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성
양수남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른 아침, 늘 고운 자태와 분홍 빛깔로 아침 인사를 하던 여름 꽃은 축 늘어져 웃음을 잃은 채 외면을 한다. 그러나 실한 꽃받침 위에 가느다란 꽃잎의 문주란은 가랑비에 아침 세수라도 한 듯 더욱 산뜻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준다.
문주란의 향기가 그리워 가까이 다가가니 은은한 꽃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여 상큼함이나를 유혹한다. 빗물에 늘어졌던 감나무 가지가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애 굵은 빗방울을 후드득 내게 뿌리며 꽃으로부터 떼어놓았다.
오늘 아침은 다섯 시 반에 출근을 해야 한다고 엊저녁 그이는 내게 귓띰을 해 주었다. 미리 씻어 놓은 쌀로 밥을 짓는 중 압력솥 추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먹는다고 밥을 하느냐며 그이는 편치 않아 한다. 그러나 나는 한술 뜨는 이른 조반이지만 새로 지은 밥으로 준비해 주려는데, 이것도 내 고집인가 싶다.
그이가 식사하는 동안 우산을 찾아 놓고 오늘도 맡은 일 잘 해내고 귀가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남편의 구두를 솔질하여 가지런히 놓았다. 빗속에 우산을 들고 출근하는 그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무심히 들어 넘길 수 없었던 어느 댁 가장이 하던 이야기가 스쳐 지나간다.
그 집 가장은 매사에 예와 아니오 가 확실한 분으로, 일 욕심도 많았고 일을 추진하는 능력 또한 대단한 분이다. 그의 아내는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으로 불평의 말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말을 아끼고 언제나 부드럽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 아내가 잊지 않고 하는 일은 가족들이 벗어 놓은 신발들을 신기 좋도록 되돌려 놓는 일이었다. 사랑의 마음으로 언제나 정성스럽게 그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별 것도 아닌 일로 아내에게 큰 소리하며 짜증을 내고는 아침에 일어나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현관을 나오는데 늘 그랬던 것처럼 신발은 신기 좋게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밤 일로 서먹한 감정이 사라지며, “아내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내면에서 무엇이라도 해 낼 수 있는 자신감이 솟구치는 것을 경험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내로서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일상의 작은 배려나 정성이 하나둘 모여 조각보 같은 행복을 이루고 있었으니 정성은 기쁨과 희망의 열매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몇 켤레의 하얀 고무신이 아버지의 사랑방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을 때면 그 방안에 귀한 분들이 함께 모이신 것 같아 밖에서도 조심스럽게 처신하였던 어릴 적 생각이 난다.
그러나 우리들이 겨울이면 즐겨 모여 놀았던 승표네 건넌방 문 앞은 늘 어수선하였다. 혹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들어간 친구가 있다 해도 발로 밀어내기도 하고 그 위에 다른 신발이 포개져 있기도 하였으니 밤이 깊도록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려면 여러 명이 한꺼번에 자기 신발을 찾느라 등불을 켜들고 나와 한바탕 수선을 떨어야 했다.
잘 정돈 된 곳에서는 그 분위기에 따라 정숙하고 질서 있게 대처하면서도 편안한 곳에서는 마냥 자유롭게 행동했던 것이다. 손님이 오시면 신발을 현관문 쪽으로 돌려놓아 바로 신고 나 갈 수있도록 해 놓게 된다.
내 집을 찾아 준 손님을 맞이하며 보내는 주인으로서는 마땅한 일이리라. 그런데 가족들에게는 왜 그런 정성을 쏟지 못했을까? 전날 벗어 놓고 들어간 신발이 무관심하게 그대로 있을 때, 어제의 짓눌렸던 일들은 아침 출근이나 등교시간에도 엄습해 오는 무게로 내리 덮지는 않았을까?
오늘도 어제처럼 또 시달려야 되는 삶의 연속에서 벗어날 수 없지는 않았는지?... 내가 섬겨야 할 가족들에게 그 일을 하지 못했기에 후회가 많다.
사랑하는 가족 특별히 아내가 어머니가 깨끗이 닦아서 신기 좋도록 돌려져 있는 신발을 신을 때, 자존감을 높여 주었을 것이다. 지나간 어제는 모두 잊고 정성어린 관심과 사랑을 느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며 오늘을 새롭게 열어 갈 수 있었을 텐데...
소중한 가족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라면 이제라도 열심히 가족들의 신발을 먼지를 털어 편하게 신을 수 있도록 가지런히 놓아야 하겠다 고다짐을 해본다. 가장들의, 그 힘의 원동력이 가정에서부터 충전 되어진다는 말을 익히 들어 왔음에도 이제야 실감하다니...
그러나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이르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 넣는다.
2002 13집
첫댓글 내 집을 찾아 준 손님을 맞이하며 보내는 주인으로서는 마땅한 일이리라. 그런데 가족들에게는 왜 그런 정성을 쏟지 못했을까? 전날 벗어 놓고 들어간 신발이 무관심하게 그대로 있을 때, 어제의 짓눌렸던 일들은 아침 출근이나 등교시간에도 엄습해 오는 무게로 내리 덮지는 않았을까?
오늘도 어제처럼 또 시달려야 되는 삶의 연속에서 벗어날 수 없지는 않았는지?... 내가 섬겨야 할 가족들에게 그 일을 하지 못했기에 후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