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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국동리하(采菊東籬下)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꺾다
采 : 풍채 채(釆/1)
菊 : 국화 국(艹/8)
東 : 동녘 동(木/4)
籬 : 울타리 리(竹/19)
下 : 아래 하(一/2)
春蘭秋菊(춘란추국)이라는 말이 있듯이 국화는 가을꽃이다. 四君子(사군자)의 하나로 동양취미를 대표해 고금의 시인들이 많이 예찬해왔다.
가까이는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徐廷柱/ 서정주)으로, 조선 영조 때의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지내고/ 落木寒天(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가/ 아마도 傲霜孤節(오상고절, 傲는 거만할 오)은 너뿐인가 하노라’(李鼎輔/ 이정보)란 시조로 누구에게나 애송된다.
이 시들만큼 국화를 노래한 한시의 대표 격이 ‘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이 들어있는 陶淵明(도연명)의 ‘飮酒(음주)’란 시다.
국화를 꺾어 멀리 남산을 바라본다는 뜻은 은자의 초연한 심경을 비유하는 말이다.
采는 採와 똑같이 캐다, 꺾다라는 뜻도 있다.
宋(송)나라의 학자 周敦頤(주돈이, 頤는 턱 이)의 ‘愛蓮說(애련설)’에 나오는 대로 晉(진)나라 도연명이 사랑한 국화가 꽃 중의 은일자라 한 것도 이 시 이후다.
부분을 인용해 보자.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결려재인경 이무거마훤, 문군하능이 심원지자편,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 산기일석가 비조상여환/ 사람 사는 곳에 오두막을 지었지만 수레의 떠들썩한 소리 들리지 않네, 어찌 그럴 수 있냐고 그대에게 묻노니 마음이 멀어지면 사는 곳도 절로 외딴 곳이 된다네,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꺾어들고 아득히 저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 산 기운은 해 저물자 더욱 아름답고 날던 새들도 서로 짝지어 돌아오네).’
(廬는 농막집 려)
(喧은 지껄일 훤)
(爾는 너 이)
몸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지만 마음이 속세에 뜻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세상사와 아득히 멀어진 탈속의 심경을 상징적으로 비유하는 유명한 구절이 됐다.
국화가 도연명의 이 시로 한층 그 이름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은일의 이미지로 도리어 진면목이 가려져 불만일 것이라고 사학자이자 언론인인 文一平(문일평)은 ‘花下漫筆(화하만필)’서 지적한다.
▶️ 采(풍채 채/캘 채)는 회의문자로 採(채)의 본자(本字), 彩(채)와 통자(通字)이다. 손톱조(爪=爫; 손톱)部와 木(목)으로 이루어져 나무 싹이나 열매 따위를 '따다'의 뜻이 있다. 采(채)를 영지(領地)의 뜻으로 빌어 쓰게 되어 '따다'의 뜻에는 採(채)를 쓴다. 그래서 采(채)는 ①풍채(風采: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겉모양) ②벼슬 ③무늬 ④나무꾼 ⑤폐백(幣帛) ⑥참나무, 상수리나무(참나뭇과의 낙엽 교목) ⑦주사위(놀이 도구의 하나) ⑧나물(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 이것을 양념하여 무친 음식) ⑨식읍(食邑) ⑩캐다, 뜯다, 채취(採取)하다 ⑪채집하다, 수집(蒐集)하다 ⑫고르다 ⑬채택(採擇)하다, 선택(選擇)하다 ⑭가리다, 분간(分揀)하다 ⑮채색(彩色)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나물을 캠을 채소(采蔬), 채소의 꽃을 채화(采花), 고운 색이나 아름다운 색을 채색(采色), 골라서 캐어 냄을 채취(采取), 많이 캐는 모양이나 여러 가지 일을 채채(采采), 부드럽게 다루어 만든 당나귀 가죽을 채련(采連), 자기의 병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채신(采薪), 여자의 곱고 아름다운 자태를 채자(采姿), 어떤 일을 훌륭하게 해낸 사람이나 그 행위에 대해 칭찬이나 찬양의 뜻으로 큰소리를 지르는 것을 갈채(喝采), 사람의 드러나 보이는 의젓한 겉모양을 풍채(風采), 다섯 가지 빛깔의 채색을 오채(五采), 준수한 풍채나 기품을 준채(俊采), 말이나 글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 또는 그 말이나 글을 현채(絢采), 좋은 비단 옷감을 금채(錦采), 고사리 캐는 노래라는 뜻으로 절의지사의 노래를 이르는 말을 채미가(采薇歌),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를 누르고 임금이 되었을 때에 은나라의 백이와 숙제 형제는 주나라 곡식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으며 지냈는 데 그들이 죽을 적에 읊었다는 노래를 이르는 말을 채미지가(采薇之歌), 풍채와 안색이 일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금방 기뻐했다 금방 성냈다 함을 이르는 말을 채색부정(采色不定) 등에 쓰인다.
