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러 갈까나.
유 석 희
대학에 있었을 때 언젠가 교수협의회 송년회 후 뒤풀이 대신 천문학 강의를 전문가 초빙하여 들었다. 강의의 내용 중 기억나는 건 우주의 나이는 130억 광년이고 우주의 생성은 bigbang 후에, 우리 은하계 말고 다른 은하계가 있고, 태양의 흑점(黑點)과 corona, 초신성(超新星)과 blackhole, 안드로메다 성운(星雲) 등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을 들으니 환자 진료다, 연말 연구업적보고이다, 남들이 떠드는 골프 스코어가 어떻고, 주식과 펀드다, 경기불황이다. 등 이런 이야기들이 하찮게 느껴지며 내 마음은 갑자기 별을 찾던 시절로 돌아간다.
89년에 출판된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이란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판매되었었고, 이 책을 보며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많이 생겨났다. 나도 이 책을 사서 읽으며 밝은 인공 불빛 때문에 별을 보기 힘든 서울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당시 서울대 대학원생이던 저자는 이 책의 소개 글에서.
별빛이 쏟아 내리는 야외에서 별자리를 그리며 별이름을 부르는 것은 너무도 멋진 일이다.
가슴에 스며드는 설렘과 정겨움은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힘들다. 가끔씩 유성이 하늘을 가르면 그 감동은 더욱 나를 들뜨게 한다. 별, 그 자체가 좋고 별을 통해 만나는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또한 좋은 것이다.
별에 대한 낭만이나 감동은 시인이나 작가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별밤들을 바라보며 우주에의 꿈을 키우고 사랑을 속삭이는 일들은 누구나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소망이다. 다만 별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없어서, 또는 도시의 별이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쉽게 포기되고 만다.
여세를 몰아 출판사인 “김영사”에서 90년 2월 “저자와 함께 하는 별자리 여행”을 기획하여 저자인 이 태형, 아폴로박사로 유명하였으니 지금은 세상을 달리한 조 경철 경희대 명예교수와 김영사의 박 은주사장 등이 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설악산으로 별을 보러 떠났다. 여기에 나도 우리 애 둘과 친구 애 둘까지 데리고 참가하였다. 아뿔싸! 모처럼 큰마음 먹고 따라 간 그 행사에서 하필이면 밤하늘이 흐려서 준비해간 여러 천문 관측기구도 소용없이 서울에서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금성(Venus)만 겨우 보고 왔다. 별 보러 갔다가 별 볼일 없게 된 것.
그러나 나에게는 별에 관한 아름다운 추억이 여럿 남아 있다.
그 하나는 의과대학 본과 1학기말 시험을 치루고 몸이 파김치가 되어 대구 본가로 내려 와 만사가 귀찮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 어머니가 청도군 동창면의 종이모 집에 며칠 쉬었다 오라고 보내주셨다. 농주를 곁들인 넉넉한 시골 저녁 식사 후 모깃불 매캐한 연기 냄새를 맡으며 평상에 누워 바라본 하늘에는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가운데에 은하수가 흐르고, 그날따라 웬 별똥별이 소원을 빌 순간도 없이 그리도 많이 지나가는지.
그 둘은 84년 1월 겨울철 며칠간 남도 가족여행을 떠나 지리산 쌍계사 계곡, 신혼 초 여름휴가의 추억이 깃든 쌍계별장 밖에서 올려다 본 밤하늘이다. 싸늘한 바깥 공기에도 우리 온 가족이 손을 잡고 구경하던 별 중에 저 멀리 보이는 유난히 반짝이던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기억한다.
그 셋은 85년 어느 여름 날 이었던가? 그 곳은 절기가 여기와 반대이니까. 일 년 간 연수를 하였던 호주 빅토리아 주의 멜본에서 한 200km 떨어진 Eildon호수에 교민 친구들과 휴가 여행 차 갔었을 때,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베큐로 식사 후 벤치에 앉아 본 남반부의 밤하늘이다. 양모 중개를 하던 젊은이가 전공과는 전혀 관계없이 가르쳐주는 별자리, 은하수 왼편에 소 마젤란 성운과 대 마젤란 성운, 은하수 건너 빛나던 남십자성(Southern Cross)을. 호주에서는 어디든지 남십자성이 들어있으면 최고로 치며 멜본에도 이 이름의 고급호텔이 있다. 호주 국기 오른쪽에 위치한 5개의 별은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남십자성 별자리를 뜻한다.
그 넷으로 아들과 둘이 떠난 90년대 초반 여름 일본 중부 알프스 다테야마의 등산 중 첫날 묵은 해발 2,700미터에 자리한 이치노코시 산장에서 비싼 캔 맥주 하나를 들고 쳐다 본 별 밤을. 세월은 흘러가는 유성과 같이 빨라 4십대의 팔팔하던 나도 이제 일흔 줄에 들어서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한다.
마지막으로 대학을 정년하기 전 2013년 2월 모로코 여행 중 낙타를 타고 들어간 사하라 사막 오아시스에서 본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도 어찌 잊을 수가 있나요. 아쉽게도 다음날 밤은 모래폭풍으로 텐트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갈 수도 없었지만.
별구경이나 한번 가 볼까나. 이 글을 써다보니까 이 겨울철에 미세먼지 경보가 없는 날을 골라 영동고속도로 옛 대관령 휴게소에 승용차를 타고 별구경을 가고 싶다. 가서 나의 별자리인 물고기좌도 찾아보고.
첫댓글 하늘에 그토록 많은 별이 있는 줄은 본 사람만 아는 사실이다. 나도 아이들이 어릴 때 말라스카를 뺀 북미 지역 중 초고봉인 Mt. Whitney 인근에서 캠핑을 하는 동안 바라다 본 하늘에 그토록 많은 별이 있는 줄은 미쳐 몰랐었다. 한 마디로 온 하늘이 별로 가득 찬 모습을 모았는데 검은 벨벳에 수정을 뿌려놓은 듯한 모습은 가히 왜 사람들이 천문학자들이 되며 천문관측을 즐겨하는 사람들이 왜 있는 줄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밤하늘에 별보기가 당연했었는데, 이제는 도시지역에서는 일기가 좋은 날에 일부만 보이는 상황이 되었지요. 내가 1998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처음 관광차 들렀을 때, 하늘이 너무 파랗고 깨끗해서 놀랐고, 밤에는 별들이 많이 보여서 놀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