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 W. A. Mozart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와 같다. 부드럽고 감미로우며 산뜻하면서도 화려하다. 모차르트의 오페라에는 분홍빛 사랑과 보랏빛 희망, 그리고 자유를 향한 파란 마음이 주저리 영글어져 있다. 흔히 모차르트를 음악의 신동, 또는 하늘이 내려보낸 음악의 천재라고 부른다. 비록 35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는 그런 호칭에 진정 어울릴 정도로 보석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특히 오페라는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위대한 작품들이었다. 오페라에 대한 모차르트의 애착과 집념은 각별했다. 모차르트에게 있어서 오페라는 처음에는 야망이었다. 유명해지기 위한 첩경으로서의 오페라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삶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오페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불멸의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백작부인 역의 엘리자베트 슈봐르츠코프 ‘피가로의 결혼’은 프랑스의 저명한 극작가인 피엘 드 보마르셰(Pierre de Beaumarchais)가 쓴 3편의 연작(連作)중 제2편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보마르셰의 3부작중 제1편은 ‘세빌리아의 이발사’(Le Barbiere de Seville)이며 제2편이 ‘피가로의 결혼’(Le Mariage de Figaro), 그리고 제3편은 ‘죄많은 어머니’(La Mere Coupable)이다. 로시니가 작곡한 제1편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젊은 알마비바백작이 수단꾼인 거리의 이발사 피가로의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로지나(Rosina) 아가씨와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제2편 ‘피가로의 결혼’은 알마비바백작이 백작부인이 된 로지나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백작부인의 시녀이며 피가로와 결혼키로 되어 있는 수잔나(Susanna)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나 피가로의 기지로 백작의 마음을 백작부인에게로 되돌려 놓는다는 내용이다. 제3편은 아직 누구도 오페라로 시도하지 않았다. 굳이 관련이 있다면 미국의 존 코리글리아노(John Corigliano)가 작곡한 The Ghosts of Versaille(베르사이유의 유령)가 있다. 제3편의 내용은 백작부인(로지나)이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면 평소에 백작부인을 사모하던 미소년 케루비노(Cherubino)로 밝혀진다는 것이다. 이상의 스토리들은 당시 봉건귀족 사회에서 귀족들의 권위를 땅에 떨어트리는 것이기 때문에 당국으로부터 엄중한 제재를 받아 무대 공연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특히 제3부는 아예 당국으로부터 원천봉쇄를 당했기 때문에 공연작품으로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수잔나와 백작부인(편지의 이중창 장면) 모차르트는 독일을 무대로 하고 독일어를 쓰는 오페라를 작곡하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비엔나의 궁정에서는 아직도 이탈리아 오페라를 전폭적으로 선호하고 있었으므로 모차르트로서도 먹고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이탈리아 오페라를 작곡하기로 하고 ‘피가로의 결혼’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대본은 당시 오페라 대본의 귀재라고 하는 로렌조 다 폰테(Lorenzo da Ponte)에게 부탁했다. 로렌조 다 폰테는 합스부르크의 요셉2세 황제와 가까운 사이였다. 때문에 요셉황제가 다 폰테의 대본을 별 탈 없이 승인해 줄것으로 기대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요셉 황제가 기분이 괜찮을 때 다 폰테가 말씀을 잘 드려서 ‘피가로의 결혼’의 대본이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보마르셰의 연극은 비엔나에서 처음에는 공연금지 되었었다. 귀족에 대한 지나친 풍자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 폰테의 대본이 승인을 받자 모차르트가 작곡을 시작하여 결국 보마르셰의 작품은 모차르트 최고의 소재가 되었다. 오페라 부파(Opera buffa)인 ‘피가로의 결혼’은 전4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는 18세기 초. 스페인 세빌리아의 부근 아구아스 프레스카스 마을에 있는 알마비바 백작의 성이 무대이다. ‘피가로의 결혼’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단 하루만에 일어난 별별 우여곡절과 소동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그래서 보마르셰의 원작에는 La folle Journee(The Day of Madness: 하루만의 대소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신성로마제국황제(1765-1790)이며 오스트리아 대공(1780-1790)인 요셉2세 ‘피가로의 결혼’은 로렌조 다 폰테와 모차르트가 합작한 세편의 유명 오페라중 첫 번째이다. 두 사람이 나중에 합작한 오페라로는 '돈 조반니'와 ‘여자는 다 그래’가 있다. ‘피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가 우연히 보마르셰의 희곡 책을 구하여 다 폰테에게 주고 오페라 대본을 만들어 줄것을 부탁함으로서 탄생했다. 다 폰테는 한달 반만에 대본을 완성하였다. 다 폰테는 프랑스어로 된 스토리를 이탈리아어의 시로 번역했다. 