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등단 시인방'에 오른 시를 보았다.
손편지로 '기체후氣體候 일향만강一向萬康하신지요'라고 글 썼다는 내용이다.
내가 아래처럼 댓글 달았다가는 지웠다.
혹시 미움이나 받을까 싶어서.
대신 여기에 옮겨서 하나의 글감으로 삼는다.
위 문구에 빙그레 웃습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와 헤어져서 도시로 전학을 갔지요.
아버지가 고향의 어머니한테 편지를 쓰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막막해서 가만히 있었지요.
보다 못한 아버지가 불러주시는 것을 종이에 쓰라고.
'기체후 일향만강'하신지요'
이거 초등학교 학생이 이해하겠어요?
아버지가 쓰라고 했으니까 소리나는 대로 한글로 썼지만 이게 무슨 뜻인지...
내 나이 일흔세 살인 지금(2020년)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어린시절이 생각나는 한자말이군요.
저는 이런 한자말보다는 차라리, 영어, 일본어를 하는 게 훨씬 낫겠습니다.
제가 살았던 시골 산골마을에서는 무학자들이 무척이나 많았지요. 한글조차도 배우지 못해서
이웃집 아주머니가 편지를 들고와 읽어달라고 부탁하대요.
위대한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
저는 그거 하나이면 족합니다.
한 시간이면 3,600 ~ 5,000자를 쓸 수 있기에.
1초에 글자 몇 개를 쓸 수 있을까?
나는 최소한 1초에 글자 1개 이상을 쓸 수 있다. 입에 나오는 대로 그냥 줄줄이 쓸 수 있다.
나는 1시간에 최소 3,600자에서 5,000자 정도를 쓸 수 있다
더군다나 성질 급하고, 성깔 사나운 나이기에 한글로 글 쓰는 것은 정말로 쉽다. 그만큼 우리 한글이 쉽다는 뜻도 되겠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중국 글자인 한자를 쓰려면? 그거 정말로 힘이 든다. 한자를 눈으로 보면서 그대로 베끼는 것조차도 힘이 든다. 도대체 어떻게, 어떤 획부터 써야 하는지? 하물며 한자를 보지 않고 쓰라고 하면 과연 내가 틀리지 않고 제대로 쓸 수 있는 한자가 몇 개나 됄까?
한자 많이 아는 당신은 현행 80,000개의 한자 가운데 과연 몇 개나 제대로 쓸 수 있는가? 라고 묻고 싶다.
남의 나라 글자인 한자를 눈으로 쳐다보았으되 그게 어떤 음(音)으로 소리를 내며, 또 그게 무슨 뜻을 지녔는지를 전혀 짐작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비하여 한글은 글쓰기도 쉽고, 읽기도 무척이나 쉽다.
나는 성질이 급해서일까? 1분이면 글자를 몇 개나 읽을까?
책 1쪽에 1,000 ~1,200자 정도라면 나는 시간당 책 60 ~100쪽 정도나 읽는다.
그런데 말이다. 한자로 된 문장을 읽으려면 나는 과연 1시간에 몇 개나 읽을까?
대형옥편(사전)을 펼쳐서, 획에 따라서 낱자 하나씩을 대조하면서 읽으려면?
그냥 책을 벽에다 내던져버리는 게 훨씬 마음건강에 도움이 될 게다.
서해안 산골마을 내 선산 아래에는 남포오석으로 세운 비석들이 즐비하게 줄을 섰다.
※ 남포 오석(烏石)은 우리나라 最高의 석질
내 고향 마을의 앞산과 앞뜰이 몇 해 전 모조리 일반산업단지로 토지수용되면서 묘소를 집단이장해야 했다.
무덤 옆에 있던 비석들도 다 함께 옮겨야 했다.
새로 이장한 선산 하단에 두 줄로 세워둔 비석.
나는 읽을 재간이 전혀 없다. 모두 한문으로 된 비석들이기에...
