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옳고 그름을 올바로 분별하며 믿음으로 살아요 = 요한계시록17;1-18(190331)
PW : 믿음 BIW : 올바로 분별하라 AG : 음녀
TS : 믿음이란 하나님 앞에서 옳고 그름을 올바로 분별할 줄 아는 것이다.
욕심의 결과
종종 하늘을 비행 하던 비행기가 고장이 발생나면서 비상 착륙을 하거나 추락하여 큰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느 비행기가 승객과 승무원 포함 200명이 탑승하여 비행 중이었는데 엔진고장으로 비상 탈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행기에는 낙하산 200개가 있었지만 한 개가 고장이 나서 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승객들은 그 사실을 알고 낙하산을 낚아채고 먼저 뛰어 내렸습니다.
이제 남은 낙하산은 단 2개뿐입니다.
남은 사람은 중년의 아저씨, 기장, 유치원생 모두 세 명이었습니다.
그때 눈치를 보던 중년의 아저씨가 혼자 살겠다고 하나를 잽싸게 낚아채더니 그대로 뛰어 내렸습니다.
하나의 낙하산만 남게 되자 기장이 유치원생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모든 승객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사람이란다. 이제 네가 낙하산을 메고 뛰어 내려라.”
기장은 남은 낙하산을 아이에게 주기위해 가지러 가는데 이상하게도 낙하산이 두 개 있는 것입니다.
“어! 낙하산이 왜 두 개가 남았지?”
그러자 아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아까 그 아저씨, 내 유치원 가방 메고 뛰어 내렸어요.”
극단적으로 개인주의에 빠지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살려고 할 때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자기 자신 보다도 남을,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습성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들은 나 자신보다도 하나님과 교회와 가정과 사회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P4.
지구촌에서 나타나는 크게 두 가지의 사상이라는 틀이 있다.
창조론주의와 진화론주의이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다.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사회주의이다.
좀 더 들어가면 예루살렘주의와 바벨론주의이다.
조금 더 들어가면 하나님 중심과 태양신 중심이다.
조금 더 들어가면 여호와 하나님 중심과 사탄, 곧 루시퍼 중심의 사상이다.
이 두 개의 커다란 틀로 구별되어 있는 커다란 사상의 틀에서 조금씩, 아주 약간씩 차이가 있을 뿐, 큰 차이는 없다.
1-2절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음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음녀가 물 위에 앉아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음녀가 깔고 앉아 있는 물은 15절에서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곧 음녀가 깔고 앉아 있는 것은 온 지구촌의 모든 것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음녀는 누구인가?
5절에 보면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음녀는 큰 바벨론이면서 동시에 모든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것이 비밀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 왜 비밀일까?
뭔가 감추고 싶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무엇을 감추어야 하기에 비밀이라는 이름을 지닌 것일까?
그런데 이 음녀에 대해서 4절에서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고 하면서 이 음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온갖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금잔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증한 물건과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신약시대 곧 오늘날 이런 옷을 입고 온갖 것들로 화려하고 웅장하고 그럴싸하게 꾸미고 치장한 무리들이 있다.
바로 천주교, 로마 카토릭교회의 비밀스런 정체이다.
로마 카토릭교회의 본산인 바티칸에서 보여주는 교황을 비롯하여 추기경들, 사제들이 이런 의상을 입고 온갖 화려한 것들로 꾸미고 치장하고 황금보좌에 앉아서 온 지구촌을 호령하고 있다.
로마카토릭교회의 황제인 교황이라는 사람은 삼층 면류관을 쓰고 있다.
교황이 쓰고 있는 삼층 면류관은 천상, 지상, 지하 즉 삼층 세계를 관장하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교황의 공식 호칭은 비카리우스 필리 디아이(VICARIUS FILII DEI) 이다.
라틴어의 일부 글자는 수 값을 가지고 있다.
VICARIUS FILII DEI 라는 글을 수 값으로 풀이해 보면 666이라는 숫자가 된다.
