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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린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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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펌 절대 금지)
1
한낮의 도심은 가루분유를 탄 유리컵처럼 불투명하다. 문을 열면 그 뿌옇고 매캐한 기운이 유령처럼 흐느적흐느적 손길을 뻗는다. 불쾌한 인상을 지울 수 없어 준열은 열었던 창문을 닫았다. 그는 막 사우나탕 같은 악몽의 잠자리에서 간신히 일어나 창틀에 팔을 괴고 막연한 구원을 원하고 있었다. 관자놀이가 불에 데인 것처럼 지끈거렸다. 두통과 악몽은 언제고 그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엄지와 중지로 이마 양쪽을 지압하며 늪처럼 질척거리는 침대를 바라보았다. 주전자를 엎지른 것처럼 땀으로 젖어 있었다. 누구도 나를 구원해주지 못한다. 이 도시 어디에도 그런 사람은 없다.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발끝에 힘을 실어 간신히 일어섰다.
컴퓨터의 부팅 시간동안 준열은 샤워를 하고 커피 물을 끓였다. 그는 설탕이 많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며 사촌이 만든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다. 온갖 기이한 그림들과 부적 무늬가 그려진 바탕과 함께 '붉은 벽돌 무당집'이라는 사이트 명이 떠올랐다. 그는 '오프라인 스케줄' 게시판을 클릭했다. 그곳은 운영자 전용 공간으로 실제적인 의뢰가 접수되는 곳이기도 했다. 의뢰와 관련한 모든 약속은 사촌이 관리했다. 사촌은 기자였고 현재는 모 과학 주간지의 심령 미스터리 분야에 기사를 싣고 있었다. 준열은 커피 잔에 얼굴을 반쯤 묻고 게시판을 확인했다. 오늘 날짜로 약속이 한 건 잡혀 있었다.
2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한 시 사십 분이었다. 대학가의 끝자락에 위치한 커피숍이라 손님이 적었고 분위기도 고적했다. 준열은 빈 테이블에 앉아 가방에서 서류 몇 장을 꺼냈다. A4용지로 묶여 있는 서류들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심령 현상들을 조사한 보고서였다. 보고서의 인물들은 모두 귀신을 보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현상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었다. 준열은 서류를 뒤적이다 '인형'에 관련한 기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모월 모일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스티브라는 남자가 가두판매로 인형을 구입해 딸에게 선물했다. 그날 밤 딸의 비명소리에 잠이 깬 스티브는 급히 딸의 방으로 달려가 보았다. 딸은 문 앞에서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었고 인형이 자기를 노려본다며 울부짖었다. 스티브는 딸이 악몽을 꾸었거나 무언가를 착각했을 거라 생각하고 인형을 자신의 방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한밤중 아내의 신음소리를 듣고 눈을 떠보니 선반 위에 올려놓았던 인형이 아내의 가슴 위에 앉아 한 손으로 아내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인형은 스티브의 인기척을 눈치채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인형은 웃고 있었다. 너무 놀란 스티브는 인형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내던졌다. 인형은 몇 바퀴 구른 후 벌떡 일어나 스티브를 차갑게 흘겨보았다. 그러다가 스티브가 무기가 될만한 물건을 손에 쥐자 인형은 몸을 돌려 아장아장 걸어가 열린 문틈으로 나가버렸다. 스티브는 곧장 뒤따라 가보았지만 인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밤만 되면 키득거리는 인형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간혹 꿈인지 생신지 알 수 없는 몽롱함 속에서 칼을 들고 있는 인형의 소름끼치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결국 스티브 식구는 이사를 가버렸고 그곳은 인형 귀신이 상주하는 유령의 집이 되어 버렸다.