또한 내용에 있어서도 조금이라도 정치적 냄새가 나서 지체 높으신 분들의 감정을 건드릴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이를 모두 삭제했다. 그 대본을 모차르트가 음악을 붙이기 전에 요셉2세 황제가 오페라로 만들어도 좋다고 승인했던 것이다. 합스부르크 왕실에 전속되어 있었던 ‘제국이탈리아오페라단’은 모차르트에게 작곡료로 450 플로린스(florins)를 지불하였다.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 궁정음악가로 일할때의 월급보다 세배나 많은 액수였다. 대본을 쓴 다 폰테는 200 플로린스를 받았다. 왕실에서 대본을 승인했고 작곡료와 대본료를 지불했으며 극장을 주선해 주었으므로 사실상 ‘피가로의 결혼’은 요셉 황제의 소유였다. 요셉황제는 모차르트의 이 훌륭한 오페라를 잘 보관하였다가 후대에게 넘겨줄 책임이 있었다. 당시 요셉 황제는 비엔나 중심가에 있는 호프부르크(Hofburg)궁정에 연결하여 새로 궁정극장(Brugtheater)를 마련하고 이 극장에서 공연할 적당한 오페라를 찾고 있었다. 모차르트로서는 ‘피가로의 결혼’이 요셉 황제의 궁정극장에서 공연되지 못할것 같아 노심초사했다. 심지어 모차르트는 만일 ‘피가로의 결혼’이 통과하지 못한다면 당장에 악보를 불쏘시개로 쓰겠다고 까지 말했다.
'피가로의 결혼'이 초연된 비엔나 호프부르크 앞의 궁정극장(부르크데아터).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피가로의 결혼’은 1786년 5월 1일 비엔나의 궁정극장(호프부르크 정문 옆의 구건물)에서 초연되었다. 첫회 공연과 2회 공연은 모차르트가 직접 지휘했다. 키보드를 연주하면서 지휘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였다. ‘피가로의 결혼’은 초연이후 9회의 연속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이 기록은 나중에 ‘마적’이 세운 기록에 비하면 약소한 것이었다. ‘마적’은 첫 공연에서 한달 내내 이틀에 한번씩 공연되었다. 초연에서는 바리톤 스테파노 만디니(Stefano Mandini)가 백작을 맡았으며 백작부인(로지나)은 리릭 소프라노 루이자 라스키(Luisa Laschi)가, 수잔나는 라이트-리릭 소프라노인 영국 출신의 앤 스토레이스(Ann Storace)가, 타이틀 롤인 피가로는 베이스-바리톤인 프란체스코 베누치(Francesco Benucci)가 맡았다. 헝가리의 유명한 시인인 프란츠 카진치(Franz Kazinczy)는 궁정극장에서의 ‘피가로의 결혼’을 보고 수잔나를 맡았던 앤 스토레이스에 대하여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낸시(앤 스토레이스의 애칭)는 음성도 아름답지만 모습은 더 아름답다. 매혹적인 눈과 귀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수잔나의 이미지를 창조한 앤 스토레이스 ‘피가로의 결혼’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던 요셉 황제는 비엔나 근교 락센부르크(Laxenburg)에 있는 궁전에서 특별 공연토록 요청했다. 초연으로부터 한달 후인 6월에 공연되었다. 요셉황제는 즐거워 했지만 귀족들은 씁쓸해 했다. 하지만 모두들 음악만큼은 훌륭하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하이든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본후 이 오페라의 아리아들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꿈에 여러번 나타났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1790년 여름 하이든은 아이젠슈타트의 에스터하지(Eszterhaza) 궁전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직접 지휘하여 공연하려 했으나 후원자인 니콜라우스 에스터하지 공작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이루지 못했다. 1786년에 초연을 가진 ‘피가로의 결혼’은 그후 3년동안이나 잠잠히 있다가 1789년에 비엔나에서 다시 공연되었다. 모차르트가 몇군데를 수정했다. 예를 들면 수잔나가 부르는 두개의 아리아를 새로운 것으로 모두 바꾼 것이었다. 새로 수잔나 역할을 맡은 소프라노 아드리아나 페라레제 델 베네(Adriana Ferrarese del Bene)의 음성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비엔나 근교 락센부르크의 프란첸부르크(Franzenburg) 궁전에서도 '피가로의 결혼'이 공연되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비엔나에서는 초연이후 거의 3년동안 잠잠했었지만 체코의 프라하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비엔나에서 초연이 있었던 1786년 12월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탈리아의 파스쿠알레 본디니(Pasquale Bondini) 오페라단이 공연했다. 대단한 성공이었다. 비엔나와는 딴판이었다. 관객들은 계속 브라보와 앙코르를 외쳐댔다. 프라하의 대표적인 신문인 오버포스트암트차이퉁(Oberpostamtszeitung)은 ‘피가로의 결혼’을 오페라 역사상 최대의 ‘걸작’이라고 선언했으며 그 어떤 오페라도 프라하에서 이만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프라하의 음악가들은 여비를 모아 모차르트에게 보내고 제발 한번 찾아와 달라고 간청했다. 모차르트는 이듬해인 1787년 1월 17일 프라하를 방문하여 ‘피가로의 결혼’의 22번째 공연을 직접 지휘했다.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했던 이탈리아 오페라단과 프라하의 음악애호가들은 모차르트에게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돈 조반니'가 탄생하였고 그해(1787년) 10월 프라하에서 초연되었다. 프라하 국립극장의 무대 커튼과 오디토리엄 제1막은 피가로(Figaro: Bar 또는 Bass-Bar)와 수잔나(Susanna: Sop)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바로 그날의 아침이다. 