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용론(體用論)과 천인상응론(天人相應論) 1) 권근의 저술과 경학의 개척 양촌(陽村) 권근(權近)(1353-1409)은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제자이며, 고려 말 조선 초의 도학자로서 조선시대 도학의 경학을 개척하는 역할과 더불어 성리설의 기본적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고려 말 1389년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자마자 정치적 문제와 연관되어 익주(益州, 익산)로 유배당했으며, 39세 때(1390) 유배지에서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그의 경학사상과 성리설의 기본구조를 도상(圖象)으로 제시한 것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듬해 그는 충주 양촌(그의 호 ‘양촌’도 이 지명을 따온 것이다)에서 오경(五經)의 연구에 착수하여 천견록(淺見錄)이라는 명칭을 붙여 『주역천견록』, 『시천견록』, 『서천견록』, 『춘추천견록』을 저술하였으며, 「예경절차고증(禮經節次考證)」의 저술에 착수하였는데, 이 작업은 54세 때(1405) 『예기천견록』으로 완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현존하는 우리 나라 경전 해석의 경학 저술로 최초의 업적인 『오경천견록』이다. 그는 조선왕조가 건국된 이듬해 42세로 다시 벼슬에 나갔으며, 조선 초기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보냈던 외교 문서를 포함하여 국가의 주요 문서들이 대부분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할 만큼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장가로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권근의 저술로는 『동국사략(東國史略)』이라는 역사 저술도 있는데 도학적인 역사관에 의해 삼국시대 역사를 비판적으로 저술한 것이며, 그의 시문집으로 『양촌집(陽村集)』도 있다. 권근이 조선 초기 도학의 정립 시기에 남겼던 가장 큰 사상사적 업적은 경학과 성리설에 관한 저술이다. 권근에 앞서서 고려시대에도 유교 경전을 주석했던 경학적 저술이 있다. 곧 고려 예종 때 『논어』를 주석한 김인존(金仁存, 초명 김연 金緣, ?-1127)의 『논어신의(論語新義)』와 『주역』을 주석한 윤언(尹彦, ?-1149)의 『역해(易解)』를 들 수 있지만 이 두 저술들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권근의 『오경천견록』은 지금 남아 있는 우리 나라 경전 주석의 최초 저술이다. 유교사상이 우리 나라에 전파되어 온 이후 삼국시대부터 활발하게 발전되어 왔지만 그 시대에서 경전 주석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당시 우리 나라의 유교가 중국의 유교사상을 수입하는 데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며, 일종의 실천적 가치규범이나 사회제도의 양상으로만 전개된 것일 뿐이요 독자적인 학문적 근거를 확립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에 비해서 권근이 경전 주석을 했다는 것은 조선시대 도학이 학문적으로 새로운 수준을 형성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매우 의미 있는 사상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권근의 『입학도설』은 도학의 다양한 학문영역을 간결한 도상(圖象)과 도설(圖說)의 체제로 제시한 입문서로서 도학의 개론적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성리설을 비롯하여 경학과 예학 등 다양한 내용을 수용하고 있다. ‘입학’이라 한 것은 초학자들이 도학에 착수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 입문서라는 의미이며, ‘도설’은 권근이 다양한 학문체계의 구조를 그림으로 도해(圖解)하여 설명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도설’의 방법은 권근에 의해서 수용되어 처음으로 적용시킨 것이며, 조선시대 도학의 전통에서 광범하게 확산되고 발전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권근의 경학적 업적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먼저 『사서오경구결』을 들 수 있다. 이 저술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는데 ‘구결(口訣)’이라는 것은 우리말로 뜻(훈, 訓)을 새겨 토를 달아 놓은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유교 경전을 우리 언어의 어감으로 소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경전이 한국사상으로서 접합할 수 있는 발단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그의 경학을 대표하는 저술은 『오경천견록』인데, 천견록은 옅은 소견으로 해석한 것을 기록한다는 겸사의 말이요, 그는 이를 통해 매우 독창적인 경전 주석의 안목을 발휘하고 있다. 