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호를 둘러
코로나 감염원에 노출될까 봐 창원으로 건너가지 않고 고립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주말을 앞두고 창원에서도 확진자가 속출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공교롭게 거제 지역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여덟 명이나 무더기로 발생한 팔월 끝자락 다섯째 일요일이다. 인근 하청면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과 연초면 관내 마을 회관이라 주중 내가 머무는 연사와 아주 가까운 곳이라 신경이 더 쓰인다.
시내버스는 나에게 제2 발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마저 이용하지 못하고 오직 두 발만 의존한다. 시내버스를 타야 조망이 좋은 산책이나 산행 코스를 찾을 수 있는데 연사 근처만 뱅뱅 맴도니 갑갑하기 그지없다. 전날 토요일은 연사고개로 올라 앵산 산등선으로 나아가다 중도에서 개척 산행으로 중촌마을로 내려섰다. 오비마을에서 연사고개로 오르면서 가을 들머리 야생화를 완상했다.
와실로 들어 샤워를 하다 깜짝 놀랐다. 뒷무릎에 진드기가 붙어 왔더랬다. 납작하고 갈색인 진드기는 잔발이 많았다. 내 몸에 두어 시간 달라붙어 피를 빨아 먹은 녀석을 변기통에 털어 넣고 물을 내려 처치했다. 그럼에도 께름칙했다. 이튿날이 되자 진드기가 붙어 있던 자리가 가려워온다. 코로나처럼 고열이 나타나는 잠복기가 2주일이라 혹시 증상이 발현될까 봐 전전긍긍해야 한다.
팔월이 가는 마지막 일요일 이른 아침 반바지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산행에서 진드기가 붙어와 놀라 숲이 아닌 산책만 할 요량이었다. 연사 들녘으로 나가니 아침 안개가 걷히지 않아 사위가 짙은 운무가 가려져 있었다. 벼들이 이삭을 내민 들판에서 연초천 둑으로 올랐다. 둑에는 아침나절만 반짝 꽃잎을 펼치는 나팔꽃이 피어 있었다. 낮은 키로 자란 코스모스도 피기 시작했다.
연초천을 따라 연초삼거리에서 죽전마을 앞으로 갔다. 산기슭에 소원사와 송죽암 두 절이 있는데 송죽암은 묵혀져 있었다. 민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암자가 묵혀져 있음이 의아했다. 하천을 따라 농경지가 있지만 원룸을 비롯한 택지나 창고가 들어선 곳을 지났다. 칠원 윤씨 집성촌이 다공리 앞산은 남여산으로 정상이 굴제봉이다. 지나간 봄날에 굴제봉을 넘은 적이 있었다.
다공리 앞 연꽃단지는 연꽃이 거의 지고 한두 송이만 보였다. 천변을 따라 계속 걸으니 중리 방향 산자락은 안개가 걷혀가는 즈음이었다. 좌 전방으로는 덕치리였다. 5호선 국도 따라 덕치를 넘으면 하청면이다. 천변에서 명동마을로 가는 문암교를 건넜다. 문암마을 앞에는 수자원공사 연초정수장이 있었다. 연초호에 가둔 물을 정수해 고현과 옥포로 보내는 규모가 큰 정수장이다.
정수장을 돌아 언덕을 오르니 댐이 나왔다. 70년대 거제에 삼성과 대우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생활용수와 공업용수가 필요해 생겨난 담수호였다. 수몰지가 된 90여 호 살던 이목리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목초등학교는 이웃한 명동으로 옮겨져 교명도 명동으로 바꾸었는데 지금은 폐교가 되었다. 배나무골로 불린 이목(梨木)리의 유래와 흔적은 망향 빗돌에서나마 찾을 수 있었다.
명하마을에서 이목으로 향했다. 명하는 명동 본동 아랫마을이었다. 명동 윗마을은 명상이다. 거기는 대금산 꼭뒤 산중으로 곡부 공씨 할머니가 농주를 빚어 팔았다. 명동으로 가질 않고 연초호 둘레길에 해당하는 이목으로 갔다. 수몰된 이목 본동보다 고도가 높은 곳에 몇 가구 남겨진 윗마을이었다. 이목에서 시골길을 따라 가니 천곡이었다. 산중에 농사를 짓는 몇 가구가 사는 동네였다.
천곡에서 이남마을로 갔다. 이목 남쪽이라 이남이었다. 연초호가 바라보인 거기도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이남에서 굴제봉 산허리로 난 임도를 걸었다. 산모롱이를 도는 등 뒤로 햇살이 따가워 땀방울을 제법 흘렸다. 산자락을 넘으니 아까 지나친 다공리 연초천이 나왔다. 천변을 따라 계속 내려가니 면사무소가 위치한 연초삼거리였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서 한낮이 되어 와실로 들어왔다. 20.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