피가로가 신혼방으로 사용할 방에서 침대는 어느 쪽에 놓으면 좋은지 자로 방의 길이를 재고 있다. 피가로와 수잔나가 행복에 겨워 부르는 듀엣이 Cinque, dieci, venti, trenta(다섯, 열, 스물, 서른...)이다. 벽에 걸려있는 거울 앞에는 오늘 밤의 결혼식에서 수잔나가 쓸 예쁜 신부모자가 있다. 현대적 연출에서는 모자 대신 부케를 놓아두기도 한다. 피가로는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와의 결혼을 성사시킨 공적을 높이 인정받아 거리의 이발사를 청산하고 백작의 성안에서 기거하며 백작의 전속 이발사 겸 시종으로 근무하고 있다. 피가로는 라틴 백성의 전형이다. 감성이 풍부하며 아울러 재빠른 위트 때문에 무척 재미있지만 거칠고 뻔뻔스러운 면도 있는 인물이다. 수잔나는 백작부인이 된 로지나의 하녀이다. 수잔나는 발랄하고 사랑스러우며 재치있는 아가씨이다. 수잔나는 충성스럽다. 백작부인을 위해 헌신하며 자기와 결혼할 피가로에게 성실한 여인이다. 수잔나는 이 오페라에서 조연에 불과하지만 모차르트는 수잔나에게 주연 이상의 비중을 두었다. 아마 모차르트가 그리고 있던 이상적인 여성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차르트는 그런 수잔나에 대하여 다른 오페라에서 볼수 없는 기막힌 아리아를 마련해 주었다. 제4막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Deh vieni non tardar(아, 왜 이렇게 늦는담)이라는 아리아이다. 이 아리아는 피가로에 대한 수잔나의 사랑을 표현한 곡이다. 수잔나의 명랑하고 장난기있는 성격과 로맨틱한 성품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곡이다. 케루비노가 백작부인을 사모하는 노래를 만들어 수잔나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부르고 있다. 한편, 결혼 3년째 접어드는 백작은 권태기에 바람둥이로서의 천성까지 겹쳐서 싱싱하고 맵시있는 수잔나에게 은근히 마음을 두고 있다. 중세의 봉건영주에게는 이른바 초야권(初夜權: droit de seigneur)이라는 것 까지 있었다. 자기의 하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영주가 신랑보다 먼저 하녀와 첫날밤을 보낼수 있는 권리이다. 영주는 하녀의 소유주이기 때문에 소유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이상한 관습이다. 알마비바 백작은 로지나와 결혼할 때 앞으로는 절대로 누구에게나 초야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다가 수잔나가 결혼하게 되니 은근히 초야권을 들먹이며 수잔나를 품안에 안고 하룻밤을 지내고 싶은 생각이 났다. 백작의 엉큼한 속셈을 알아차린 피가로는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보시라. 내가 가만히 있을줄 아는가?’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Se vuol ballare, signor contino(백작 나리, 춤을 추시겠다면...기타 반주를 해 드리지요)이다. 피가로는 ‘백작이면 다냐? 아름답고 착한 부인(로지나)은 멀리하면서 왜 우리 수잔나에게 눈독이란 말인가? 여차직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고 다짐한다. 결혼준비로 들떠있는 수잔나와 피가로 피가로와 수잔나가 나가자 바르톨로(Bartolo: Bass)가 마르첼리나(MS)와 함께 나타난다. 마르첼리나는 백작 저택의 오래된 가정부이다. 오래전 피가로는 마르첼리나로부터 돈을 빌리면서 만일 갚지 못한다면 마르첼리나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한 일이 있다. 마르첼리나는 피가로가 아직까지 돈을 갚지 않았으며 더구나 수잔나와 곧 결혼한다고 하므로 이 기회에 예전의 약속을 이행하라고 따질 생각이다. 그래서 바르톨로를 이 문제의 자문원으로 삼아 함께 나타난 것이다. 바르톨로로 말하자면 자기가 은근히 마음에 두고 결혼하고 싶어 했던 로지나를 백작과 결혼토록 간계를 꾸민 장본인이 피가로라고 믿어서 진작부터 미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마르첼리나가 피가로를 궁지에 몰아넣은 구실을 갖게 되자 ‘옳다구나!’라며 속으로 쾌재를 외치고 있었다. 마르첼리나를 돕기로 약속한 바르톨로가 변호사의 흉내를 내며 코믹하게 부르는 아리아 La vendetta(복수를!)가 재미있다. 바르톨로가 나가고 수잔나가 들어온다. 수잔나와 마르첼리나는 겉으로는 서로 대단히 예의바르게 인사를 나누지만 실은 가시가 팍팍 돋힌 대화를 나눈다. 두 사람의 듀엣이 Via, resti servita, madama brillante(먼저 가시지요. 똑똑하고 훌륭하신 마담}이다. 두 사람의 공손한 언쟁은 수잔나의 승리로 끝난다. 아무렴 젊고 발랄한 수잔나에게 중년의 마르첼리나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백작의 엉큼한 간계에 걱정이 앞서는 피가로를 수잔나가 안심시키고 있다. 이렇게 상황이 돌아가는 중에 백작의 시종역할을 하는 케루비노(Cherubino: MS. 원래는 Sop)가 등장한다. 케루비노는 수잔나가 백작부인의 방에 있는 것을 보고 만나러 나타난다. 13세의 미소년인 케루비노는 귀족 집 자제로서 알마비바 백작의 저택에 와서 귀족 집안의 이모저모를 눈치껏 배우고 있는 일종의 견습생이다. 케루비노는 남들보다 조숙해서인지 예쁜 여자들에게 유난히 관심이 많은 맹랑한 청소년이다. 케루비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에 나오는 옥타비안을 연상케 해준다. 젊은 옥타비안 백작은 중년의 공작부인(마샬린)이 적당히 즐기기 위해 가까이 하고 있는 임시애인이다. 당시 유럽의 귀족 사회에서는 남자는 남자대로 젊은 여인과 공공연히 놀아나며 마님은 마님대로 미소년들과 그렇고 그런 사이를 유지하는 것이 하나의 양해된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더구나 18세기 초만 하더라도 영주들이 이른바 초야권이라는 말도 안되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던가? 