(V=5, I=1, C=100, I=5, U(V)=5, I=1, L=50, I=1, I=1, D=500, I=1)
== 5+1+100+1+5+1+50+1+1+500+1 == 666
666이라는 숫자는 바로 요한계시13:18에서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곧 666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정체를 알려주는 표상적 숫자이다.
종교 개혁가들은 한결같이 짐승의 수에 해당하는 666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황이나 교황권이라고 밝히고 있다.
교황에 대한 호칭이나 교황에 대한 예우에 대해서도 교황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카토릭 교회는 교황을 일컬어 지상의 하나님이라고 인식한다.
교황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한다.
하늘과 땅과 지하 세계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할 수 있고 교황은 한낱 사람임에도 불과하고 하나님의 법을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 가문의 문장에는 사탄인 용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교황이라는 자리는 하나님처럼 경배와 섬김을 받으며 온갖 부와 명예와 권력을 다 누리는 자리가 된다.
교황과 그를 따르는 추기경들은 커다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집단은 비밀이기 때문에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가면을 쓰고 다닌다.
그 가면은 바로 평화(平和)의 사도(使徒)라는 가면이다.
평화라는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전쟁들과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과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이들이 나타나서 마치 자신들이 있어야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평화의 사도라고 쇼(Show)하고 있다.
로마 카토릭교회는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을 일으킨 풍신수길의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 장군이라는 소서행장(小西行長)의 부대가 바로 천주교회 깃발은 단 군사들이다.
조선을 함락시켜서 일본에 복속시키는 것이 천주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조선 땅을 무참히 유린한 장본인들이다.
그런가하면 대원군 시절에 각종 양요를 일으킨 장본인들이 천주교인들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조선을 피비린내 나도록 유린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평화의 사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이 음녀에 대해서 비밀이라고 소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통일교의 문선명씨도 평화의 사도인양 가면을 써서 북한에 평화자동차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신천지의 이만희씨도 평화의 사도인양 가면을 쓰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름의 안산홍, 장길자씨도 평화의 사도인양 가면을 쓰고 있다.
JMS의 정명석씨도 평화의 사도인양 가면을 쓰고 있다.
이들의 삶은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한지 모른다.
문선명씨도, 이만희씨도, 장길자 여인도, 정명석씨도 마치 자기가 황제인양 꾸미고 가마를 타고 행진하면서 허세를 부린다.
로마카토릭교회의 성모마리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각종 이단들은 자신이 왕인 것처럼, 여왕이나 된 것처럼 행세하고 꾸미고 우매무지한 신도들 위에 군림하면서 신도들의 모든 재산들을 송두리째 빼앗고 갈치하고 있다.
그래도 어느 누구 하나 그들의 죄악상을 고발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에는 유별나게 바벨론이라는 지역명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바벨론은 태양신 중심의 본산이고, 사탄, 루시퍼의 본산이고, 헬레니즘, 인본주의의 본산이고, 진화론주의자들의 본산이다.
곧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여 떠나서 또 다른 영적인 세계를 펼쳐가는 것이 태양신 사상이고 바벨론의 숨겨진 본모습이다.
당대에 가장 유명한 사냥꾼이요 영웅이요 영걸이라 불리는 니므롯과 그의 부인 세미라미스와 이들의 유복자인 담무스를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신 심판을 피하기 위하여 커다란 탑을 쌓으면서 붙여진 바벨탑의 본산이 있는 곳이 바벨론이다.
바벨론주의자들, 태양신주의자들의 후손으로 나타나서 적당하게 교회와 결탁하고 혼합하여 또 다른 교회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로마 카토릭교회의 정체이다.