▶️ 菊(국화 국)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匊(국)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菊(국)은 풀의 이름으로 ①국화(菊花) ②대국(大菊)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엉거시과의 다년생 풀을 국화(菊花), 국화를 달리 이르는 말을 국군(菊君), 국화가 피는 때라는 뜻으로 음력 9월을 이르는 말을 국신(菊辰), 국화꽃이 피는 가을이라는 뜻으로 음력 9월을 이르는 말을 국추(菊秋), 꽃이 흰 국화를 백국(白菊), 꽃이 노란 국화를 황국(黃菊), 단풍과 국화를 풍국(楓菊), 서리 올 때 핀 국화를 상국(霜菊), 국화를 감상함을 관국(觀菊), 꽃송이가 큰 국화를 대국(大菊), 꽃송이가 작은 국화를 소국(小菊), 먹물로 그린 국화를 묵국(墨菊), 향기 그윽한 국화를 방국(芳菊), 여름에 피는 국화를 하국(夏菊), 가을에 피는 국화를 추국(秋菊), 겨울에 피는 국화를 한국(寒菊), 늦가을까지 남아 있는 국화꽃이나 또는 시들어진 국화를 잔국(殘菊), 핀 지 오래 되어 빛이 날고 시들어 가는 국화꽃을 노국(老菊), 산이나 들에 절로 난 국화들을 일컫는 말을 야국(野菊), 울타리 밑에 핀 국화를 이국(籬菊), 손으로 움킴 또는 펴냄을 읍국(揖菊), 국화는 9월 9일이 절정기이니 십일 날의 국화라는 뜻으로 무엇이나 한창 때가 지나 때늦은 것을 비유하는 말을 십일지국(十日之菊), 봄의 난초와 가을의 국화는 각각 특색이 있어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음을 춘란추국(春蘭秋菊) 등에 쓰인다.
▶️ 東(동녘 동)은 ❶상형문자로 东(동)은 간자(簡字)이다. 東(동)의 옛 모양은 전대에 물건을 채워 아래 위를 묶은 모양인데, 나중에 방향의 東(동)으로 삼은 것은 해가 떠오르는 쪽의 방향이 동이므로 같은 음(音)의 말을 빈 것이다. 옛 사람은 東(동)은 動(동; 움직이다)과 같은 음(音)이며 動(동)은 봄에 만물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春(춘; 봄)은 동녘과 관계가 깊다고 결부시켰던 것이다. ❷상형문자로 東자는 ‘동쪽’이나 ‘동녘’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東자는 木(나무 목)자와 日(날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해(日)가 떠오르며 나무(木)에 걸린 모습으로 해석하곤 했었다. 그러나 갑골문이 발견된 이후에는 東자가 보따리를 꽁꽁 묶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東자의 본래 의미는 ‘묶다’나 ‘물건’이었다. 그러나 후에 방향을 나타내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동쪽’이나 ‘동녘’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다만 東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여전히 보따리와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보따리에는 곡식의 씨앗이 가득 들어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니 東자가 쓰인 重(무거울 중)자나 種(씨 종)자, 動(움직일 동)자, 量(헤아릴 량)자, 衝(찌를 충)자는 모두 곡식이 든 보따리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東(동)은 (1)동쪽 (2)동가(東家)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동녘 ②동쪽 ③오른쪽 ④주인(主人) ⑤동쪽으로 가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서녘 서(西)이다. 용례로는 동쪽 방면을 동편(東便), 동쪽을 향함을 동향(東向), 동쪽의 땅을 동토(東土), 동쪽 지방을 동방(東方), 동쪽의 바다를 동해(東海), 어떤 지역의 동쪽 부분을 동부(東部), 동쪽으로 옮김을 동천(東遷), 동쪽으로 난 창을 동창(東窓),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동풍(東風), 동쪽에 있는 이웃을 동가(東家), 동쪽을 향함을 동향(東向), 동쪽에서 옴을 동래(東來), 동쪽 마을을 동촌(東村), 동쪽의 땅을 동토(東土), 동쪽에 있는 나라를 동방(東邦), 봄철에 농사를 지음 또는 그 농사를 동작(東作), 동쪽 방면이나 동쪽 편을 동편(東便), 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집에서 잔다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동쪽을 묻는 데 서쪽을 대답한다는 동문서답(東問西答), 동쪽으로 뛰고 서쪽으로 뛴다는 동분서주(東奔西走), 동쪽과 서쪽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동서불변(東西不變), 동에서 번쩍 서에서 얼씬한다는 동섬서홀(東閃西忽) 등에 쓰인다.
