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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
한국 여자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 탑쓰리 3위가 남자들 군대 이야기, 2위가 축구 이야기, 1위가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ㅎㅎ
그래서 대부분의 이십 대 초반 남자들이 겪었던 흔한 군대 이야기는 모두 생략하겠습니다! 넵넵
일반적이지 않은 특이한 경험만 몇 가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제 특성 중 하나가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인데, 이것은 제 군 생활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는 군병원 정신과에서 근무했습니다.
무언가 특이한 경험이 될 거 같아서 자원해서 근무했는데, 군병원은 사회 병원하고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실제로 신경증과 정신과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군대 생활에 적응을 못하거나 문제를 일으켜 영창을 다녀온 적이 있는 군인들의 비율이 반반 정도 됩니다.
후자의 경우 자살미수, 폭행 사건의 가해자 피해자가 되어 영창을 다녀오는 경우인데 자대에서 다시 복귀시키기에는 지휘부담이 큰 경우에 정신과로 보내지게 됩니다.
불특정 다수의 부대에서 사건 사고 이력이 많은 병사들이 모이다 보니 군기가 지나치리만큼 엄했습니다. 엄격한 규율이 없으면 곧바로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때문에 정신과 근무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교도관과 남자 간호사의 중간 정도 자리였습니다.
둘째는 사회에서는 보통 2교대, 3교대로 근무하게 되는데 저희는 24시간 환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환자들과 함께 자고, 먹고, 운동하고, 통제하고, 면담하고, 관찰 보고하고 등등
이런 생활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처음에 훈련을 받습니다.
처음 들어온 새내기 근무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병실 한복판의 의자에 앉아서 환자만 관찰합니다. 정말 하루 종일 앉아만 있습니다. 며칠이 아니라 몇 주가 되었던 몇 달이 되었던 상관없습니다.
언제까지? 눈 감고도 환자들이 지금 어디서 뭐 하는지, 어떤 환자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환자들 간의 분위기나 파벌 등등 병실 내의 모든 상황을 손바닥 보듯 할 수 있을 때까지입니다.
역대 근무자들이 어떻게 이런 방법을 찾아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대대로 이런 식으로 트레이닝 해왔다고 합니다.
저 같은 경우 대략 한 달 정도 낮이나 밤이나 아무것도 없는 의자에 앉아서 하루 종일 환자들을 살피다 보니 자다가도 환자의 이상한 상황을 감지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환자들과 함께 옆에서 자다가 간질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에 항상 사전에 특이한 징후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으~으~"하는 가벼운 신음을 내면서 눈이 돌아가게 되는데, 이럴 때 재빨리 일어나서 환자가 발작을 하기 전에 여러 가지 처치를 해서 도와줘야 합니다.
그 밖에 밤에 몰래 화장실에서 자살 시도를 한다던가, 근무자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한다던가, 환자들 간의 폭행이 벌어지기 전에 알아채고 재빨리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24시간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가능해지고 나면 드디어 환자들과 함께 움직이며 근무를 하게 됩니다.
그다음 과정은 정신의학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최신정신의학 / 대표저자 민성길/ 일조각
제가 보면서 공부했던 책인데 최근까지 계속 개정판이 나와서 6판까지 발간되었습니다.
정신장애와 치료법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망라되어 있는 900페이지가 넘는 책입니다.
이 책을 통째로 외우다시피 하고 실제 환자의 증상과 치료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신과 전문의와 담당 간호장교는 일과 중에만 근무하고 퇴근하기 때문에, 일과 이후에 발생하는 새로운 환자의 이송이나 응급상황에는 모두 근무자가 대처해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환자들을 관찰하고 면담하고 나서 특이 사항이 있으면 아침 회의에서 전문의에게 보고하고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근무하는 동안 대략 3백여 명의 환자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신경증, 조현병, 조증, 우울증, 불안장애, 수면장애, 성격장애, 자살행동장애 등등 많은 케이스의 환자들의 입원과 치료 퇴원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많은 이해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현대정신과에서의 진단과 치료의 한계와 모순점 등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근무 경험이 사회에 나와서도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예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그때 만들어진 틀을 깨고 유연해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도 해서 제게는 장단점을 모두 만들어준 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특이점은 죽은 사람 즉 시체를 다루어 보았던 일입니다.(식사 전이시면 식후에 소화가 된 후에 보시기를 권합니다)
병원 부대이다 보니 가끔 응급실에서 환자가 죽기도 하고, 인근 부대에서 죽은 병사들의 염이나 부검을 할 때 자원해서 들어가야 할 경우가 있었습니다.