나한테는 그냥 빗돌이다. 장식용에 불과하다. 자손인 내가 읽지도 못하는 한자로 된 게 그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무덤 곁에 세워둔 장식품일 뿐.
지금은 2020년 세상이다.
내 호주머니 든 핸드폰을 꺼내서 몇 개의 글자와 숫자를 누르면 한국 저 너머의 외국까지, 1만km 더 먼 거리에 있는 사람과도 통화를 하는 세상이다. 핸드폰에 뜬 얼굴을 직접 보면서 말하고 글자를 써서 주고 받는 세상이다. 이런 첨단사회에서 아직도 고립타분한 한자로 글자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렇게 한자를 많이 알고, 잘 쓰거든 '한국 국보문학' 월간지를 통채로 번역해서 세계로 알렸으면 싶다.
다달이 발간하는 '한국 국보문학지'와 연 2회 발간하는 '내 마음의 숲' 문학지를 전부를 한자로 번역하기 바란다.
그렇게 하면 나는 '정말로 한자를 많이 아시는군요' 말하면서 당신을 존경할 게다.
우리말로 우리글로 쓴 책을 제3국에 알리려면 외국어에 능통해야 한다. 좁은 한반도를 벗어나서 세계 속으로 한국을 알리려면 한글 못지 않게 외국어에도 능통해야 할 게다.
한국을 외국에 알리려면 외국어로 즉시 통역과 번역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하나의 예다.
내 큰딸은 우리말을 영어로 즉시 통역하고 번역을 한다. 멀리 떨어진 미국 어떤 회사하고도 핸드폰에 대고 솰라솰하고, 핸드폰 자판기를 눌러서 문자를 주고받는다.
이런 세상에서 당신은 고작 한자 단어 몇 개를 알며, 한자말 몇 개를 소리나는 대로 한글로 적냐?
고작 몇 개의 낱말 수준으로?!
우리나라.. 독립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영토, 정치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독립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한반도를 과거부터 종속시켰던 강대국인 중국... 그 중국으로부터 한자를 들여와서 문자생활을 했던 과거 역사.
다행히도 1446년에 조선조 제4대왕 세종이 훈민정음(한글)을 손수 만들어서 세상에 널리 펼쳤다.
이 지구상에서 누가 글자를 맨 처음 만들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글자이며, 그 글자의 가치도 세계 어학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우수하다.
그런데... 왕가, 양반 등 사대부들이 이 훈민정음을 제대로 발전시키며, 썼냐?
아니다. 권력자, 지식계층, 가진 자들은 훈민정음(한글)을 언문(아랫것들, 아녀자들이나 배우는 글)이라고 천대하고는 자기네들은 대국인 중국 글자인 한자를 즐겨 썼다.
자연스럽게 한글의 발전이 미미하게 희미하게 최근세까지 이어져 내려왔을 터..
다행히도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에 한글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비춰졌고, 보완해서 지금처럼 발전하게 되었다.
...............
어제는 10월 9일.
세종이 훈민정음(한글)을 반포한 지 제574년이 되는 날이다.
나부터 반성한다.
내 입말에는 그 어려운 한자말이 무척이나 많이 들어 있다고.
하지만 나는 이왕이면 한자말을 덜 써야겠다고 늘 다짐한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기 쉬운 우리글로 바로게, 많이 쓰자'라고 거듭 거듭 말한다.
'한국 국보문학' 카페의 이름은 정말로 잘 지었다.
한국의 국보 제1호는 '우리말과 우리글(한글)'이어야 한다.
서울 중구에 있는 남대문이 국보 1호라고? ]
그거 가짜이다. 10여 년 전에 노숙자가 잠자다가 자기 빛 문제로 화를 내면서 일부러 불을 질렀다. 그 결과로 홀라당 탔다. 훗날 새로 만든 모조품이며, 가짜이다. 남대문이 있던 자리(땅)은 진짜이지만 건물만큼은 가짜, 짝퉁이다.