준열은 얼마 전 직접 경험한 사건 하나를 떠올렸다. 경상남도 어느 시골의 흉가에서 그는 귀신이 들린 인형을 본 적이 있었다. 폐허가 된 무당 집 방안에 신단이 모셔져 있었고 그 위에 붉은 옷을 입고 머리카락이 긴 여자 인형이 칼과 방울을 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소문에 의하면 밤마다 그 인형이 칼과 방울을 휘두르며 춤을 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인형을 신성시 여겼고 일정 간격으로 재물을 가져다 바쳤다. 준열은 신단이 모셔진 방에서 하루 밤을 묵었고 새벽 두 시쯤 퍼뜩 졸음을 깨어보니 신단 위에 있어야 할 인형이 바로 아래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준열이 손을 뻗어 그것을 만지려 할 때 그것은 엄청 빠른 속도로 허공을 부유하더니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날 준열은 마을의 한 노인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수년 전 마을을 찾은 정체 불명의 남자가 있었고 그의 방문이 있고 난 후 무당 집의 처녀 무당이 피를 토하고 횡사했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그 남자를 마력을 지닌 주술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준열은 인터넷으로 '인형술사'에 관한 자료를 모음과 동시에 사촌에게도 '인형술사'와 관련한 자료 수집을 부탁했다. 정말로 인형술사가 그 마을을 방문한 것이라면 그는 왜 인형에 그러한 주술을 걸어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재물을 탐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의 푼돈 같은 것은 그 마을의 부랑자들이 챙겨 가는 실정이었다. 재물이 목적이 아니라면 그 인형술사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강준열 씨?"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다소곳이 서 있었다.
"뭐야? 너냐? 의뢰를 부탁했던 '천사사랑'이?"
"예."
소녀는 느릿느릿 대답했다.
"고등학생인가?"
"예. 고 일이에요."
준열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소녀는 주뼛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웨이트리스에게 커피를 주문한 후 준열은 소녀를 똑바로 보았다.
"왜? 뭔가 잘못된 것이라도 있는 거야?"
"예?"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꼭 다리 세 개 달린 고양이라도 보는 듯해서."
"아,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도인 같이 수염 기른 노인을 기대한 거니? 아니면 '네가 모르는 무언가가 보여' 하고 근엄한 표정 짓는 중년의 무당을 기대한 거니?"
"그런 게 아니라……."
소녀는 냉수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말끝을 흐렸다.
"난 스물 하나야. 시시한 전문대를 다니다 그만두고 심령학 분야에 뛰어든 거야. 그렇다고 해서 이 분야에 대해 공부를 했거나 논문을 쓴 사람도 아냐. 그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몇 가지를 볼 수 있다는 특권으로 음양사, 엑소시스트 흉내를 내고 있는 거야. 아니, 특권이라기보다는 착각으로 해두지. 남들은 잘 인정을 안 해주니까. 혹시 이런 것들이 너에게 무슨 문제가 되니? 아니면 주소를 잘못 찾아온 거니?"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사실 저로선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
"그렇지- 난 너에게 세이메이나 머린 신부는 되어 줄 수 없지만 지푸라기 정도는 되어 줄 수 있을 지도 몰라."
"그- 그런 뜻이 아니라……."
소녀는 당혹해하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됐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지! 너 이름은 뭐라고 그랬지?"
"유리예요. 서유리."
"유리? 정말 일본 퇴마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름이네. 그래, 문제가 뭐야? 자세히 말해봐!"
준열은 거의 코까지 내려온 앞머리를 대충 뒤로 넘긴 후 수첩과 펜을 꺼내들었다. 유리는 냉수로 다시 한번 목을 축였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중인 모양이었다.
"저에게는 네 살 아래의 남동생과 세 살 위의 오빠가 있어요.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삼 년 전에 이혼을 했어요. 자세한 이혼 사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돈 문제가 원인이 되었던 것 같아요. 돈 문제로 두 분이 많이 싸우셨으니까요. 엄마는 언제나 아빠에게 무능하다고 소리쳤고 정말로 아빠는 회사에서 좌천을 많이 당하셨어요. 술이 문제였죠. 아버지가 워낙 술을 좋아하셔서 그런 것이 회사 윗분들에게 좋지 않게 보였나봐요."
