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606〉
■ 4월의 가로수 (김광규, 1941~)
머리는 이미 오래 전에 잘렸다
전기줄에 넣지 않도록
올해는 팔다리까지 잘려
봄바람 불어도 움직일 수 없고
토르소처럼 몸통만 남아
숨막히게 답답하다
라일락 향기 짙어지면 지금도
그날의 기억 되살아나는데
늘어진 가지를 모두 잘린 채
줄지어 늘어서 있는
길가의 수양버들
새잎조차 피어날 수 없어
안타깝게 몸부림치다가
울음조차 터뜨릴 수 없어
몸통으로 잎이 돋는다.
- 1995년 시집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민음사)
*다사로운 햇살과 봄바람이 싱그럽게 느껴지는 4월. 대도시 도로변의 가로수에서는 봄꽃이 피거나 파릇파릇 순하디 순한 연노랑 잎새들이 막 돋는 때입니다.
그런데 도로변 가로수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어딜 가더라도 화려한 꽃을 자랑하는 벚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더군요. 예전에는 포플라나 플라타너스, 은행나무, 메타세콰이어 같이 꽃은 볼품없어도 키가 크고 그늘이 풍성한 나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최근엔 슬며시 사라져버렸습니다. 특히 살아남은 플라타너스 같은 아름드리 가로수들은, 관리상의 편의를 위해 머리와 가지가 뭉텅 베어지고 몸통만 겨우 남아, 보는 이를 안쓰럽게 만들더군요.
이 詩는 이처럼 가지가 잘린 채 늘어서 있는 ‘4월의 가로수’ 모습을, 팔다리가 잘려나간 인간의 모습에 빗대어, 문명의 폭력성과 가로수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여기에서는 플라타너스가 아니라 가로수로 심은 수양버들의 모습에 대해 말하고 있군요.
시인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인 4월에, 길가의 수양버들이 전깃줄에 닿지 않도록 가지가 모두 잘린 것을 보고 답답함과 절망감을 느끼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머리와 팔다리가 없이 몸통만으로 된 조각상인 토르소(Torso) 같은 절망 속에서도 몸통에서 돋아난 작은 잎새를 통해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작은 희망을 발견하고, 우리에게도 그 소식을 말해주고 있네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