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말 야구의 맛 최 건 차
부산 영도에 살았던 중학생 시절부터 나는 야구의 맛에 푹 빠져들었다. 마치 내 삶의 여로처럼이라 프로야구가 생기면서는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하는 열혈팬이 되었다. 롯데가 기세 좋게 이기고 있을 때는 ‘부산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란 가락이 전국에 흩어져있는 부산 야구팬들의 기분을 상승시켰다. 하지만 롯데가 이기고 있다가 믿었던 선수와 대타의 실패로 패하게 되면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만선의 꿈을 안고 먼바다로 출항했던 어선들과 같다고나 할까! 태풍을 만나 배가 크게 손상을 입고 아무런 소득 없이 겨우 살아서 빈 배로 돌아오는 경우처럼 허망해진 분위기다.
지금 내가 사는 수원에도 ‘KT위즈’라는 프로야구단이 생겨서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야구의 진가를 알아가면서 청소년기를 의기차게 보낸 부산은 내 성장의 요람이라서 부산야구를 더 사랑하게 된다. 특히 20대는 군대생활을 해운대에서 힘들게 하면서도 연병장 구석에서 공을 던져 스트라이크를 꽂는 연습을 하며 고단함을 달랬다. 주일이면 해운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믿음의 힘을 키웠고, 성가대와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면서 또래의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1961년부터 2024년까지 한결같은 우정으로 만남을 이어오는 해운대 토박이들 김근옥, 정청일, 김복업, 신견자, 최정자와의 죽마고우다. 청일이 복업이 나는 현해탄을 건너온 동갑내기로 온갖 풍파를 겪은 노년에 이르렀지만, <9회 말 야구의 맛>과 같은 승부를 내보려는 심정들이다.
1980년대까지는 중고등학교와 일부 실업팀의 야구가 주류였다. 이후 초등학생들의 리틀야구가 생겼지만, 전국 고등학생들의 야구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대단했었다. 1950년대 중학생 시절엔 우리 학교에도 야구부가 생겨서 나도 야구선수가 되려고 했다가 급장이라는 명분 때문에 기본수업에 더 열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선수가 되는 것은 포기했지만, 야구를 즐겨 보고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치 않았다. 이에 이웃에 사는 같은 반 최길봉, 라창일이와 남항동 부산 기마경찰대의 빈 운동장과 골목에서 공을 던지고 받고 받아치는 야구놀이를 했다.
‘부산갈매기’라는 서정적인 노랫가락이 울리어 퍼진다. 이어지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조용필의 노래는 짭짤한 갯바람처럼 내 마음에 파고들어 부산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한다. 부산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롯데팬들이 승리를 기원하면서 부르는 응원의 찬가라서 살갑게 들린다. 전국 어디서나 롯데 프로야구가 열리는 구장이면 원정 팬들이 모여들어 고유한 응원가를 불러 댄다. 더욱이 부산 사직구장에서는 파도타기로 부르는 뜨거운 떼창의 열기가 우리 프로야구 응원문화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다.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까지는 고교야구가 우리 야구의 꽃이었다. 그 무렵 나는 1년간 야구를 모르는 베트남 전선에서 야구를 잊고 전투를 하다가 1970년 8월 귀국하였다. 부산항 3부두에서 베트남에서 들어오는 국책화물과 귀국 장병들의 화물을 하역 처리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때마침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열리고 있어 부두 라운지에서 오랜만에 야구 중계방송을 보게 되어 기뻤다. 명문 부산고등학교가 결승에 올라, 군산 미 공군기지 야구선수들로부터 지도를 받고 급성장한 군산상업고등학교와 황금사자기를 겨루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했다.
명문고답게 부산고가 월등하게 점수를 벌려 놓고서 9회 말 수비에 들어갔을 때였다.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는 부산고등학교 선수들을 향해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공격에 나선 군산상고 선수들이 믿기지 많게 맹타를 휘둘렀다. 당황한 부산고교 선수들은 4대 0으로 이기고 있었지만, 실수가 연발되고 있었다. 이에 군산상고가 9회 말에 뒤집고 5대 4로 승리를 쟁취하게 되어, 고등학교 야구계에 대단한 파란을 일으켰다. 그때부터 <야구는 9회 말부터>라는 멋있는 말이 생겨났고, 군산상고는 고교야구의 아이콘이었다. 그때 뛰었던 선수들이 1984년에 출범한 프로야구의 초석이 되었다.
야구는 두뇌 싸움으로 매 순간 전체와 개별 작전을 펼치면서 승부를 내는 지능적인 단체경기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상징이며 논리적인 스포츠인 프로야구를 잘 운영하는 나라들은 한결같이 경제 강국이 되고 있다. 그 시작의 1번 타자가 미국이요, 2번째 타자는 일본이며, 그 다음 강타자는 미국야구와 일본야구를 배워 시작한 우리 대한민국이다. 대만은 우리야구를 밴치마킹하여 프로야구를 시작하면서 경제가 크게 발전하였고, 지금은 국민스포츠로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롯데야구를 사랑하기에 롯데매장을 애용한다. 창업주 신격호 회장이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하여 성공한 후 귀국하여 세운 기업이라서 마음이 간다. 롯데그룹이 1천억 원을 들여 개축하여 부산시에 기증한 영도다리도 자랑스럽지만, 서울 강남의 롯데타워는 대한민국을 돋보이게 하는 랜드마크다. 롯데야구가 잘하여 가을 야구를 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부산팬들에게 기쁨을 안겨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 나는 야구의 9회 말쯤에 이르렀다는 생각에 절박해져 있다. 그러므로 결승에 오른 선수답게 하고 싶은 일에 승부를 걸고 있다. 이에 남은 능력과 투혼을 살려 높은 산을 오르고 내리며, 나 자신과의 승부를 겨루는 노정路程에 서 있다. 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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