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네요. 회원님들 모두 코로나 19로 인한 피해 없이 늘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주말이라 마음이 조금 여유로운 편이라 무슨 글을 한 편 쓸까 하다가 매우 특별한 경험을 가진 나의 작은 형님 이야기를 한 번 써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4형제 중 3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딸 없이 아들만 넷 이었던 것이죠. 어린 시절에 어머님이 늘 "네가 딸로 태어났어야 내가 고생을 덜하는 건데"라는 얘기를 했어요. 아마 딸로 태어났으면 어머님 도와서 엄청 오빠들 뒷바라지 하며 자랐을 것 같습니다.
형제만 넷이다 보니 여자 형제가 있는 것처럼 뭔가 엄마의 친구도 되어주며 다정다감함이 없이 싸움에 가출에 늘 사고만 치기 일쑤였죠. 그것 때문에 부모님이 속상해하신 것 생각하면 정말 너무 죄송하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어요.
우리 4형제 중에서도 둘째 형님은 어린 시절부터 동네 개구장이, 말썽장이로 유명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무단으로 한 달간 가출을 했다가 부산의 한 중국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다 잡혀오기도 했죠. 형님 딴에는 돈을 벌어서 부모님에게 효도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둘째 형님은 고등학교를 무려 네 군데나 다녔습니다. 입학하고 얼마 지내다가 싸움해서 퇴학 당하고, 입학하고 얼마 지내다 싸움하고 또 퇴학 당하고, 혹은 자퇴했다가 다른 학교가서 다시 퇴학 당하고 그러길 반복했어요. 용산공고, 천안농고, 신진공고, 한양공고가 그 학교들이었습니다.
어머님의 살아 생전 둘째 형님에 대한 소원이 "제발 고등학교만 무사히 졸업해라" 였을 정도였어요.
그랬던 작은 형님은 나름대로 앗쌀한 맛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뭔가 결심하고 한다면 해내는 그런 게 있었어요. 실업계 야간 고등학교 3학년을 다니던 1982년에 여름에 대천해수욕장, 경포대해수욕장 이렇게 두 군데를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씩 놀러갔다 오더니 학력고사(그 당시는 수능이 아니고 학력고사) 100일을 앞두고 제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나 대학 가야겠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적어도 중상위권 이상 성적은 되어야 대학을 갈 수 있는데 공고 야간에서도 중간도 되지 않는 성적으로 대학을 간다는 것은 꿈 같은 얘기고 불가능한 것이었어요.
일례로 형이 다녔던 그 공고에서 같은 계열인 2년제 공업전문대 간 학생은 몇 명 있었는데, 4년제 대학을 간 학생은 개교 이래 주간, 야간을 통틀어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어쨌든 형님이 대학을 간다고 하니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저도 안심이 되고 좋더라구요. 늘 싸우다 퇴학당하면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곤 했는데, 그런 걱정 안해도 되니까요.
대학을 가기로 마음 먹은 둘째 형님은 학력고사를 100일 남은 그날, '100일 작전'이라고 명명하고 공부를 미친듯이 했어요. 수학, 영어는 단기 공부해서 안될 것이니 깨끗하게 포기하고 다른 암기 과목들에 집중했습니다.
그후로 학력고사 치루는 날까지 제 기억으로는 하루에 2시간 이상 자는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책상에 붙어서 공부만 했어요.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하더군요.
그러더니 결과가 어땠는지 아세요? 떡 붙었습니다. 그것도 전문대가 아닌 4년제 대학인 건국대학교 체육교육과에.
형은 나름대로 전략을 세웠던 겁니다. 어차피 인문, 사회, 자연 계열 같은 경우에는 들어가기 힘드니까 형이 잘했던 운동 특기를 살려 체육교육과를 가기로 마음을 먹은거죠. 상대적으로 학력고사 점수가 조금 떨어져도 실기 시험을 잘보면 갈 수 있었던 체육과를 목표로 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학력고사 점수도 웬만큼 받아놓은 상태에서 실기 과목에 집중을 하더니 결국 대학에 입학을 한 겁니다. 건국대학교 체육교육과 83학번이었습니다.
정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겁니다. "내 평생 소원이 둘째가 무사히 고등학교 졸업하는 것"이라고 했던 어머님이 정말 너무도 기뻐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둘째형님 대학교 입학식날 온 가족이 다 가서 축하해줬던 기억이 나네요.
둘째 형님이 "나 이제 대학가야겠어"라고 결심을 하고 100일 작전이라는 것을 했을때가 딱 지금 이맘 때였네요.
올해도 수능을 앞둔 학생들이 코로나19도 겹친 악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 팅커벨에서는 수능보는 학생보다는 그런 자녀를 둔 어머님들이 더 많으시겠죠.
다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주말도 되고 해서 약간 여유가 있어서 저희 둘째 형님의 기적같은 이야기를 한 번 써봤습니다.
둘째 형님은 생활력이 무척 강해서 대학교 생활중에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해서 학비를 벌기 위해 종합병원 앰블런스 운전기사를 한 동안 하다가 대학을 졸업한 후 평범한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가 지금은 은퇴해서 프리랜서로 여유있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 책상에 늘 꽂혀있는 50년 전 가족 사진.
사진 속 맨 오른쪽이 둘째 형님. 아버지 품에 안긴 아이가 저입니다.
첫댓글 대표님은 아버님 닮으신거같어요. 50여년전 가족사진~ 단란한 가족모습이네요^^~
빛바랜 사진속 부모님과 형제들... 추억이 새록새록하시겠어요
아!대단~~
부모님 속을 끓이셨던 둘째 형이 100일의 기적을 보여주셨네요~놀랍고 희망적이네요~
가족사진 너무 좋습니다.밤톨같은 아들 넷!^^
가족들 모습이 참 보기좋습니다~~
해수욕장 놀러 가셔서 어떤 충격을 받으셨는지 궁금해지네요~~
와아~ 저희 아빠는 제가 아들이길 엄청 바라셨대요;; 저도 진정 원하는게 있으면 대부분 해냈던거 같은데 그런 열정도 30초반까지 였네요^^;; 아무튼 역시 글이 술술 잘읽힙니다 참 재밌는 에피소드입니다
사진을 보니 외탁인가보다 했는데 오잉? 아버님도 닮으셨고...알고보니 어머님 아버님이 서로 닮으셨네요^^
워후 대표님 아들만 넷이셨을줄은 몰랐네요 ~~ 둘째 형님 진짜 대단하시네요 빛바랜 가족사진 따뜻한 느낌이 드네요~ 가족사진을 꼭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