마치 여호와 하나님을 태양신으로, 예수님을 담무스로, 성령님을 중보자 세미라미스로 둔갑시켜서 태양신을 섬기는 사상과 교회의 사상은 동일한 사상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혼합하여 만들어진 교회가 바로 로마 카토릭교회의 정체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음녀는 실제적으로 다른 남정네들과 음행을 행하는 여인을 말한다기보다는 영적으로 삼위 하나님이 아닌 사탄, 루시퍼, 태양신, 어둠의 영들, 더럽고 추악한 영들을 섬기고 봉양하고 예배하고 추앙하는 행위를 음녀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음녀에 대해서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을 떠나서 가증한 것들에 취하였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 차 있다고 성경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단적으로 삼위 하나님을 떠나서 태양신을 섬기고 어둠의 영들에 사로잡힌 이들이 바로 온갖 이단들이다.
영적으로 음녀가 된 이단들은 한국교회에서 독버섯처럼 기생하면서 자신들도 자칭 기독교라고 부르면서 활동하고 있다.
온간 영혼들을 미혹하고 넘어뜨리고 있는 이단들이 바로 음녀라고 설명하고 있다.
로마 카토릭교회, 신천지, 통일교, 하나님의 교회, JMS의 정명석, 엘리야 복음선교회, 여호와증인, 제칠일안식교, 몰몬교, 구원파와 같은 이단들이 음녀에 해당된다.
그러면 이런 음녀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음녀들은 한국교회에서 어떻게 신앙인들을 미혹하고 넘어지게 만들면서 자신들의 세계로 끌어가고 있을까?
D4.
오늘 우리들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분명하게 분별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음녀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2절에서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라고 평가하고 계신다.
곧 지구촌에 있는 대부분의 영혼들이 음녀와 음행하고 있고, 음녀가 부어주고 따라주는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서 정신 줄을 놓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사람이란 존재는 어느 것 하나에 마음이 빼앗겨버리면, 다른 것들은 전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다른 것들이 보여지고, 들려지고, 느껴질 때는 이미 너무 멀리 가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까지 가버린다.
너무 멀리 가고 늦어서 돌아올 수 없는 처지에까지 가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이다.
너무 멀리 가버려서 돌아올 수 없는 상황까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자는 사도요한에게 환상으로 음녀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옳게 분별하여 판단할 수 있어야 됨을 깨닫게 해 주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그른 것인지, 무엇이 잘 된 일인지,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인지, 무엇이 하나님 앞에서 죄악된 삶인지를 옳게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L4 & B4
우리 신앙인들이 음녀의 실상을 제대로 보고 듣고 느끼면서 올바르게 분별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① 성령의 역사하심, 감동주시고 움직여주심에 민감해야 한다.
오늘 사도요한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들은 성령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감동을 주시는 성령의 소리에 민감할 수 있어야 한다.
성령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는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서 잘 들어야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옳게 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면 영적인 귀머거리요, 영적인 소경이 되고 만다.
귀머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소경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는 신령한 세계를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면 영적인 귀머거리요 소경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심, 감동시켜 주심, 은혜주심에 민감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세계를 올바로 볼 수 있고, 올바로 판단할 수 있고, 올바로 들을 수 있고, 올바로 세움을 입을 수 있다.
② 성경을 올바르게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사탄, 루시퍼도 성경을 인용한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는 성경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한다.
성경에는 수많은 태양신, 바벨론 사상들이 포함되어 있다.
태양신주의자들, 바벨론주의자들은 성경에 기록한 태양신 사상, 바벨론 사상을 그대로 인용하고 성경을 인용하기 때문에 마치 자신들의 주장은 전적인 성경에서 유래한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문자적으로 읽거나 배우지 말고, 내용을 잘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성경을 읽고 배우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을 인위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성경의 내용의 옳고 그름을 잘 파악하면서 읽고 배우고 가르치면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심정,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역사를 잘 파악해야만 된다.
가령 창세기 41장에서 요셉이 애굽의 바로의 부르심을 받고 바로에게 나아가기 위해서 수염을 깎는 장면이 등장한다.
수염을 깎는 장면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신앙인의 방법인 것처럼 이해한다면 성경을 잘 못 이해하는 것이다.
수염이나 머리카락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대로 수염을 깎거나 머리카락을 잘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요셉이 수염을 깎고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태양신을 섬기는 애굽의 방법이다.
