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玉)퉁소
이리하여 양한림이 서울로 돌아와 예궐하여 복명할 때, 연왕의 표문(表文)과 공물로 바치는 금은 비단이 금은 비단이 마침 이른지라, 천자는 크게 기꺼워하며 그 노고를 위로하고, 그 공훈을 표창하여 장차 후(侯)를 봉하려 하자, 한림이 크게 놀라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굳이 사양하니 성상은 그 뜻을 가상히 여겨 그 의론을 들어 다시 예부상서(禮部尙書)겸 한림학사를 삼고 상급(賞給)도 많이 내리고 예우(禮遇)도 융숭하시니 그 영광이 고금에 견줄 바 없더라.
상서가 화원으로 돌아와 춘랑과 더불어 이별 중의 회포를 풀며 새로운 즐거움을 말하니, 은근한 정은 이루 말로 다 나타낼 수 없겠더라.
천자께서 ㅇ양소유의 글솜씨를 사랑하사 자주 편전으로 불러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토론하시니, 양상서 예궐하는 날이 잦아지더라. 하루는 밥 늦또록 입시하였다가 직소(直所)에 돌아오니 월색이 고와 그윽한 흥취를 일게 하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난간을 의지하고 앉아 달을 대하여 글을 읊조리는데, 문득 바람결에 들은즉 퉁소소리가 멀리 구름 사이를 따라 점점 내려오더라. 그 곡조는 자세치 아니하나 그 음색은 이 세상에서 듣지 못한 바라, 상서가 아전을 불러 물어보기를,
“이 퉁소 소리가 대궐 밖에서 나는 것이뇨, 혹은 궁중 사람 가운데 이런 곡조를 능히 부는 자가 있느뇨?”
아전이 대답하되,
“알지 못하겠나이다.”
상서도 이어서 옥퉁소를 내어 두어 곡조를 불매, 그 소리 또한 하늘에 흐르는 구름을 머무르게 하는 듯 하더니, 곡조에 맞추어 춤을 추니 한림원의 모든 아전들이 신기하게 여기며 왕자진이 우리마을에 있다 하더라.
이 때 황태후에게 두 아들과 딸이 있으니, 성상과 월광과 난양공주 셋이라.
난양공주가 탄생하실 적에 태후 꿈에, 선녀가 구슬을 받들어 태후의 품속에다 넣어주시니, 공주 장성하시매 지혜와 자질이 모두 예업에 어긋남이 없어 조금도 속된 버릇이 없고, 문필과 침선이 또한 신기하고 절묘하므로 태후 매우 사랑하시는데, 서역 태진국에서 백옥 퉁소를 조공으로 바치거늘, 그 꾸밈새가 극히 묘하므로 악공으로 하여금 물어보게 하나 소리가 나지 아니하더라.
이 무렵 공주가 어느날 꿈에 선녀를 만나서 곡조를 배워 그 신묘함을 익혀, 꿈을 깨자 태진국의 퉁소를 시험하여 부니, 소리가 말그며 음율이 저절로 맞기에 태후와 천자께서 다 기이하게 여겨 칭찬하시되 다른 사람은 아무도 부는 법을 모르더라.
매양공주가 한 곡조를 불면, 모든 학이 스스로 전각 앞에 모여들어 마주 춤을 추는지라, 태후가 이를 보시고 성상께 이르기를,
“옛날에 진목공(秦穆公)의 딸 농옥이 옥퉁소를 잘 불었다 하는데 이제 공주의 한 곡조가 농옥에 지지 아니 할지니, 반드시 소사 같은 사람이 있은 연후에야 가히 공주를 하가(下嫁) 시키겠소.”
이리하므로 난양공주는 이미 장성하였으되 부마를 간택하지 못하였더라.
이날 밤에 난양공ㅈ부가 마침 달을 바라보며 퉁소를 불자 학이 춤을 추었는데, 곡조를 마치매 청학이 한림원을 향해 날아가 그 동산에서 춤을 추니, 사람들이 서로 전하여 일컫기를 양상서의 옥퉁소 소리에 학이 춤을 춘다 하더라.
천자가 이 말을 들으시고, 신기하게 여기며 생각하기를,
“공주의 인연이 필연 이 사람에게 있으렸다!”
하고 태후게 아뢰시되,
“양소유의 연기가 공주와 서로 맞사옵고, 그 풍체와 재주는 만조(萬朝)에 무쌍하오니 간택하시기 바라나이다.”
태후가 웃고 이르시기를,
“소화의 배필이 아직 없어 항상 염려하였더니, 그 말씀을 들으니 양소유는 곧 난양공주의 천상배필이요. 그러나 이몸이 친히 보고 정하겠으니, 상은 그리아시오.”
성상이 대답하시되,
“어렵지 않은 일이오니 일간 양소유를 별전으로 불러 글을 강론하오리니, 그 사람됨을 어람하소서.”
하셨는데, 난양공주의 이름이 소화이니, 바로 이는 그 옥퉁소에 소화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으므로 이를 따른 것이니라.
첫댓글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건강과 행복을 함께 드립니다.
장문
반갑게 읽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