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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2일 대한변협회관에서 ‘2024년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를 개최했다. ©에이블뉴스
2023년 장애에 관한 판결들은 장애인을 웃고 울게 만들었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등을 고려해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제시해 성년후견을 종료한 판결은 장애인의 권리를 명확히 인정했지만, 발달장애인은 특별교통수단 뒷자석에만 앉으라는 탑승제한기준이 차별이 아니라는 판결은 장애인에게 상처와 실망을 안겨주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2일 대한변협회관에서 ‘2024년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를 개최했다.
올해의 수집·분석 대상 판결은 2023년 1월부터 12월까지 장애를 언급한 총 3,812건의 판결문 중 디딤돌 판결 12개, 걸림돌 판결 4개, 주목할 판결 2개 총 18개를 선정했다.
2일 대한변협회관에서 개최된 ‘2024년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에서 디딤돌 판결을 발표하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인영 변호사. ©에이블뉴스
장애인활동지원기관 종사자의 성폭력 가중처벌 인정 ‘디딤돌’
피고인 A씨는 장애인활동지원기관 소속 종사자로서 대·소변처리, 목욕 등 뇌병변 1급 장애인인 피해자의 일상 활동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유사성행위 이후 수차례 유사강간미수, 강제추행을 했다. 해당 사건의 쟁점은 장애인활동지원기관 종사자의 경우 성폭력처벌법 가중처벌 대상자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성폭력처벌법 제6조 7항 ‘장애인의 보호, 교육 등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의 장 또는 종사자가 보호·감독의 대상인 장애인에 대해 성폭력 죄를 범한 경우에는 그 죄를 가중하는데, 대법원은 ‘장애인의 보호, 교육 등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이란 장애인의 거주시설 또는 교육시설과 같이 일정한 공간에서 장애인에 대한 보호·교육 등을 하는 시설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법령 계약 등에 따라 시설의 업무내용이나 목적에 장애인에 대한 보호 의무를 전제로 한 보호 교육 등이 포함된 시설을 의미한다고 보고 가중처벌을 인정했다.
발달장애인 B씨는 학교 폭력 등으로부터 보호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성년 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성년후견이 개시된 이후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해 합격했으나 피성년후견인이라는 이유로 자격증 발급을 거부당해 성년후견 종료 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서울가정법원은 성년후견개시 요건은 단지 의학적 관점에 따라 피후견인의 정신적 제약의 정도만으로 판단될 것이 아니라 피후견인이 장래 처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무의 범위와 친족 등의 도움을 받아 후견 없이도 사무를 처리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포함해 법 제도적 관점에 따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자립여건과 환경의 활용 측면에서 후견적 개입이 최소화되는 범위에서 법정후견이 개시되도록 해석돼야 하고 성년후견요건에 대한 엄격한 판단을 요구하며 성년 후견 종료를 결정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인영 변호사는 “법원이 현행 법령상 피성년후견인으로 대한 결격사유 조항들이 피성년후견인을 일률적으로 배제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직업과 자격취득에 따른 사회활동 참여를 획일적으로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있는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전에는 성년후견이 개시된 후에 종료되려면 장애가 없어져야할 만큼의 요건을 법원에서 요구했다”면서 “해당 판결은 성년후견개시와 종료에 있어 엄격한 판단을 할 것을 제시함으로써 성년후견사건에서 지표가 될만한 판결이다. 이 판결을 시점으로 성년후견사건에 대한 고무적인 판결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신적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보호자 동반 탑승 ‘차별 인정’ 등도 디딤돌 판결
지적장애인에 대한 산재 자살 인정 판결도 디딤돌 판결로 선정됐다. 망인 C씨는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던 중 2019년 자살했다. 그의 부모는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함으로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청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C씨의 사망이 업무상 사유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해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을 처분했다.
하지만 서울행정지방법원은 C씨가 직장 내 차별과 불화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세가 악화, 자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지적장애 3급인 망인이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며 차별과 불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자살 직전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저하됐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별교통수단과 관련된 두가지 판결도 디딤돌 판결로 뽑혔다. 주장애가 상지기능 지체장애 중 심한장애인이고 부장애는 하지기능 지체장애 중 심하지 않은 장애인이 특별교통수단 이용 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한 사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특별교통수단 서비스 제공의 거부는 장애인 차별이라고 인정했다.
