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형 저서 '日本 다시보고 생각한다'에서 펌] "온돌과 다다미"
무릎을 꿇고 앉는다면 우리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연상한다. 죄인이나 무릎을 꿇고 앉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에게 있어 무릎을 꿇는 자세는 품위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아랫목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야 점잖다고 한다. 일본인에게 있어 다리를 꼬고 앉는 자세는 아주 상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들은 무릎꿇고앉는 자세를 세이자(正座)라 한다. 옳게 앉는 법인 것이다.
하지만 추운 계절이 긴 우리는 다리를 꼬고 앉는 책상다리가 정좌(正座)다. 부자는 책상다리를 하고 안석에 기대어 앉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같은 자세지만 이불로 무릎을 가리고 앉는 것이 추운 겨울의 온돌방 풍경이다. 그러다가 나른해지면 스르르 잠이들어 그 자리에 누워 자기가 일쑤인 것이다. 일본인은 빈부를 가리지 않고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나른해지거나 스르르 눈이 감길 만한 방바닥의 혜택을 모르고 지낸다. 짚으로 엮은 다다미 아니면 마루방이 방바닥을 이로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옛날 상류계급 사회에서는 책상다리가 정좌였다고 한다. 아직도 전승되고 있는 고전무악(䏻 또는 歌舞伎)에서 음곡(音曲)을 읊는 기다유(義太夫)나 궁중의 아악사들은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수가 많다. 그러나 차디찬 다다미나 마루바닥에 책상다리를 꼬고 앉으면 엉덩이가 시려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무릎을 꿇고 앉으면 하체로 스며드는 냉기를 꽤 오래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난방에 관한 한, 일본인의 지혜는 우리의 온돌에 따르지 못했다. 기껏해야 방 한가운데 놓는 히바치(火鉢. 화로) 아니면 '이로리'라는 난방 방식밖에 그들은 모른다. 시골 농가에서 많이 쓰이는 '이로리'는 방 한가운데를 네모반듯하게 잘라 파내고 그 안에 나무나 숯으로 불을 지펴 난방과 취사를 겸하는것이다.
그래서 일본인은 추우면 히바치나 '이로리'를 둘러싸고는 무릎꿇고 앉아야 한다. 늘 등허리가 시려워 사람들은 언재나 긴장하게 마련이다. 긴장이 되면 눈이 감기지 않으므로 자연히 책을 보거나 대화를 하게 마련이다. 일본인의 독서열이 높고 대화가 능한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인은 또한 스스로를 가리켜 '텐션(긴장)민족'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추울 때 냉기를 참고 견디어야 하기도 하지만 가족 상호간을 완전히 차단하는 두꺼운 벽이나 문이 견고하지 않는데다 이웃을 가로막는 담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른바 프라이버시라는 것이 일본인에게는별로 통하지 않는다. 가옥 내의 문이라야 가벼운 나무틀에 종이를 바른 후수마라는 미닫이식인데 언제나 스르르 여닫힌다. 이웃간에도 흙이나 돌로 쌓는 담보다는 회양목 같은 것을 고르게 심어 놓은, 어른의 키 반 정도의 이케가키(生垣)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가족 상호간이나 이웃간에 개인의 행위를 깊숙이 숨길래야 숨길 도리가 없다. 그 대신 옛날 무사(武士)의 우두머리들은 후스마로 칸칸이 막은 방의 맨 구석진 곳에 오쿠도마(奧間) 또는 도코노마(床間)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은거했다. 그래도 언제 적(敵)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항재적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오쿠노마 뒤에 다락방 같은 것을 만들어 그 안에 부하 무사들을 숨겨 대기시키곤 했다.
그처럼 혼자 만의 세계랄까, 개인을 위한 프라이버시의 공간이 없는 일본인들은, 우리 감각으로는 이상할 정도로 숨김이 없다. 한때 한 민방(民放) TV에서 '재미있는 부부'라는 프로가 매주 한 번씩 방영되 적이 있다. 여기 출연하는 부부들은 젊고 늙고에 상관없이, 우리같으면 차마 공개할 수 없는 부부만의 비밀, 부부만이 갖는 고민들을 곧장 고백한다. 또 다른 민방에서는지금도 매주 수요일이면 방영하는 '여자의 노래자랑'시간에 출연하는 이름없는여자들의 사생활을 낱낱이 공개하고는 노래를 시킨다. 우리에게는 엄두도 안 나는 '개인의 내막'을 잘도 털어 놓는데 어이가 없다.
공산주의 사회의 상호 감시제도가 아무리 철저하다 해도, 또 우리의 간첩 신고정신이 아무리 왕성하다 한들, 일본인의 보이지 않는 '상호 감시제도'를 당할 수 없다. 늘 서로 간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일본인 시회에서 우리 교포들이 어울려 살기 힘든 것도 그 때문이다. 문을 닫아 잠그고 온돌방에서 나른한 기분에 잠기는 우리는 개(個)의 안일자족을 추구하는 반면, 무릎꿇은 자세로 늘 남을 의시하고 사는 일본인은 집단의 화(和)를 개인에 우선시킬 수 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