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핀 교정
코로나가 확산하는 가운데 강력한 태풍이 제주도 근처까지 올라온 팔월 넷째 수요일이다. 열흘간 방학을 끝내고 개학이다. 새벽녘 아침밥을 해결하고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려 와실을 나섰다. 태풍 경로가 서해상 따라 황해도로 상륙해 우리 지역은 직접 영향권에 비켜선지 하늘에 구름만 끼어 있었다. 산책은 줄이고 학교로 향해 교정으로 들어 방학 기간 궁금했던 봉숭아를 살폈다.
앞뜰 화단 좌우와 국기게양대 주변 봉숭아는 열흘 사이 꽃잎을 달고 나왔다. 흙살이 얇은 곳은 수분 부족으로 일부 포기는 시들어갔다. 태풍이 비를 몰아올 예정이라 물은 주지 않아도 되겠으나 바람에 잎줄기가 부러지고 쓰러질까봐 염려 되었다. 서편 울타리 가장자리 심은 봉숭아도 꽃이 피는데 땅이 메말라 잎줄기가 시든 그루가 보였다. 뒤뜰에는 더 많은 봉숭아가 꽃을 피웠다.
전임지에서도 봉숭아를 가꾸었다. 그 학교는 뒤뜰이 아주 넓고 고목 벚나무가 여러 그루였다. 벚꽃이 피었다가 지면 꽃잎은 눈처럼 쌓였다. 그 꽃잎은 빗자루로 쓸어 치울 정도였다. 벚나무 낙엽은 서리가 오기 훨씬 이전 여름부터 시나브로 떨어졌다. 내가 청소지도를 맡았던 구역으로 여학생들보고 시키지 않고 아침저녁 내가 쓸었다. 급식소와 가까운 자투리 공간 봉숭아를 키웠다.
작년 옮겨온 교정 몇 곳에 준비한 꽃씨를 뿌렸더니 발아가 시원찮았다. 그런 속에 뒤뜰 절개지 옹벽 틈새 봉숭아가 싹을 틔워 꽃을 피웠더랬다. 거기서 꽃씨가 떨어져 그 자리 올해도 절로 싹이 텄다. 학교 앞 면사무소에서 가꾸는 꽃길에서 봉숭아 싹이 비좁게 돋아나 속아주면 좋을 듯했다. 그래서 장마가 진행 중이던 칠월 초순 일요일 오후 교정에 들어 봉숭아를 옮겨 심었다.
교정 앞뜰과 서편 울타리 가장자리와 뒤뜰 절개지 옹벽 틈새다. 향나무나 목련나무 밑이거나 옹벽 틈새라 땅이 무척 척박했다. 흙살이 얇았고 영양분이 적었다. 마침 교정 수목에 주는 퇴비가 있어 새벽녘 학교를 찾아 포대를 끌러 포기마다 주었다. 이후 말라 죽은 포기는 보식을 하고 잡초도 뽑아주었다. 그래도 잎줄기 세력이 약해 원룸 주인으로부터 비료를 좀 구해 살짝 뿌렸다.
교정 곳곳 심겨진 봉숭아는 장마철에 잎줄기가 싱그럽게 자랐다. 동료들은 누가 심은 봉숭아인지 모르다가 내가 심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방학에 들던 날 교장한테 창원으로 돌아가 잘 지내다 오겠노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교장은 학교에 출근할 때마다 봉숭아를 보면서 나를 떠올린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개학하면 알록달록 꽃을 피운 봉숭아가 절정이지 싶었다.
어느 학교에서나 교정에 수목과 화초가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 봄날에 꽃을 아름답게 피웠다. 가을에 피는 꽃도 있었다. 여름은 녹음이 우거지고 뙤약볕이라 교정에서 피는 꽃은 보기가 드물다. 무궁화나 배롱나무에서 피운 꽃 정도 볼 수 있다. 산야에서 절로 자라 피는 들꽃도 여름철은 드물다. 달맞이꽃이 흔하고 맥문동이나 꿩의다리나 노루오줌이 피운 꽃을 봤다. 물봉선도 있다.
교정에서 봉숭아를 가꾸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물봉선과 닮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봉숭아 사촌쯤 되는 물봉선 꽃이다. 나는 이 꽃을 완상하기 위해 방학을 맞아 창원에 머물면서 도청 뒤 용추계곡을 두 차례나 찾아갔다.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선홍색 꽃을 피우는 물봉선이다. 용추계곡은 물봉선이 군락으로 자라는데 근래 사람들 발길에 밟혀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나 산야를 누비면서 들꽃을 감상함이 취미렷다. 주말이나 방학이어야 시간을 낸다. 퇴직 전까지는 방학이 아니면 주중 시간은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근무 중 틈을 내서 한여름에서 가을 들머리까지 꽃을 볼 수 봉숭아를 가꾸고 있다. 동료들한테 치사를 듣기는 분에 넘친다. 몸을 움직여 운동이 되었고 아침저녁 보살핀 식물은 내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었다. 20.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