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잠(四勿箴) ~ 이천(伊川) 정이(程頤)
『사물잠(四勿箴)』은 안회(顔回)가 스승 공자(孔子)에게 “‘나’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오는 길(克己復禮)”을 묻자, 공자가 네 가지의 삼갈 것을 제시하였다. 그 내용은 “예에 맞지 많으면 보지 말고(非禮勿視), 예에 맞지 않으면 듣지 말며(非禮勿聽), 예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며(非禮勿言), 예에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動)” 이다.
이 가르침은 후에 유가(儒家) 수행의 행동 지침으로 여겨졌다. 특히 송(宋)나라에 이르러 정이(程頤)가 “이 4가지는 ‘몸’의 작용으로, ‘마음’에서 말미암아 ‘몸가짐’으로 반응하는 것이니, ‘몸가짐’을 제어하여 그 ‘마음’을 배양하는 것”이라고 하고, “후세에 ‘성인(聖人)’을 목표로 하는 자는 마땅히 이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두고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 하며, 이『사물잠』을 지어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잠(箴)’이란 바늘을 일컫는 것으로, 바늘 끝처럼 날카로움을 가지고 스스로를 경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I. 視箴(시잠)
心兮本虛應物無迹(심혜본허응물무적)
操之有要視爲之則(조지유요시위지칙)
蔽交於前其中則遷(폐교어전기중칙천)
制之於外以安其內(제지어외이안기내)
克己復禮久而誠矣(극기복례구이성의)
마음이란 본시 비어있는 것이니 외부 사물에 반응하면서도 흔적은 없는 것이다.
마음이 그것을 바르게 잡아두는 것에 요령이 있고, 보는 것이 그렇게 하는 법칙이 된다.
눈앞이 여러 가지로 가리어지면 그 속마음은 곧 옮아가게 된다.
외부에 대하여 제어함으로써 그 내부를 안정시켜야 한다.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되돌아가게 한다면 오래도록 성실하게 될 것이다.
II. 聽箴(청잠)
人有秉彛本乎天性(인유병이본호천성)
知誘物化遂亡其正(지유물화수망기정)
卓彼先覺知止有定(탁피선각지지유정)
閑邪存誠非禮勿聽(한사존성비례물청)
인간에게는 꼭 지켜야 할 떳떳함이 있어야 하니 그것은 천성에 근본을 두는 것이다.
다만 사람의 지각이 사물의 변화에 유인되어 그 올바름을 잃게 되는 것이다.
탁월하였던 저 선각자들은 지각을 선(善)의 경지에 머물게 하여 안정시켰도다.
사악해짐을 막고 성실한 마음을 존속시켜서 예가 아닌 것은 듣지도 말아야 하느니라.
III. 言箴(언잠)
人心之動因言以宣(인심지동인언이선)
發禁躁妄內斯靜專(발금조망내사정전)
矧是樞機興戎出好(신시추기흥융출호)
吉凶榮辱惟其所召(길흉영욕유기소소)
傷易則誕傷煩則支(상이칙탄상번칙지)
已肆物忤出悖來違(이사물오출패래위)
非法不道欽哉訓辭(비법불도흠재훈사)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은 말을 근거로 하여 밖으로 선포되나니
말을 할 때 조급하거나 경망스런 것을 막음으로서 속마음은 고요하고 한결같게 된다.
말은 중요한 계기를 만드니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우호로 나아가게도 하는 것이다.
사람의 길흉과 영욕은 오직 말이 불러들이는 것이다.
말을 지나치게 쉽게 하면 불성실하게 되고 지나치게 번거로이 하면 지리멸렬하게 되고
자기가 함부로 말하면 남도 거슬리고, 나가는 말이 거칠면 오는 말도 도리에 어그러지니
법도에 어긋나는 것은 말하지 말고 훈계의 말씀을 공경히 받들지어다.
IV. 動箴(동잠)
哲人知幾誠之於思(철인지기성지어사)
志士勵行守之於爲(지사여행수지어위)
順理則裕從欲惟危(순리칙유종욕유위)
造次克念戰競自持(조차극념전경자지)
習與性成聖賢同歸(습여성성성현동귀)
명철한 사람은 일의 낌새를 알아서 그것을 생각함에 성실하게 하고
뜻있는 선비는 행동에 유의하여 올바른 도리를 하는 일에 지키니
올바른 이치를 따르면 여유가 있게 되나 자기 욕망을 따르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다급한 순간이라도 이것을 잘 생각하여 두려워 조심하면서 스스로 지켜라.
습관이 착한 본성을 따라 이룩되면 성현(聖賢)들의 경지에 같이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