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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의 코페르니쿠스' 홍대용
서양 천문학 도입해 '음양오행설' 동양 우주관 비판
입력 : 2024.01.25 03:30 조선일보
'조선의 코페르니쿠스' 홍대용
▲ 홍대용 초상화. 북경을 방문했을 때 청나라 학자 엄성이 그렸다고 알려져 있어요. /위키피디아
국회가 지난 9일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법에 따라 만들어질 우주항공청에서는 우주 진출과 관련 인프라 개발을 도맡게 됩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이 우주 강국으로 도약할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라고 할 수 있죠. 5월 경남 사천시에 우주항공청을 여는 것을 목표로 정부도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후기에 서양 천문학을 앞서 수용해 우리 천문학 발전에 공헌한 홍대용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홍대용은 '조선의 코페르니쿠스'라는 별명도 있어요. 코페르니쿠스는 서양 중세 시대 천문학자예요. 당시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벗어나 '태양이 중심이고 지구는 태양을 돈다'는 주장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어요. 이런 서양 천문학을 공부한 홍대용은 하늘이 움직인다고 믿던 당시 조선에서 땅이 움직인다는 주장을 폈던 것이죠. 홍대용은 한국천문연구원이 지난 2005년 발견한 소행성의 이름이기도 해요. 소행성을 발견하면 천문학 발전에 공헌한 인물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아요. 장영실 소행성도 있답니다. 홍대용은 어떤 업적을 남겼을까요?
성리학 배우다 천문학… 직접 '천문대' 지어
홍대용(1731-1783)은 당대 조선의 집권 세력이었던 남양 홍씨 노론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관직의 길이 아니라 스스로 순수 학문의 길을 선택했죠. 홍대용은 10대 초반에 경기도 양주의 석실 서원에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석실 서원에는 "만약 과거 공부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는 다른 서원으로 가야 한다"라는 규칙이 있었는데요, 그만큼 관직 진출보다는 순수하게 성리학을 연구하는 학풍이 강한 곳이었어요. 이곳에선 천문학과 수학 연구도 활발했어요. 홍대용은 석실 서원에서 학풍에 따라 성리학의 기본 문헌을 공부하고 천문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어요.
홍대용은 석실 서원에서 10여 년을 공부한 뒤에는 서울에서 생활했습니다. 이 시기에 연암 박지원(1737-1772)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였고, 자연스럽게 중국 청나라에서 전래한 서양의 천문학과 수학을 계속 연구했어요. 당시 성리학자는 서양의 천문학에 관심을 가졌으나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동양의 음양오행설 등을 바탕으로 서양의 우주관까지도 설명하려 했지요. 동양의 우주관이 서양보다 우월하다고 인식했던 거죠.
20대 후반에 접어든 홍대용은 서양의 천문학과 수학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동양의 천문학을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홍대용은 저서 '주해수용(籌解需用)'에서 "천지의 참모습을 알고자 할 때는 뜻으로 탐하고 이치로 모색해서는 안 된다. 오직 기구를 만들어 측정하며 수를 계산해서 추측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어요. 성리학자의 형이상학적인 천문학 연구를 비판한 것이에요. 서양처럼 기구를 만들어 관측하고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죠.
홍대용은 28세(1759년)에 아버지가 관직 을 맡았던 나주에 머물렀어요. 그때 3년간의 노력을 거쳐 기계식 혼천의 두 대와 자명종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기계식 혼천의는 서양의 기계를 참고해 만들었다는데 톱니바퀴로 각 부분의 회전속도를 조절했기 때문에 매우 정확했어요. 고향 천원군(충남 천안) 마을에 네모난 연못을 파고 가운데에 정자를 지어서 천문 관측소도 만들었어요. 농수각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혼천의와 천문 기구도 보관했죠.