▶️ 籬(울타리 리/이)는 형성문자로 蘺(리), 篱(리) 통자(通字), 篱(리)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대 죽(竹; 대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죽 잇닿는다'는 뜻을 가진 離(리)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籬(리/이)는 대나무 섶을 엮어서 친 울타리의 뜻으로 ①울타리 ②대나무 ③대 조리(笊籬: 쌀을 이는 데에 쓰는 기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울타리 책(柵), 울타리 번(藩)이다. 용례로는 울타리 사이로 엿봄을 이규(籬窺), 울타리 밑에 핀 국화를 이국(籬菊), 담 또는 울타리를 장리(牆籬), 울타리로 풀이나 나무 따위를 얽거나 엮어서 담 대신에 경계를 지어 막는 물건을 번리(藩籬), 동쪽 울타리를 동리(東籬), 섶나무로 둘러 친 울타리를 신리(薪籬), 낮은 울타리를 단리(短籬), 대나무 울타리를 죽리(竹籬), 구멍이 뚫린 울타리를 결리(缺籬), 엉성한 울타리를 소리(疏籬), 거칠어진 울타리를 황리(荒籬), 울타리를 둘러 치고 흙을 모아 표를 한다는 말을 위리봉표(圍籬封標), 죄인이 달아나지 못하게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어 그 안에 가두어 둔다는 말을 위리안치(圍籬安置) 등에 쓰인다.
▶️ 下(아래 하)는 ❶지사문자로 丅(하)는 고자(古字)이다. 밑의 것이 위의 것에 덮여 있는 모양이며, 上(상)에 대한 아래, 아래쪽, 낮은 쪽, 나중에 글자 모양을 꾸며 지금 글자체가 되었다. ❷지사문자로 下자는 ‘아래’나 ‘밑’, ‘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下자는 아래를 뜻하기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下자의 갑골문을 보면 윗부분은 오목하게 아랫부분은 짧은 획으로 그려져 있었다. 윗부분의 오목한 형태는 넓은 대지를 표현한 것이다. 아래의 짧은 획은 땅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下자는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하여 ‘아래’나 ‘밑’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금문에서 숫자 二(두 이)자와 자주 혼동되었기 때문에 소전에서는 아래의 획을 세운 형태로 바꾸게 되면서 지금의 下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下(하)는 (1)아래. 밑 (2)품질(品質)이나 등급(等級)을 상(上)과 하(下), 또는 上, 中, 下로 나눌 때의 가장 아랫길(끝째). (3)일부 한자로 된 명사(名詞) 다음에 붙이어 ~밑에서, ~아래서의 뜻으로, 그 명사가 조건이나 환경 따위로 됨. 나타냄. ~하에, ~하에서, ~하의 형으로 쓰임 등의 뜻으로 ①아래 ②밑(물체의 아래나 아래쪽) ③뒤, 끝 ④임금 ⑤귀인(貴人)의 거처(居處) ⑥아랫사람 ⑦천한 사람 ⑧하급(下級), 열등(劣等) ⑨조건(條件), 환경(環境) 등을 나타내는 말 ⑩내리다, 낮아지다 ⑪자기를 낮추다 ⑫못하다 ⑬없애다, 제거하다 ⑭물리치다 ⑮손대다, 착수하다 ⑯떨어지다 ⑰항복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낮을 저(低), 낮을 비(卑), 내릴 강(降), 항복할 항(降), 낮출 폄(貶),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높을 존(尊), 높을 고(高)이다. 용례로는 공중에서 아래쪽으로 내림을 하강(下降), 값이나 등급 따위가 떨어짐을 하락(下落), 어떤 사람의 도급 맡은 일을 다시 다른 사람이 도거리로 맡거나 맡기는 일을 하청(下請), 아래쪽 부분을 하부(下部), 강이나 내의 흘러가는 물의 아래편을 하류(下流), 산에서 내려옴을 하산(下山), 낮은 자리를 하위(下位), 공부를 끝내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옴을 하교(下校), 한 달 가운데서 스무 하룻날부터 그믐날까지의 동안을 하순(下旬), 정오로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하오(下午), 차에서 내림을 하차(下車), 위에서 아래로 향함을 하향(下向), 보호를 받는 어떤 세력의 그늘을 산하(傘下), 일정한 한도의 아래를 이하(以下), 치적이 나쁜 원을 아래 등급으로 깎아 내림을 폄하(貶下),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을 귀하(貴下), 끌어 내림이나 떨어뜨림을 인하(引下), 원서나 소송 따위를 받지 않고 물리치는 것을 각하(却下), 낮아짐이나 내려감 또는 품질 따위가 떨어짐을 저하(低下),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라는 하석상대(下石上臺), 붓만 대면 문장이 된다는 하필성장(下筆成章), 아랫사람의 사정이나 뜻 등이 막히지 않고 위에 잘 통함을 하정상통(下情上通), 어리석고 못난 사람의 버릇은 고치지 못한다는 하우불이(下愚不移)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