또한 서울시설공단의 지적·자폐·정신장애인의 경우 반드시 보호자를 동반해야만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는 규정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적장애인에게 일률적으로 보호자 동반을 요구하는 것은 차별취급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외에도 정신장애인 면접과정에서의 차별 인정 판결, 농아인 피고인에 대한 위법한 수사 인정 판결, 지적장애인 우체국 금융거래 인정 판결, 정신적 장애인의 진술 신빙성 및 법적 보호 인정 판결들, 장애인에 대한 위계등간음 성폭력 인정 판결, 전동휠체어 과실치사상 무죄 판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장애등급결정 판결 등이 디딤돌 판결로 선정됐다.
2일 대한변협회관에서 개최된 ‘2024년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에서 걸림돌 판결과 주목할 판결을 발표하는 법무법인 원곡 임한결 변호사. ©에이블뉴스
발달장애인 뒷자석에만 앉으라는 탑승제한기준 차별 아냐 ‘걸림돌’
국가인권위원회는 서울시설공단의 발달장애인을 운전석 옆 보조석에 앉지 못하고 보호자와 함께 운전석 대각선 뒷좌석에 앉도록 하는 ‘탑승제한기준’을 개선하도록 권고했으나 서울시설공단은 이 개선권고를 불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권고결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조에서 정한 ‘교통수단’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장애인 차별이 될 수 없고 더 따져볼 필요도 없이 이 사건 권고는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특히 탑승 자체에 대한 제한이 아니고 발달장애인으로 한정하고 있는 점, 장애의 정도가 심한 발달장애인으로 한정돼 도전적 행동의 위험성이 더 큰 점, 뒷좌석이 아닌 보조석에 탑승할 수 있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편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도 밝히기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들어 가정적 판단까지 해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까지 설명했다는 비판이다.
법무법인 원곡 임한결 변호사는 “행정소송은 그 연원이 국민이 국가로부터 부당·위법한 처분을 받을 때 제기하는 것인데 해당 소송은 행정기관간의 다툼, 특히 신속한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항고소송으로 다툴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것”이라며 “이는 행정기관이 인권위 권고를 1심, 2심, 3심의 행정소송으로 몇 년간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별교통수단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이동 및 교통수단’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하나의 정의 조항만을 가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장애인콜택시를 법적으로 장애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덧붙였다.
또한 지적장애인과 뇌병변장애인 등 장애인 당사자들은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시 장애에 따른 투표 편의 제공을 위해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사전투표소에 방문했지만, 투표사무원들이 가족이 아닌 사회복지사들의 투표보조를 거부하고 장애인들이 각자 단독으로 기표소에 들어가도록 종용했다.
이에 당사자들은 헌법상 권리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했음을 이유로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부산지방법원은 헌법상 선거권과 평등권의 중요성을 인정했으나 현행 투표보조인제도의 운영방식이 장애인들의 선거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하도록 했다.
아울러 소위 언론에 사찰노예 사건으로 알려진 사찰 내 지적장애인을 이유로 한 금전적 착취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과 장애학생이 학교폭력 피해자인 사건에서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 판례에 따른 판단기준만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소극적으로 판단한 판결도 걸림도 판결로 뽑혔다.
지적장애인 피해자 휴대폰 도용 대출사기 사건 ‘주목할 판결’
디딤돌 또는 걸림돌 판결로 구분하기는 어려우나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하게 한 주목할 판결도 총 2건 선정됐다.
지적장애인 D씨는 휴대전화 판매원이 신분증, 계좌번호, 비밀번호를 요구해 유심칩 개통 후 공동인증서를 받급 받아 대출을 신청하는 사기를 당했다. 이후 가해자는 사기죄 등으로 징역 8개월이 선고됐고 피해자 D씨는 금융기관을 상대로 대출금채무가 없다는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해당 소송에 대해 전자문서법 ‘수신된 전자문서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의해 기한 것이라고 믿을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의하여 송신된 경우’에 해당한다면서 소송을 기각했다.
E씨는 장애정도가 심한 뇌병변장애를 가진 어머니와 동거하는 자녀로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현재 이용설치기준에 침대형 휠체어에 관한 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특별교통수단의 운행 목적에 비추어 볼 때 표준휠체어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과 표준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는 장애인은 이동에 심한 불편을 느끼는 교통약자로서 차이가 없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이 표준휠체어만을 기준으로 휠체어 고정설비 기준을 정하고 있는 것은 표준휠체어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을 달리 취급하는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했다.
임한결 변호사는 “해당 사례는 디딤돌 판결로 선정될 수 도 있었으나 헌법재판소가 이동권에 대해 판단하지 않은 점을 선정위원들은 아쉽게 꼽았다”면서 “해당 판결도 헌법불합치결정을 했지만, 장애인간의 평등권 문제로 치부한 것으로 헌법재판소는 아직 이동권이 헌법 어느 조항에 근거한 것인지도 판단한 바가 없고 여전히 이동권을 국가의 시혜적 급부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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