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다단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여자의 마음,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 인간의 두뇌구조, 반도체의 뇌부회로 등등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는 데, 그 중 하나가 <경제>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주가, 환율, 유가, 금리 등 경제를 수치적으로 나타내는 이러한 지표들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실례로 유가는 현재 배럴당 9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정부에서 몇 년 전 50달러 이상은 절대로 넘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면서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마치 허리케인이나 태풍의 활동기작을 슈퍼컴퓨터로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듯이, 경제 또한 그 복잡다단함과 변화무쌍함의 속성으로 인해 예측하기 힘든 성질의 것만큼은 분명 사실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면서 세계경제의 주류적 흐름은 신자유주의로 확인된다. 마치 경제의 교과서적 진리로 여겨질 만큼 세계화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바람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소련 붕괴와 더불어 서구 공산권 국가들이 무너진 이후 미국의 독주체제로의 재편이 이뤄지면서 세계화의 바람은 더욱 매섭기만 하다. 작은 정부, 민영화, 자유무역, 외국인 투자 등의 정책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이미 오래 전에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에 철저히 충실하자는 경제론이다. 다시 말해서 상당수 많은 부분, 아니 거의 대부분을 시장의 자유로운 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물결에 도전장을 내고 반대하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세계적인 저명한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다. 그는 최근 출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통해 소위 부자나라로 대변되는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을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규정하며 그들이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허와 실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는 정치적 이념에 기반한 비판이 아닌, 철저하게 경제논리와 역사적 사실을 논거로 한 생동감있는 경제학 파노라마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각각 모잠비크의 2061년도와 쌍파울루의 2037년도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저자의 경제적 지식과 식견을 바탕으로 한 상상의 이야기이고 과장된 측면이 적잖지만,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경제적 미래상을 매우 정갈하고 그럴듯하게 예를 들어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솔깃하다. 모잠비크의 성공과 쌍파울루의 실패라는 미래 경제상에 대한 흥미로운 설정은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론에 대한 비판을 수식하는 장치로 책의 처음과 끝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사실 대학 재학시절 때부터 경제에 관심이 많았던 내게 경제적 세계화의 물결은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내수시장이 작고 부존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의 태생적 한계를 감안했을 때 자유무역을 통하여 무역의 양과 질을 높이고, 외국 자본을 적극 유치하며, 민영화를 통한 경쟁력있는 기업으로의 체질개선을 이뤄야하고, 재정의 건정성을 꾀하여 물가의 안정을 비롯한 경제적 전 부분에 걸친 흑자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론의 흐름이 경제 발전의 절대적인 동기가 될 수 없으며, 역사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부자나라의 경제성장의 내면에는 반시장주의적인 요소가 많았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인 부자나라들의 과거적 사실과 현재적 주장의 불일치를 지적하면서 개발도상국이 장기적으로 경제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흐름과는 배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치산업에 대한 보호적인 무역정책, 장기적인 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도입되는 한에서만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점, 공기업 민영화의 허와 실, 지적소유권 제도에 대한 보다 완화된 정책, 부정부패의 효율적이고 합리적 접근, 문화와 경제의 상관관계에 이르기까지 경제에 대한 다양하면서도 강력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사실 세계화라는 명제 하에 얼마나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아픔과 상처가 있었는가? 한국의 경우도 계획 없는 무리한 자본시장의 개방과 시의적절하지 않은 OECD 가입을 비롯한 주제와 분수를 모르는 경제정책으로 인하여 1997년 외환위기를 불러 일으켜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하지 않았던가? 10년 전의 IMF 사태를 통해 얻은 국민들의 고통과 수치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세계화라는 명목 하에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노선의 거센 바람의 내면에는 부자나라들의 이권과 속셈이 녹아 있다. WTO, IMF, 세계은행은 경제적 세계화를 주도하는 범세계적인 관리시스템의 핵심 3총사다. 본래 IMF는 국제수지가 위기 상황에 처한 나라들이 디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하지 않고도 국제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도록 차관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세계은행은 기반 시설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제공을 통해 해당 국가의 재건과 발전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1980년 이후 두 기관의 역할과 기능은 상당히 달라졌는데 부자나라들의 강력한 의사결정 독점구조를 유지한 채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 또한 GATT(관세와 무역에 대한 일반협정)는 WTO(세계무역기구)로 바뀐 이후 부자나라들의 의견과 정책을 대변하는 세계화의 기구로 변모되기도 했다.
