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태생이라 어릴 때 다양한 동식물을 키운 적이 있다. 동물로는 소, 돼지, 개, 닭, 토끼 등이였고 식물로는 주로 먹거리용인 과실수, 채소 및 꽃 종류 등이었다. 때문에 동물이던 식물이던 뭔가를 키우는데 있어 전혀 서툴거나 두려움은 없다. 중학교 때까지만 시골에서 살고 그 이후로는 객지생활하다가 보니 동식물과는 멀어졌다.
그래서 근 50년간 내 손으로 동물이던 식물이던 키워 본적이 없다. 특히 애완동물이나 화초 등은 거리가 멀었다. 애완동물은 털이 날리고 비위생적이라는 집사람의 성격 때문에 키울 수 없었고 화초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무관심했다. 나의 경우 아직도 화초를 심을 공간이 있으면 거기에 채소나 고추(특히 땡초를 워낙 좋아해) 등을 심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지금 우리집에는 3종류의 화초를 기르고 있다. 이 화초들은 내가 사업확장으로 신축건물을 지어 이사하면서 개업식 때 들어온 화초들이다. 그 당시 30개 정도의 나무, 란, 화초들을 받고 일부는 회사에 남기고 나머지 대부분은 직원들과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이 3개의 화초만 집으로 가져와 집사람이 10년간 키워왔다.
회사에 남겨둔 것들은 관리 소홀로 거의 다 죽고 아직도 화분들만 앙상히 남아있다. 그렇게 무관심했던 내가 금년 4월에 화초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화초가 이뻐서 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씽크대에서 사용한 물을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들어온 것이다. 난 주말에는 1주일간 살림살이만 하는 집사람을 위해 내가 직접 밥을 한다.
밥을 하려면 먼저 쌀을 씻어야 하고 쌀 씻은 물을 그냥 버리기에 아까워 재활용할 수 없을까 하다가 그것을 화초에 주기로 했다. 그리고 집사람보고 앞으로는 화초관리를 내가 할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나의 화초 기르기가 시작된 것이다. 비록 4개월 정도 관리를 했지만 집사람이 키울 때보다 상태가 훨씬 좋았다.
그 이유는 물주는 시점과 어떤 물을 주는냐의 차이였다. 집사람은 집안 청소를 하다가 생각이 나면 한번씩 물을 주는데 그때 사용하는 물은 수도물이였다. 하지만 난 정해진 일자에 항상 쌀뜨물을 화초에 사용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화초들에게는 내방식이 우리 집사람의 방식보다 훨씬 좋아했을 것이다.
그것은 말이 필요없다. 화초들이 성장상태로 답해주기 때문이다. 집사람이 관리했을 때 성장률이 1이라면 내방식은 2이상 정도였다. 특히 새로운 싹이 트고 움이 돋아 싱싱한 줄기를 뻗을 때는 내가 성장하듯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뿐만 아니라 실내 공기 청정효과도 있고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준다.
아직은 아니지만 내가 좀더 애정을 더하면 언젠가는 화초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으리라 본다. 식물이던 동물이던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말 못하는 그들을 너무 막 대하고 무관심했던 것을 자성한다. 앞으로는 좀 더 화초 공부를 하면서 너희들이 좋아하는 환경과 토양을 제공할 것이다.
너희들을 통해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알았고 성장의 즐거움을 다시 배웠다. 아직 부족함이 많아 너희들의 이름도 모르는 무식꾼이지만 앞으로 예쁜 너만의 이름을 작명하여 함께 할 것이다. 기회가 되면 너희 친구들도 입양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희들을 돌보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취미생활로 자리잡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고로 사람은 오래 살고 볼일이다. 내가 40년간 마셔왔던 술을 끊고 그 대체활동으로 6년째 독서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삶을 찾았으니 말이다. 난 그것이 누구의 정성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너희들도 10년간 보살펴 준 그 사람이 있었기에 그 공이 절대 헛되지 않으리라 본다. 바통터치의 의미는 나의 생을 고할 때까지 우리 함께 하는 것이고 그것이 그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