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 백 여덟 개의 절을 찾아갈까 합니다.
영천 보현사 거동사
집 사람과 백팔 개의 절을 찾아다니기로 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영천 보현산의 거동사도 벌써 여섯 번 째의 절을 찾아가 가는 길이다.
날씨가 따뜻하다. 오늘은 별로 할 일도 없다보니 집사람더러 가까운 절이나 다녀오자고 했다. 영천 자양면에 있는 절이라니, 거리가 가깝고, 다녀오기가 딱 이다 싶다.
창 밖을 보니 아파트 마당에 있는 키 큰 나무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봄날은 날씨도 포근하고, 꽃들이 산이야 들이야 없이 가득 피어 있으니 나들이 하기가 좋은 계절인데도 바람이 부는 날이 많다. 그래도 봄 바람이니 훈훈하여 마음을 풀어준다.
이름도 생소한 이 절을 찾기로 한 것은 절의 소개에 대웅전이 조선 후기에 지은 맞배 지붕에 다포집 양식이라서 경상북도의 보물로 지정되었다는 소개 때문이었다. 영천 자양면의 자양댐 부근이라니 드라이브 길의 경치는 무척 좋으리라 싶다. 예전에 이 길을 여러 번이나 다녀보았기에 생소한 지리는 아닐 듯 하다.
영천까지의 길은 꽃과 갓 피어난 연초록 나무잎이 마음을 맑게 해준다. 자양댐을 따라 꼬불꼬불하게 굽어도는 길은 나무로 뒤덮여서 싱그럽다. 길가의 나무가 무성해서인지 다녀 본 길인데도 낯설다. 댐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갈리면서, 네비가 안내하는 데로 골짜기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좁은 골짜기가 끝없이 이어지다가 보현리라는 마을을 지나니 갑자기 산속으로 들어간다. 조금 더 가니 길이 갑자기 가팔라진다. 옆에 앉은 집사람이 길이 너무 험해서 당신 운전할 수 있겠어 라며 걱정을 해준다. 길 안내판은 여기서부터 자그만치 12km란다. 네비의 아가씨는 목적지 부근이라서 안내를 끝낸다는데, 도무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얄지.
집사람이 차에 내려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갔다. 머리 위로 기와집의 지붕이 보여서 였다. 그 집 앞에서 ‘여긴 절 간판이 아무데도 없어. 절 집이 아닌가 봐. 길이 가파르니 그만 돌아가자’ 한다. 그러자고 했다. 이럴 때 내가 늘 뱉어내는 독백이 있다. 그렇지, 내 나이가 얼만데, 젊을 때처럼 오기를 부려서는 안 되지.‘
한 참이나 내려와서 보현리 마을 앞에 이르렀다. 산불 감시를 하는 분이 계셔서 ’거동사‘가 어디냐고 물어 보았다. 그 분 말씀대로라면 내가 차를 돌린 바로 그곳이었다. 다시 차를 돌려서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에 차를 세웠던 곳에 정차하고는 길을 따라 걸어서 올라갔다. 어, 집사람이 가정집 같다는 그 집의ㅣ 마당에 연등이 주렁주렁 달려있지 않는가. 더 위에도 건물이 있고, 대웅전이라는 현판이 달려왔다. 절집의 문 앞에서 돌아섰던 것이다.
대웅전이 보물이라고 하였으나, 글쎄다. 조선 후기의 건물이라니, 어쨌거나 사진기로 담고, 눈여겨 보았다. 나는 대웅전 뒤편의 돌계단을 꽤나 올라간 곳에 산신각이 있었다. 나는산신각에 더 호기심이 가서 올라갔다. 흔한 그림이 호랑이와 함께 있는 노인상인데, 호랑이는 없이 두 노인상만 그려져 있다.
절이라면 적어도 탑은 한 기 정도 있어야 한다. 절 마당에 탑은 없고 석등 하나만이 덩그러이 서 있다. 억불정책을 쓴 조선시대를 거쳐오면서 산골 절이 얼마나 힘든 날을 보냈을까마는, 잘에 탑이 없으니 기분이 묘하다. 절 마당을 서성이는데 여승 한 분이 합장하면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한다. 나도 합장으로 답례했다.
내려오는 길에도 거동사를 안내하는 이정표는 여전히 12km란다. 아마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200m며 어떻고, 1.2km며 어떠랴, 하는 마음에서 일까.
돌아오는 길에는 오천 정씨의 묘역도 둘러 보았다.
댐 아래에는 영천 매산 고택이라는, 인조 때의 오천 정씨 정웅기라는 분의 후손들이 자리를 지켰다는 종택을 둘러 보았다. 예전에 전형적인 조선 양반가 저택이라면서 두어 번 다녀간 일이 있다. 이 길도 낯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답사팀을 따라다닌지도 꽤나 오래 전의 일이었나 보다. 길은 골짜기따라 깊숙이 들어가는데, 이렇게 멀리 들어왔었나, 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였다.
사람은 살지 않았고, 대문도 잠그지 않았다. 다시 집을 둘러보니, 대구의 옻골 최씨 종택이나, 같은 양식이다.
내가 답사를 따라 다닐 때는 유홍준의 문화 유산 답사기가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절이나 고택 등 우리 문화를 답사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그것도 한 시대의 유행이었었나 보다. 거동사도 그렇고, 매산 고택도 조용하기만 하다. 일요일이고, 답사철인 봄 날인데도 적막하기만 하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마음이 흐뭇했다.
첫댓글 거조암 비슷한데요 제각기 다른모습의 오백나한을 모신곳. 흙으로 지은 여염집 창고같은절, 뱀이 우글거리데요.그긴신령에서 들어가도 되지만 팔공산뒷길로 가면 빠르죠 물론 가보셨겠지만.
거조암은 영천은혜사 말사지요 송림사 말사 도덕암자도 가셨어요 제 유년의 고향이라서 ㅎ
거동사는 거조암과는 다른 절입니다. 거조암은 영천 신령 지역의 팔공산 자락이고요, 거동사는 자양면의 보현산 자락입니다.
거조암은 암자이지만 문화사적으로 엄청 유명한데, 거동사는 대웅전이 경상북도 지정 보물이라는 것 이외는 뚜렷한 문화 자취가 없습니다.
사진을 올려야 하는데, 갑자기 사진이 뜨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