그런 시대였으므로 알마비바 백작이 수잔나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든지, 또는 케루비노가 백작부인에게 연애감정을 가지고 있다든지 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케루비노는 자기의 갓마더(代母: Godmother)와 같은 백작부인에 대하여 대단한 사모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케루비노는 얼마전 백작 저택에서 정원사로 일하고 있는 안토니오(Antonio: Bass: 수잔나의 삼촌)의 딸로서 귀엽게 생긴 바르바리나(Barbarina: Sop 또는 MS)를 유혹하여 불장난을 저지른 일이 있다. 실은 백작도 예쁜 바르바리나에를 데리고 놀고 싶어서 바르바리나의 방에 들어갔다가 침대 시트를 뒤집어쓰고 숨어 있는 케루비노를 발견한 일이 있다. 백작은 당장 케루비노를 성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엄중 경고하였다. 케루비노가 수잔나를 만나러 온 것은 수잔나가 백작부인에게 잘 부탁하여 백작의 노발대발을 덜어 달가고 하기 위해서이다. 오페라에서 케루비노는 ‘바지 역할’이다. 여자가 남자의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케루비노(스테파니 마샬)를 여자로 화장시키는 수잔나와 백작부인 이 오페라에서 케루비노는 자유분방함을 찾아 새장을 벗어나 푸른 하늘로 파닥파닥 날아가는 한 마리의 비둘기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인습으로부터 탈피하여 자유를 추구하면서 연애에 탐닉하고 있는 케루비노! 그건 바로 모차르트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모차르트는 케루비노에게 불후의 아리아 두 곡을 선사한다. 그 하나는 케루비노가 백작부인에 대한 연모의 심정을 발랄하게 표현한 Non so oiu cosa son(내가 누구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합니다)로서 이것은 모차르트가 온 여성에게 들려주는 여성찬미의 노래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아리아는 제2막에 나오는 Voi, che sapete che cosa e amor(사랑이 무엇인지 아시잖아요. 내 마음속에도 있는지 한번 보아 주셔요)이다. 케루비노가 백작부인을 위해 작곡했다는 아리아이다. 케루비노가 수잔나와 노닥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백작이 수잔나의 방에 들어선다. 케루비노는 얼른 의자 뒤에 숨는다. 수잔나가 혼자 있는 것을 본 백작은 수잔나에게 접근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초야권을 주장하겠지만 그보다도 자발적으로 주인인 자기를 위해 몸으로 봉사해 달라고 하면서 은근히 압력을 넣는다. 심지어 백작은 수잔나에게 필요하다면 돈이라도 주겠다며 은밀한 데이트를 요청한다. 마침 그때 음악교사인 바짝 마른 바질리오(Basilio: Ten)가 나타난다. 백작은 남들이 자기와 하녀 수잔나가 단 둘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무래도 어색해서 역시 얼른 의자 뒤에 숨는다. 바로 그 의자 뒤에 숨어 있던 케루비노는 백작이 몸을 숨기기 위해 의자 뒤로 오기 직전에 재빨리 의자 안으로 피한다. 수잔나가 의자 속에 숨어 있는 케루비노를 드레스로 가려준다. 이제 백작은 의자 뒤에 숨어 있고 케루비노는 드레스가 덮인 의자 안에 숨어 있다. 군인 복장을 한 케루비노(D. 몬타규)를 피가로(만프레드 헴)와 수잔나(마리 맥로린)가 만족해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음악교사 바질리오는 수잔나에게 ‘글쎄 그 놈의 케루비노 말이야! 자기가 뭔데 백작부인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아니 좋아하는 정도가 지나쳐 아예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 이 소리를 들은 의자 뒤의 백작은 너무나 황당하고 화가 치밀어 자기도 모르게 뛰쳐나와 바질리오와 수잔나에게 ‘그래! 요놈의 케루비노! 지난번에 바르바리나의 침대 속에 들어 있은 것을 내가 침대보를 이렇게 들쳐서 찾아냈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라면서 의자를 덮어 놓은 드레스를 불쑥 제친다. 바르바라의 방에서 케루비노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드레스로 덮은 의자 안에 숨어 있던 케루비노! 꼼짝 없이 또 다시 백작에게 발각 된다. 독안데 든 쥐와 같은 케루비노! 이제 불벼락을 맞을 순서만 기다리고 있다. 천우신조? 마침 백작 농토의 소작인들이 백작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수잔나의 방으로 들이 닥치는 바람에 케루비노는 당장의 불벼락을 피하게 된다. 소작인들을 백작에게 보낸 것은 피가로의 계략이다. 소작인들은 자비롭고 관대하시며 비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백작께서 어서 피가로와 수잔나의 결혼식을 추진하여 줄것을 간청한다. 피가로는 백작이 수잔나에 대하여 초야권을 주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수를 쳐서 백작을 양심적인 인물로 만들어 엉뚱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계획한 것이다. 백작은 수잔나와 밤중에 만나자는 신호를 보내고자 했으나 피가로 및 소작인들이 있기 때문에 그마저도 하지 못하고 얼버무린다. 한편, 백작은 자기가 수잔나에게 했던 말들을 케루비노가 숨어서 들었음이 틀림없으므로 약간 걱정이 되어 케루비노를 공공연히 벌주지는 못하고 대신 세빌리아로 가서 군대에 복무토록 명령한다. 그나마 다행한 조치였다. 군대로 가게 되어 겁에 질려 있는 케루비노에게 피가로가 Non piu andrai(더 이상 날지 못하리!)라는 유명한 아리아를 부르며 군대 생활에 대한 이것저것을 충고해 준다. 피가로는 공연히 수잔나의 치마폭을 맴돌고 있는 케루비노가 아예 군대로 가게 된 것이 오히려 기쁜 입장이다. 피가로-수잔나, 바르톨로-마르첼리나의 앙상블. 알고보니 이들은 피가로의 아버지와 어머니.