청나라 여행서 성당 신부님 붙잡고 공부
홍대용은 1765년(영조 41) 작은아버지 홍억이 중국 청나라로 보내는 사신인 '연행사'에서 기록관 일을 맡게 되면서 청나라 수도인 북경(지금의 중국 베이징)을 여행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시 사신 행렬에는 보통 각 가문에서 촉망받는 젊은 선비를 선발해 따라가도록 했거든요. 홍대용이 청나라 여행 중 남긴 '담헌연기'와 '을병연행록'을 보면 북경에 머무는 동안 세 번에 걸쳐 남천주교당(남당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목적은 서양의 천문학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거문고 연주에 능통했던 홍대용은 이때 남당 성당에 있던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다고 해요. 성당에서 서양화, 파이프 오르간, 망원경, 자명종 등을 구경했으며, 특히 망원경으로 태양을 관측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홍대용은 신부에게 궁금한 내용을 질문했는데, 천문학을 전혀 모르는 통역을 가운데 두고 논의해야 해서 의사소통이 불편했다고 합니다. 홍대용이 남긴 기록에는 "온종일 대화를 나눠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고 시원하게 의사가 통한 것이 없다"고 한탄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러한 사실에 비춰보면 홍대용의 천문학 지식은 중국에 다녀온 조선 사절단이 가져온 천문학 서적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연구한 결과로 보입니다.
태양계 모여 은하계… "우주는 무한하다"
홍대용은 40대 초반에 자신의 천문학과 우주론을 정리한 '의산문답(醫山問答)'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의산문답'에서는 우주론을 공계론(空界論)과 지기론(地氣論)으로 나누어 설명했어요. 공계론에서는 지구를 포함한 우주 전체를 설명했고, 지기론에서는 지구에 집중해서 설명했어요.
먼저 공계론에서는 지구는 둥글고 하루에 한 번씩 자전한다고 주장했어요. 우리 전통적 사고를 부정하는 것이었죠. 당시까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생각대로, 땅은 평평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설'과 지구는 우주의 중앙에 고정되어 있다는 '지정설'을 사실로 알고 있었거든요. 특히 '무한 우주론'이 흥미로운데, 현대 과학에서처럼 수많은 태양계가 모여 은하를 이루고, 다시 수없이 많은 은하가 모여 우주를 이룬다는 주장이었죠.
다만 지기론에서는 지구는 공전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을 해요. 현대에 밝혀진 바로는 틀린 말이죠. 홍대용은 모든 천체가 자전과 공전을 하지만, 지구는 어둡고 차갑기 때문에 자전은 하고 공전은 하지 않는다는 지냉계설(地冷界說)을 주장했어요. 지활물설(地活物說)에서는 어둡고 차가운 지구가 태양의 빛과 열을 받아 생명성을 함유한 기(氣)로 충만해 끊임없이 활동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지기증변설(地氣蒸變說)에서는 지구에서 비·구름·바람 등의 기상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했어요. 지구가 자전하고 태양의 영향을 받으면서 지구의 기가 변화하고, 그 영향으로 기상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했어요.
