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가이자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USC)에 자신의 이름을 딴 댄스 스쿨을 설립하고 뮤직센터에서 유명 댄스 시리즈를 만들어 로스앤젤레스(LA) 춤판을 바꾼 글로리아 카우프먼이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LA 타임스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카우프먼의 사망은 2009년 그로부터 2000만 달러를 선물로 받아 글로리아 카우프먼 프레젠츠 댄스를 설립한 뮤직센터 대표에 의해 확인됐다. LA 무용 역사에 가장 큰 기부금인 이 돈은 조프리 발레단,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로열 발레단, 앨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 발레단 히스파니코 등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용수, 극단 및 회사의 지속적인 공연 무대에 쓰였다.
뮤직센터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레이철 무어는 성명을 통해 "뮤직센터에 건넨 그녀의 선물 덕에 우리는 수 많은 LA 사람들과 전 세계 방문객의 마음, 정신, 영혼에 춤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가져올 수 있게 됐다"면서 "글로리아의 비전 있는 리더십과 관대함의 결과로 오늘날 글로리아 카우프먼 프레젠츠 댄스 앳 더 뮤직센터는 LA 문화 구조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범수 USC 임시총장은 대학 홈페이지에 올린 추모사를 통해 "춤에 대한 글로리아의 사랑은 전염력이 있었고, 그녀는 전 세계 사람들이 예술의 변혁적인 영향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그 사랑을 전파했다"고 밝혔다.
카우프먼은 2012년 USC에 선물을 하겠다고 발표한 뒤 LA 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여기 LA에는 (댄스) 재간꾼들이 너무 많다"면서 "그들이 갈 곳이 없다. 우리는 최고의 학생, 최고의 교사를 확보하고 싶고, 아이들이 졸업하면 즉시 생계를 꾸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털어놓았다.
1999년에 그녀는 현재 글로리아 카우프만 홀이라고 불리는 UCLA 여자 체육관의 복원 자금으로 1800만 달러를 쾌척했다. 또 앨빈 앨리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 학부생을 위한 4개의 평생 기부금을 포함해 뉴욕시의 학교에 돈을 기부했다. 그녀가 자금을 지원한 줄리어드 학교 댄스 스튜디오도 그녀의 이름이 붙여졌다.
춤이 고인의 주 관심사였지만 그녀의 영향력은 LA의 문화 전반에서 느껴졌다. 그녀는 LA 현대 미술관의 창립 멤버였으며 LA 카운티 미술관에도 기부했다. 또 게펜 플레이하우스 창립 이사였으며 극장에 야외 리셉션 공간을 짓기 위해 돈을 쾌척했다.
카우프먼은 가능한 많은 이들이 춤을 경험해야 한다고 믿었고 소외된 학생들이 지역사회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최선을 다했다.
고인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사무엘과 에바 핑키스를 부모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토모티브 뉴스의 프로덕션 매니저였으며, 어머니는 유대인 공동체의 다양한 자선단체에서 리더 역할을한 주부였다. 아버지의 발 끝에 선 채로 춤을 추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그녀는 또 디트로이트의 많은 재즈 클럽을 들락거리며 평생을 이어온 음악과 춤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어릴 적 사시 진단을 받아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자연스레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1954년 카우프먼은 건축업자이자 기업가인 도널드 브루스 카우프먼과 결혼했으며, 1957년 사업가이자 저명한 자선가인 엘리 브로드와 힘을 합쳐 카우프만 앤드 브로드(현 KB 홈)라는 주택 건설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1963년 카우프먼 가족은 회사가 캘리포니아로 확장한 후 헌팅턴 하버로 이사했다.
3년 후, 그들은 다시 비벌리 힐스로 옮겼다. 1969년 카우프먼 부부는 앰버 힐이라 불리던 48에이커 규모의 브렌트우드 목장으로 이주했다. 1983년 도널드는 실험용 복엽기를 조종하다 추락해 사위 에얄 호르비츠와 세상을 등졌다.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글로리아는 자선 활동에 투신했다. 그녀는 글로리아 카우프먼 재단을 설립하고 첫 번째 메이저 프로젝트로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했던 남편 이름으로 도널드 브루스 카우프먼 브렌트우드 지점 도서관을 헌정했다.
고인은 네 자녀 커티스, 게일, 로라, 쥐아데, 10명의 손자들, 13명의 증손주를 유족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