제2막. 백작부인의 방. 남편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백작부인은 남편이 종전처럼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Porgi amor, qualche ristoro(사랑을 주소서, 위안을 주소서)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모차르트 특유의 우아한 아름다움이 넘쳐 있는 아리아이다. 수잔나가 백작부인에게 시종을 들기 위해 들어온다. 수잔나는 백작부인에게 백작이 자기를 유혹하려 했고 심지어 돈을 주겠다는 얘기까지 했다고 말해준다. 백작부인과 수잔나 사이에는 아무런 비밀이 없다. 같은 여자이기 때문이다. 이어 피가로가 등장한다. 피가로는 백작이 전처럼 백작부인만을 사랑하며 수잔나에 대하여는 더 이상 유혹의 손길을 뻗치지 못하도록 하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고 말한다. 케루비노를 수잔나인 것처럼 변장시켜 밤중에 백작과 만나게 하고 그 장면을 백작부인에게 들키도록 하여 망신주자는 약간 장난스러운 아이디어이다. 이와 관련해서 피가로는 이미 바질리오를 통해 백작에게 편지를 보내어 백작부인이 오늘밤 정원에서 어떤 사람과 몰래 랑데부(데이트)한다는 내용을 알린바 있다. 백작부인과 수잔나는 피가로의 계획에 적극 찬성키로 한다. 수잔나가 케루비노를 데려 온다. 수잔나는 방문을 단단히 잠근다. 백작이 무심코 들어와서 케루비노를 발견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수잔나는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하여서 케루비노에게 백작부인을 위해 노래를 지었다고 하니 어서 불러 보라고 독촉한다. 케루비노는 사모하는 백작부인을 가까이서 만나게 되자 가슴이 뛰는 모양이다. 케루비노는 주저주저하다가 백작부인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Voi, che sapete che cosa e amor(사랑이 무엇인지 아시잖아요. 내 마음속에도 있는지 한번 보아 주셔요)라는 아리아이다. 미소년 케루비노(스테파니 마샬)가 외로운 백작부인(수잰 그라튼)에게 은근히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백작부인은 미소년 케루비노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듣고 마음이 싱숭한 것 같다. 눈치빠른 수잔나가 일핏 보니 두 사람을 가만히 놓아두면 점점 더 진전할 것 같다. 수잔나가 얼른 중재에 나선다. 수잔나는 원래 계획대로 케루비노를 여장시킨다. 이때 부르는 수잔나의 아리아가 Venite inginocchiatevi(여기와서 내 앞에 무릎 꿇어 보아요)이다. 이때 백작부인은 무심코 케루비노를 군대로 파견한다는 백작의 명령서를 본다. 그러나 명령서에는 백작의 인장이 찍혀 있지 않았다. 수잔나가 케루비노에게 입힐 여자 옷을 더 가지러 자기 방에 잠시 나간다. 백작부인의 방에는 백작부인과 케루비노뿐이다. 로맨틱한 분위기가 점점 피어나려는 순간이다. 그 때 느닷없이 백작이 도어를 두드린다. 당황한 백작부인은 케루비노를 얼른 옷장 안에 숨도록 한다. 백작은 피가로가 바질리오를 통해 보낸 메모를 보고 화가 나서 백작부인을 찾아온 것이다. 백작부인이 밤중에 정원에서 어떤 남자와 랑데부할 것임을 알려주는 메모였다. 방에 들어온 백작은 옷장 속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듣는다. 백작이 옷장을 열려고 하지만 단단히 닫혀 있어서 열리지 않는다. 놀란 백작부인은 얼떨결에 옷장 안에는 수잔나가 결혼 드레스 때문에 들어 있다고 하며 부끄러워 할테니 열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마침 케루비노에게 입힐 옷가지를 들고 백작부인의 방에 들어서던 수잔나는 백작의 모습이 보이자 얼른 몸을 숨기고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코자한다. 그리고는 자기가 모습을 보이면 백작부인이 무척 난처해 질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화가 치민 백작은 옷장을 열수 있는 도구를 가지러 잠시 나간다. 단, 백작부인을 혼자 있도록 하면 인되므로 백작부인을 데리고 나간다. 백작과 백작부인이 방에서 나가자 몰래 숨어 있던 수잔나가 얼른 나타나 옷장 안에서 죽을 맛으로 숨어 있던 케루비노를 나오도록 한다. 죽다가 살아난 케루비노는 앞뒤 생각없이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친다. 창문 아래에는 정원사가 잘 가꾸어 놓은 화분들이 있다. 화분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튼 케루비노는 위기를 넘긴다. 수잔나가 케루비노 대신에 옷장 안으로 들어가 숨는다. 백작과 백작부인이 돌아온다. 듀엣 Aprite, presto, aprite(문을 열어라, 빨리!)이 재미있다. 백작이 옷장안에 다른 남자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옷장문을 열고자 한다. 실은 수잔나! 방에 들어온 백작은 망치 같은 것으로 옷장 문을 부수어 버릴 기세이다. 마침내 백작부인은 옷장 안에 케루비노가 들어 있다고 실토한다. 화가 치민 백작이 칼을 뽑아 들며 부정한 백작부인을 죽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옷장 문을 열고보니 원래 백작부인이 말한대로 수잔나가 있지 않은가? 사태가 어떻게 돌변했는지 짐작한 백작부인은 백작에게 ‘당신이 하도 의심하니까 일부러 케루비노가 들어 있다고 테스트 해본 것이예요!’라면서 이번에는 백작에게 당당한 시선을 보낸다. 지나친 질투 때문에 부끄럽게 된 백작은 백작부인에게 용서를 빈다. 그러면서 백작은 바질리오를 통해 받은 편지를 백작부인에게 보여주며 도대체 누가 이 편지를 보냈는지 알아내어 전후사정을 밝히겠다고 말한다. 수잔나와 백작부인이 보니 피가로가 보낸 편지였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잠시후 아무것도 모르는 피가로가 등장한다. 피가로는 날이 저물어 가니 어서 결혼식 준비를 서둘러 달라고 말하기 위해 온 것이다. 백작이 피가로에게 바질리오에게서 받은 이 편지를 누가 쓴 것이냐고 추궁한다. 피가로가 이리저리 대답을 회피하고 있는데 마침 정원사인 안토니오가 깨어진 화분을 들고 들어선다. 이날도 술을 마셨는지 횡설수설하는 안토니오는 누가 이 방의 창문에서 뛰어내려 아래에 있는 화분들이 깨졌다고 하며 투덜거린다. 그러면서 그 녀석은 뛰어 내리다가 다리를 다쳤을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인다. 이어 안토니오는 화단에 뛰어내린 그 녀석이 종이 한 장을 떨어트리고 갔다고 하면서 종이를 내 보인다. 케루비노가 가지고 있던 군대 발령장이다.