『오경천견록』은 초기의 저술이기는 하지만 매우 창의적인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것이다. 2) 경학구조의 체용론적 인식 권근이 제기하고 있는 경전 주석의 성격을 먼저 『입학도설』을 통해 살펴보면, 그는 여기서 특히 ‘오경’을 체용론(體用論)의 구조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체용론’의 체 · 용(體 · 用)개념은 원래 불교에서 온 것이지만 세계인식을 위한 도학의 이론체계에서는 기본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체용론적 인식은 모든 존재를 본체와 응용의 두 가지 존재양상으로 대비시켜 파악하는 방법이다. 권근이 『입학도설』의 「오경체용합일지도(五經體用合一之圖)」에서 ‘오경’을 통일된 체용(體用) 구조로 파악하고 있는 사실은 경학사 전반에서 보아도 매우 독창적 해석으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주역』을 ‘오경’의 체(體, 전체)로 제시하고 『춘추』를 ‘오경’의 용(用, 대용 大用)으로 제시함으로써 『주역』과 『춘추』를 ‘오경’의 중심축으로 파악하며, 이 두 경전이 체용관계를 이루는 구조로 보고 있다. 나머지 세 경전인 『서경』 · 『시경』 · 『예기』는 『주역』과 『춘추』 사이에 두어 체용이 통합되어 개별적 영역에 집중하고 있는 각론적 부분으로 제시하였다. 여기서 『서경』은 상과 이라는 방법으로 정사(政事)를 말하는 것이고, 『시경』은 언어로 인간의 성품과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선을 권고하고 악을 징계하는 도덕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며, 『예기』는 행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행위는 기본적으로 순서에 맞는 절도와 행동양식이나 의복 · 도구 등으로 문채가 있게 꾸미는 것이라 제시한다. 이처럼 권근은 ‘오경’이 공자에 의해 정리되었던 각각의 경전을 모아 놓은 병렬적 관계로 보는 평면적 시각이 아니라 체용구조로서 파악하여 ‘오경’의 구조적 통일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경학체계를 구성하였다. 나아가 그는 『입학도설』의 「오경각분체용지도(五經各分體用之圖)」에서 ‘오경’의 각 경전도 체용적 구조로 파악하여 각 경전의 기본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곧 『주역』에서는 그 체(體)를 ‘이(理)’라 하고, 그 용(用)을 ‘도(道)’라 규정하고 있다. 『주역』은 본체로서 ‘이’가 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 ‘도’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는 천지에 있는 것으로 우주론적 본체를 가리키는 것이며, ‘도’는 성인(聖人)에 의해 드러나는 도로서 인간 삶의 도리를 가리키는 것이라 해석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주역』의 체용구조를 통해 우주와 인간, 곧 천 · 인(天 · 人)을 대비시키고 이치와 도리를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서경』에서는 본체를 ‘흠(欽)’(공경함)이라 하고, 작용을 ‘중(中)’(중용)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경』의 본체를 이루는 ‘흠’은 ‘성인이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이요 작용을 이루는 ‘중’은 ‘성인이 세상을 경영하는 방법’이라 파악한다. 『서경』의 근본정신이 하늘을 두려워하고 하늘을 공경하여 섬기는 것이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주며, 또한 『서경』의 근본정신이 현실에 응용되는 원리를 ‘중’이라 한 것은 바로 순임금이 양쪽 극단을 다 포용하여 그 중용의 원리를 백성에게 실현하는 것이라 보고 있다. 이 ‘중’의 방법은 요 · 순 · 우로 전해 내려오는 성인의 심법(心法)으로서 『서경』(대우모, 大禹謀)에서 언급되고 있는 “능히 그 중용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윤집궐중, 允執厥中)는 것을 채택한 것이며, 이 ‘중’의 개념은 주자가 『중용장구』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도학적 도통론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시경』의 본체는 ‘사무사(思無邪)’로서, 이 말은 공자가 시(詩)를 한 마디로 규정하여 “생각함에 있어서 사특함이 없다.”고 한 언급에서 끌어온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 정서를 표현하는 언어로서 시의 본질이 ‘진실함’에 있는 것임을 밝혀 주는 말이다. 