‘십계’라는 영화를 보면 바로를 비롯하여 모든 애굽인들은 머리를 깎아서 대머리인 것처럼 등장하고, 종살이하는 히브리민족은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지 않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이유가 그런 연유이다.
창세기50장에 등장하는 야곱의 장례식 장면을 마치 성경에서 가르쳐주시는 성대한 장례식 장면인 것으로 이해하면 성경을 잘 못 이해하는 것이다.
야곱의 장례식 장면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장례식 장면이 아니라 태양신을 섬기는 애굽인들의 장례식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미이라를 만들어 보관하는 장면이다. 히브리민족은 결코 미이라를 만들지 않는다.
블레셋 족속과의 전쟁에서 빼앗긴 법궤를 블레셋 족속들이 수레에 실어서 이스라엘 땅으로 보내는 장면을 보면서 마치 법궤를 소가 이끄는 수레에 실어서 옮겨도 되는 것처럼 이해하면 안되는 것이다.
법궤를 끄는 암소가 우직하게 벧스메스로 올라가는 것처럼 신앙생활해야 가르친다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블레셋 족속들이 암소와 수레를 사용하여 법궤를 옮기는 방법은 법궤를 어떻게 옮겨야 되는지를 모르는 이방인의 방법일 뿐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방법이 아니다.
다윗 왕 때에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오려고 할 때, 블레셋 족속들이 사용한 방법대로 옮겨오려고 하다가 웃사가 즉사당하는 재앙을 당하고 만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법궤를 옮기도록 가르쳐 주신 방법은 반드시 레위의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되는 방법이다.
웃사가 즉사당하는 재앙을 당하고 법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졌는데, 다윗이 다시 다윗 성으로 옮겨오려고 한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방법대로, 레위의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법궤를 옮겨올 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안전하게 법궤를 옮겨오게 된다.
성경에는 이런 장면들이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방법인 것처럼 인식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성경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읽고 배우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이단들의 미혹과 함정에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이제 좀 있으면 예수님의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이 다가온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시기가 다가오면서 어떤 교단과 교회에서는 사순절이라는 이상한 절기를 지킨다.
예수님께서 살아생전에 사순절이라는 말씀을 언급한 적이 있던가?
에수님께서 살아생전에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하실 때, 40일이란 숫자와 연관시켜서 말씀하신 적이 있던가?
단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순절이라는 절기를 만들어서 꼭 사순절을 지켜야 되는 것처럼, 지키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사순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알려진 사순절(Lent)의 기간은 바벨론 종교의 세 인물 가운데 하나인 세미라미스의 아들 담무스와 관계된 절기이다.
바벨론 신화에 의하면 세미라미스의 남편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은 죄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은 뒤, 세미라미스가 태양신(바알)이 된 니므롯의 기운을 받아 유복자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담무스였다.
이렇게 어렵게 얻은 아들 담무스가 사냥을 나갔다가 멧돼지의 공격을 받고 죽게 된다.
세미라미스는 백성들에게 죽은 아들 담무스를 위해서 40일 동안 고기를 먹지 말고 금욕하면서 애곡할 것을 명령하게 되었다.
그 결과 40일이 끝나는 마지막 날 담무스가 다시금 부활했다는 것이다.
바벨론 종교에서 Easter는 실상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라, Ishtar의 탄생과 담무스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인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이런 문화가 없지만, 서양에서는 Easter’s pig라고 해서 부활절에 꼬치에 구운 돼지고기를 먹는 풍습이 있다.
이것은 담무스를 죽인 멧돼지에 대한 보복으로 돼지를 잡아 구워먹던 바벨론 종교에서 전래된 것이다.
그런가하면 꼭 부활절만 되면 부활절계란을 먹어야 되는 것처럼 여긴다.
왜 부활절에 계란을 먹어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세미라미스는 훗날 달신으로도 알려진 Ishtar로 숭배되게 되는데, 바벨론에는 Ishtar의 탄생 신화가 전해져 온다.