피가로와 케루비노. 이제는 더 이상 날지 못한다고 케루비노에게 경고하는 피가로.
수잔나와 백작부인은 피가로에게 슬며시 다가가서 저 편지는 케루비노가 가지고 있던 것인데 백작의 인장이 찍혀 있지 않으며 등등의 정보를 속삭여 준다. 눈치 빠른 피가로는 백작에게 그 편지로 말씀드리자면 케루비노의 발령장인데 백작의 인장이 찍히지 않아 케루비노가 백작의 인장을 받아 달라고 자기에게 맡긴 것이라고 둘러댄다. 백작은 여러 가지로 상황이 복잡하므로 피가로의 설명을 그런대로 믿는다. 이제 가정부인 마르첼리나, 마르첼리나의 법률 자문을 맡은 의사 비르톨로, 그리고 음악교사인 바질리오가 들어온다. 마르첼리나는 백작에게 피가로가 빌린 돈을 갚지 않았으므로 계약서에 적혀 있는대로 피가로와 결혼하게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다. 백작은 이들의 나타남을 속으로 무척 기뻐한다. 백작은 마르첼리나의 주장을 조사할 필요가 있으므로 피가로와 수잔나의 결혼식을 당분간 연기한다고 선포한다. 제2막은 복잡한 7중창으로 막을 내린다. 백작, 백작부인, 수잔나, 피가로, 마르첼리나, 바르톨로, 바질리오의 7중창이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7중창이다. 7중창의 마지막은 걱정에 쌓인 백작부인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오페라에서 MS(메조소프라노)의 역할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케루비노는 메조소프라노이지만 원래는 소프라노의 배역이다. 모차르트는 나이 많은 가정부 마르첼리나까지 소프라노가 맡도록 했다. 오늘날에는 케루비노와 마르첼리나를 의례 메조소프라노가 맡지만 초창기에는 모두 소프라노가 맡도록 한 것은 참으로 모차르트다운 발상이 아닐수 없었다. 피가로-수잔나, 그리고 바르톨로와 마르첼리나 모두 행복. 이산가족 상봉.
제3막. 무대는 결혼식 홀이다. 백작은 지금까지 일어난 소동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가? 수잔나를 손아귀에 잡으려고 하면 어느틈에 수잔나는 요리조리 빠져나가고....잘 모르겠다. 아무튼 수잔나는 백작의 집요한 데이트 신청에 결국 응하겠다고 한다. 하녀로서 지체 높은 백작의 요청을 자꾸만 거절하면 또 무슨 피해를 볼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수잔나로서는 까지것 백작의 소원 한번 들어주고 백작으로부터 돈을 빌리려는 속셈도 있다. 피가로가 마르첼리나로부터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여 궁지에 몰려 있므므로 백작으로부터 돈을 받아 갚으려는 것이다. 한편, 백작부인은 오늘 밤에 수잔나가 백작을 만나는 대신 자기가 직접 수잔나로 변장하여 백작을 만나기로 결심한다. 원래는 여장 케루비노를 백작과 만나도록 할 계획이었으나 촐락둥이 케루비노가 창문에서 뛰어 내리다가 다리를 다쳤고 더구나 백작이 케루비노에 대하여 계속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으므로 케루비노를 백작과의 데이트를 위해 현장에 내보내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성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작부인이 수잔나로 변장하여 직접 모험을 하기로 한 것이다. 백작부인과 수잔나가 부르는 듀엣이 Crudel, perche finora(잔인한 여자여. 어찌하여 지금까지 나를 번민케 하는가)이다. 백작부인의 방에서 나온 수잔나는 곧바로 피가로를 만나 이번 일은 우리 팀의 승리나 다름없다고 살며시 말해준다. 이 소리를 백작이 엿듣는다. 모두 작당하여 자기를 속이려고 하는 것을 깨달은 백작은 화기 치밀어 Hai gia vinta la causa(이미 이겼다고?)라는 아리아를 부르며 돈을 갚지 못한 피가로를 억지로라도 마르첼리나와 결혼시킬 결심을 한다. 백작부인으로 변장한 수잔나, 수잔나로 변장한 백작부인 잠시후 피가로에 대한 재판이 진행된다. 재판관은 쿠르지오(Curzio: Ten)이다. 백작은 ‘요놈의 피가로! 어디 고생좀 해봐라! 그리고 아하, 그 팔딱팔딱하는 수잔나는 나의 품에!’라는 생각으로 재판을 시작토록 한다. 피가로는 그가 원래는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아주 어릴 때에 유괴되었으며 아직도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처음으로 그의 신분을 밝힌다. 얘기가 자꾸자꾸 진행되는중 피가로의 어머니가 바로 마르첼리나라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아버지는 의사 바르톨로이고...실은 마르첼리나와 바르톨로가 젊었을 때 서로 눈이 맞아 피가로를 낳게 되었지만 산적들에게 아기를 납치당한후 이제까지 생사조차 모르고 지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부모랍시고 항상 마음 아파하던 마르첼리나와 바르톨로는 정말 우연하게 아들을 찾게 되어 희희낙락! 잃었던 아들은 찾은 마르첼리나는 피가로를 얼싸 안고 기뻐서 난리도 아니다. 마침 수잔나가 들어서다가 이 모습을 본다. 수잔나는 피가로가 마르첼리나로부터 빌렸다는 돈을 갚을수 있다고 말하려고 찾아 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마르첼리나가 피가로를 얼싸 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아, 이를 어쩌나! 재판이 벌써 끝났나 보네! 그래서 계약서에 있는 대로 마르첼리나가 피가로와 결혼하게 되어 저렇게 기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믿고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잠시후 모든 상황을 파악한 수잔나 역시 기뻐서 어찌할줄 모른다. 