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軍 시절 追 億 ◀◀◀◀◀
<서언>
필자는 기축생으로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태어나 선친은 명동입구 화신백화점앞에서 양품점을 운영중
625사변이 터지자 필자의 돐떡을 해먹고 부친의 고향인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율포리로 피난하였다 부친의 고향이라지만 전답도 없고 친인척도 없는
가운데 부친은 시골에서는 서당출신으로 유식하다는 평으로 마을이장을 20년이나 맡으시며
이장조와 저수지안 전답을 해 먹으며 생계를 유지하던중 9남매중 맏누이를 제외하고
아들로만 다섯째로 전생에 업복으로 유독 혼자만 고교를 나올수 있었다 그리하여
서정,효명중고교 학교생활에 몸은 건강했으나 머리는 명석하지 못하여
청운의 꿈을 실었던 육사는 못가고 2사관학교로(현3사) 입대하여
20여년의 군 복무를 한후 만기 전역하였다
<서울서 피난온 필자가 자랐던 경기 평택 고덕면 율포리 동촌/전역후 서정리역을 출발 지나가며 전철안에서
찍은 사진 이지역은 지금은 삼성반도체공장으로 고향마을 주변은 깡그리 없어졌다요>
<시골에서 자라는 필자 5살때 부친조카네 "서정리 사진관"에서 가족사진(큰형누락)/뒤→춘자누나→금순이 누이>
<청운의 꿈을 안고 전남 상무대 2사교로 입대하다(70년 5월 6일)>
<일반학 / 통신교육>
<화기학 A-6기관총외 전군 편제화기 일체/1인 20만발 사격후 임관>
<특수전학/동복유격장 도피 및 탈출 훈련중 중간 집결지애서 중식 배식광경>
<드디어 고된훈련 62주를 마치고 1971년 7월 16일
육군 보병소위로 임관 중부전선 육군 제 3사단(백골)
23R 1BN 1CO 2소대장으로 보임하자마자 3개월후
18연대와 교대 전방 철책지역으로 투입되었다>
<그후 18개월 철책근무후 의정으로 전과되어 OBC,OAC를 마치고
백마 9사단 의무참모 보좌관 ,의무중대장을 역임하였다>
<백마 제9사단 사령부 직할대 동기생들과 기념사진 뒤 중앙 필자,
부관 김윤조,보병 안경빈,경리 한재홍,통신 김영진,예민,박진만>
<청평관사에서 오토바이 태워달라고 보채는 아들/
그후 제2훈련소 지구병원에서 4년 근무후 진급 25사단
의근대 6개월,청평병원 3년근무후>
<계획인사에 의거 제2군 제3군지단 의근대장으로 부임>
<치료반장 과 치과방장과 대민진료중 인증>
<제3군지단장 이치우 대령과 직할대장 및 가족 보안교육후 기념사진>
<3군지단 년말 가족동반 회식>
<육군 제2군 제3군지단 의무근무대장>
<제3군지단 의근대장의 성공적 업적으로 육군 산업시찰단으로 선발
전국순회중 경주 통일전앞에서 시청 관광과 여직원과 기념사진>
<3군지단 의근대장을 마치고 국군대전병원으로 전속 기획관리실장,등록처장,
인사교육처장을 엮임하던중 병원장 이 취임식을 주관하는 필자>
<89년 1월 말 전역을 앞두고 1988년 10월 1일 국군의날
보국포장을 수여하는 홍태의 병원장>
<보국포장>
<흘러간 군추억의 세월동안 한 많은 사연들을 묶어둔채 전역한지 34년이 흘렀네요
미운정 고은정 모두를 묻어두고 사노라니 가끔은 생각이 나는군요 그래도
한편으론 미운정 고운정 그 시절이 그립고 스친인연들이 보고픔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