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문(天王門)
번뇌로 어질러진 마음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하나로 다진 뒤에 계속 걷다보면,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인 사천왕을 모신 건물이 나타나게 된다. 천왕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천왕문의 현판부터 살펴본다. 천왕문 현판은 조선 후기 3대 명필의 하나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77) 선생이 쓴 현판이다. 선생의 필체는 삼과절필(三過絶筆)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서체를 구가하였다.
천(天)자는 창공을 향해 솟구치는 듯한 모습. 왕(王)자는 임금이 뒤로 버티어 위엄 있게 용상에 앉아있는 모습. 문(門)자는 마지막 획을 안으로 쭉 삐쳐 왼쪽과 연결시킴으로써 문에 빗장이 쳐있는 모습 등이다. 천왕문 아래 정와(靜窩)는 주지스님 요사체에 걸려있다.
천왕문은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대천왕이 있는 곳으로, 이곳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을 물리친다는 뜻에서 세워졌다.
즉, 천왕문은 가람을 호지하고 악귀를 내쫓아 청정도량을 유지하고, 신성한 불법의 공간에 들어온 불자들의 마음가짐을 엄숙 정연토록 하는 의미를 갖는다. 마음속에 서린 번뇌와 좌절을 없애고 한마음으로 정진할 것을 다짐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합장하며 무념무상(無念無想)을 빌었다.
천왕문은 건물의 좌우에 천왕을 2위씩 봉안하고 가운데에는 출입통로를 조성한다. 천왕상의 형상은 튀어나올 듯 부릅뜬 눈, 치켜 올라간 검은 눈썹, 크게 벌린 입 등의 무서운 얼굴에, 갑옷을 걸치고 각각의 지물을 들었으며 생령을 밟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천왕문의 사천왕은 고대 인도의 토속 신이었으나 불교에서 수용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사천왕은 불교에서 말하는 33천 중 욕계6천의 첫 번째인 사천왕천을 관장하며 제석천의 명을 받아 수미의 4주를 다스리는 신이다. 호세천이라 하며, 아래로는 8부 신중을 거느린다. 이들 신은 사방천하를 돌아다니며 중생들의 행동을 살펴서 제석천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사천왕은 본래 불교의 신들이 아니었다. 불교 이전 1,500년 전의 인도 베다신앙(인도의 토착신앙인 힌두교, 인도사회의 풍속과 사회제도 등과, 브라만교가 융합한 민족종교)의 신들이었다.
그러한 신들을 불교의 전파과정에서 불교에서 수용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도바라문교(힌두교와 합쳐짐)의 금강력사라든지 인왕 등을 수용하고,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중국의 도가와 선가 신앙인 현왕과 칠성 등을 수용하였으며, 우리나라에 와서는 산신이나 단군신앙인 독성 등을 수용하여 불교화(佛敎化)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불교의 본래의 신(身)들인 ‘부처님 보살, 나한’은 전(殿)에 모시고, 토속신앙을 수용한 신(神), 산신이나 칠성 등은 당(堂)이나 각(閣)에 모시며, 법당이나 주불전의 뒤에 모시는 것이다.{ ※ 조선의 집의 품계: 전(殿)ㆍ당(堂)ㆍ합(閤)ㆍ각(閣)ㆍ재(齋)ㆍ헌(軒)ㆍ루(樓)ㆍ정(亭)}
선운사 대웅보전에는 본존불로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그 왼쪽에 약사여래불, 그 오른쪽에 아미타부처님을 모셨다. 이렇게 모신형태를 삼신불(三身佛)을 모셨다 한다.
세분의 부처님을 모신 삼신불을 한자로 표기할 때는 자칫 귀신 신(神)자를 쓰기가 쉬운데, 불교는 무신교(無神敎)이기 때문에 귀신 神자를 쓰지 않고 몸 신(身)자를 쓴다.(三身佛). (山神堂)
천왕문에 모셔진 신들은,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동쪽을,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남쪽을,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서쪽을,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북쪽을 각각 수호한다.
