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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29 년
평안북도 구장군에 위치한
묘향산 양지 바른 실바타운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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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아짐” 이
아침부터 몹시 분주하게 난리 부르스를 쳐싼다.
아마도 심상치 않은 외출을 하려나보다.
2019년도에
남편과 사별을 하고 나서
5년 후에 이곳 묘향산 양지바른 실바타운 입학시험에 합격해서 들어와 부렀다.
젊어서는
꽤나 건들 건들 거림시러
약방의 감초 마냥
동네 일이든, 총선거든, 대통령 선거든, 학교운동회에까지도 안 나서는데가 없었다.
물론
남편의 사회적인 지위와 벌어 드리는 돈으로 넉넉하게 살았던 그 시절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 할마씨는
“건달아짐” 이라는 애칭을 선물로 받기도 했었다.
우리 보통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도 안하고 놈팽이 처럼 이곳 저곳 멜급시 돌아댕기며
돈이나 축내는 그러한 나쁜 이미지의 건달은 더 더욱 아니었다.
오늘은
서울
신당동에 살고 있는
5년전에 아들에게 물려준 양옥집에 다녀 와야할 일이 있는갑다.
머리카락이 듬성 듬성 해갓고
머리카락 틈새로 피부들이 드러내 보이고
몇 개 꼽혀있는 것 마저도
머리카락 색깔이 꼭 갈색으로 변해갓고는
늘상
건달 아짐은
그 핸디켑을 커버 하기위해 머리엔 털실로 예쁘게 짠 빵 모자를 쓰고 다닌다.
살색 실크 천에다가
가볍게 솜을 깔아놓고 1 1 2, 촘촘히 재봉틀로 누빈 상의 잠바를 입고
순 모직 천으로 된
약간은 두터운 바탕에
희미하게 놓아진 바둑판 무늬에
진 초록색의 바탕색 치마를 길게 입고서
벵언에 가면 주로 간호사 선생들이 신고있는
아주 가볍고 펜안헌
쿠숀이 있는
엷은 갈색 신발을 신고
한 손에는 핸드백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새 하얀 가재천 에다가
연분홍색 실로 테두리를 뜨개질로 마감한
손수건을 꼬옥 쥐고서
실바타운 정문을 천천히 걸어 나간다.
이때
타운 정문 뽀짝 옆에
잔디밭 위에 놓여진 아주 오래된, 썩어 문드러져 가는 목재 벤치에 홀로 앉아서
고개 떨군채로
썩어 문드러져가는 목재 벤치 귀퉁이를
멜겁시 손톱으로 긁어 파 쌌는 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얼큰이”
오늘 아침에 식당에서야 건달아짐이 외출 할것같은 눈치를 알아챈 얼큰이는
시방
속이 속이 아니어분다.
얼큰이도
건달아짐의 아들내 집이 서울 신당동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얼큰이의 아들 집도 신당동에서 가까운 장충동에 있기 때문에
아들 집에 가 본지가 오래 되어서
자식들 얼굴 본지도 오래 되어서
가 보고 싶지만
가 보고 싶지만
얼큰이는 젊어서
너무나도 가정을 돌보지않고
바람만 피우다가 가정 불화로 부인을 일찍 잃어 버리고
자식 내외가 맞벌이 부부로
어렵사리
살림을 꾸려왔던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
“야, 건달!”
“잘, 댕겨 와라이”
포도시 주거가는 목소리로 한 마디 던지고는
엉금 엉금 걸어서 거실로 들어가분다.
한편
건달아짐은 구장읍 버스 터미널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평양역에 도착한후에
서울행 고속열차 표를 사 놓고 그 출발시간을 기다린다.
평양역 대합실에서.
그 고속열차를 타고 서울 집에 들어오니
초저녁 일곱시다.
거실 쇼파에 앉아서 잠시 쉬고있는 건달 아짐 앞에는
시방
아들이
부엌에서 분주히 무엇인가를 해싼다.
“엄마 난 일년 중에 이때가 너무 좋더라구요, 뭐든 굽기만 하면 되잖아요”
(I love this time of year, mom. I just grill everything)
한참을
후라이 팬 위에다가 콩기름을 뿌리고서는 딸기를 굽고 있었다.
한참을 이리 저리 저어 가면서 딸기를 굽고 있다가
“얼러리여! 딸기는 구워 먹는게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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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워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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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니 쇼파에 앉아서 아들의 행동거지를 실피고있던
건달아짐 왈,
“야, 등록금 도로 가져와라이”
대학까지 마치고도
기본적인 것을 모르는
아들을 보고
건달아짐은 등록금을 도로 내 놓으라고 해싼다.
순천서
헹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