철저한 시장주의와 자유무역, 공기업 민영화 등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핵심요소들의 대부분은 강건한 경제력을 갖고 있는 부자나라들에게 이로운 정책들이다. 후진국은 물론, 중진국인 개발도상국에는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개발도상국들이 장기적인 차원에서 경제 발전을 이뤄 크고 안정된 시장력을 갖추게 되면 선진국으로서도 시장진출을 통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바 무조건적인 자유시장주의 노선보다는 적절한 보호와 통제를 이뤄야 한다는 저자의 일관된 주장은 심히 공감할 만하다.
이 책에서 얻은 정보 중에 매우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 바로 문화와 경제와의 상관관계다. 경제에 있어 문화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어느 국가의 민족성이 '근면하고', '규율이 잘 선'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이자 '일개미'의 표상인 일본의 민족성은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독립심이 지나쳤고, 미래보다는 현재적인 삶을 살았으며, 감정적이며, 실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전쟁에서 폐허가 된 이후 모든 국민적 에너지가 국가 재건 및 경제적 부흥으로 모아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근면하고, 이성적이며, 진지하고, 미래적인 사람들이 되었다. 수출대국 독일의 경우도 그렇다. 나태하고, 개인적이며, 감정적이고, 어리석고, 부정적하고, 태평했던 독일인들은 경제 발전을 이뤄가는 동시에 능률적이고, 협조적이며, 이성적이고, 똑똑하며,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자제심이 강한 민족이 되기도 했다. 경제 발전이 문화나 민족성의 특질에 따라 종속된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 상호보완적이며 가변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경제 발전에서 문화가 담당하는 복잡하고도 중요한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문화는 복잡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문화는 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만, 경제 발전은 문화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문화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문화는 변화될 수 있다. 경제 발전과의 상호 작용과 이데올로기적 설득, 그리고 특정한 행동 양식을 장려하고 장기적으로는 그것을 문화적 특성으로 바뀌게 하는 보완적인 정책과 제도들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문화가 숙명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근거 없는 비관주의로부터,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고방식을 바꾸라고 설득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유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순진한 낙관주의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이다. <p308>
한미FTA 체결로 현직 대통령의 지지도가 두 배로 뛴 최근의 대한민국 민심의 흐름은 신자유주의 경제론의 절대적 믿음이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대세에 대항한 소신있는 도전은 지향되어야 한다. 더욱이 그 도전이 진리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옳고 좋은 가치로 귀결된다면 더욱 그러하다.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노선의 허와 실을 현실적이고 다양한 관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어렵지 않게 기술한 경제학자 장하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경제전문서적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현실감있고 생동감있으며, 정갈한 문체로 대중들도 쉽고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모호하며 맹목적으로 신자유주의 시장노선을 받아들이고 있는 자들, 경제적 세계화의 내포적 특질과 부자나라들의 경제발전 속성을 알고자 희망하는 자들에게 한 번 쯤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권장하면서, 자신들이 모두 완전한 자유 무역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역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여섯 살 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고, 성공한 어른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여섯 살 먹은 그 아이를 일터로 보내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다.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립을 한 것이지,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2장에서 논의한 바처럼 부자 나라들은 자국의 생산자들이 준비를 갖추었을 때에만, 그것도 대개는 점진적으로 무역을 자유화했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이다. <P110>
노키아는 벌목, 고무장화, 그리고 전선 사업에서 번 돈으로 17년에 걸쳐 전자 사업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삼성은 직물과 제당 사업에서 번 돈으로 10년이 넘도록 전자 사업에 투자했다. 이들이 만일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개발도상국에게 권하는 것처럼 시장의 신호에 충실했더라면, 노키아는 아직도 나무나 베고 있고, 삼성은 여전히 수입된 사탕수수나 정제하고 있을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시장에 대항하여 보다 어렵고 좀 더 고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부문에 진입해야 한다. <p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