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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안부를 묻다 / 윤정옥
네 뜨락은 안녕한지
참흙 속 네 꽃들 뿌리는 건강한지
튼실한 씨들 까맣게 눈 빛내고 있는지
언제였던가, 지친 방문객 하나 돌려보낸
그 손 여전한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대문을 고쳐 닫던
변함없는 삶의 야경꾼
생의 문틀 속으로 들어가
뒷주머니 곡자를 꽂고 늘 수직만을 그어댔지
내 곡선과 점선을 모두 지우며 바라보던 눈
다가갈 수 없는 네 마음의 변방을 빙 돌아서
나 여기 와 있는데
그리움이 빠져나간 잎들
참으로 슬프게 붉어지는데
네 뜨락의 가을은 어떻게 오는지
접어둔 안부를 펼쳐 너에게 묻는다
늦가을, 박하향 같은 바람이 좋다던
너에게 시린 맨발의 내 가을을 보내며
2024년 11월 23일 강릉 수목원 가는 길... 성산면사무소 앞에서...(09:51)
허브님 ..(몰카를 찍고 있는데...갑자기 나타 난 이 손은 뉘 손이며 초점은 왜 이다지도 개판인지...)
성산면 (城山面)
강원도 강릉시에 속하는 법정면.
강릉시의 중서부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구정면, 서쪽으로는 평창군 대관령면,
남쪽으로는 왕산면, 북쪽으로는 사천면과 접해 있다.
고속 도로와 국도가 통과하고 대관령이 있는 강릉시의 관문으로 교통의 요충지이다.
보현산성이 있어서 ‘성산’이라 하였다.
성산면은 1894년 행정 구역으로 획정되었으며, 1895년 23부제 실시에 따라 강릉부에 편입되었고,
1896년 13도제 실시에 따라 강원도 강릉군에 편입되었다.
따라서 본래 강릉군 지역으로 건금, 위촌, 구산, 송암, 관음, 서원, 제민원의 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에 송암, 위촌, 구산, 금산, 오봉, 관음, 어흘, 보광의 8개 리를 개편 관할하였다.
1955년 9월 1일에는 강릉읍이 강릉시로 승격됨에 따라 명주군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 읍면 행정 구역 조정에 따라 구정면 산북리가 성산면에 편입되어 현재 9개의 리로 이루어져 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에 따라 강릉시에 통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산면의 서쪽에는 대관령의 험준한 산이 남북으로 뻗어 영서 지역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관령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골을 이루며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대관령 옛길은 2010년 11월 15일 역사성과 경관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국가 명승 제74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에는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대관령자연휴양림이 위치하고 있어 연중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한편 영동 지역 최초의 치유의 숲인 ‘대관령 치유의 숲’이
2016년 8월 19일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산림 일원에 조성되어 개장되었다.
강릉시의 상수원인 오봉저수지가 위치해 있기도 하다.
저수지를 가기 직전 성산초등학교 앞 도로 좌우의 성산면 먹자골목은 대구머리찜 맛집이 모여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성산면 지역의 대관령에서 동북쪽으로 뻗어 내린 성산주령에는
예로부터 명당자리가 많아 보광리, 송암리, 위촌리에 묘가 많이 있다.
따라서 성산주령에 묏자리가 있느냐 없느냐로 그 집안 가문의 세를 측정했다고 한다.
관내에는 보현사, 오봉 서원, 보광리 석조 여래상, 관음리 오층 석탑, 대관령 국사 성황당, 대관령 박물관,
명주군왕릉, 대공산성, 명주산성, 임경당, 상임경당 등의 문화 유적과 명승지가 산재되어 있다.
선화, 바람꽃 , 장그레 ...
난생처음 나오신 분들 인사...
15구간 지기... 스카이블루 & 칭런님 (앞, 뒤에서 무쟈게 수고하셨습니다)
구간지기 인사 및 구간 안내
(지기님이 비 좀 내리지 말라고 떡을 돌렸는데.... 떡빨(?) 기도가 약했는지 비가 오락~가락 하였다.)
출발 전 몸풀기 체조...
아담하고 정겨워 보이는 성산 초등학교
성산초등학교 城山初等學敎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목표는 첫째, 예절과 질서를 지키며 봉사하는 어린이, 둘째, 창의적인 사고로 탐구하는 어린이,
셋째,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어린이,
넷째, 슬기롭고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이며 교훈은 ‘슬기롭고, 바르고, 튼튼한 어린이’이다.