사회에서는 죽은 사람을 가까이서 관찰하거나, 특히 부검에 참여해볼 기회를 얻기란 좀처럼 적기 때문에 군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 때 자원해서 몇 번 일을 했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제자들의 육체적 집착이나 애욕을 없애기 위해 시체나 백골을 관찰하게 하는 수행법이 많이 권장되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소수를 제외하고는 시체 자체를 볼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해 터부시하고 외면하는 풍토와 맞물려 더더욱 시체와 가까이 오랜 시간 대면할 일은 없습니다.
부검에 참가했던 경험을 적어 보겠습니다.
또래의 나이 어린 병사였는데 연병장에서 사열 연습을 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져서 원인미상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때문에 원인 규명을 위해 병원에 이송되어 부검의와 함께 부검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두개골을 열기 위해 머리 피부를 칼로 제거합니다.
두개골이 드러나면 절개할 부분을 표시하고 전기톱으로 완전히 절개해서 뇌가 드러나게 합니다.
뇌를 꺼내서 가는 톱으로 뇌를 얇게 썰어서 단면을 볼 수 있게 합니다.
가슴에서 복부까지 피부를 절개해서 열고 가슴뼈를 톱으로 잘라서 심장과 폐를 드러나게 합니다.
심장을 꺼내서 역시 여러 부위로 나누어서 문제가 있는 부위를 찾습니다.
복부의 여러 장기를 모두 끄집어 내서 병증과 이상 부위를 찾습니다.
이렇게 신체의 모든 피부와 뼈 장기를 꺼내서 테이블에 죽 늘어놓다 보니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장관(?)입니다.
우리가 잘생겼네 못생겼네, 이쁘네 추하네 어쩌고 하는 것이 정말 얇은 피부 한 장 밖의 일입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의 두개골이 이쁘네 내장이 섹시하네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직 전문적인 수행을 통한 통찰이 생기기 전이었지만, 우리가 보고 판단하는 사람은 정말 표면적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또 방금 전까지 전우들과 함께 웃고 떠들던 병사가 죽어서 차갑고 낯선 모습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죽음이 상당히 우리와 가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부검이 끝나고 나면 다시 시체를 잘 수습하고 닦아주고 옷을 입히고 관에 넣어줍니다.
이미 형체가 많이 망가졌지만 어떻게든 보기 좋게 만들어줘야 유족들의 (특히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아프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다음날 영결식에서 군악대의 구슬픈 조곡과 함께 영가의 명복을 염불로써 빌어주었습니다.
세 번째 특이점은 똥 이야기입니다 ㅎㅎ
제가 생활했던 부대는 수세식이 아닌 재래식 화장실이었습니다.
꽤나 큰 저장용량을 자랑했던 똥간이었지만 한동안 사용하다 보면 똥이 쌓이고 쌓여서 똥탑을 이루다가 마침내 엉덩이를 찌를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ㅎㅎ
이때가 되면 똥을 똥차로 퍼서 비워야 합니다.
때는 마침 겨울이었습니다.
거대한 똥 저장고에는 똥이 딱딱하게 얼어서 도저히 똥차의 호스로 빨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특별한 작업이 필요하게 되었고, 자원자를 뽑았고, 저는 또 이런 특이한 경험은 놓칠 수 없다며 손을 번쩍 들어 자원했습니다 ㅎㅎ
먼저 적당히 따듯한 물을 똥 저장고에 부어서 거대하고 딱딱한 똥 덩어리를 조금 녹혀주고 희석시켜 줍니다.
