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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국 투자 제한 ‘가드레일’ 조항 부과
회계 자료·영업 기밀 제출 의무도 부담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압박도 커질 듯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훼손될 수도
삼성전자가 미국 현지 투자에 대한 대가로 미국 정부로부터 60억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받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한화로 8조 원대에 달하는 거액이다. 반도체 보조금은 지난 2022년 8월 발효된 미국의 ‘반도체 법’에 근거한 것으로 반도체 생산과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에 제공된다.
그러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영업 기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제출해야 하고 일정액 이상 초과 이익이 발생하면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무엇보다 첨단 반도체 기술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미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대중국 투자가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이 공짜가 아니라는 의미다.
삼성전자 텍사스주 반도체 공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블룸버그는 15일 복수의 소식통을 이용해 미국 정부가 이달 말 삼성전자에 대한 지원금 규모를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지난 12일 연합뉴스 기자를 만나 “조만간 미국 정부가 우리 기업을 대상으로 한 (반도체) 지원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가 60억 달러 이상을 받을 것이라는 보도와 함께 대만의 반도체업체인 TSMC도 약 50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반도체 법은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생산 보조금으로 총 390억 달러, 연구개발(R&D) 지원금으로 총 132억 달러 등 5년간 총 527억 달러를 지원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미국 상무부는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에 더 많은 지원금을 배정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텍사스주 오스틴에 미국 현지 공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 2021년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새로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가 TSMC보다 많은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관련해 공장 규모 확장 등 추가 투자 계획이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삼성전자와 TSMC의 보조금 규모는 예비적 합의로 변경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투자한 대가로 거액의 보조금을 받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보조금 수혜 대상자인 삼성전자는 물론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뿐 아니라 중국으로 반도체를 수출하고 중국 현지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게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이 대중국 투자를 확대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국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 지원 계획. 연합뉴스.
미국의 반도체 법은 1억 5000만 달러 이상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초과 이익이 발생하면 보조금의 최대 75%를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또 상세한 회계 자료와 영업 기밀에 해당하는 각종 정보를 제출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중 제품별 생산 능력과 가동률, 예상 웨이퍼 수율(결함 없는 합격품 비율), 연도별 생산량과 판매 가격 증감 등은 기업의 영업 기밀에 해당된다. 미국과 대만,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공개가 꺼려지는 매우 민감한 정보다. 미국 정부를 통해 경쟁 기업으로 유출되면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볼 수 있다.
더 부담스러운 부분은 중국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가드레일’ 조항이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중국에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때 ‘가드레일’을 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보조금을 반환해야 한다. 보조금을 받는 순간 삼성전자는 중국 현지 공장을 첨단화하는데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SK하이닉스 등 다른 반도체 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반도체 생산과 수출에서 한국의 주요 파트너 국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 공장을 두고 있다. 자칫 미국의 보조금이 독배가 될 수 있다.
개별 기업에 대한 반도체 보조금 지급 요건과는 별개로 미국은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자국 기업에 대해선 이미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막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네덜란드 등 주요 반도체 장비 수출국에도 비슷한 수준의 통제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재계는 지난해 말부터 한국도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을 통해 첨단 반도체 장비가 중국으로 유입되면 견제 정책이 무력해진다며 미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동맹 외교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도 “반도체 장비의 수출 통제에 대해서는 두 나라간 협의가 돼 온 상황”이라고 인정했다.
삼성전자가 거액의 보조금을 받는다면 이를 빌미로 미국은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더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내 중소·중견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은 한국 반도체 장비의 주요 시장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미국의 수출 통제에 동참했다가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
출처 : 미국 삼성전자에 보조금 8조 준다지만…“공짜 아니다” < 경제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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