성산초등학교는 1922년 4월 1일에 입학생 110명으로 개교하였다.
1951년 2월 15일, 6·25 전쟁으로 교사가 전소하여 1957년 12월 20일에 정규 교실을 신축하였다.
1976년 9월 14일에 학교 급식을 개시하였다.
1982년 4월 1일에 개교 6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지 발간 및 기념행사를 개최하였다.
수목원 가는 길.... 발걸음을 시작한다...(10:07)
포스 넘치는 쟈스민과 연초록님이 앞에 서서...(남대천 근처 중앙 시장에서 좀 놀던 감자전파 같으다)
가을 추수(秋收)가 끝난 들판 사이를 걸어간다.
당겨 보니.,.테라님 카메라 어깨에 메고 걷고 있네...(손이 시려웠나?...별일이네..ㅎ)
오봉댐과 하얀 눈이 쌓인 제왕산이 뒤로 보인다.
강릉댐(오봉댐)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 있는 농업용수 개발 사업으로 조성된 저수지.
현 한국 농촌 공사인 구 한국 농업 기반 공사에서 조성한
농업용수 개발 사업의 저수지로서 구 명주군 성산면에 있었으나,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편입된 시설이다.
영동 고속국도가 1975년에 개통되면서 정부가 추진하던
식량 증산과 관련한 사업이 영동 지역에서도 펼쳐지게 되었다.
당시 한국 농업 기반 공사가 농업용수 개발 사업으로 오봉 저수지를 건설케 된 것은,
지역적 특성 때문인데 영동 지역은 대관령을 중심으로 하는 높은 태백산맥이 동편에 있어,
산에서 바다까지의 수로가 짧고 기울기가 급한 편이다.
이러한 자연 조건으로 강수된 물이 바다로 빠르게 빠져나가
관내에 농업용 용수가 필요한 때에 적절하게 공급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큰 물을 저수하기 위한 사업이 추진케 되었다.
착공은 1977년 8월 25일이었으며, 6년간의 공사 끝에 1983년 10월 30일에 준공되었다.
건설 당시 구 명주군 성산면 오봉리에 있어 오봉 저수지로 불렸으며,
1995년 강릉시에 통합되면서 강릉댐이라 불리고 있다.
준공 이후 가뭄 때에는 필요한 농업용수를 공급해 주었고,
홍수 때에는 물을 가두어 하류 지역의 피해를 막아 주었다.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는 하루 877㎜의 폭우를 쏟아부었으며,
이로 인하여 장현 저수지와 동막 저수지가 붕괴되었다.
무려 1,400만 톤의 물을 저장한 강릉댐도 50m 높이의 제방을 겨우 20㎝를 남긴 지점까지 물이 차올라
많은 시민들이 대피하는 상황까지 갔으나 다행히 비가 그쳐 붕괴의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이후 강릉댐의 안전 보강을 논의하면서 둑을 높이고 수문을 늘리는 보강 공사를 하였다.
관리 기관은 한국 농어촌 공사이다. 록필댐으로 지어졌으며,
다른 댐과 비슷한 구성을 하고 있으나 홍수 조절 기능이 없는 상태이다.
농업용 용수를 빼기 위한 방수로와 상수용 취수를 위한 시설이 있다.
유역 면적 10,900㎡, 준공 면적 480㎡, 유로 연장 10㎞, 제정 폭 5m, 제당 높이 50.63m, 길이 271m,
표고 121m, 총저수량 14,453,000톤, 방수로 230m, 방수로 바닥 평균 폭 32m이다.
태백이나 정선에서 임계를 지나 강릉시로 들어오는 35번 국도로 성산에 다 이르러
왕산 대기리로 갈라지는 지역에 있으며, 구 영동 고속국도 대관령 구간 시작 지점에서 좌측 골짜기에 있다.
복장들을 정리하면서 잠시 휴식...(10:46)
도로를 건너 깔딱 고개를 오르기 시작한다.
산북리(山北里)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속하는 행정리.
성산면 면소재지인 구산리와 접해 있으며 구정면·왕산면의 경계 지역에 있다.
동쪽으로는 구정면 제비리, 서쪽으로는 오봉리, 남쪽으로는 왕산면 도마리, 북쪽으로는 구산리와 접해 있다.