"자- 지금 무슨 소개팅 나온 것도 아니고, 우리 구구한 서론은 접고 시작하지?"
준열은 조금 답답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때 웨이트리스가 커피를 가져왔다. 준열은 자신의 커피 잔에 각설탕 다섯 개를 넣고는 휘저었다.
"이혼 후에 저희 집은 형편이 더 어려워졌어요. 그러던 중 아빠는 이웃 마을 어딘 가에 그저 내놓다 시피한 집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는 당장 그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하셨어요. 그 집은 마을 어귀에 버려지다 시피 한 이층 양옥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헐값으로 거래되었어요. 하지만 겉보기에는 근사한 집이었어요. 처음 이사를 해서는 모두 기뻐했죠. 방이 많아서 제각각 방 하나씩을 차지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집은 유령의 집이었던 거예요."
유리는 잠깐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땀이 맺혀 있는 것을 준열은 보았다.
3
이사하고 며칠동안 마을 사람들이 저희를 보며 수군거렸지만 저희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어요. 미신 같은 것은 제 동생도 믿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인기척에 눈을 떠보니 동생이 제 방에 있었어요. 동생은 버려진 새끼 고양이처럼 벌벌 떨고 있었어요. 제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귀신을 보았다고 그러는 거예요. 귀신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 자기 방에 있다는 거예요. 저는 동생을 데리고 동생의 방으로 가 보았죠. 동생 방의 불을 켜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저는 동생을 침대에 앉혀놓고 다시 물었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에는 꿈을 꾸는 건 줄 알았어.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무언가가 있어서 손으로 휘저어보았지. 그런데 아무 것도 만져지는 것은 없었어. 그제야 꿈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키고 방안을 둘러보았지. 언뜻 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여보니 뭔가가 사각사각 움직이는 게 있었어. 그러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들어보니 천장에 얼굴이 있었어. 안개같이 희미하게 어른거렸지만 분명히 얼굴이 있었어."
동생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어요.
"천장 귀신이야. 귀신은 분명 천장에 살고 있는 거야."
하는 수 없이 저는 동생을 제 방에서 재우고 제가 그 방에서 잤어요. 그러나 저에게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다만 동생의 말처럼 이상한 느낌 같은 것은 있었어요. 꼭 축축한 수증기가 방안을 떠다니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나서 저는 끔찍한 것을 보았어요. 그것은 인형이었는데 크기가 웬만한 꼬마 아이들 만했어요. 대략 일 미터 가까이 되었어요. 정말 그렇게 큰 인형은 처음 보았어요. 긴 머리카락에 붉은 색 전통의상이 일본의 하나코 인형을 연상시켰어요. 아무튼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 보니 그것이 거실 한 복판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어요. 동생에게 이게 뭐냐고 물으니 동생은 싱글벙글하며 자신이 찾아낸 것이라고 했어요.
"천장에 있었어. 내 방 천장에 천장 위로 통하는 환풍기 같은 통로가 있었어. 그곳으로 올라가 보니 천장 위에 이게 있는 거야. 그래서 가지고 내려왔지."
"징그럽게 그런 것을 뭐 하러 가지고 내려와. 당장 갖다 버려!"
"싫어. 내 방에 두면 되잖아."
"너 얼마 전에 귀신 봤다고 그랬잖아. 그런 것에 귀신같은 거라도 붙어 있으면 어쩌려고 그래?"
"아냐! 그 때는 내가 착각을 한 거야.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이건 그냥 인형일 뿐이라고."
저는 굉장히 불쾌했지만 동생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제 몸집 만한 인형을 품에 안고는 이층 자기 방으로 올라갔어요.
