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은 가장 은혜스럽고 복된 말씀이면서 한편으로는 참 쉬워 보이기도 하나 사실은 늘 그렇게 함에 있어서는 심히 어려운 말씀인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시험이 되기도 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라도 죄악들을 이기기가 쉽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사모하며 제대로 묵상한다는 것은 심히 어려울 수 있으며, 따지고 보면 사실 그에 있어서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아예 불가능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잘 살펴보면 그렇게 죄악들이 아닌 말씀으로 늘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에 됨에 있어서는 믿음의 대선배인 다윗부터도 한때 크게 실패해서 간음에다 살인 교사와 같은 죄악들을 범했던 적이 있었고, 솔로몬까지도 우상에 현혹되어 오랜 시간 동안 그러했으며, 심지어는 예수님의 수제자라 할 수 있고 삼년 동안 예수님 가장 가까이에서 온갖 이적들을 보고 경험했으며 생생한 복음의 말씀들을 들으면서 특별하게 훈련되어 졌던 베드로는 가장 결정적인 때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을 뿐 아니라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며 부인하기도 했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배반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오늘날 이 시대의 우리들은 어떠한 모습과 현실인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이고, 누구보다 각각의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듯하며, 아마 그 누구라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기는, 그들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인데..
아무튼 늘 승리하는 신앙, 언제나 깨어 있고 살아 있는 신앙,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한 신앙, 실제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과 은혜와 응답들이 넘치는 신앙, 그로 인해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철을 따라, 아니 날마다 순간마다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으며 모든 일들이 다 형통하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세계, 복음의 세계에 있어서 제대로 파악하고 잘 통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치와 원리가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구주 예수님께서는, 오직 예수님만이 오늘날이나 예수님의 공생애 시기, 초대 교회 공동체 때뿐 아니라 아래 본문의 때, 구약의 모든 시기들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창세 전이나 세상 끝 날, 부활, 영생에 이르기까지 구주이시며, 모든 구원의 길, 유일하면서도 전적인 구원의 통로이신 분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에 있어서 가장 먼저는 아래 본문과 같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은 아무나, 아무렇게나 원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만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다시 말하면 아담과 하와 때부터 모든 인생들이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단절케 되었으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고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진 것인데 그러한 인생들 중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인도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 진정 십자가에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된 자, 실상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인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된 자만이 가능한 것이며, 바로 그러한 부분이 아래 본문과 같은 말씀의 신앙과 그로 인한 하늘의 힘과 복들에 있어서의 모든 전제이자 근본이며 우선이고 시작인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는 것으로 그렇게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여전히 입은 채로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살아가는 동안 마치 옛 사람과 같이 계속해서 내 힘과 의, 세상적 능력과 방법들에 우선을 둔다면 언제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진정 날마다 순간마다 반드시 하늘의 힘과 은혜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단 한 시라도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어떤 면에서는 믿음의 선배들인 다윗과 솔로몬, 베드로, 다른 제자들 등에 있어서의 한 때의 실패에 있어서 그 부분이 가장 실질적인 요인이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인데..
실제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참으로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이 땅의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놀라운 특권이 있고, 생각 이상의, 상상 이상의 특별한 자격과 예비가 있는 것으로 그것은 다름 아닌 날마다 순간마다, 그 어떠한 때에라도, 그 어디서라도, 그 어떤 문제나 위기에서라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고,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과 함께 그로 인해 하늘의 힘과 능력들, 응답과 이적들, 복과 열매들이 우리들이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실제적이고 현실적이며 강렬하고 풍성하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땅에서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사실상 반드시 그와 같은 하늘의 힘과 은혜로만, 진정 유일하게 그러한 방법과 통로로만 죄악들, 악한 세력들, 온갖 시험과 유혹들, 시련과 위기들 등과 싸울 수 있는 것이고 이길 수도 있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 있어서도 오직 그와 같은 하늘의 힘과 은혜로만 자복하며 참회하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정말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가능한 것이며, 더 나아가 전적으로 그러한 하늘의 힘과 은혜로만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최우선으로 해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이 가능한 것이고 실제로 그와 함께 가면 갈수록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될 수 있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실제로 무엇보다 그로 인해 날마다 순간마다 그 어디에서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올려 드리는 기도와 선포들, 더 나아가 증거와 경배 등에 있어 응답과 능력들, 복과 예비들이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로 더욱 더 세밀하면서도 강력하고 풍성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실질적인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역전과 이적들,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이 구주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직접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해, 참으로 본질적으로는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직결되어 온통 차고 넘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1:1~3)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0월 24일(목)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