강릉 시내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35번 국도와 인접해 있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산북리’라는 명칭은 칠봉산 서남쪽 낙맥과 새재[왕산면 도마리와 경계] 북쪽 낙맥에 있어서,
새재 북쪽 낙맥에 있는 마을이란 뜻의 ‘산뒤’가 변해 ‘산두’가 되고, 이것을 한자로 ‘산북(山北)’이라 쓴 데서 유래하였다.
원래 강릉군 구정면 지역으로 1916년 나맬, 버당말[坪村], 자포골[自飽洞],
좌망두(坐望頭)를 합하여 산북리라 하고 하구정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7년 면제 개혁 때 상구정면이 왕산면으로, 하구정면이 구정면으로 개편될 때 구정면에 속했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명주군 구정면으로 개편되었다.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1983년 1월 10일 공포]로 명주군 구정면 산북리는 성산면으로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명주군은 강릉시에 통합되었다.
주로 산지로 구성되어 있고 자연 경관이 수려하며, 전원생활을 즐기기에 적합한 곳이다.
산북리에는 좌망동, 음짓말, 양짓말, 자포동이 있는데, 음짓말에는 경모재가 있고, 그 뒤 산줄기에 함헌의 묘가 있다.
경모재는 칠봉(七峯) 함헌(咸軒)을 제향하기 위한 재사(齋舍)로
강릉함씨 칠봉댁(七峰宅) 종중에서는 매년 음력 9월 묘소와 재사에서 제향한다.
음짓말과 양짓말 입구에 서낭당이 있고, 그 옆에 갓바위가 있었는데 현재는 없어졌다.
서낭당은 당집은 없고, 서낭목 주위에 돌담을 쌓아 제단을 마련하였다.
성황지신·토지지신·여역지신을 모시고 있으며, 매년 음력 정월 초정일에 고청제를 지낸다.
음짓말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좌망두가 있고, 좌망두를 지나 골로 들어가면 약물골이 있다.
강릉시 식수원인 오봉저수지가 있고, 귀농·귀촌 인구 유치를 위해 부지 약 2만6,704㎡ 면적의 전원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구간 지기의 간절한 떡빨(?) 기도가 통했는지... 요만큼이라도 잠시 햇살이 나온 게 어디냐?
2024년 수목원 길을 장장 4번 걸으면서 난생처음 느껴 보는 햇살이다.
1월 ... 눈 내리던 날...
두 번째 깔딱을 오른다.
수정님과 미네르바님...(노안으로 초점 맞추기가 힘듦을 이해해 주시길...)
멀리 선자령 능선이...
오랜만에 지영씨도 보고.....난생 처음 국장님도 보고....
보리밭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남진의 '님과 함께 ' 저 푸른 초원 위에 ... 노랫말이 입가에서 맴돌았다.
좌망두골 근처에서...
좌망 (坐望)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리에 있는 자연 마을.
좌망두[坐望洞]는 마을의 생김새가 마치 토끼가 동쪽에서 떠오른 달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어서 생긴 이름이다.
또, 자망두[自望洞]라고도 하는데, 이는 스스로 앞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마을이란 뜻이나,
좌망두와 자망두의 발음이 비슷하여 생긴 이름이다.
좌망두는 새재[산북리와 왕산면 도마리 새재마을 사이에 있는 고개]에서 내려온 줄기와
칠봉산[산북리와 구정면 제비리 사이에 있는 산] 줄기 사이에 있다.
좌망두에서 버들고개[산북리와 구정면 제비리 사이에 있는 고개]를 넘으면 제비리가 되고,
새재를 넘으면 왕산면 도마리 새재마을이 되고, 내를 따라 내려가면 성산면 구산리가 된다.
좌망두는 칠봉산과 새재에서 내려온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다.
늦 가을 ... 낙엽이 아니라 곧 떨어질 감 꽃이 활짝 피었다.
늦가을 / 박주영
하강하는 나뭇잎 하나
툭, 던지는 한마디
세상은 모두 순간이라고
수목원 삼거리 언덕길을 오르면서...
수목원 삼거리 갈림길에서.... 각자 흩어져 점심 식사를 한다...(12:17)
낙엽 속으로.... 생쥐님과 실땅님...(초점이 흐릿한 건 이해해 주시길...)
식사 후.. 수목원 입구에 모여서 후반 걷기를 시작한다...(13:21)
江陵─香樹木園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에 소재한 공립수목원.
강릉시에서는 울창한 소나무 숲을 자랑하는 칠성산 자락에 있는 금강소나무 원시림을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리며 숲과 하나 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강릉솔향수목원을 설립하였다.
