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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신약 성경의 모든 곳에서, 원론적으로는 이 세상의 모든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부활, 영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로 함께 하시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으로 역사하시는 분인 것인데..
결코 그렇지 않으실 수 없음은 우리 얼굴에서의 눈, 코, 입이 서로 분리되거나 별개일 수 없으며 온전히 조화되어 하나되는 것과 어느 정도는 유사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다만 그러한 얼굴의 눈, 코, 입이 언제나 함께 하며 각각의 역할에 따라 서로 섞이지 않고 온전히 조화되며 전적으로 하나되어 한 얼굴이 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상황과 형편들, 환경과 여건들, 시간과 공간들 등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제한들이나 한계들이나 변화들이 있을 수 있고 크고 작은 영향들을 직간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러한 모든 것들에서도 완전히 초월적인 분이시라는 차이 등이 있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무엇보다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나 개념 자체부터가 그 어떤 시대와 나라들, 상황과 대상들 등에 따라 잠시라도, 단 한 번이라도 분리되거나 따로따로일 수 없는 반면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됨과 함께 완전한 하나로서 한 뜻을 이루는 의미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 다른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근본적인 면에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것이자 소속이며 그의 뜻과 목적에 따라 사는 자들인 것인데 사실상 따지고 보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렇게 온전히 사는 것이 불가한 것으로 진정 그 자신의 힘이나 세상적 능으로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제대로 사는 것 자체가 원론적으로는 아예 불가능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오히려 사실상 믿음으로 인해 구원에 참예케 되며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라 하더라도 악한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악한 세상 속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은 채 살고 있기에 죄와 세속과 정욕과 자기 소견들 등으로 인해 적지 아니 미지근해지며 병들고 마치 죽은듯한 신앙이 되곤 하며, 심지어는 한 때의 다윗이나 솔로몬이나 베드로 등과 같은 믿음의 대선배들까지도 얼마나 연약하고 사악해졌었는지를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결코 작지 않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곤고와 비참들에까지 어느 정도로 처참하게 빠지게 되었는지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그 누구라도, 사실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붙잡는 믿음이 없이는, 곧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지 않고서는 살아 있는 믿음이 되기란 아예 불가능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특히 그 속에서의 말씀과 기도와 찬미로 무기 삼으면서 늘 깨어 있음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의 실제와 역사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이 아니고서는 오히려 죄와 어둠들에 빠지기가 더욱 쉬운 실상이자 현실들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에 따라 마치 어두운 방에서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켜거나 단추를 누르듯 사도 바울처럼 다른 그 무엇보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사모하고 의지하며 순간순간 그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이 아닌 더욱 더 온전하고 치열한 말씀의 신앙으로 인한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실상은 그러한 것만이 어두운 세상과 세대에서 깨어 있는 믿음,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한 신앙에 있어서 유일한 방법과 통로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은 애초에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며 거듭나게 되는 것부터가 결코 사람의 힘이나 세상적 방법일 수 없는 것으로 진정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하시고 약속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이루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하고 애초에 시작될 수 있는 일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정말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에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그 이름과 함께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된 분이신 성령님께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실제가 되게 하시는 것으로 참으로 하나님의 것이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본질적으로는 정말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고 거듭날 수 있게 하시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인도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음으로 인해, 다시 말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영적으로는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을 말씀 그대로 믿음으로 인해, 곧 그 구원의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지하고 사모하며 붙잡으면서..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어 있으시고 그러한 십자가 구원과 함께 일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곧 참으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영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전지전능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움과 역사로 애초에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고, 본질적으로는 값없이 말씀의 백성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대로 날마다 순간마다 삶의 자리들, 사역의 현장들에 있어서도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그렇게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세속들 등과 싸울 수 있고, 범한 죄악들은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으며, 그와 함께 사함과 나음과 역전 등과 같은 실제적 효력과 능력들도 경험케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 말씀을 어떤 식으로든 더 가까이하고 사모하게 되면서 더욱 더 치열한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나타내는 깨어 있는 믿음, 살아 있는 믿음, 경건하고 복된 신앙, 거룩하고 신령한 신앙이 실제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갈수록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케 될 수 있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이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서 갈수록 더 생생하고 강렬하며 풍성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아래 본문의 말씀에서와 같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님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들이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 예수님의 이름 가운데 약속되어 있으신 성령님께서 실제로 역사하심을 사모하고 믿으면서, 진정 실질적으로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의지하면서 기도함을 의미하는 것일 뿐 아니라..
바로 그러한 성령님께서는 단적으로 말씀의 영이시기에 말씀의 신앙과 함께 직접적으로 생생히 일하시고 강렬한 실제가 되게 하시는 그러한 성령님께서 기뻐하시고 충만하게 일하시기에 합당하도록 죄와 세속들 등과 싸우며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오직 말씀의 사모함과 결단들 가운데 거룩하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바로 그 시간, 그 상황에서의 우리들에게 있어 가장 필요하고 가장 최선의 것으로 응답하시는데 근본적, 원초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과 위엄, 권력과 권세들인 것이고, 근원적, 구체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온갖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인 것인데..
그에 있어서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본질적으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일들을 실행하시고 다 성취하시는 분인 것이기에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의 신앙과 함께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이 온전히 실제가 되고 생생하게 되는 것이며, 특히 말씀으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에서의 기도가 의미와 능력과 생명이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정말 그러한 믿음과 함께 사람이 할 수 없고 세상이 짐작도 못할 놀랍고 기이한 일들이 실제로 생생하며 강렬하고 풍성하게 일어나게도 되는 것입니다..
가장 실질적일 수 있는 예를 들면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이 앞에서의 베드로와 같이,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때 당시의 베드로는 구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했던 때와는 완전히 달랐던 때였던 것으로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였던 것인데 진정 그러한 말씀을 실행하고 증거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 정도의 말씀 신앙, 말씀의 열정이었던 베드로처럼, 또한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복음의 말씀을 사모하고 행하며 증거함에 있어서 생명까지 아끼지 않았던 바울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선포하는 가운데..
직접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영이시자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가 더욱 생생하게 나타나고 강렬하게 경험되어 진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실제적인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사건들,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이적과 복과 열매들 등이 차고 넘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유1:20~25)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0월 24일(목)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