그 날 저녁 동생 방 앞을 지나는데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걸음을 멈추고 동생의 방에 귀를 기울였어요. 동생은 누군가와 나직이 대화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소리나지 않게 문을 조금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어요. 동생은 그 거대한 인형을 침대에 앉혀놓고 자신은 바닥에 앉아 있었어요. 그들은 서로 마주보며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는 친구들 같았어요.
그 후 제 신경은 칼처럼 민감해졌어요. 밤마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자박자박 낮은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수시로 저를 응시하는 시선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제 방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 무심코 문을 보았는데 열린 문틈 사이로 빤히 쳐다보는 눈이 있었어요. 머리카락이 쭈뼛해지는 듯했어요. 저는 달려가서 거칠게 문을 열었어요. 문밖에는 예의 그 인형이 서 있었어요. 저는 당연히 동생이 장난을 친 것이라 생각했죠. 인형을 옆구리에 끼고 동생의 방문을 두드리려는데 옆구리에 꿈틀거리는 느낌이 있었어요. 저는 기겁을 하며 인형을 떨어뜨렸죠. 저는 인형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지만 인형은 시치미를 뚝 떼고는 멍하니 천장만 응시하고 있었어요. 더 이상 인형과 대면하고 있을 자신이 없어 저는 곧장 제 방으로 가서 문을 잠갔어요. 다음 날 동생에게 따졌지만 동생은 그런 장난을 친 적이 없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더 무서운 일들이 벌어졌어요. 늘 제 방 유리창을 기웃거리는 도둑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싶어 궁금했는데 어느 날 집 뒤뜰 구석에 죽어 있는 고양이의 시체를 발견했어요. 고양이는 무언가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으스러져 있었고 노란 눈은 퀭하니 뜨고 있었어요. 꼭 저를 원망하는 듯한 눈초리였어요. 저는 고양이의 시체를 뒤뜰에 묻어주고 작은 묘비까지 세워주었어요. 저는 이 모든 불길한 일들이 다 그 인형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동생 몰래 동생의 방으로 들어가 인형을 내다버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인형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 때 아래층 오빠 방의 문이 열리며 오빠가 피곤한 모습으로 나왔어요. 오빠는 재수생이라 늘 신경이 날카로웠어요. 그런데 열린 방문 틈으로 오빠방 침대가 보였고 그곳에 인형이 있었던 거예요. 제가 오빠에게 왜 인형이 그곳에 있냐고 물으니 오빠는 허를 찔리기라도 한 모양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매서운 눈으로 저를 쏘아보았어요.
"그런 것은 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잖아! 너는 네 할 일말 잘 해! 공부 좀 잘한 다고 잘난 척 하기는! 네가 무슨 엄마라도 돼?"
오빠는 저를 필요 이상으로 사납게 몰아 부쳤어요. 원래 무뚝뚝한 면이 있긴 했지만 그토록 매정하게 쏘아붙이는데 저는 억울한 감정마저 느꼈어요. 그런데 제 방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째서 인형이 오빠의 방에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며칠 후 저는 옆집에 사는 철구라는 아이를 만났어요. 그는 저랑 비슷한 또래였지만 저능아였어요. 그는 콧물을 흘리며 제게 다가와 이상한 소리를 했어요.
"그 집에 귀신 사는데…… 난 봤어…… 내 방 창문으로…… 망원경이 있거든. 싸, 쌍 망원경이지…… 무지 잘 보여…… 네, 네가 옷 갈아입는 것도……."
"뭐?"
저는 격분을 해서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계속 말했어요.
"인형이…… 인형이 걸어다니는 걸 봤어……."
"무슨 소리야 그게?"
"예전에 살던 사람들도 그랬어. 살인 사건이 일어났었지…… 그 인형 짓이야…… 너, 너희들도 다 죽을 거야…… 내가…… 천장에 감추어 두었는데…… 어째서 그런 것을 다시 끄집어 낸 거야?"
"좀더 자세히 말해 줘. 도대체 그 인형은 뭐지?"
"그…… 그 인형은 신들린 인형이야…… 아, 악마가 만든 거야……."