강릉솔향수목원이 조성된 지역은 예로부터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명명된 용소골인데,
이곳은 천연 숲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자랑하는 곳이다.
규모는 약 78만 5000㎡이며 1,127종 22만 본의 식물로 조성되어 있다.
특히 ‘천년숲속 만남의 장’이라는 주제로 대표 수종인 금강소나무를 잘 가꾸고 있다.
2006년 8월에 강릉시에서 수목원조성 대상지를 선정하고 계획을 수립하였다.
2007년 2월에 강원도의 현지 실사를 거쳐 2007년 5월 29일에
수목원 조성 사전타당성 심사에서 산림청의 승인이 이루어졌다.
2008년 6월 9일 강원도고시 제2008-137호에 따라 수목원조성계획이 승인을 받았다.
2008년 9월 29일에 사업 착공이 시작되었으며, 2011년 11월 30일에 사업 준공이 이루어졌다.
2011년 12월 1일에 임시 개장을 하였으며, 2013년 10월 30일에 정식 개원을 하였다.
강릉솔향수목원은 입구에서부터 물소리, 꽃향기, 솔향기 등을 접할 수 있다.
관목원, 난대식물원, 비비추원, 사계정원, 수국원, 암석원, 약용식물원, 염료식물원, 원추리원,
창포원, 천년 숨결 치유의 길, 철쭉원, 하늘정원 등 23개의 다양한 주제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강나무와 때죽나무 군락으로 조성된 숲 생태 관찰로, 천년의 기다림이 있는 천년 숨결 치유의 길,
금강소나무를 품고 있는 솔숲광장, 다양한 야생화를 주제로 한 비비추원 · 원추리원 ·
약용식물원 · 염료식물원 등의 전시원을 갖추고 있다.
또한 하이데크를 조성하여 수목의 하층부, 중층부, 상층부의 나뭇잎 ·
나뭇가지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숲길 생태관찰로는 휠체어, 유모차 등이 접근하기 쉽게 경사로를 10%내로 조성하였다.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독립기초를 이용하였고,
현장의 채취석과 바위 등을 사용하여 친환경적으로 조성하였다.
또 시민과 방문객을 위한 숲체험 학습과 산림욕을 제공하고 있다.
비는 종일 오락~가락 한다.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던 나무 한 그루...
구정 마을 쉼터에서...
여찬리(余贊里)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하는 행정리.
예전에 개오동나무가 많이 있어서 봉황이 날아와 놀았다 하여 봉양리(鳳陽里)라고 하다가 여찬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여찬리는 원래 강릉군 구정면 지역으로 1916년에 말밋골, 새끼미,
남이리면의 장현리 일부를 합하여 하구정면에 편입되었다.
1917년에 하구정면이 구정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55년 9월 1일에 명주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1월 1일에 통합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여찬리 가운데로는 구정천이 장현 저수지로 흘러들어가고, 남쪽에는 산 능선이 지나면서 동쪽으로 넓은 들을 끼고 있다.
여찬리의 남쪽에는 왕고개가 있고, 안쪽에는 구정리가 있다.
아래쪽에는 장현 저수지가 있고 북쪽에는 자주아리들이 펼쳐진다.
구정면사무소, 농협 지소, 구정 파출소, 우체국 등의 관공서가 모여 있는 면 소재지이다.
2015년 7월에 개관한 엄마꿈박물관[마마세계저울박물관]이 있다.
엄마 꿈 박물관은 저울과 저울에 대한 자료 4,000여점이 소장되어 있는 대한민국에 유일의 저울박물관이다.
그 밖에 조선시대 도자기류 등도 소장하고 있다. 2017년 마을 농산물판매장이 준공되었다.
마을 내에 원주-강릉 간 복선전철이 지나간다.
매년 설날 마을회관에서 청년회 등의 주관으로 합동 도배식을 열고 있다.
봉양촌 鳳陽村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여찬리에 있는 자연 마을.
봉양촌은 봉황이 개오동나무에 튼 둥지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새끼를 키우며 울었다고 하는 ‘봉명조양(鳳鳴朝陽)’의 글귀에서 따온 이름이다.
봉양촌 가운데로는 구정천이 흐르는데, 예전에 구정천 주변에는 개오동나무가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마을 북쪽에는 자조아리의 넓은 들이 펼쳐지고,
남쪽에는 왕고개가, 동쪽에는 장현저수지가, 서쪽에는 구정리가 있다.
