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나온 사람들 가운데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인사를 해야 하나 산책 중이시냐 물으면 그렇다고 답해야 하나 알긴 아는데 누군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
세계의 밤이 오고 늘어선 집들에 불이 켜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 황인찬 詩『바지를 입은 사람은 바지를 입고 떠난다』
- 시집〈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문학동네 | 2023
불쑥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은 대개 한밤중 찾아온다. 부지불식간에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통화 목록과 주소록을 넘겨본다. 이러저러한 이름들이 손끝에 맺혔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늦은 시간, 이런 마음에 누가 도움이 되려나. 그러다 멈추게 되는 것은 주로 뜻밖의 누군가.
나의 안부 인사에 친구는 놀란 모양이다. 무슨 일이냐고 반복해 캐묻는다. 나는 그가 마치 내 앞에 있는 것처럼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아니야. 그런 거. 정말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어.’ 나의 진술이 못 미더운 모양이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다. 나는 지금 마음과 기분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 고민 중이고, 친구는 어떤 말이든 기다리는 중이고. 어쩌면 참 따뜻하고 다정한 대치. 침묵을 깨는 것은 친구 쪽이다. ‘다행이다.’ 그러곤 곧장 ‘생각해보면 다행 아닌 일이 어딨어.’ 하고 덧붙인다. 언뜻 보기에 참 실없는 친구 문자가 나는 좋다. 마음에 든다. 네 말이 맞아. 다 사람의 일이지.
봄 다음 여름이 오고, 한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너무 당연한 세계가 문득 낯설어질 때, 그것이 느닷없이 느껴질 때 외로운 만큼 그 모든 것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한밤, 난데없이 수신돼 오는 친구의 문자처럼 조금은 반가운 그 의외성이 오늘 또 내일의 나를 숨 쉬게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친구에게 커다란 하트를 전송한다. 속으론, ‘너도 이상한 기분이 들면 혼자인 거 같으면 문자 해.’ 쑥스러운 진심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