그리고 그날 저녁 저는 뒤뜰의 고양이 무덤이 파헤쳐져 있는 것을 보았어요. 반쯤 부패한 고양이 시체에는 구더기들이 들끓고 있었어요.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오빠의 방문을 두드렸어요. 오빠는 자고 있었던지 아무리 두드려도 문을 열지 않았어요. 저는 다시 밖으로 나와 창문으로 오빠의 방안을 살폈어요. 커튼 사이로 오빠가 이불을 덮어쓰고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어요. 아무리 둘러보아도 인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동생의 방으로 올라가 보았어요. 동생은 컴퓨터를 하고 있었어요. 인형을 어디에 두었냐고 묻자 동생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요즘은 통 보질 못했다고 그러더군요.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인형은 보이지 않았어요. 이어서 아빠가 오셨고 저는 아빠에게 그 동안의 일을 모두 고했지만 회사 업무에 시달리시는 아빠는 인형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날 밤 저는 한밤중에 미세한 인기척을 감지하고 눈을 떴어요. 그것은 틀림없이 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였어요. 저는 발소리를 죽이고 계단을 내려갔어요. 아래층 현관문이 천천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바람의 기운이 바닥을 타고 움직이는 게 느껴졌어요. 저는 아주 작정을 하고 거실의 불을 갑자기 켰어요. 그와 동시에 후다닥 숨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전해졌어요. 현관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문 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러나 곧 시선이 미치는 데가 있었어요. 신발장 뒤였죠. 빨간 옷자락과 긴 머리카락의 일부가 바람에 미세하게 나부끼고 있었던 거죠. 손에 잡히는 데로 가위 하나를 집어들고 신발장 뒤로 걸어갔어요. 신발장 뒤에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고 선 인형이 있었어요. 그 얼굴은 마치 들켜버렸구나, 하는 표정이었어요. 놀라운 것은 인형의 얼굴과 옷에 피 같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는 거예요. 저는 너무 소름끼치고 또 분노마저 느껴져 가위로 인형의 어깨 부분을 찔렀어요. 으히어헉, 하는 괴상한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는 마치 허공에서 다중으로 들리는 듯했어요. 저는 넋 나간 사람처럼 사방을 둘러보았어요. 그 때 거실의 거울이 보였어요. 거울에는 가위를 든 제 모습이 보였고 제 어깨 너머로 아빠의 방문이 보였어요. 아빠의 방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어요. 저는 처음에 그것이 무슨 상 인줄 몰라 한참을 당황해 했어요. 나중에야 그것이 어떤 상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죠. 열린 문틈 사이로 아버지는 거꾸로 서 있었어요. 아버지의 눈에는 눈동자가 없었고 그저 파랗게 빛나고만 있었어요.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 저는 제 방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듯이. 저는 새벽같이 집을 나와 하숙을 하는 친한 친구의 집에 머물렀어요. 친구에게 제가 겪은 일을 모두 말했고 친구는 진심으로 저를 걱정해주며 '붉은 벽돌 무당 집'이라는 사이트를 소개해 주었어요.
"소문에 의하면 이 사이트의 주인장이 영(靈)적인 기운을 가진 사람이래 나봐. 그래서 미스터리 심령 현상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한대. 네 사연을 올려봐. 어쩌면 도와줄 지도 모르잖아. 뭐 백 프로 믿을만한 것은 못 되겠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간혹 신기(神氣)를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하니 혹시 아니. 게다가 수수료 같은 것도 없대!"
4
"그건 틀린 말이야! 수수료는 있어."
"예?"
유리는 허를 찔린 모양 멍한 얼굴로 준열을 쳐다보았다.
"커피야! 모카니, 에스프레소니, 카페오레니 하는 것들은 필요 없어. 그냥 커피믹스 한 통이면 돼!"
"아- 예- 그 정도야-."
"자, 그럼 일어서자고."
