시9분에 레닌의 혁명군이 침입, 마지막황제 니콜라이2세를 체포,벽면에 걸린 시계는 2시 9분에서 정확히멈춰진,그방이었다
세계3대 박물관중 하나인 에르미타쥬는 만족도 면에서는 1등이라는데, 난, 아직 루브르도 대영박물관도 못본터라 함구할밖에.~
참 이상한 일은 혁명의 물결이 네바강을 휩쓸었을 그때, 성난민중들은
이 사치로 들끓는 공간에 손가락하나 대지 않는 절제를 표했을까~,
저들의 문화적 식견이 놀라울뿐이었다
몇분의 일쯤이나 보았을까~
아쉽게나마 포식을 하고 나왔는데,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으로 이번엔 위장이 포식할차례‥ㅎ
두메뉴다 일품의 맛이었지만
단배추겉절이가 어찌나 반갑고 맛나든지~자꾸 손이 갔다.
서둘러 저녁을 마치고 이번엔
한국에서부터 예약을 해둔 발레공연을 보러갈 차례~발레한편을 보지않고
어찌 러시아를 봤다고 말하리요~ㅎ
저마다 나름의 복장을 갖추느라
신경은 또 얼마나 썼노~~?ㅎ
교통체증에 간신히 정시입장성공,
두시간 반동안 3 막으로 진행된
차이코프스키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였는데, 곁에 앉은 이교수님과 나국장님은 음악이 마치 자장가처럼
감미로왔는지 얼마되지않아 바로 슬리핑상태로 돌입, 공주가 자서 따라잤다나~ㅋ
나중에 알고보니
거의 모든 울식구들이 밀려오는 식곤증에 공주와 함께 아예 주무신 모양‥차라리 웃음이 났는데 내용이 정확히 파악되지않는 발레보다
더 재밌는것은 저들의 인터미션 , 휴식시간의 풍경이었다
조각 케잌등과 와인을 즐기는 모습이 대체 간식을 즐기러 온건지 공연을 보러 온건지 구분이 안될정도였다
한바탕 코메디같은 발레 해프닝을 끝내고 이번에는 야경을 보러 유람선을 타러 갈 차례,..
한 회원의 적시안타의 변...
"철인3종 경기하는것도 아니고," 대단하단다~ㅎ
얼마나 웃어댔던지~생각할수록 절묘한게 상트.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이 아쉽기만한 우리들의 마지막 몸부림인지도 모른다~~ㅎ
짙은어둠이 깔린 네바강위로
우리일행이 전세를 낸 유람선은
이 도시를 잊지말라는 몸짓인양 , 구석구석으로 유유히 우리들을 안내했고,
가이드가 제공하는 샴페인 한잔에 아쉬운 이국에서의 마지막밤을 목청껏 노래했다..
드디어 출국날
일정표상의 스케줄은 이미 전날섭렵,일종의 보너스투어란다.
첫하차지는 에카테리나여제 동상이 있는 공원으로 , 이미 굴복한자와 아직 정복당하지않은 자, 글고
엉거주춤한 자들의 조각상들이 혼재되있는게 재밌었다
길건너 대로
이른바,넵스키 대로이다
건물하나마다 건축학 교과서와도 같은
거리가 상점하나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네모반듯하게 마치 도열해있는 건물들은 표트르1세가 암스테르담에서 영감을 얻어 조성했다는데
도로를 가로질러 흐르는 운하도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한바탕 자유시간의 물결이 휩쓸고난후
우린 푸시킨이 단테스와의 결투가 있던 그날 아침식사를 했던 카페(지금도 이 카페에서는 푸시킨이 먹은 요리를 팔지 않는단다)와 라스코르니코프카 전당포노인을 살해한 자신의죄를 고백하고, 입맞추던 센나야광장을 지나
당도한곳은 레닌의 혁명본부로 사용되었다는 예카테리나 여제가
세운,귀족여학교와 건너편의 성당.
잽싼 노점상인 한사람이 5유로에
공예품들을 싸게판다며 들고 나타났는데.,얼떨결에 나도 덜렁
두가지를 사들었다.
귀족학교 앞으로 세워진
엥겔스와 막스동상, 그리고 그 둘을 전부 아우르고 있는 레닌의 동상까지~
극도로 부패한 전제 정치가 균등배분의 이상향을 담은 철학을 낳고
또 그 철학이 모태가 되어 혁명을 일으켰지만,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앞에 푸른 이념들은 하나둘씩 스러져가고,
이렇게 동상으로만 남아 아직도
호령하고 있는가~
건너편 중앙선부근에는
한겨울인데도
붉은 장미가 피어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13일간의 여정
짪고 또 긴 시간들은 재빠르게 제자리로 복귀할것을 명령하며
막을 내렸다..
언제나처럼 고마운 분들이 많다
장도에 동행해주신 36분의 도반들
여행내내 인원점검의 중책을 맡아 수고해주신 5개조 조장님들,
최종 인원점검의 중책은 물론.,
두번씩이나 뛰어난 관찰력으로 여행자체를 지켜주신,일등공신 김선섭님
예기치않은 사고에 선뜻 동행의 용기내주시고,끝까지 주치의로서의 수고 아끼지않으신 김매자님
사진만은 내게 맡겨라~
온몸으로 명장면 담아내시느라
아픈어깨 감싸쥐고 다니신 필사님
휠체어위의 부상자 선뜻 들어서 운반해주신 기사도정신의 남성분들
멋진음악과 스피카 준비해오셔서 기차여행의 기쁨 배가시켜주신 이종덕님
하모니카에다 악보까지 챙겨오셔서
미니 콘써트 열어주신, 윤창준님
수시로 실탄 팍팍 쏘시며.,
큰웃음주신 구국본님
마지막으로
저의 든든한 지원군 두분
야전사령관 나국장님과
총사령관 이교수님
수고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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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러시아제국에서의 13일간 여정!
봉촌이범교교수님의 시베리아 장정 기행문 잘 읽있습니다.
그 느낌을 가슴속에 새기고 싶어 꼼꼼히 정독했습니다.
늘 교수법이 좋아 가까이서 수강 했는데, 기행문 또한 몸과 시선을 꼼짝 못하게 나를 강금 시키는 군요.ㅎㅎ
첫 출발 시 신발굽이 빠져 함께하신 35명이 모두 배꼽을 잡았겠습니다.
처칠을 닮은 유머 재치에 35명 모두에게 행복 뽀너스를 드린것 같습니다.
신발굽의 액땜으로 러시아 여행은 매일매일 새로운 창조였는 것 같습니다.
실은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ㅎㅎ
지금 제가 시베리아 횡단을 종주하고 돌아오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훌륭하고 뜻 깊은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