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
화가 이중섭과 일본인 아내
이남덕(일본명 야마모토 마사코)의 첫 만남은
여느 청춘 남녀처럼 풋풋했다.
원산에서 일본에 유학 간 부잣집 아들 이중섭은
학교 후배 마사코에게 첫눈에 반했다.
웃음 많고 활달한 이중섭이었지만 그녀 앞에선
말문이 막혔다.
보다 못한 친구가 자기 생일이라 속여 두 사람을
초대한 뒤 둘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중섭은 연애 시절에도 소를 그렸다.
1940년 작 ‘소와 여인-정령1′에 여인과 그녀
몸에 머리를 기댄 소를 그려 넣었다.
누가 봐도 사랑 고백이었다.
▶둘의 사랑은 이중섭이 일제의 징병을 피해
원산으로 돌아갔을 때 끝날 뻔했다.
그러나 이중섭이 보낸 ‘결혼이 급하다’는 편지를
받은 이남덕은
1945년 4월, 소를 좋아하는 남자와 함께 살려고
관부 연락선을 오작교 삼아 바다를 건넜다.
전쟁 중 목숨 건 뱃길이었지만
“죽는 게 두렵지 않은 여행이었다”
고 했다.
▶6·25 중이던 1952년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뒤 이중섭의 목적은
단 하나, 가족과의 재회였다.
그로부터 행려병자로 죽기까지 4년간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읽는 이를 목메게 한다.
‘이 세상에 나만큼 아내를 사랑하고 미친 듯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글을 쓸 줄 알게 된 아들로부터 첫 편지를 받아
든 감격도 담았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도무지
잘 안 되는구먼요.
어떻게 쓰면 아이들이 기뻐하겠는지.’
▶희망과 절망은 손등과 손바닥이다.
뒤집히면 극단을 오간다.
하루를 국수 한 그릇으로 버티면서도
‘작업에 몰두하면서 어떻게 하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온통 그 생각뿐’
이라던 이중섭은 1955년 서울과 대구 전시회가
잇달아 실패하자 허물어졌다.
일본에 갈 수 없게 됐다는 절망에 음식마저
끊었다.
아내가 보내온 편지도 열어보지 않았다.
▶2016년 6월 서울서 열린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이남덕 여사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 편지에서 ‘다시 태어나도 함께할 거예요,
우린 운명이니까’라 적었던 이 여사가 지난달
101세로 별세한 사실이 그제 알려졌다.
임종은 병원에서 맞았지만 살던 집은 이중섭이
편지 200여 통을 보낸 도쿄 세타가야 주소지
그대로였다.
이 여사는 이중섭과 7년을 함께했고 70년을
홀로 살았다.
그 세월을 버틴 사랑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나의 최대 최미(最美)의 기쁨,
그리고 한없이 상냥한 최애(最愛)의 사람
오직 하나인 현처 남덕군!
나는 당신을 사람하는 마음으로 꽉 차 있소.'
이 여사는
‘잘생겨서 좋아했다’
던 이중섭을 만나러 마지막 오작교를 건넜을
것이다.
다리 끝에서 남편이 두 팔 벌려 아내를
맞이했을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출처 : 조선일보]
[100자평]
박정도
이중섭 화가의 부부 사랑이 눈물겹구나.
천재 예술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경의를 표한다.
역시 사랑은 위대하고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감동을 준다.
이상규
사랑, 사랑, 사랑..... 어찌 막으랴!
박재근
예술인은 사후에 빛을 보는 게 너무 안타깝다.
7년을 함께하고 홀로 70년을 살았던 부인의
맘씨가 짠하네.
형남민
'이 여사가 지난달 101세로 별세한 사실이
그제 알려졌다'(?)
신문 발행일인 9월 2일에서 '그제는 8월 31일'이다.
이 여사가 별세한 사실이 30일 확인됐으므로
'그제'가 아니라 '그끄저께(그끄제)'이다
<표준국어대사전>그제/그저께
이정수
좋은 세상에서 해후 하시고 행복하게 사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