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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Y - 2
2024/10/27(일) 설악산, 지옥의 하나되는길 + 돌잔치길
벌겋게 불타오르는 울산바위를 바라 보며 하루를 열었습니다. C지구 주차장까지 전원 이동 후 주차장에서 버스로 설악산 입구까지 이동하기로 합니다.
종구 고문님과 영란언니는 콧물을 쥴쥴 흘리며 몸살기가 있다고 했지만, 연초 약속했던 돌잔치길을 위해 모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숙소를 나섰습니다.
컨디션 난조를 보이던 종구고문님과 봉희선배님은 천천히 뒤따라 오기로 하고 전원 민구고문님을 필두로 어프로치를 시작 했는데...
이 삐딱한 표지판 간판이 이 날 우리의 운명을 알린 것은 아니었을까요..? =.,=
1차. 흔들바위 > 계조암 > 울산바위 > 문리대 시작점
2차. 문리대 시작점 > 알바시작 > 울산바위 코앞에서 뱅글뱅글 지그재그 요지경 어프로치
3차. 울산바위 요지경 어프로치 > 계조암 > 등산로
4차. 등산로 > 실제 지옥문 어프로치 가는 길로 잘 갔다가 스스로 의심을 시작하고 다시 되돌아감
5차. 다시 등산로 > 이상한 출입금지 표지판까지 왔다갔다
6차. 다시 등산로 > 최종 알바를 마무리하기 위한 타잔길로 진입 > 잘못왔음을 깨달았으나 기다리다 지친 종구 고문님이 타잔길로 구출하러 오심
최종적으로 민구성따라 장장 3시간 알바 후, 민구성은 한크랙 불신의 아이콘으로 급부상 했습니다. ㅋ
종구고문님이 전화로 출입금지 표지판으로 오면 된다고 하셨는데, 설악산 내에 있는 모든 출입금지 표지판을 만난 것 같은 하루였습니다. ㅋ 더 이상 민구고문님을 신뢰를 할 수 없게 된 영란언니는 트랭글 지도를 켜고 스스로 찾아가려 했으나 최종적으로 이마저도 틀린 길이었습니다.
이 길이 맞기는 한 건가요..? 눈 앞에 울산바위도 보이고 지도상으로 매우 근접해 있었으나 도저히 일반적인 등산로 같지 않았고 정말 타잔이나 갈 법한 우거진 정글탐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되돌아 가기엔 너무 늦어버렸고, 모두가 일요 등반을 접고 싶어할 정도로 체력을 탕진했을 무렵 반가운 종구고문님의 목소리를 따라 밀림을 헤쳐 나가 겨우 도착한 지옥문
같은 길을 3시간이나 와리가리 헤멘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그 시간 동안 기다린 봉구(봉희 선배님+종구 고문님)선배님은 골바람이 부는 지옥문에서 나름의 고생하신 듯 했습니다. 그래도 길 잃은 어린양들(?)을 데리러 와주셔서 마침내 웃으며 모두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ㅎㅎ
돌잔치길과 하나되는길로 팀을 나누고 장비를 착용합니다.
돌잔치 : 박종구, 김재민, 김지수, 김영란
하나되는길 : 문상연, 조민구, 장소문, 장원석, 김동진
지난 6월 설악등반에서 우연히 <돌잔치길>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때, 국내 최장 암릉이라는 것이 마치 등반 종주 같은 느낌을 받아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막 등반을 시작한 꼬꼬마 등린이라 당장은 어렵겠지만 언젠가 그 길을 걷게 되었을 때 마주할 풍경에 대한 설레임을 상상해 보기도 하면서요. 그때 농반진반으로 종구 고문님께 돌잔치길에 데려가달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무리 후등은 못 갈 곳이 없다지만 한없이 낮은 등반 자존감에 쓸데없이 성실하게 자기 객관화를 하다보니 막상 기회가 왔음에도 도전해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이전부터 종구고문님이 '돌잔치길 갔다가 못가면 하나되는길로 가면 되니까'라는 말씀을 하셔서 사전에 찾아보지도 않고 <하나되는길>이 돌잔치길의 대안쯤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시금 길에 대해 물었을 때 '하나되는길이 난이도는 더 쉽지', '돌잔치는 못 가면 인공으로 가면 되니까 잡을 건 좀 있지'라는 말을 하셔서 돌잔치가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난이도가 낮다는 건 더 쉽다는 뜻이 아닐까라고 자기최면을 걸며 저는 하나되는길로 가기로 했습니다.
하나되는길, 문상연 선수의 선등 출발
"손을 넣기도 애매하고 몸재밍도 안돼요."