마을은 구정8경 가운데 하나인 ‘봉양오월(鳳陽梧月)’에 해당된다.
구정천을 따라 서쪽으로 들어가면 구정리가 되고, 구정천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면 장현저수지가 된다.
남쪽에 있는 왕고개를 넘으면 학산리가 되고, 북쪽으로 가면 내곡동 자조아리가 된다.
마을은 구정면 면소재지로 구정면사무소, 구정 우체국, 농업협동조합 등의 공공기관들이 있다.
구정 면사무소 앞에서...(14:27)
장현저수지 長峴貯水池
강원도 강릉시 장현동에 있는 저수지.
장현저수지(長峴貯水地)는 장현동에 있는 저수지로 구정면 여찬리, 내곡동, 장현동에 걸쳐 있는데
저수지 주위에는 송파정, 장안성, 왕고개, 장안재, 진재 등이 있다.
장현저수지로 들어오는 물줄기는 늘목재(구정면 구정리와 왕산면 도마리 사이에 있는 고개)
밑에서 흘러 구정리와 여찬리를 지나 온 물이다.
이 물은 저수지를 지나 신석동, 월호평동으로 흘러간다.
한국 농어촌 공사 강원 지역 본부 강릉 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장현저수지는 관개 개선과 지목 변환 목적으로 1941년 11월에 착공하여 1947년 9월에 완공하였다.
2002년 태풍 루사 때 제방이 40m 가량 붕괴되어 돌과 흙으로 다시 쌓았다.
2002년 12월 모두 71억 1400만 원의 사업비가 투자돼 저수지 복구공사가 시작됐고,
2004년 12월 지금의 현대적인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둑을 쌓은 형식은 필댐[죤형]이며, 제방 길이는 206, 제방 높이는 16.06, 저수지 체적은 15만 9347㎥이다.
장현저수지의 총 저수량은 219만 7100㎥이며, 유역 면적은 1,152ha,
관개 면적은 406.4ha, 홍수 면적은 48.8ha, 만수 면적은 43.6ha이다.
샘물 교회 앞에서 마지막 휴식을...(15:13)
아~ 개판인 초점....(그래도 뻔뻔하게 올려 본다.)
신불 사지 도착...(15:34)
江陵神福寺址
강원도 강릉시 범일로 664번길 22(내곡동 403-2번지) 일원의
나지막한 구릉 산기슭에 있는 고려시대 신복사의 절터이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관찬사서 및 불교 사찰 관련 문헌에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창건 역사 및 폐사 시기 등 그 내력을 살필 수 없다.
다만 강릉읍지인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1933)에 신라 문성왕 때
명주 사굴산문(闍堀山門)을 개창한 범일선사(梵日禪師, 810~889)가
굴산사와 함께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신복사지는 오래 전에 절 이름이 '심복사(尋福寺)' 또는 '신복사(神伏寺)'로 알려져 왔으나
일제강점기인 1936년과 1937년 '신복(神福)'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명문기와편이 발견되어 '신복사(神福寺)'로 부르게 되었다.
현재 절터에는 고려시대 전기의 뛰어난 석조미술품으로 평가되는
신복사지 석불좌상[보물 제84호]과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 제87호]이 남아 있다.
신복사지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1989년 강릉시에서 국가지정 석조문화재 보존관리를 위한
주변 보호책 및 배수시설 설치를 위한 터파기 공사를 시행하던 중
건물지 유구 일부와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1990년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부분적인 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강릉신복사지는 지금까지 두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금당지와 동회랑지, 서회랑지가 배치된 고려시대 초기의 전형적인 1탑1금당 병렬식의 가람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신복사지는 9세기 무렵 범일의 창건설과 관련,
출토유물 양상으로 볼때 창건시기는 통일신라시대가 아닌 고려시대 초기 10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며,
폐사시기는 나말여초까지 법맥을 이어오다 조선 중기 무렵에 완전히 폐사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이 절터에서 몇 점의 '神福寺' 명문기와가 출토됨으로써 사찰명은 신복사로 정확히 밝혀지게 되었다.
따라서 강릉신복사지는 강릉굴산사지, 한송사지, 오대산 월정사 등과 더불어
오대산 불교문화권의 불교사상과 문화의 수용과 전개, 변천 과정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사굴산문의 전개양상과 위상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 중의 하나이다.