홍대용의 우주론은 지구와 땅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태양 및 우주와 연결해 이해한 점이 탁월하다고 할 수 있어요. 또한 무한 우주론과 태양과 지구의 관계 속에서 생명현상을 설명한 점은 오늘날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 국립중앙과학관에서 복원한 홍대용의 '천체 관측 기구' 혼천의(왼쪽). 서양 기계를 참고해 만들었대요. 오른쪽은 함께 복원된 자명종이에요. /국립중앙과학관
▲ 홍대용이 쓴 글을 엮은 책 '담헌서'. 손으로 쓴 여러 책을 1939년 후손이 모아 활자로 인쇄했어요. /한국학중앙연구원
▲ 담헌서에 실린 '주해수용' 부분. 서양 천문학을 인정하면서 동양을 비판했어요. 이 밖에도 담헌서에는 우주론을 설명한 '의산문답' 등도 담겨 있어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환병 관악고 교감 기획·구성=장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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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의 코페르니쿠스' 홍대용
서양 천문학 도입해 '음양오행설' 동양 우주관 비판
입력 : 2024.01.25 03:30 조선일보
'조선의 코페르니쿠스' 홍대용
▲ 홍대용 초상화. 북경을 방문했을 때 청나라 학자 엄성이 그렸다고 알려져 있어요. /위키피디아
국회가 지난 9일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법에 따라 만들어질 우주항공청에서는 우주 진출과 관련 인프라 개발을 도맡게 됩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이 우주 강국으로 도약할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라고 할 수 있죠. 5월 경남 사천시에 우주항공청을 여는 것을 목표로 정부도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후기에 서양 천문학을 앞서 수용해 우리 천문학 발전에 공헌한 홍대용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홍대용은 '조선의 코페르니쿠스'라는 별명도 있어요. 코페르니쿠스는 서양 중세 시대 천문학자예요. 당시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벗어나 '태양이 중심이고 지구는 태양을 돈다'는 주장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어요. 이런 서양 천문학을 공부한 홍대용은 하늘이 움직인다고 믿던 당시 조선에서 땅이 움직인다는 주장을 폈던 것이죠. 홍대용은 한국천문연구원이 지난 2005년 발견한 소행성의 이름이기도 해요. 소행성을 발견하면 천문학 발전에 공헌한 인물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아요. 장영실 소행성도 있답니다. 홍대용은 어떤 업적을 남겼을까요?
성리학 배우다 천문학… 직접 '천문대' 지어
홍대용(1731-1783)은 당대 조선의 집권 세력이었던 남양 홍씨 노론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관직의 길이 아니라 스스로 순수 학문의 길을 선택했죠. 홍대용은 10대 초반에 경기도 양주의 석실 서원에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석실 서원에는 "만약 과거 공부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는 다른 서원으로 가야 한다"라는 규칙이 있었는데요, 그만큼 관직 진출보다는 순수하게 성리학을 연구하는 학풍이 강한 곳이었어요. 이곳에선 천문학과 수학 연구도 활발했어요. 홍대용은 석실 서원에서 학풍에 따라 성리학의 기본 문헌을 공부하고 천문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어요.
홍대용은 석실 서원에서 10여 년을 공부한 뒤에는 서울에서 생활했습니다. 이 시기에 연암 박지원(1737-1772)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였고, 자연스럽게 중국 청나라에서 전래한 서양의 천문학과 수학을 계속 연구했어요. 당시 성리학자는 서양의 천문학에 관심을 가졌으나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동양의 음양오행설 등을 바탕으로 서양의 우주관까지도 설명하려 했지요. 동양의 우주관이 서양보다 우월하다고 인식했던 거죠.
20대 후반에 접어든 홍대용은 서양의 천문학과 수학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동양의 천문학을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홍대용은 저서 '주해수용(籌解需用)'에서 "천지의 참모습을 알고자 할 때는 뜻으로 탐하고 이치로 모색해서는 안 된다. 오직 기구를 만들어 측정하며 수를 계산해서 추측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어요. 성리학자의 형이상학적인 천문학 연구를 비판한 것이에요. 서양처럼 기구를 만들어 관측하고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죠.
홍대용은 28세(1759년)에 아버지가 관직 을 맡았던 나주에 머물렀어요. 그때 3년간의 노력을 거쳐 기계식 혼천의 두 대와 자명종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기계식 혼천의는 서양의 기계를 참고해 만들었다는데 톱니바퀴로 각 부분의 회전속도를 조절했기 때문에 매우 정확했어요. 고향 천원군(충남 천안) 마을에 네모난 연못을 파고 가운데에 정자를 지어서 천문 관측소도 만들었어요. 농수각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혼천의와 천문 기구도 보관했죠.