하나되는길은 지옥문을 기준으로 전면부 좌측에 있다면 돌잔치길은 지옥문을 통과해 반대편으로 직상하여 오르는 듯 합니다. 멀지 않은 거리지만 맞붙어 있지 않고 나들이길을 제외하면 주변에 다른 루트도 없어 전세등반인 기분이었습니다. 봉구선배님(봉희선배님+종구고문님)이나 빵쨈부부(영란언니+재민이형)는 원래 목소리가 큰 편이 아니라 그런지 우리가 있는 하나되는길 시작점에서 제가 느끼기에는 이 거대한 설악산에 오로지 상연이의 거친 숨소리만이 울려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크랙으로 들어간 상연이의 모습은 당최 보이질 않고 세컨 빌레이를 보는 민구 고문님의 손에는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바위 속에서 시체처럼 툭하고 떨어지듯 튀어나온 상연이의 팔꿈치와 그곳을 가득 메우는 거친 숨소리가 울려퍼졌고, 그제야 민구고문님이 상연이를 부릅니다.
"상연~ 거기서 쉴 수 있으면 좀 쉬어~"
/"네에"
잠시 후 금새 안정감을 되찾은 상연이 활짝 웃으며 얼굴을 보여주고는 다시 선등을 이어갑니다.
# 잠시 넘어와서 돌잔치길
위에 올라가면 풍경이 좋다며 구경하고 오라는 봉희선배님 말에 신랑과 함께 지옥의 문으로 들어가봤습니다.
세상에.. 여기도 뭐.. 딱히 더 쉬워 보이질 않습니다. =_=
암릉 상의 바위 봉우리를 연속으로 넘으면서 바위 하나에 한두 개의 루트를 개척해야 했기 때문에 개척기간 중 많은 난관에 봉착했고 확보와 하강지점에만 볼트를 설치했다고 하는데 무조건 캠을 박으며 가야 하는 방식이라 선등자의 위엄이 더욱 느껴집니다.
돌잔치길은 바다가 보이는 쪽에 있어 날이 좋은 날 오르면 더욱 장관이 멋지다고 합니다. 날이 흐려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풍경을 느껴보기로 했습니다. ㅎ
# 다시 하나되는길,
사진도 찍어줄겸 돌잔치길에 다녀오니 상연이가 1피치 완료를 했고 민구 고문님이 뒤를 오릅니다. 마찬가지로 고문님의 고된 숨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고, 늘 제가 반칙할 때마다 구박을 하시던 고문님의 온갖 반칙을 모두 목격하게 되었습니다.ㅋ (거의 반칙왕 수준..)
평정심을 찾은 고문님의 넘치는 여유!
상연이가 선등할 땐 대단하긴 하지만 뭔가 좀 귀엽다고 생각했고, 고문님이 올라가실 땐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 차례가 되어 올라가보니 ... 1피치의 1/5지점도 못가서 당장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하하하... -_- 정말 올라가면 딱 그 말이 체감되는데, 손도 안들어가고 몸재밍도 안되는데에다가 바위는 자꾸 밟는 족족 부서지고 흘렀습니다. -_- 크럭스 끝나고 크럭스, 그냥 죄다 크럭스의 연속...
열 발자국 이내의 거리에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100번도 더 했고, 바위에서 발을 떼기도 전에 슈퍼맨처럼 날아 올라가는 신세계를 경험했으며 앞으로 이런식으로 등반을 계속한다면 그 등반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허무주의부터 실존주의까지 온갖 사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체험도 했습니다. 하하하. 나중에 민구 고문님도 저를 끌어올리느라 너무 고생하셔서 그냥 내려주고 싶었는데 올라와서 상연이의 대단함을 느껴보라고 이를 악물고 올리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이날 이후 문상연 코인을 모아 보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1피치 확보하고 나니까 존경심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열심히 딴짓도 하면서 글을 쓰다보니 벌써 새벽 4시반이 되었네요. 눈이 슬슬 감깁니다. @_@
그래도 맨정신에 일을 하기 위해선 이야기를 슬슬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문상연의 하나되는길 산행보고에서 읽어주시기를요.
결론,
이번 설악등반팀은 특별히 캐미가 좋아서 다사다난한 것 치고는 무한히 웃었었던 것 같습니다 ㅋ
그 어떤 때 보다 강려크한 자일의정도 느껴 보았고, 등반을 그만두면 이런 풍경을 못만난다는 확신도 들었고요. ㅎ
어째 가족들 보다 자주봐서 그런지 이제는 가족들보다 더 가족같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첫댓글 고생하셨네요
울산바위는 바라만봐도멋지죠
새벽에 장문의 글 올리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_^
문학상 감 이네요. ㅎㅎ
2번째 읽다보니 나에 대해 감정(?)을 담아 너무 디테일하게 표현을 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ㅠㅠㅠ
자빠지고 넘어지고 그리고 다시 서고, 서로 보고 웃고…. 화내고, 원망하고 또 그러다
보면 측은지심이 느껴지고 그래서 손을
내밀고…. 우린 그렇게 식구가 됩니다.
산행보고 수준! 앨범 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