神福寺址 石造 菩薩 坐像 신복사지 석불좌상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81㎝.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앞에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자세로 앉아 있는데,
근처의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1963년 지정), 개태사 석조보살좌상(머리 부분 결손)과 함께
고려 초에 조성된 독립 공양상으로서 주목된다.
이 보살상은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 1967년 지정)과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처럼 원통형의 높은 관을 쓰고 있다.
그러나 관 위에 천개(天蓋)가 놓여 있기 때문인지 관은 높이도 낮고 약간 뒤로 젖혀진 모습이다.
관의 표면과 관 위의 천개 안쪽에 커다란 구멍들이 있는데, 금속 장식을 달기 위하여 뚫었던 듯하다.
부드럽고 복스러운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입을 안으로 꼭 다문 천진한 모습은
예천 청룡사 석조여래좌상(보물, 1965년 지정)의 입 모양과 흡사하다.
눈썹은 초승달 같은 곡선을 이루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귀의 양 끝에 구멍이 뚫려 있어 금속제 귀걸이를 끼웠던 것으로 보인다.
편평한 목 위에 선각(線刻)으로 층을 이룬 삼도(三道)를 새겼고 무늬 없는 목걸이와 팔찌를 두르고 있다.
두꺼운 천의를 어깨와 가슴에 둘렀다. 왼팔을 무릎 위에 올리고 모아 쥔 두 손은 가슴에 꼭 붙이고 있으며
손에 뚫린 큰 구멍에는 지물(持物)의 손잡이였던 금속주(金屬柱)가 남아 있다.
이 보살상은 원형의 대좌받침이 있는데, 안이 움푹한 원래의 연화대좌에 이것을 끼워 넣게 되어 있다.
현재 대좌받침의 앞부분이 없어졌다.
대좌 위에는 두 개의 금속주가 있어 원래는 대좌받침 촉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대좌가 정확히 맞추어져 있지 않아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연화좌 밑에는 폭이 좁은 중대석이 있고 거기에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그 아래 넓은 팔각형의 지대석이 묻혀 있으며 복련(覆蓮: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의
하대가 있었을 것이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풍만한 신체와 다정한 얼굴에서 상당히 인간적인 분위기를 준다.
그러나 반타원형으로 조각된 보발(寶髮)이나 규칙적인 간격으로 나누어진 옷주름 등에서 약간 형식화된 점이 발견된다.
같은 강원도 명주 지방에서 제작된 한송사지 보살좌상이 보여주는
신라적인 요소가 차츰 사라지고 양식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릉 한송사지 보살좌상, 평창 오대산 월정사 석조보살과 함께
고려 초기에 강원도 명주 지방에서 유행하던 불상 양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고려전기 11세기무렵의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초코 염소 장군의 근엄한 표정...
강변 내곡교 밑을 지나면서...
무지개가 살짝...
강물에 비친 강릉 관광호텔..
수목원 가는 길 종착지 스탬프 찍는 곳에 도착해서...(16:00)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江陵端午祭傳授敎育觀)은
유네스코 세계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걸작 하나인 강릉 단오제를
전수하고 공연하기 위한 교육 시설 겸 문화 예술 시설이다.
강릉 단오제를 위해 강릉시에서 건립하여 운영중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공연동과 교육관 등의 시설로 구성된다.
2004년 2월 19일: 강릉단오문화관 개관
2017년 7월 4일: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으로 명칭 변경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은 강릉 단오제에 관련된 공연이 정기적으로 개최되며,
지역 행사와 뮤지컬 등도 활발하게 개최된다
기다리는 버스에 오르면서 수목원 가는 길을 마무리한다.
(2025년에는 칭런님이 덕을 많이 쌓아 수목원 가는 길에 부디 햇살 가득한 나날만 펼쳐지기를...비나이다~비나이다...)
아름다운 이별 / 김건모 눈물이 흘러 이별인걸 알았어 힘없이 돌아서던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만큼 너도 슬프다는 걸 알아 하지만 견뎌야해 추억이 아름답도록 그 짧았던 만남도 슬픈 우리의 사랑도 이젠 눈물로 지워야할 상처뿐인데 내 맘 깊은곳엔 언제나 너를 남겨둘꺼야 슬픈 사랑은 너 하나로 내겐 충분하니까 하지만 시간은 추억속에 너를 잊으라며 모두 지워가지만 한동안 난 가끔 울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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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을동화 한편 잘봤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