진실한 언어로서 시의 작용은 ‘착한 마음을 감동해서 발현하게 하고 나태한 의지를 징계하는 것’이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시경』의 기능을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것’(권선징악)이라 보게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예기』의 본체는 『예기』(곡례, 曲禮) 첫머리에서 제시되고 있는 말로서 ‘공경하지 아니함이 없다’는 뜻의 ‘무불경(毋不敬)’이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예(禮)’의 근본정신이 신(神)에 대한 경건함 내지 인간에 대한 공경함으로써 ‘경(敬)’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예기』의 작용은 ‘어진 사람들로 하여금 예의 절도를 감히 넘어가지 못하게 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노력하여 이 절도에 이르도록 하게 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예법의 절도는 구체적 행위의 기준으로서 지나치거나 못미치는 경우를 모두 이 기준에 맞도록 하여 일치시키게 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춘추』에서 본체는 ‘도’요 작용은 ‘권(權)’으로 제시되고 있다. 『춘추』의 본체를 ‘도’라 하는 것은 『역경』의 작용을 ‘도’라 제시된 것과 연관시켜 이해할 수 있다. ‘도’는 ‘오경’의 본체가 되는 『주역』의 작용이면서 ‘오경’의 응용이 되는 『춘추』의 본체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춘추』의 본체로서 ‘도’는 ‘천지의 이치에 근본하는 것’이요 『주역』의 작용으로서 ‘도’는 ‘성인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라 대비되고 있다. 그것은 같은 ‘도’이지만 본체로서의 경우와 작용으로서의 경우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춘추』의 작용으로서 ‘권’은 ‘성인의 마음에서 행해지는 것’으로서 역사의 현실 속에서 부딪치는 문제에 대해 ‘도’에 따라 성인이 결단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결단은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도에 의한 결단인데, 이 도는 현실에서 실현되는 원리이자 동시에 우주의 이치에 근본을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권도(權道)’는 인간의 욕심이 아니라 성인의 마음에서 천리(天理)로서의 도에 따라 실현되는 것이다. 권근은 『입학도설』에서 ‘오경’의 구조적 인식과 더불어 「대학지장지도(大學指掌之圖)」와 「중용수장분석지도(中庸首章分釋之圖)」에서 『대학』과 『중용』의 구조도 도상(圖象)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대학지장지도(大學指掌之圖)」는 퇴계가 『성학십도(聖學十圖)』 속에 채택하여 후대에 까지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그는 ‘3강령’을 체용(體用) · 본말(本末) 구조로 파악하여 ‘명명덕(明明德)’, (체 體 · 본 本), ‘신민(新民)’(용 用 · 말 末), ‘지어지선(止於至善)’(체용의 표적)으로 제시하였다. 또한 ‘8조목’의 경우도 ‘격물 · 치지(格物 · 致知)’(지, 知)와 ‘성심(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行, 행)을 지(知) · 행(行)의 체계로 제시하고, ‘제가(齊家) · 치국(治國) · 평천하(平天下)’(극행, 極行)는 행을 극대화시킨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곧 개인의 차원에서 지 · 행의 실현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하여 극대화시킨 것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8조목을 ‘공부(工夫)’(노력)의 단계와 ‘공효(功效)’(효과)의 단계로 구분하여 도학의 위학론적 체계를 밝히고 있다. 권근(權近)의 『입학도설(入學圖說)』에 실려 있는 ‘대학지도(大學之圖)’ 퇴계(退溪)도 『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 이 도(圖)를 수록하고 있다. 권근은 「중용수장분석지도」에서 『중용』 제1장의 핵심 개념으로 천명(天命) · 경(敬) · 교(敎)를 제시하였다. 곧 ‘천명’은 성(性) · 도(道) · 교(敎)의 근본으로서, ‘사람과 사물의 성품이 같은 이치’(인물동성지리, 人物同性之理)라 하여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의 성리학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한 ‘경’은 고요할 때의 공부로 ‘존양(存養)’(마음을 간직하고 성품을 배양함)과 활동할 때의 공부로 ‘성찰’(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살피고 반성함)의 양면으로 수양론의 기본과제를 제시하였으며, ‘교’는 마음을 바르게 하는 ‘中’(체, 體)과 기질을 순조롭게 하는 ‘화(和)’(용, 用)의 체용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경’은 공부요 ‘교’는 공효로서 수양론과 위학론의 일관된 구조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3) 역학(易學)과 예학(禮學)의 체용구조 『오경천견록』 가운데 『시천견록』(시설, 詩說), 『서천견록』(서설, 書說), 『춘추천견록』은 분량이 빈약하여 독립된 저술이라기보다 경설(經說)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주역천견록』은 3책 122쪽으로 그 분량은 여전히 적은 편이나 정자 · 주자의 역학에 기초한 일관된 해석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역(易)’의 개념을 변역(變易)으로 파악하고, 천도(天道)의 변역으로서 항상하여 중단이 없는 이치인 ‘성(誠)’과 인도(人道)의 변역으로서 변하면서 도를 따르는 의리인 ‘중(中)’을 역(易)의 체(體) · 용(用)구조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는 『주역』의 상경(上經)을 ‘대대(待對)의 체(體)’로 천도(天道)라 하고, 하경(下經)을 ‘유행(流行)의 용(用)’으로 인도(人道)라 하여, 『주역』의 상경 · 하경을 체 · 용구조와 더불어 천 · 인구조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나아가 권근이 가장 많은 힘을 쏟은 경학 저술은 『예기천견록』이다. 