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론적으로는 사실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까이 할 수 있고, 특히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인간적인 계획이나 힘, 세상적인 능력이나 방법들로는 되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고, 게다가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도 결코 별개일 수 없는 것이며, 직접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며 감동하심의 증거인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구원, 거듭남의 방증들 중 하나인 것이자 확실한 것으로..
조금만 따지고 봐도 상상도 다 못하는 복이자 능력인 것이고, 결코 아무나에게 주어지거나 누구나가 다 누릴 수 있는 은혜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까지 이어져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효력과 누림들이 되기까지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인도 안에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이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어떤 식으로든, 진정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무엇보다 직접적, 실제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성령님의 수많은 역사와 간섭과 강권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물론 이러한 성경책이라는 것 자체가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연약한 우리 인생들이 도구가 되어 다양한 문제와 한계들이 가득한 현실적인 여건과 환경들 가운데 기록되어 지고 전해지며 남겨질 수 있게 된 것이기에 여러 과정과 상황들 상 문제 아닌 문제들이 없을 수는 없는 것으로, 예를 들면 서로 다른 여러 지역들에서 발견된 오래 된 사본들 간에 아주 지극히 일부분에 있어 받침이 조금 다르다든지, 또한 서로 비교할 때 어떤 부분이 극히 일부 누락되었다든지 등과 같은 인간적, 과정적 오류로 보이고 착오같이 보이는 부분들도 없지는 않으나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것들 하나하나 조차도 하나님의 손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인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전적인 통치와 인도와 섭리 가운데 절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위치와 능력까지는 훼손할 수는 없는 정도까지만 허용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와 정체성을 잃지 않는 선까지의 인간적, 실질적 차이와 누락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고,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서 바꾸어 말하면 온 우주의 주인이시자 참새 한 마리까지 기르시며 순간순간까지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딱 그 정도까지만 그러한 면들을 그냥 두시고 허용하신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성경의 모든 말씀들은 우선 아무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전적인 뜻과 계획과 섭리 가운데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그 시작부터 성령님께서 기뻐 일하시기에 합당한 신앙을 가진 믿음의 선배들이나 선지자들, 사도들, 곧 본질적으로는 성령님께서야 말로 그 본질과 속성이 말씀이시자 별칭이 말씀의 영이시기에 다른 그 누구보다 바로 전적인 말씀의 신앙으로 준비된 자들을 통해서..
게다가 그때그때, 순간순간마다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감동과 강권들에 의해 기록되어 진 것이고, 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이 모인 곳이자 성령님의 충만하심과 함께 한 공회에서 정경으로 정해진 것이며, 더 나아가 성령님의 생각 이상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강권하심들 가운데 인류 역사의 오랜 시간들 속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잘 이어지고 전달되어져 왔던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러한 모든 일과 과정과 절차들, 상황과 여건과 환경들, 방법과 실제들, 순간과 변수들 등 하나하나에 있어서 잘 따지고 보면 각 시대와 지역과 형편들에 따라, 원론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특히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와 권세 가운데 온전히 속한 자들이 바로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시고 그 이름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한 생생하고 강렬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와 함께, 다시 말하면 그와 같은 성령님의 사람들, 성령님께서 충만하시기에 합당한 자들에 의해 순간순간 직접적, 실제적, 경험적인 측면에서 그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감동과 강권하심들을 덧입으면서, 더군다나 상상 이상의 성령님의 임재와 충만의 모임들 가운데에서 정경으로 확증된 것일 뿐 아니라 사본과 역본, 번역과 개정 작업들 등이 진행되어 전해져 온 것이고..
더 나아가 그 누구든, 어느 시대에서든 그때그때 말씀을 말씀대로 알고 깨달으며 믿고 행하며 누리고 경험하며 증거하고 이루어지며 성취되어 짐에 있어서까지도 하나하나 모두 다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철저히 성령님의 감동과 권능과 인도들이 함께 해야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능하고 존재할 수 있게 되며 실질적으로 효력이 되고 경험케 될 수 있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모두 다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듯이 진정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역사인 것으로 다시 말해 구약과 신약 성경의 모든 말씀들에 있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심지어는 백, 천, 만, 그 이상까지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또한 완전한 간섭과 통치와 섭리 가운데에 있는 것이고, 동시에 구주 예수님과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곧 그와 같은 말씀들 자체부터가 특별한 은혜인 것이고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어 말씀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게 되는 것 또한 특별한 은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특히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인도 안에서 순간순간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감동을 입게 됨에 있어서도 그러한 성령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된 분이시기에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역사, 다시 말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의 은혜와 권세에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특히 직접적, 실제적인 측면에서는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른 성령님으로 인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역사들로 인해 생생히 누리고 강렬하게 경험케 될 수 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무엇보다 성령님의 이중, 삼중, 사중, 오중, 육중, 칠중 등의 감동과 인도들, 실상은 그 이상의 간섭과 강권들로 인해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실제적인 은혜와 감동들, 능력과 영향력들, 사함과 나음들, 치유와 이적들, 변화와 열매들 등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성경 말씀은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고, 절대 진리이자 완전한 하나님의 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좌우의 날 선 성령님의 검인 것이고, 복음의 역사,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의 모든 중심이자 근본이며 실체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 말씀이 육신이 된 분이신 것이며,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으로..
그렇듯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도 하나님의 법이자 절대 진리인 말씀이 중심인 것이자 오직 말씀으로 통치하는 나라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말씀을 가까이 하며 믿고 행하고자 할 때도 반드시 그 어느 누구라도, 어떠한 때에도, 무슨 상황에서든지 우리 인생들의 힘과 의가 아닌, 그렇다고 세상적 능력이나 방법들도 아닌데 실상 처음에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된 은혜와 사랑과 능력, 이치와 원리와 법칙 등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순간순간 붙잡고 자랑하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의지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 것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온 세상과 전 인류보다,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심지어는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의 구원을 기억하며 의지하고 믿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와 세속들, 인간적 소견과 정욕들, 우상과 어둠의 세력들 등을 물리치고 싸우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이기고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 하며 깨닫고 믿으며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실상 그와 함께 말씀을 한 번이라도 더 제대로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실상 그러한 말씀의 몸부림과 결단들이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실질적인 길인 것이며, 무엇보다 그러한 말씀의 신앙과 열정들이 가면 갈수록 더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케 하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됨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등으로 더욱 더 강렬하게 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사실상 하나님으로 인한 그러한 모든 일들의 온전함과 생생함들, 강렬함과 풍성함들에 있어 다름 아닌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모든 전제이자 기준, 관건, 방법, 통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진정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의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 있어서의 승리와 역전들에 있어, 심지어는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그러한 말씀의 몸부림들이 결코 별개이거나 상관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고, 사실은 생각 이상으로, 상상 이상으로 완전히, 전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0~21)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0월 23일(수)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