사천왕의 조형적 특징을 살펴보면 보통 모두 보관을 쓰고 갑옷을 입은 채 상징지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조성된다. 지국천왕은 동방을 상징하는 청색의 피부색으로 표현되고 비파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증장천왕은 남방을 상징하는 붉은 빛의 피부색에 보검을 들고 있다. 광목천왕은 서방을 상징하는 흰색의 피부에 입을 크게 벌린 채, 오른손에는 용을 움켜쥐고 왼손에는 여의주를 잡고 있으며, 다문천왕은 검은빛을 띄는 피부색에 보탑(寶塔)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사천왕을 조성하는데 그 배치나 각 천왕상이 들고 있는 지물이 각 사찰에 따라서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는 신앙 대상의 소의경전 체제가 다를 수 있겠고, 천왕상 제작에 있어서 시대적 흐름과 조각이나 그림으로 나타낼 때 그 조성자에 따라 달리 배치되거나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사천왕은 천왕문 이외에도 불조전의 내외벽면, 혹은 부처님의 외호신중으로서 불ㆍ보살이 등장하는 불화의 사방에 배치되기도 한다.
사천왕의 방위와 지물, 색, 역할 등을 도표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방위 | 천왕명 | 지물 | 오방색 |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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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 지국천왕 | 비파 | 청색 | 선한 이에게 복을, 악한 자에게는 벌을 준다. |
남방 | 증장천왕 | 칼 | 적색 | 만물을 소생시키는 덕을 베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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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 광목천왕 | 용ㆍ여의주 | 백색 | 악인에게 고통을 줘 구도심을 일으키게 한다. |
북방 | 다문천왕 | 탑 | 흑색 | 어둠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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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 노란색. 오방색이다.
보통 사찰로 들어서서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을 만나게 되나 금강문이 없는 경우에는 바로 천왕문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천왕문의 대문이나 벽에 금강력사의 모습을 그려 놓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천왕문 안에 조각상을 세우기도 한다. 천왕문은 사천왕과 금강력사의 힘으로 절을 외호하고 나쁜 귀신 등을 내쫓아 사찰을 청정한 도량으로 만들려는 데 있다. 그리고 방문자의 마음을 다시한번 더 엄숙하게 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사천왕은 수미산(須彌山:불교의 우주관에서 이 우주의 한 중앙에 있다는 상상의 산. 수미산의 높이는 24만 유순이며, 1유순은 손수래를 끌고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 약 14km.) 중턱에 살면서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네 명의 대천왕을 말한다. 사대천왕(四大天王), 사왕(四王), 호세사왕(護世四王)이라고도 한다. 사천왕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호세신(護世神)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일찍부터 불교에 받아들여져 원시경전인 장아함경(長阿含經)에 등장하고 있다. 인도에서 처음으로 형상화된 사천왕상은 간다라 출토의 부조(浮彫)나 불전도(佛傳圖) 등에 나타나는 것처럼 고대 인도의 귀인(貴人) 모습을 하고 있으나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무인형(武人形)의 사천왕으로 변해 갔으며 이는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천왕은 나라와 경전에 따라 도상에 약간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물(持物)도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칼과 창, 탑 등의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다문천왕은 손에 항상 보탑(寶塔)을 들고 있어 사천왕의 명칭을 확인하는 데 하나의 기준이 된다. 한편 라마 불교의 영향을 받은 티베트 계통의 사천왕은 지국천이 비파, 증장천이 검, 광목천이 새끼줄, 다문천이 보서(족제비) 또는 보탑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천왕의 오방색은 티벳트의 ‘타르쵸’와 같다.
사천왕은 수미산의 중턱에서부터 욕계육천(慾界六天 : 1천 사천왕, 2천 도리천, 3천 야마천, 4천 도솔천, 5천 화락천, 6천 타화자제천)이 차례로 각 하늘을 다스리고 있다고 한다.
불교는 분명 무신교인데 버젓이 이러한 신들을 모셔놓은 걸 보면서, 부처님의 열반유훈(涅槃遺訓)을 생각해본다. “나는 신(神)이 아니다. 너희들과 똑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 나를 예배의 대상이나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 마라라. 법을 등불 삼고, 법에 귀의하며, 자신을 등불 삼고, 자신에 의지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왜 이런 신(神)들을 법당의 앞과 뒤, 양옆에 모셔두고 신(神)으로 모실까?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선사가 사찰 정화운동을 할 때. “절에 석가모니 부처님 한분만 남겨놓고 다 불살라 버려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곱씹어 보면서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