바르톨로는 마르첼리나가 옛날 자기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여인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고 별로 내기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당히 기쁜 마음으로 오늘밤 피가로-수잔나 커플과 함께 마르첼리나와 합동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한다. 마르첼리나는 아들을 찾았으며 이와 함께 의사 선생님인 바르톨로와 정식으로 결혼하게 되어 좋고, 바르톨로는 옛날 애인이었던 마르첼리나와 결혼하게 되어 좋고, 피가로는 마르첼리나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되어 좋고, 생부생모가 누구인지 알게 되어 좋고, 수잔나는 피가로가 마르첼리나와 결혼하지 않게 되어 좋과, 백작부인은 오늘 밤에 백작을 골탕먹일 생각으로 기분이 좋고, 백작은 오늘 밤에 수잔나를 품에 안을 생각을 해서 즐겁고....모두들 기쁘고 즐겁다. 이때 부르는 화려한 6중창이 Riconsosci in questo amplesso una madre(포옹으로 어머니를 인정하며)이다. 재판결과, 피가로가 마르첼리나의 아들인 것이 밝혀지고... 모두들 나가고 백작부인만이 홀로 남아 있다. 백작부인은 지난날의 행복을 잃어버린 것 같이 기분이 착잡하다. 백작부인은 백작의 마음이 자기로부터 멀어졌다고 해도 자기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므로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독백한다. 이 때 부르는 백작부인의 아리아가 저 유명한 Dove sono i bei momenti(어디로 갔는가? 아름다운 순간들은: 그리운 시절은 가고)이다. 수잔나가 들어와 백작부인에게 다시한번 오늘 밤의 계획에 대하여 상황을 설명한다. 두 사람은 백작에게 오늘 밤 정원의 소나무 아래에서 만나자는 내용의 편지를 쓴다. 백작부인이 쓰면 필체를 알아 볼수 있기 때문에 백작부인이 부르는 대로 수잔나가 받아쓴다. 백작부인이 ‘산들바람’(Zephyr)이라고 부르면 수잔나가 ‘산들바람’이라고 확인하며 편지를 쓰는 장면이다. 두 사람의 듀엣이 너무나 아름다운 Sull'aria? Che soave zeffiretto(준비되었는가? 얼마나 부드러운 산들바람인가: 술랄리아)이다. 영화 ‘쇼생크의 탈출’을 보면 주인공이 형무소내의 방송실을 점거한후 스피커를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방송하는 장면이 있다. 푸른 하늘을 향해 끝없이 날아가는 비둘기를 연상케 하는 곡이다. 바로 ‘술랄리아’이다. 백작부인과 수잔나의 '편지의 2중창'(일명 술랄리아) 장면 마을의 젊은이들이 등장하여 백작부인을 위해 세레나데 합창을 부른다. 그 중에는 아가씨로 변장한 케루비노도 들어 있다. 정원사인 안토니오와 함께 나타난 백작이 사람들 틈에서 케루비노를 발견한다. 화가 치밀어 있는 백작의 마음을 정원사 안토니오의 딸인 바르바리나가 진정시킨다. 바르바리나는 백작에게 ‘백작님, 지난번에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제가 백작님을 사랑한다면 뭐든지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지요? 이제 부탁이 있답니다. 들어주셔야 해요!’라고 말한다. 백작이 어린 바르바리나까지 유혹하면서 그런 약속을 했던 모양이다. 백작은 바르바리나의 말에 꼼짝 못한다. 바르바리나의 청탁은 케루비노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완전 당황한 백작!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어쩌랴! 케루비노와 바르바리나의 결혼을 승낙하고 케루비노에게 세빌리아의 군대에 가지 말고 이곳에 남아 있으라고 말한다. 제3막은 더블 웨딩으로 막을 내린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중 수잔나가 백작에게 살짝 편지를 전한다. 오늘 밤에 정원의 소나무 아래에서 만나자는 것이며 증표로서 이 편지를 봉한 핀을 돌려보내 달라는 편지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피가로는 ‘또 어떤 뚜쟁이가 백작에게 아가씨를 소개하는 편지구나!’라고 짐작하여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린다. 아무튼 새로 결혼한 두 커블은 즐겁기가 한량없다. 수잔나와 피가로의 결혼식(현대적 연출) 제4막. 백작 저택의 정원이 무대이다. 좀 지루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 제4막의 ‘피가로의 결혼’의 하이라이트이다. 사람들은 3막으로 끝나도 아무 문제없는데 왜 4막까지 가느냐고 말하지만 백작부인의 편지를 받은 백작이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백작은 편지의 지시내용대로 편지를 봉했던 핀을 바르바리나를 통하여 수잔나에게 은밀히 돌려보낸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되느라고 바르바리나가 어두운 길을 가다로 핀을 떨어트려 잃어버린다. 모차르트는 바르바리나에게도 아리아를 준비해 주었다. L'ho perduta, me meschina(잃어버렸네, 불쌍한 나)이다. 바르바리나가 어두운 곳에서 무언가 찾고 있는 모습을 피가로와 마르첼리나가 본다. 피가로가 바르바리나에게 도대체 이 어두운 곳에서 무얼 찾느냐고 묻는다. 피가로는 백작이 수잔나에게 돌려보내는 핀이라는 얘기를 듣자 수잔나가 자기 몰래 백작을 만나는 것으로 ‘아, 믿지 못할 여자여!’라면서 그만 질투심에 불타오른다. 피가로는 백작과 수잔나에게 복수할 것을 맹세한다. 마르첼리나가 피가로에게 제발 성급하게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지만 듣지 않는 피가로! 뛰쳐나가는 피가로! 마르첼리나는 이 일을 수잔나에게 미리 얘기해 주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며느리가 아닌가! 수잔나와 백작의 관계를 의심하여 질투하는 피가로 질투심에 넘친 피가로는 바르톨로와 바질리오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고 도와 줄것을 부탁한다. 두 사람은 ‘우리도 명색이 남잔데...’라면서 도울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돕겠다고 하며 자리를 뜬다. 혼자 남은 피가로는 여자들의 변덕을 탓하며 Aprite un po quegli occhi(너의 눈을 똑바로 떠라)라는 노래를 중얼거린다. 