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늙어가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농촌에서 토종씨앗을 지켜온 할머니들이기도 하고
도시에서 독거노인이 돼 살아가는 노인들이기도 하다.
경력단절 중년 여성의 좁은 선택지 안에서
요양 보호사가 돼 극진히 자신의 신들을 돌보는 여성도
신체 곳곳이 골절되는 질환에 급기야 사무 능력마저 위협받는 상태로
진입한 베테랑 장애인권 활동가이자 장애인 당사자인 여성도 있다.
트랜스젠더로서 나이 들어가는 사람
돌봄 받을 자격조차 없는 외부인으로 밀려난 홈리스 현장에서
그들을 돌보며 함께 늙어가고자 하는 활동가의 이야기까지
늙어가는 사람들, 게다가 다양한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들어볼 수 있다.
저자의 또 다른 책인 《새벽 세 시의 몸들》에서
인생이란 취약성의 기간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
경쟁하라고 강요당하며 살아왔다.
취약한 부분은 떨쳐내고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고
그게 안 되면 자기 관리를 못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사회라는 것이 이토록 잔인하다는 것을
정글, 헬에 비유하는 것이 비유가 아니었다는 것을
만물의 영장이라면서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 하나 구제하지 않는 게
바로 인간 세상임을 느껴지며 새삼 모골이 송연해졌다.
천부인권이 누구나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라고 하지만 그것은 꿈과 같은 이야기이다.
출생지, 피부색, 종교, 계급을 따지며 사람을 시민이 규정 돼왔고
이제는 나이, 성별, 성정체성을 두고, 또한 아프고, 늙고
장애가 있는 몸들이 인권을 얻기 위해 싸우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건강한, 성인 남성이
적절한 생산성과 정상성을 갖춘 사람의 기준이 돼왔다.
하지만 과연 그 기준에 맞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우리는 언제든지 아플 수도 있고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
그리고 늙는다.
또한 어린 사람으로 지내는 시절도 분명히 존재한다.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이들을 위한
시스템은 매우 취약하거나 붕괴되고 있다.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에 나오는 활동가들은
그 틈바구니 안에서 독거노인을 돕고
친구가 돼주다가 그들을 생의 동료로서 인식하게 된다.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 노인을 가까이 접하며
늙어가는 존재와 나의 늙음 또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왔으며 이젠 장애와 함께
늙어가는 한 활동가는 그 취약한 몸을 이끌고 살아오며 얻은
자신만의 삶의 방식 노하우는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그 각각의 삶이 가치 있음을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고 책은 말하고 있다.
또한 농촌으로, 쪽방촌으로, 요양원으로 시설로 거리로 밀려난
사람들과 함께 가시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자아 이미지에
늙은이 이미지를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상관없이 늙음은 그를 곧바로
타자로 혹은 외계인쯤의 자리에 위치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혹은 귀여운, 사랑스러운이라는 표현으로 호의를 나타내거나 할 뿐이다.
그렇기에 더욱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나이 듦에 대한 혐오가 곧바로 나 자신에 적용되는 것을
상상하기 시작하는 단계에 오니
두렵기도 하고 거부감도 드는 것을 느껴왔다.
이젠 두물머리 농부 김현숙 님의 말처럼
나도 무럭무럭 자라서 할머니가 되어야지하고
늙음을 긍정할 수 있도록 늙음에 대해 더 들여다보고픈 마음이 든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