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김은희(Kim Eunhee)
일정 ▶ 2024. 02. 21 ~ 2024. 02. 27
동연갤러리(GALLERY DONGYEON)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5길 7 02-722-2743
● 관습을 넘어선 새로운 길
홍경한(미술평론가)
해방이전부터 서양미술의 유입이 이뤄지고 1950년대 후반 이후 현대미술에 대한 논의는 활발해졌지만 반대로 우리 미술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소홀한 측면이 있다. 단선적으로 진보와 실험성이 당대의 화두로, 오늘까지 이어져 오면서 표피적인 시류(時流)에 민감했을 뿐 순수 우리 미술에 대한 본질적 물음이 전제된 것은 아니었다.
물론 토착화 되었거나 토종성을 갖는 것에 대한 문제는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숙명적 관념이기도 했지만 마땅히 답을 내리기도 어려운 문제였음이 분명하다. 단순히 우리나라 지역산천을 답습하고 습속(習俗)의 성격을 갖는 무언가를 그려낸다고 하여 그것이 우리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그 내용 역시 보편적인 전통성을 따른다고 하여 딱히 우리 것이라 주장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때 토종 미술운동인 민중미술이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마치 우리미술의 진정함처럼 역설(逆說)된 시절이 있었으나 담론의 형성은 미약했던 것도 사실이다. 외국의 사조와 철학적 개념을 변용, 무비판적으로 흡수하며 나름의 독창성을 찾아가며 우리 것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으나 짧은 현대미술의 역사 속 태생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왔음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이처럼 우리미술의 진정성에 대한 문제는 100년 남짓한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지속되어 온 의문이었고 여전히 앞으로도 풀어 나가야할 과제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매순간이 어제의 그것과는 판이한 미술의 흐름에 있어 우리 작가들이 과연 어떤 방식과 접근법을 통해 우리 것의 중심을 바라보느냐는 것에 있다. 그리고 작가 김은희의 작품들은 그 한국성과 동시대미술의 변화 속에서 고찰의 여지를 준다.
김은희의 화사(畫史)는 ‘우리 것’에 대한 자문과 맞물린다. 민족적-민화적 소재와 색을 사용하여 자신만의 채색화에 관한 그의 고민은 긴 시간 이어온 화업(畫業) 만큼이나 짙었고, ‘맥(脈)’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일단의 성과도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 속 인물의 새로운 발굴과 조명 또한 그가 남긴 또 다른 흔적이랄 수 있다.
지난해 필자는 그의 전시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김은희는 한국 문화에서 중시해온 자연의 미를 채색으로 승화시키거나 역사적 장면을 인물로 담아내며 회화의 지평을 넓혀왔다. 전통채색화에 대한 남다른 의식과 가치관으로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그는 한국적 회화 양식의 본질을 탐구하고 우리 전통 채색화의 맥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이를 논리적, 실천적으로 밝히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온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그렇다. 그의 그림은 한국적 품위를 지닌 아취와 안정적인 색채 감각 등을 특징으로 한다. 빛을 품은 선(線)과 그 결정체인 색(色), 그리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조화의 미는 우미한 채색과 정교함을 바탕으로 빚어지며 이는 다시 비움의 드러남이요, 채움의 여백이라는 조형을 낳는다. 이는 한마디로 “한국적 회화 양식의 본질을 찾아 우리 전통 채색화를 계승하는 한편, 이를 논리적, 실천적, 실험적으로 밝히며 넓히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로 정리할 수 있다.
더구나 그의 그림은 수십 차례 덧칠하며 완성된 밀도를 통해 제 색을 내는 질료의 특성과 기법에 기대고 있다. 한국적 색채 확립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그것은 바로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오방색(五方色)이다. 이는 전통채색화에 대한 남다른 의식과 가치관 탓이 크다.(물론 이러한 양태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아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소신과 판단이 낳은 결과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신과 판단은 작가로써 혹은 후학을 양성하는 입장에서도 중요한 나침반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그림 특징은 어느 하나에 구속되지 않는다. 언뜻 민화의 얼개를 갖고 있음에도 현재의 어떤 작품 못지않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단순화하거나 과장된, 대범한 경향, 관조적인 형식을 이용한 원색의 강렬함, 시점 없는 도식(圖式) 등, 그의 작품에서 확립된 여러 가지 특징은 동시대미술에서의 쓰임과 별반 다르지 않아 고전과 현대, 양자 간 묘한 순환성을 내포한다 해도 틀리지 않다.
실제로 김은희는 정형적인 틀에서 안주하지 않았다. 양식적 구분을 해체하려 했고,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성을 내보였다. 자타가 인정하는 채색화를 잠시 내려두고 어느 날 갑자기 영상작품을 선보이는가하면, 철저한 고증을 거쳐 추정한 ‘백제왕비’의 초상을 내놓기도 했다.(백제왕비의 초상은 습관적 ‘틀’로부터의 이탈하려는 작가의 남다른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새로운 소실점을 향한 의미 있는 발자국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성모마리아가 등장하는 일종의 종교화도 같은 결을 지닌다.