그는 스승 목은(牧隱) 이색(李穡)으로부터 이 저술을 하도록 위촉을 받았을 뿐 아니라 조선왕조 건국 초기에 국가체제를 정립하기 위해 예법의 체계적 정리가 시급하게 요구되었던 사회적 요청에 부응하여 이 저술을 하였던 것이다. 『예기천견록』은 원(元)나라 진호(陳澔)가 주석한 『예기집설(禮記集說)』을 기초로 도학적 체계로 정밀하게 분석한 저술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한국 경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업적으로 높이 평가될 필요가 있다. 『예기천견록』 속에서도 권근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부분은 첫머리의 「곡례(曲禮)」 편인데, 경(1장)과 전(10장)으로 구성한 주자의 『대학장구』 체계를 그대로 적용시킨 것으로 「곡례장구」로서 독립시켜 볼 수도 있는 치밀한 분석체제를 보여 주고 있다. 그는 「곡례」 편의 경(1장)에서 ‘무불경(毋不敬)’(공경하지 않음이 없다)을 예의 체로 보고, ‘엄약사(儼若思)’(엄숙하기를 생각하는 듯하다)는 밖으로 모습에 드러나는 경(敬)이 마음 속에 근본하는 것이라 하고, ‘안정사(安定辭)’(편안하고 명확하게 말하다)는 마음 속에 간직된 경이 밖으로 언어에서 드러나는 것이라 하며, ‘안민재(安民哉)’(백성을 편안하게 하다)는 ‘엄약사 · 안정사’의 공부가 백성을 다스리는 데 공효로서 나타나는 것이라 한다. 여기서 ‘엄약사 · 안정사’가 수기(修己)요, ‘안민재’는 치인(治人)으로서 『대학』의 ‘명명덕(明明德)’과 ‘신민(新民)’의 구조에 대응되는 것이라 본다. 이어서 「곡례」 편의 전(10장)에서는 경(1장)의 기본강령이 구체적으로 의례의 원리에서 적용되고 해명되는 양상으로서 분석하고 있다. 4) 성리학의 인식구조 권근의 성리학적 인식은 당시의 도학자들 가운데 가장 정밀한 체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성리학의 기본쟁점을 간결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탁월함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성리설은 『입학도설』의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와 「천인심성분석지도(天人心性分釋之圖)」에 집약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특히 「천인심성합일지도」는 주렴계의 「태극도설」과 주자의 『중용장구』의 성리설을 기초로 천인(天人)관계의 심성론적 구조를 제시한 도상(圖象)으로서 성리설의 전체적 체계를 하나의 도(圖)에 집약하는 데 놀라운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하나의 인간 형상 속에 머리에 ‘천(天)’(명, 命)과 가슴에 ‘심(心)’(성 · 정 · 의)을 배치하고, 배에 ‘경(敬)’과 왼쪽 손발에 ‘성(誠)’과 오른쪽 손발에 ‘욕(欲)’을 배열하는 상징적 배치구조를 보여 주어 하나의 인체에 ‘천’과 ‘심’의 천인상응(天人相應) 구조를 보여 주고 있다. 동시에 ‘경(敬) · 성(誠) · 욕(欲)’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편에서는 수양의 극치로서 군자를 거쳐 성인이 하늘과 일치하는 이상을 제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욕망에 빠져 금수(禽獸)로 접근하는 타락의 양상을 제시하여 수양론의 방법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인체를 전체적으로 태극(이, 理) 과 음양(기 · 질)으로 구성되어 있는 존재론적 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천인심성분석지도」에서 ‘천’ 개념을 ‘일(一)’과 ‘대(大)’의 결합으로 지적하면서, ‘일’이란 이치에서는 ‘무대(無對)’(절대)요 행위에서는 ‘무식(無息)’(영원)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고, ‘대’는 본체로 말하면 ‘무외(無外)’(극대)요 조화로 말하면 ‘무궁(無窮)’(무한)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이 하늘은 ‘모든 조화의 근원’인 동시에 ‘모든 다양성의 근본’으로서 ‘성(誠)’이라 파악하며, 하늘은 저 높은 위에서 나날이 내려다보고 계신다는 사실과 인간은 하늘의 위엄을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언제나 하늘의 명령을 간직해야 한다는 당위에 따라서 ‘경’을 제시함으로써 성 · 경(誠 · 敬)의 수양을 통해 인간과 하늘이 하나로 일치할 수 있는 천인 관계의 구조를 해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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