준열은 서류들을 가방에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다가 서류 몇 개를 가려내어 유리에게 건넸다.
"너와 비슷한 경험한 한 사람들의 이야기야. 가면서 읽어봐!"
유리는 서류 묶음을 만지작거리며 준열을 주시했다.
"이제부터 저희 집에 갈 건가요?"
"우리 집에는 귀신이 안나오니까."
유리는 서두르는 준열을 보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그 집에는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그곳은 꼭 마귀의 소굴 같아요."
준열은 흐트러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두 어 번 매만지다 유리의 팔을 잡았다.
"마귀를 잡으려면 마귀의 소굴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잖아. 가족들 모두가 인형에게 잡아먹히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거야?"
그 말을 들은 유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두려운 눈빛으로 준열을 쳐다보았다.
"그럼 정말로 그 인형이 귀신들린 인형인 거예요?"
"지금부터 그걸 확인하러 가는 거야."
준열은 그렇게 말하며 유리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커피를 아깝다는 듯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계속>
첫댓글 와- 먼저 리플달고 감상하러 갑니다;;;;
인형에 대한 글 너무 조타는 ㅋ 막 인형모습이 상상이 되서 오늘저녁에 꿈에 나타날꺼같은데요? 헤헷.. 잘읽었구요 항상 건필 하십시요~
왠지 제 방에 있는 인형들이 밤마다 움직일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무섭다는...그래도 재밌어요~ 얼렁 다음것도^^; 감기 조심하세요~
우와~~눈을 뗄수가 없네요.....Merry christmas~~입니다.
선리플 후감상..ㅋㅋ 그래도 후회없는 제이슨 친구^^님의 글! 아싸~
우와..재밌네요!! 빨리 다음글 보고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인형은 너무 무섭다는 ㅠㅠ)
오오오오~ 재밋어요. 난 왠지 사람모양 인형은 싫더라~ 동물 인형음 몰라도.
왠지 사탄의 인형이 생각나는군요.. 처키보단 예쁜 인형이겠네.ㅋㅋㅋ
헐헐~ 너무 잼나네요 ^^* 담편두 정말 기돼된다는 *0* 언넝 올려주세요~
우왕~~ 계속인줄 몰랐어요 ㅠ.ㅠ 다음내용 너무너무 궁금한데....... 저도 메리 크리스마스구요,, 메리 주말입니다~~ *^^*
참,, '????'가 '오프라인 스케쥴'인가요?? ㅎㅎ
아~~~무섭당...근데 담편이 넘 기대되요....
엇..우왕...넘잼따 담편후딱 기대~!!
역시 제이슨 친구님은 항상 쓸때마다 흡인력이 대단해요!!
저는 매번 회사에서 글을 읽게 됩니다..자주 상주하는 곳이기 때문이고 또 제가 겁이 많아서(그런데도 공포소설은 좋아하죠^^) 사람들이 많으면 괜찮을거 같아서..하지만 제이슨친구님 글을 읽을때면 회사인것도 정말 소용이 없을 정도로 섬뜩한 기운이 매번 몸을 쓸고 지나갑니다..담편 정말 기대 됩니다..
다음편이 마구 궁금해지는.ㅠㅅㅠ 너무 재미있어요!ㅎ
재밌어요^^ 또 제이슨님의 글을 보다니~너무 기쁩니다^^
답글주신 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suronge 님, 예리하십니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계시는 군요~~
재물을 가져다 받쳤다==>바쳤다 입니다;;;;;넘 잼나네요~~홧팅!!
인형이......무서워요....
소름 돋아 ㅡㅡ
저..ㅠㅠ 게시판에 오프라인 스케줄찾고 잇었어요.ㅠㅠㅠ
아;; 난 오프라인 스케쥴 어딨나 막 찾아봤는데.ㅋㅋ
흥미롭네요. 아주 세세히 기록되어 있네요.. 읽는데 오싹 할 정도였어요.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