만물이 소생하는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full moon)이 떠서 유프라테스 강을 비출 때, 하늘로부터 달의 형상을 한 알(egg)이 내려와서 여기서 세미라미스(Ishtar)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세미라미스가 알에서 태어난 Ishtar를 기념하기 위해 Ishtar의 제단에 알(계란)을 바치던 풍습이 있었다.
이 풍습이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풍습으로 포장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이방풍습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부활절 계란(Easter’s egg)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부활절 계란(Easter’s egg)이 바로 여신 Ishtar의 탄생을 기념하는 계란(Ishtar’s egg)이었던 것이다.
로마 카토릭교회에서 부활절 계란에 붉은 칠로 장식을 하는 것은 Ishtar의 제단에 알을 바칠 때, 어린아이를 죽여 피를 받은 뒤 알을 그 피에 담가 제단에 올리던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교회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 앞에서 옳지 않은 이방인의 신앙방법, 이방종교형식을 그대로 교회 안으로 끌어와서 기독교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우상숭배의 죄악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옳게 분별하지 못하면 전통이라는 미명으로 가만히 들어온 이방종교형태를 구대로 교회에서 사용하는 죄악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음녀, 사탄, 마귀, 루시퍼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작동하는 것들이다.
③ 확고한 믿음에 의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
절대로 십자가 복음 외에 구원의 길은 단 하나도 없다.
이것은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만 되는 절대 진리이다.
never라는 말은 쉽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단어이지만, 구원의 진리문제만큼은 never라는 단어를 사용해야만 된다.
십자가 복음은 결코 타협하거나 양보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바벨론주의자들, 태양신주의자들, 로마카토릭교회자들은 십자가 복음 외에 얼마든지 구원의 길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도록 온갖 화려하고 웅장한 것들로 치장하고 꾸며놓고 유혹하고 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종들을 넘어뜨리고 오직 삼위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배하고 봉양하는 데서 떠나도록 온갖 화려하고 웅장하고 그럴듯한 음녀들을 우리들 주변에 수없이 심어놓고 있다.
음녀들의 호리는 눈짓과 유혹의 소리에 매료되어서 넘어가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산다고 여겨지던 이들이 어느 순간에 이단의 굴레에 빠져 있는 모습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은 음녀들의 음침한 눈짓과 유혹의 소리에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아버려서 생겨난 불행이다.
그들에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주변에서 제대로 가르쳐 주었을 때,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수 있으면 그래도 감사한 일이요 하나님의 은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에서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라고, 음녀의 유혹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치고 전해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살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은 음녀들이 깔아놓은 유혹의 함정들을 옳게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님께서 감동주시고, 가르쳐 주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의 사람은 옮고 그름을 옳게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22;16-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오직 삼위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이신 성경의 말씀에서 하나라도 빼거나 더하거나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성경 66권의 말씀에서 벗어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징계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내 생각, 내 견해, 내 사상이 아무리 좋아도 성경의 말씀에 하나라도 더 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서 아무리 내 마음에 들지 않고 싫더라도 어느 것 하나라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고 단단하게 말씀하고 있다.
인류의 타락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키도록 하신 말씀에서 아주 조금 변질시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분명히 하나님은 아담 내외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유혹을 받은 하와는 사탄에게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이야기하면서 아주 조금 변질시킨다.
그러자 곧 바로 사탄은 하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미혹하여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한다.
그 사탄의 한 마디에 하와는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곧 이어 아담도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죄악과 타락의 세계로 변질되고 만다.
그러므로 21세기에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명확하게 분별하지 않을 때 비수무리하게 미혹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 그렇 수도 있지 않겠나?’하면서 미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사탄의 계략에 농락당하고 처절하게 패배자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을 받아서 죽음의 세계, 사탄의 세계, 지옥의 세계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오직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21세기의 신앙인들은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확고하게,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길만이 음녀로 둔갑한 사탄의 미혹에서 이겨내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님의 사람으로, 성령의 사람으로, 십자가의 사람으로, 복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와☺우리교회 (WA☺WOORI) http://cafe.daum.net/GRACEOF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