청나라 여행서 성당 신부님 붙잡고 공부
홍대용은 1765년(영조 41) 작은아버지 홍억이 중국 청나라로 보내는 사신인 '연행사'에서 기록관 일을 맡게 되면서 청나라 수도인 북경(지금의 중국 베이징)을 여행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시 사신 행렬에는 보통 각 가문에서 촉망받는 젊은 선비를 선발해 따라가도록 했거든요. 홍대용이 청나라 여행 중 남긴 '담헌연기'와 '을병연행록'을 보면 북경에 머무는 동안 세 번에 걸쳐 남천주교당(남당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목적은 서양의 천문학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거문고 연주에 능통했던 홍대용은 이때 남당 성당에 있던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다고 해요. 성당에서 서양화, 파이프 오르간, 망원경, 자명종 등을 구경했으며, 특히 망원경으로 태양을 관측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홍대용은 신부에게 궁금한 내용을 질문했는데, 천문학을 전혀 모르는 통역을 가운데 두고 논의해야 해서 의사소통이 불편했다고 합니다. 홍대용이 남긴 기록에는 "온종일 대화를 나눠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고 시원하게 의사가 통한 것이 없다"고 한탄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러한 사실에 비춰보면 홍대용의 천문학 지식은 중국에 다녀온 조선 사절단이 가져온 천문학 서적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연구한 결과로 보입니다.
태양계 모여 은하계… "우주는 무한하다"
홍대용은 40대 초반에 자신의 천문학과 우주론을 정리한 '의산문답(醫山問答)'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의산문답'에서는 우주론을 공계론(空界論)과 지기론(地氣論)으로 나누어 설명했어요. 공계론에서는 지구를 포함한 우주 전체를 설명했고, 지기론에서는 지구에 집중해서 설명했어요.
먼저 공계론에서는 지구는 둥글고 하루에 한 번씩 자전한다고 주장했어요. 우리 전통적 사고를 부정하는 것이었죠. 당시까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생각대로, 땅은 평평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설'과 지구는 우주의 중앙에 고정되어 있다는 '지정설'을 사실로 알고 있었거든요. 특히 '무한 우주론'이 흥미로운데, 현대 과학에서처럼 수많은 태양계가 모여 은하를 이루고, 다시 수없이 많은 은하가 모여 우주를 이룬다는 주장이었죠.
다만 지기론에서는 지구는 공전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을 해요. 현대에 밝혀진 바로는 틀린 말이죠. 홍대용은 모든 천체가 자전과 공전을 하지만, 지구는 어둡고 차갑기 때문에 자전은 하고 공전은 하지 않는다는 지냉계설(地冷界說)을 주장했어요. 지활물설(地活物說)에서는 어둡고 차가운 지구가 태양의 빛과 열을 받아 생명성을 함유한 기(氣)로 충만해 끊임없이 활동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지기증변설(地氣蒸變說)에서는 지구에서 비·구름·바람 등의 기상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했어요. 지구가 자전하고 태양의 영향을 받으면서 지구의 기가 변화하고, 그 영향으로 기상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했어요.
홍대용의 우주론은 지구와 땅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태양 및 우주와 연결해 이해한 점이 탁월하다고 할 수 있어요. 또한 무한 우주론과 태양과 지구의 관계 속에서 생명현상을 설명한 점은 오늘날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 국립중앙과학관에서 복원한 홍대용의 '천체 관측 기구' 혼천의(왼쪽). 서양 기계를 참고해 만들었대요. 오른쪽은 함께 복원된 자명종이에요. /국립중앙과학관
▲ 홍대용이 쓴 글을 엮은 책 '담헌서'. 손으로 쓴 여러 책을 1939년 후손이 모아 활자로 인쇄했어요. /한국학중앙연구원
▲ 담헌서에 실린 '주해수용' 부분. 서양 천문학을 인정하면서 동양을 비판했어요. 이 밖에도 담헌서에는 우주론을 설명한 '의산문답' 등도 담겨 있어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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