피가로까지 퇴장한후 수잔나와 백작부인이 등장한다. 서로 옷을 바꾸어 입었다. 마르첼리나가 나타나 수잔나에게 ‘얘야, 새 아가야! 지금 피가로가 이런저런 기분이니 조심해야겠다’라면서 그간의 상황을 설명해준다. 마르첼리나와 백작부인이 나가고 홀로 남은 수잔나는 피가로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렇게 질투하고 있음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일부러 피가로가 들으라는 듯 Deh, vieni, non tardar(오, 오세요, 늦지 마시고!)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뒤에 숨어서 수잔나의 노래를 들은 피가로는 저 노래가 백작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더욱 질투심에 불탄다. 수잔나를 의심하는 피가로(만프레드 헴) 잠시후 수잔나처럼 옷을 입은 여자가 어두운 밤에 정원으로 두리번거리며 나타난다. 미리 숨어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피가로는 수잔나가 결국 돈 많고 권세 있는 백작의 유혹과 강요에 못이겨 그의 품에 안기려 가는 줄 알고 속에서 불이 난다. 마침 그때 케루비노도 나타난다. 백작부인이 수잔나로 변장한 것을 미리 알고 있는 케루비노는 수잔나(백작부인)에게 다가와 사모한다고 말하고 키스하려 한다. 그러나 케루비노는 바로 그때 백작이 나타나는 바람에 혼비백산하여 사라진다. 수잔나로 변장한 백작부인은 백작이 나타나 포옹하려 하자 요리조리 피하면서 백작의 애를 닳게 만든다. 그런데 주위에서 사람의 기척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저만치에 피가로가 보인다. 백작과 수잔나(백작부인)는 얼른 각자 몸을 피한다. 잠시후 백작부인으로 변장한 진짜 수잔나가 나타난다. 피가로는 ‘옳다. 되었다’라고 생각하고 백작부인(수잔나)에게 달려가 수잔나와 백작이 지금 짝짝꿍이 되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어쩐지 이상하여 백작부인을 자세히 보니 수잔나가 아닌가? 놀란 피가로! 피가로는 일부러 백작부인(수잔나)에게 수잔나가 어쩌고저쩌고 하며 아무렴 수잔나 그 맹꽁이가 백작부인의 그 고귀한 아름다움과 고매한 지성을 따라갈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말을 이어간다. 수잔나는 아직도 피가로가 자기를 백작부인으로 알고 있는데 대하여 은근히 화가 치민다. 아내가 된 자기도 몰라 보다니! 수잔나는 피가로가 자기보다도 백작부인에게 더 잘 보여 출세하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믿는다. 화가 치민 수잔나는 자기도 모르게 피가로의 뺨을 철석 한 대 갈긴다. 결국 서로의 정체를 밝힌 피가로와 수잔나! 전보다 더 행복하다. 정원에서 수잔나로 변장한 자기 부인(백작부인)을 만나 수잔나인줄 알고 사랑을 속삭이는 백작 이때 백작이 나타나자 피가로는 옆에 있는 백작부인(수잔나)을 사랑하고 있다고 일부러 크게 말한다. 이 모습을 본 백작은 분노하여 감히 하인 놈이 상전의 부인을 유혹하고 있다고 소리치고 사람들에게 무장을 하고 피가로 저 놈을 당장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바르톨로, 바질리오, 안토니오 등이 횃불을 들고 나타난다. 백작은 정자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꺼집어낸다. 케루비노, 바르바리나, 마르첼리나, 그리고 백작부인(실은 수잔나)...백작은 피가로와 백작부인(실은 수잔나)을 절대로 용서할수 없다고 말하며 당장이라도 처형할것 처럼 흥분한다. 이때 수잔나로 변장한 진짜 백작부인이 등장하여 본래의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그제서야 백작은 자기가 함정에 걸려 속은 줄을 깨닫는다. 자기가 사랑하느니 어쩌니 하며 얘기했던 상대방이 수잔나가 아니라 자기의 와이프인 백작부인이었던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백작이 할수 있는 일은 백작부인 앞에 무릎을 끓고 용서를 비는 것뿐이었다. 백작의 아리아 Contessa, perdone(부인이시여. 용서하시라)는 이때 부르는 것이다. 백작부인은 조금전 백작이 자기를 수잔나로 알고 속삭이던 것보다 더 부드럽고 상냥하게 남편을 용서한다. 백작부인의 아리아는 Piu docile io sono(저는 더 상냥하답니다)이다. 모두 대만족이다. 마을 사람들이 등장하여 ‘축하, 평화, 용서’를 합창하는 가운데 커튼이 내려진다. 이 오페라를 통해 모차르트가 진정으로 추구코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사랑과 용서였다.
해피엔딩(피가로-수잔나, 바르톨로-마르첼리나, 알마비바-로지나) [한마디]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음악을 다른 작품에 더러 사용했다. ‘피가로의 결혼’의 서곡은 상당부분이 ‘여자는 다 그래’의 서곡으로 사용되었다. 1막 피가로의 아리아인 Non piu andrai(이제는 더 날지 못하리)는 영국 육군 콜드스트림 수비대의 연대행진곡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돈 조반니’에도 사용되었다. 그런가하면 모차르트는 ‘대관식미사’(Kroenungsmesse)의 Agnus Dei(신의 어린양)의 음악을 백작부인의 아리아 Dove sono(아름다운 그 시절은 지나가고)의 음악으로 사용했다. 대관식미사에서는 C장조였으나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F장조로 바꾸었을 뿐이다. 모차르트는 같은 모티브를 그의 초기 바순협주곡에도 사용하였다. 프란츠 리스트는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의 주제에 의한 환상곡’에 두 오페라의 발췌한 주제 음악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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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준극 원문보기 글쓴이: 정준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