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시차가)
3. 중인배들
만약 내 눈앞에 일론 머스크와 버지니아 울프가 앉아 있다면 나는 당연히 일론 머스크가 개무시당한다고 느낄 정도로 버지니아 울프에게 집중할 것이었다. 그건 악의라기 보다 그냥…어쩔 수 없는 거다. 한 사람은 그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 그쪽으로 쏟아져버리곤 한다.
ㅡ
정말이지 사람은 왜 그런 걸까. 타인으로 인해 캄캄해진다는 건, 욕망이 시커멓게 비친다는 건 왜 이렇게 사람을 우습게 만들까?
ㅡ
사랑하는 것, 욕망하는 것 앞에서 결코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스스로가 찌질하고 옹졸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때. 나는 담담한 척 자조를 공유하면서 이런 마음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안심한다. 그런 자조가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누가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사랑을 받는다고 깎아내리려는 의미도, 훌륭해지려는 노력 없이 날로 먹고 싶다는 의미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건 사랑과 관심이 차별을 포함한다는 걸 이미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의 우스갯소리. 어쩌면 그건 단지 캄캄해지다 못해 마음에서 자꾸만 그늘이 자라나는 사람들의 비명. 어쩌면 그건 뭐라도 팔아야 하는 세상에서 스스로가 비매품이 된 기분을 버텨보려는 노력.
4. 낙차
그런 일들로 말미암아 나는 나의 당연함이 누군가에게는 불가능의 영역에 있다는 것과, 그들의 당연함이란 나의 일부를 부정해야만 가능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앞에서 매번 조심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들의 일부이고 싶었던 건 나였으므로, 조심해야 하는 쪽은 나라고 여겼다.
ㅡ
내 집안의 여자들은 눈에 띠고 싶은 게 아니라, 실은 눈에 띠고 싶지 않았던 거라고. 이 무리에서 달라 보이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저 무리와 같아 보이길 바란 거라고. 이 무리에서 눈이 띠게 달라야만, 저 무리에서 눈에 띠지 않고 어울릴 수 있는 법이었다.
ㅡ
사람들의 놀라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잘 만들어진 집밥을 먹을 때는 밖에서 파는 밥 같다고 하고, 파는 밥에는 집밥 같다고 한다. 생화를 보면 가짜 같다고 하고, 조화를 보면 진짜 같다고 한다. 집밥이 파는 밥 같다는 건 결국 그게 집밥이라는 의미이듯이, 내가 종종 듣는 말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너는 그렇게 보이지 않네.’ 그건 내가 ‘그렇다.’는 뜻이다.
5. 배반을 격려하기
어쨌거나 부모를 배반해야겠다고 여러 번 다짐해 왔다.
자식이 부모가 살던 방식 그대로 산다는 건, 자식과 부모의 세상이 규모도 모양도 같다는 게 아닐까. 모든 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두 세상이 같다는 건, 무엇도 새로이 바뀐 게 없다는 뜻이 아닐까. 때때로 그러한 같음은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 너머로 갈 기회를 주지 않았거나, 자식이 부모 너머로 가보지 못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ㅡ
대대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삶은 부러움을 살 만하고,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삶 역시 치열한 고군분투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그럼에도 나를 매료시키는 쪽은 언제나 기존 세계의 바깥으로 가보는 이들이었다. 원래의 기분이 스스로에게 최선인지 의심해보는 쪽. 다른 세상을 궁금해하는 쪽. 삶을 보장받지 못하더라도, 경계를 끊임없이 재설정하고 배반하며 제 세상을 운동시키는 쪽.
ㅡ
내가 엄마여도, 자식이 엄마의 방식을 채택하지 않으려 한다면 마음이 아플 거 같다고. 그렇지만 내 세상이 엄마의 세상과 다르기를 그 누구보다 엄마가 바란다는 걸 안다. 같은 방식으로는 우리의 세상이 꼭 같아져버릴 것이다. 그 세상은 우리 둘이 살기엔 비좁을지 모른다는 말을 부드럽게 늘어놓은 뒤로, 언젠가부터 엄마는 아파하면서도 엄마 너머의 방식을 받아들인다. 내 배반을 받아들여준 것이다.
ㅡ
동생의 얼굴은 조금 개운해 보였고, 나는 헛되게 보낸 과거의 시간들이 좋아졌다. 흑역사가 타인을 달래는데 유용하다는 걸 알면 자신의 흑역사조차 조금은 사랑하게 된다. 때론 남의 흑역사를 빌려 어떻게든 생이 주는 모멸감을 이겨내야 하는 법이지.
ㅡ
사람은 자신의 선택으로만 생겨나는 그 자신의 세상이 있는 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내 말은 어디까지나 내 방식일 뿐이니 가끔은 일부만 취하거나 반박하거나 네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말해왔다. 나아가려면 익숙했던 무언가를 두고 가야하고, 그 익숙함에는 내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었다.
ㅡ
엄마 집에는 작은 갈색 개 호두가 있다. 분리불안이 심한 그 개는 내가 자기 세상이라도 되는 마냥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나는 툭하면 들러붙는 개에게 독립심을 길러주겠다며 엄하게 굴면서도, 호두 역시 나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 같아 그게 내심 기쁘다. 개가 이따금 나를 뒤로 한 채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가 배를 까뒤집을 때면 짙은 배신감을 느낀다. 망할 개, 남이 간식주면 지 주인도 버릴 개새끼. 나는 개가 나를 잊을까 봐, 이렇게 커다란 내 사랑을 그 개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까 봐 조금 두려운 것도 같다. 그래도 개를 대할 때 그러는 건 괜찮다.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개의 생 정도야 어떻게든 내가 최선을 다해 감당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문제는 내가 동생에게도 그런 걸 느낀다는 것이다.
ㅡ
동생이 무언가를 잘 해내면 기쁘다가도 그 애가 나와 무관하게 제 할 일을 잘 해나간다는 사실에 불현듯 외롭고 쓸쓸하고 허무하다. 그런 게 도통 믿기지 않는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선 언제까지고 동생을 좌지우지하고 싶어 한다는 게. 동생이 나와 무관한 자기 세상을 만들어가길, 조금씩 내가 모르는 존재가 되어가길 바라왔으면서도 슬프고 분한 마음이 함께 치밀어 오른다는 게. 내가 이토록 저를 깊게 사랑해왔다는 걸 동생이 홀랑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동생을 조금도 매료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동생이 내 품을 떠나버리면 거기 덩그러니 남을 내 마음은 어떡하지.
야, 니가 나를 배신해?
ㅡ
한때는 내 사랑이 너르고 깊은 줄만 알았다. 하지만 동생을 향한 내 사랑은 깊긴 하되 목구멍마냥 좁은 모양이다. 때론 목구멍 안쪽부터 뜻하지 않은 말들이 울컥 올라오고, 그럴 때마다 나는 거울 앞에서 서서 입을 벌리고 그 안을 들여다본다. 거기 누군가를 옭아매려는 컴컴한 심연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들켰다간 나를 곤란하게 할 심연이.
출처: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 임지은
뒷 내용들도 좋아서 또 공유!
첫댓글 너무 좋다 여시 고마워!!!
너무 좋다 ㅠㅠ 읽어봐야겠어 글 써줘서 고마워 여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