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平昌)이란 지명 유래
평창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성으로 郁烏縣(일명 于烏縣)이라 불리다가 신라의 三國統一 이후 景德王 16년(서기757)에 白烏縣으로 改稱하여 奈成郡(現 영월군)의 嶺縣이었다.
王建이 高麗를 建國한 후, 각 地方 豪族들을 鎭靜시켜 어느 정도 太平盛大에 이룬 뒤, 太祖 23년(서기 940년)경 국가의 기구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당시 각 고을 현(縣)명칭을 개칭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때 이 고을을 이끌던 토반(土班)들이 이 고을의 山水와 地形地勢가 中國의 孔子 出生地인 魯나라의 四川省 曲阜고을 昌平부락의 形勢를 꼭 닮았다 하여 현재의 평창읍의 鎭山인 魯城山도 중국의 지명과 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고, 평창강을 일명 사천강이라 불리어져 온 것도 중국의 사천성을 흐르는 강과 똑같이 닮았다하여 최근까지도 사천강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그때까지 白烏縣으로 불리어 오던 현(縣)명칭도 孔子의 出生地 마을과 똑같은 昌平縣으로 하여 朝廷에 縣名稱의 改稱 을 上申하게 되었으나, 당시 국가 조정에서『공자님의 태생지인 창평(昌平)을 그대로 모방할 수 없다"고 하므로 부득이 앞뒤 글자만 바꾸어 평창(平昌)현 으로 改稱하게 되었음.
平昌縣으로 改稱된 뒤에도 原州의 屬縣이었다가 忠烈王 25년(서기 1299년)에 와서 縣令이 派遣되고 原州로부터 分離 되었으며, 禑王 13년(서기 1387년)에 郡으로 昇格되었으나 다시 縣으로 降等되었다가 李成桂가 朝鮮을 建國(서기 1392년)한 후 太祖(李成桂)의 5代祖인 穆祖妃의 고향인 관계로 郡으로 다시 昇格되어 오늘까지 平昌이란 이름으로 불려오고 있음.(03.4.평창군홈에서)
平昌이란 어원 뜻의 고찰
평창의 지명이 신라 경덕왕 때 백오(白烏)로 바뀌고, 고려 태조 23년(940년) 에는 평창(平昌)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새 왕조가 출현되고 기득권층 등에 통치 강화의 신 사조 문명운동으로 신라때의 “우오, 욱욱, 율오”등에서 백오로 바뀌었다.
야기에 휜 白자는 고어에서는 백두산, 백덕산등과 같이 크다는 의미를 가지고 또한 미탄의 한치의 찰한(寒)자나 한림원 할 때의 翰, 홍성의 洪, 큰 德자, 말馬자등 대부분의 고어는 크다는 의미를 가지는 단어들이다.
고려가 개국하며 새로운 왕조의 출현에 다시금 기득권 층의 통제와 통치 강화를 위해 군, 현의 새로운 지명으로 개정하기에 평창군에서는 "平昌"이란 지명을 선택하였다.
"平昌"이란 어원은 공자의 고향 " 창평향"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鄕은 당시 고을 단위)
이러한 연유로 말미암아 "平昌"이라는 지명도 문헌으로는 고려 초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공자의 고향 창평향이란 최근의 연구로는, 공자(孔子; BC551~BC479)는 춘추시대의 사람이지만 창평군의 이름은 이후 진나라의 상방(相邦)으로 본래는 초나라 의 왕자(BC 270년대)이자 초나라의 마지막 왕인 부추(負芻)의 이복 동생의 이름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그때까지 白烏縣으로 불리어 오던 현(縣)명칭도 孔子의 出生地 마을과 똑같은 昌平縣으로 하여 朝廷에 縣名稱의 改稱 을 上申하게 되었으나, 당시 국가 조정에서『공자님의 태생지인 창평(昌平)을 그대로 모방할 수 없다"고 하므로 부득이 앞뒤 글자만 바꾸어 평창(平昌)현으로 改稱하게 되었음.
고려 태조 23년(940년) 전국적 지명 정비작업의 일환으로 신라시대의 白烏에서 "平昌"으로 개정된 바, 이때 현 전남 담양군에 편입된 창평현은 757년 신라시대(景德王16年)에 기양현(祈陽縣)으로 개정하였다가 940년 고려시대(太祖23年)에는 창평현(昌平縣) 다시 개정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 초 조정에서는 담양에서는 창평이란 지명이 수용되고 평창에서는 창평을 조정에서 모방할 수 없다 하는 점에서 담양의 경우에는 동국여지승람에서도 창평현으로 기록되고 있는 바, 이 점은 이해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평창에서는 공경하는 성현의 고향을 그대로 모방함은 예의가 아니란 점으로 “창평”을 “평창”으로 돌려 쓴 점은 겸손을 가진다 하겠습니다.
또한 "평창강이 명 사천강이라 불리어져 온 것도 중국의 사천성을 흐르는 강과 똑같이 닮았다하여 최근까지도 사천강이라 불리게 되었으며"라는 문장에서 사천성은 양즈강 상류로 서해바다 산둥반도의 산동성의 곡부이며, 사천성은 내륙으로 일만리 떨어진 곳이다. 따라서 위 문장의 사천성은 산동성으로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