그다음 아주 기다란 막대기로 딱딱한 똥과 방금 부운 물을 골고루 섞이게 저어줍니다.
언제까지?
아주 부드럽고 촉촉한 물똥이 될 때까지 몇 시간이고 저어줍니다.
물과 똥의 황금비율로 아름다운 물똥이 될 때까지 젖고 또 저어줍니다 ㅎㅎ
그래야 똥차의 호스가 막히지 않고 단번에 쭉쭉 빨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주 막 상상이 잘 되시죠? ㅎㅎ)
그런데 말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버전)
이런 작업을 하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똥 냄새가 너무 역하고, 똥물이 한 방울이라도 몸에 튈까 질색해가며 작업을 시작했는데...
한참을 똥하고 뒹굴다 보니 냄새도 안 나고 똥이 손과 몸에 막 묻어도 똥인지 진흙인지 모르겠고 무덤덤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되더라는 겁니다.
세상에서 많이 만나는 똥 같은 일과 사람들도 이와 같은 거 같습니다.
함께 뒹굴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야 할까요? 무뎌지기 전에 잘 피하고 물들지 않게 삼가야 할까요?
답은 여러분이 정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특이점은 부대 내 불교활동이었습니다.
부대 내에 제대로 된 법당도, 법회를 이끌어줄 법사님도 안 계시다 보니 격을 갖춘 법회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불심은 있었습니다.
불자인 몇몇 간부들과 병사들 그리고 입원환자들이 모여서 작은 공간을 잠시 빌리고, 불상도 없어서 이동식 간이 불감을 모시고 법회를 보았습니다.
아직 의식을 제대로 배우지 못 했던 시기였지만, 그나마 제가 불교를 전공했고 귀동냥 눈동냥이 제일 많았으니 목탁을 들고 의식을 집전하고 법회를 이끌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법회 후에 공양은커녕 간단한 간식도 준비하기 어려웠던 법회.
그렇지만 없는 환경에 어떻게든 만들어서 법회를 하고 싶었던 소박한 불심들.
이런 모습을 잊기 어려워서 제가 후에 군법사로 다시 군대를 두 번 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불보살의 가피로 무사히 전역을 하게 됩니다.
전역하고 사회에 다시 나와보니 한국 사회는 곳곳에 군대 문화가 스며 들어있습니다.
학교와 직장 심지어 승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를 알려면 나라 전체가 거대한 군대화 집단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운 거 같습니다.
상명하복의 조직문화. 곳곳에 스며있는 갑질과 꼰대(권위) 의식들
신체적 폭력과 언어폭력
불합리하고 억압적인 구조
불의를 보고 잘 참고 순응하기를 강요하는 조직문화
진정한 실력 있는 권위, 문제의 해결과 대안을 주는 권위는 사실 좋은 것이고 따르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데 불합리를 강요하고 군림하려고 하니 다들 싫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회에서 이런 것 실컷 겪고 싫어서 출세간하고자 출가하는 분들 중에는 승가도 사회 못지않거나 더 전근대적인 군대식 조직문화를 갖고 있는 것을 보고 질겁을 하십니다.
저에게 출가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거나 출가생활에 대해 궁금해하는 신심 깊은 불자들에게 선뜻 출가를 권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한국 승가의 이런 면입니다.
본래 부처님 당시의 승가와 같이 서로 화합하고 자율을 존중해주는 아름다운 공동체 승가의 모습이 되기를 바라 봅니다.(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ㅎㅎ)
7부에 인도·네팔 부처님 성지순례 이야기로 계속되지 말입니다 ㅎㅎ
첫댓글 항상 건강하시고,부처님 되세요
잠시 머물면서,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 삳다르마 뿐다리까 수뜨람 -()()() -
고맙습니다. ()()()
나모 아미따불 ()
감사합니다 ()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모 아미따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