이와 같은 흐름은 한마디로 질료와 감각, 매체 확장을 통한 의미의 재발견이자 전통적인 흐름을 고수하면서도 기존의 양식을 하나씩 풀어가려는 작가의 태도, 그 연장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의 구축을 위한 작가의 끝없는 관심-노력이라 해도 무방하다. 필자는 이 부분을 높이 산다.
사실 김은희의 그림은 그냥 그린다는 행위에 멈춰 있지 않다. 오랜 시간의 자문과 해답으로 채워진 그림이자 색깔이다. 애초 황량한 화면을 강렬하게 이끄는 그 색깔들에겐 다양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가 논하는 색깔은 한국 고유의 전통색깔, 즉 오방색(오방정색,五方色)을 기초로 한다. 밝고 맑고 깊은 맛이 우러나는 우리의 색깔을 작품의 근간으로 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이는 동양 전통의 선(禪) 사상 중 ‘돈오(頓悟)’사상이 아닌 ‘점수(漸修)’사상을 이어받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빛이 쪼개져 색을 낳고 그 색이 균형을 유지하여 에너지를 갖게 되는 구조다.
그러나 무엇보다 작가의 실험적 태도는 눈여겨봐야할 대목이다. 연속성을 띠는데다,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내용적 측면을 보다 견고히 하는 장치로써 손색이 없다. 장르 간 경계 없는 오늘의 시도는 습관적으로 행하던 조형방식을 해체함을 넘어 ‘나’에게 주어진 틀을 뛰어넘는 계기가 될 수 있기에 그 안에 내재된 가치도 작지 않다.
이밖에도 김은희를 말하며 덧댈 이야기는 많다.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알기 위해 각종 철학을 접하고 연구하는 등, 좁게는 조형의 새로운 길을 위해, 넓게는 예술과 인간에 대한 근원성, 연관성을 찾기 위해 몰입해왔다는 점도 그 중 하나이다.(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자연만 해도 그렇다. 외적으론 하나의 이미지이자 작가의 시선에서 포착한 자연의 표상일 수 있지만, 작가의 미적의지가 투사된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상적으로 접근한 주제들도 동일하다. 대상의 본질을 궁금하게 만드는 초상화도 그 중 하나이다.)
이처럼 김은희는 스스로 자리한 다층적 위치와 충돌로 새로운 길을 만든다. 어느 한 방향으로의 치우침이 없이 작자(作者)와 타자 사이를 일종의 균형의 미를 유지한다. 전통과 현대조차 정확한 균형(均衡)에 의해 조정되며 그가 고집스럽게 품어 온 주제들은 선대의 맥락 내에 위치함과 더불어 자유로운 선 넘기를 통해 누구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열람하게 한다.
이제 그가 추구하는 그림은 쉽게 말해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그런 그림이다. 그의 색은 우리의 오방색이고 이는 작은 우주인 우리 인간과 밀접하게 드러난다. 필자는 그의 그림이 색깔을 잉태한 빛처럼, 그 빛이 매체에 안착되어 보다 널리 퍼져 나가길 기대한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사유의 공명’ 차원에서라도 현재의 실험적 경주가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김은희는 그동안의 화사를 정리한 책자를 펴내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 내용들이 그림과 텍스트로 질서정연하게 들어설 예정이다. 발간과 동시에 전시도 개최된다. 이번엔 어떤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이할지 궁금해지는 게 사실이다. 물론 필자의 기대와 달리 작가 자신은 아직 성에 차지 않을 수 있고 독자적 언어에 요구되는 단어와 숙어 역시 많겠으나 이번 기회를 통해 특유의 도전의식과 그로 인한 미의 지평 확장, 의미의 재발견이 가능해지리라 여긴다.
작가노트 | 김은희는 전통 재료와 방식을 고수한 우리나라 전통 채색화를 그려낸다.
두터운 한지인 장지 표면의 공극을 메우기 위해 여러 차례 호분 반수 과정을 거친 뒤 먹과 색으로 철저한 밑 작업을 한 다음, 전통 재료인 천연 안료와 염료, 광물성 재료 등의 분채와 석채를 아교로 교착한다.
그리고 반복적인 색의 중첩을 통해 나의 심상과 감정,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바를 아주 서서히 담아내고, 천천히 배어내며, 우아하게 드러낸다.
나의 예술적 여정은 전통의 ‘우리 색’인 오방색을 중심으로 이에 내포된 전통 문화유산의 보존과 탐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 색’을 활용한 작품을 통해 감상자들의 깊은 내면과 교감하고, 따뜻한 공감과 응원이 가득한 편안의 세계로 이들을 초대하고자 한다.
■관람후기 ■
[이만주] 단기 4357년 2월 24일, 김은희 화백의 <무령왕비 서울 납시오> 서울전시회는 경향 각지에서 모여든 범백제포럼 멤버들로 인해 알찬 자리가 되었습니다.
마침 정월대보름인지라 오곡찰밥에 아홉 가지 나물로 축하연 床이 차려졌습니다.👍
[鄭鳳淑PAINTER] 함께 하고 싶었지만 못해 아쉽습니다. 김은희작가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https://www.chungnam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1412
2022. 9. 30.
https://blog.naver.com/morrisart/222528756141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