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7:1-10
허무한 인생
욥은 인생의 불행한 운명을 탄식하면서 자신의 인생관을 소개합니다. 욥은 인생이 고난이 끊어지지 않으며 언제나 고달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약하고 부족함이 오히려 하나님을 찾게 하므로 인생의 약함은 오히려 인생에게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위대함은 그것이 하나님의 신령한 자기 계시를 기록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 준다는 데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슬픔과 기쁨과 아름다움과 추악함 그리고 심지어는 배신의 역사마저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극도의 환난과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는 안타까운 한 영혼의 절규를 보게 됩니다. <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 고난받는 인간의 전형으로서 욥은 과연 어떻게 반응하는가?>하는 문제는 고달픈 인생살이에 지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리라 믿습니다.
본문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욥은 참기 어려운 아픔을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차츰 인생 자체에 드리워져 있는 깊은 허무의 그림자를 뚜렷하게 인식하여 갑니다. 이제 그 인식과 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하여 살펴보기로 합시다.
##### 1.인생에 전쟁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욥이 본문에서 열거한 자신의 처지는 처참하기만 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싸움으로 아픔만 남는 전쟁으로 표현합니다(1).
사실 戰爭은 인간의 잔학성과 동물적 잔인성을 극한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전쟁의 동기나 이념이야 어떻든 간에 일단 전투가 개시되면 그때에는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 아비규한의 몸부림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이래로 이 지구상에 전쟁이 없던 때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인생의 타락성을 증명해 주는 비극이라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욥은 모든 인생에게 일반적으로 작용하는 전쟁이라는 절박한 위협 요인을 예로 들어 인생의 허망함과 아픔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쟁이란 단지 국가간의 대규모 전투만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에도 개인간의 원한이나 보복으로 인한 시기와 싸움, 심지어는 심각한 가해행위 마져 얼마든지 목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와 같은 시기와 질투의 본성이 누구에게나 있음을 알고 매사에 감정에 휩쓸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분쟁과 갈등을 해소해 내는 조정자의 역할을 잘하도록 요청 받고 있습니다.
##### 2. 종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욥은 인생을 종과 품꾼으로 표현합니다(2).
고대 사회에 있어 종이란 마치 물건과 같이 취급되어서 호의호식하며 자유를 누리는 상전들에 비하면 참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소망은 빨리 날이 지나가고 해가 져서 어둠이 찾아와서 곤히 잠자리에 눕는 것이었음이 당연합니다.(2절)
욥은 인생이 고달프기에 하루종일 중노동으로 기진맥진한 종과 품꾼 같은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3.자신의 특수한 곤경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에게 눈을 돌립니다.(3절하)
현재 당하는 욥의 고통은 실제적 경험이었기에 논리적인 이론을 전개하지 않아도 생의 비애와 허망함을 뼈져리게 느끼게 하기에 충분함을 봅니다.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욥과 동일한 고난은 아니라 할지라도 큰 질병이나 교통 사고 등 의외로 재난으로 고뇌하고 고통당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평소에 인생의 허무함과 소중함을 동시에 깊이 깨닫고 신앙으로 준비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예화>//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신기한 행렬을 보았습니다. 여러 마리의 소떼가 그 몰이꾼을 따라 우르르 몰려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도 신기해서 그 길을 따라가기로 맘을 먹고 뒤를 좇았답니다. 그런데 한참 따라가보니 놀랍게도 몰이꾼은 도살장으로 그 소들을 끌고 가는 게 아닙니까? 그래 몰이꾼에게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당신은 무슨 재주가 있기에 저 많은 소들을 여기까지 무사히 몰고 올 수 있었습니까?"
그 사람은 대답하기를 '제게는 삶은 콩 한 바구니가 있어요. 그래서 얼마쯤 가다가 그 콩을 떨어뜨리고 또 얼마쯤 가다가 떨어뜨려 주면 이 소들이 그 콩을 주어 먹느라 정신이 팔려 여기까지 따라오는 거랍니다.'
인생이 죽으러 가는 길인지 모르고 먹을 것만 찾아 앞으로만 나아가면 불행한 일이 기다리고 있게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말하기를 <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야고보서 4: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떤 고난이나 어려움에도 두려워 떨지 않고 이겨내기 위하여서는 인생의 어두운 현실을 바로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유한함과 허망함을 철저히 깨달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필요한 세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세웁니다.(4) 욥과 같이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넉넉한 풍성함이 항상 있을 것이며 그는 이웃에게도 받은 축복을 나누며 사는 아름다운 생애가 될 것입니다.
그런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욥 7:11-21
주님! 어찌하여
본문 12절에 보면 < 내가 바다니이까 용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라고 욥은 반문하고 있으며, 또 20-21절에도 보면 <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주님께 대한 욥의 한맺힌 절규같아 보입니다만은 어쩌면 자신의 신앙에 대한 하나님께의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가끔 이런 질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 주님! 왜 나로 하여금 이런 고통을 당하게 하십니까? >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질문속에 섞인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와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본문에서의 욥의 질문을 생각해 보시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는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1.욥의 이 질문은 인생의 가치에 관한 물음입니다
본문 17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라고 물었습니다.
요즘의 신문지상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크고 작은 범죄 사건들이 나옵니다. 비단 이처럼 어두운 사회 현실을 보지 않더라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역겹고 냄새나는 부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인생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만한 존재인가?' 혹은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식의 근본적 회의에 직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욥처럼 극도의 시련에 봉착하고, 사랑하는 아내에게서마저 냉대와 배신을 당하게 되면 인생의 참담함은 더욱 뼈에 사무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인생으로 하여금 세상 만물을 다스리며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는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간은 저주를 받았고 죄악과 허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지만 창조 때에 지니셨던 하나님의 계획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 - 사람 - 만물'의 순서대로 창조 원리가 회복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만물 위에 계시고 또한 교회의 머리이신 뜻도 여기에 의함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고 히브리서 2:6-8절에서 고백했습니다.
--인간의 고귀함을 알자.
##### 2.욥의 이 질문은 하나님의 시험에 관한 질문입니다
본문 18절에서 욥은 하나님께서 '분초마다 시험하신다'고 불평을 토로합니다.
이 말속에는 < 이 정도면 최선을 대해 살아온 것 같은데 왜 유독 제게 이렇듯 혹독하게 대하십니까?>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삶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된 까닭입니다.(약1:14).
그러나 본문의 욥이나, 아브라함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부요케 하고 더 큰 축복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험때의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더욱 순종하는 자세로 범사에 주를 인정하는 마음을 굳게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잠3:6)
--주님의 시험을 감사함으로 받자.
##### 3.욥의 이 질문은 죄사함에 관한 질문입니다
욥은 <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라고 한탄하였습니다. 이 말 속에도 < 제가 이처럼 큰 고통에 처할 정도의 죄를 지었습니까? >라는 다분히 역설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날에 비해 고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당시의 사고 구조에서, 욥이 이런 마음을 품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닦치는 어떠한 어려움도 인생이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죄에 대한 합당한 보응이 되지 못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만큼 인생의 죄악은 무거우며 치명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셔야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로써 죄인인 인생도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면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은 성숙해 갈수록 불평이나 원망보다 자기 성찰에 역점을 둡니다.
한때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불신와 책임전가 풍토를 없애기 위해 천주교 사제단에서 < 내 탓이요!>라는 운동을 전재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을 원망하며 불평하기 보다는 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알고, 주님앞에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성속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