이제는 우리나라 국보, 보물은 '우리말, 우리글(한글)'이어야 한다.
한자 많이 아는 당신네들.
나하고 시합하자.
당신들은 한자로 글 쓰고, 나는 한글로 글 쓰는 것으로 내기를 하자.
어쩌면 당신들이 이길 게다. 왜? 당신들은 한자를 많이 알기에.
나는.. 그냥 우리말을 우리글(한글)로나 제대로 썼으면 싶다.
당신들 자신 있지?
고작.. 한자 몇 개나 쓰겠냐?
한국 국보문학지 한 권이라도 한문'한자로 번역해서 중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 내봤으면 싶다.
그치?
1.
오늘은 2020. 10. 10. 토요일.
날씨가 서늘하며, 하늘에는 구름이 제법 끼었다.
나는 요즘 은근히 지쳐서 몸이 추욱 늘어졌다. 바깥 나들이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아파트에서만 머물렀다.
조금씩 기운을 되찾기에 이틀 뒤인 다음 주 월요일에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시골집에 내려가야겠다.
비록 며칠간이라도 산바람 들바람을 쐬야겠다. 시간이 나면 무창포해수욕장, 대천해수욕장 등에도 들러서 갯바람을 쐬야겠다. 바람을 쐬면 기운을 더욱 차릴 수 있을 게다.
올해에는 이상한 해가 되었다.
올 1월부터 중국 우환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라바이러스'가 한국에 번져서 모든 일상생활을 바꿨다.
1월 2월 당시에는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발생 숫자가 많아서 세계 1등인 중국에 뒤이어 2등이었다.
2020년 10월인 지금에는 세계 몇 등으로 떨어졌나 모르겠다. 아마도 순위가 90 ~ 100 등으로 뚝 떨어졌을 게다. 그만큼 우리 정부가 당역대책에 잘 대응하며, 또한 국민들도 이에 잘 호응한 결과라고 본다.
그런데도 아직도 코로나가 무서워서.. 나같은 노인네들은 외출을 자제해야 한다.
나는 시골에 내려가서 문중 산소 벌초행사에 참가해야 하는데도 코로나에 전염됄까 싶어서 벌초행사에도 가지도 못했고, 또 추석 한가위 때에도 조상님 산소에 절을 올리지도 못했다.
코로나-19가 다소 잠잠해지는 요즘이기에 나는 용기를 내서 시골에 한 번 다녀오려고 한다. 오랫동안 비워둔 시골집이 어떤 모습일까도 궁금하다.
내 시골집은 1957년에 개보수를 한 낡은 함석집이다. 혹시나 비바람에 낡은 함석이 벗겨져셔 내동이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내일 모레 오후이면 시골에 내려가면 상황을 얼추 짐작할 수 있을 게다.
지금은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시골로 내려가 있다.
올해.. 가을이 되었어도 나는 가을걷이를 할 게 아무 것도 없다.
텃밭 세 자리에 가꾼 게 아무 것도 없기에.
텃밭에 가득 찬 과일나무... 제멋대로 웃자라서 벌레(해충) 먹고), 새들이나 들락거리면서 쪼아댔을 게다.
나는 어린시절 객지로 떠났고, 그 고향을 혼자서 지켰던 어머니 곁으로 내가 내려간 때에는... 내가 정년퇴직한 뒤에서야 내려갔기에 아흔 살 늙은 어머니와는 몇 해밖에 함께 살지 못했다. 섣달그믐이 생일인 어머니는 아흔일곱 살을 난 지 며칠 뒤에 저 너머의 세상으로 여행 떠났고, 어머니를 서낭당 앞산에 흙집 하나를 지어드리고는 나는 그참 서울로 되돌아왔다. 흙집.. 아버지가 수십 년 전에 돌아가셨기에 그 무덤을 파서 아버지 곁에 어머니를 모셨다. 어머니, 아버지한테는 산속의 흙집이 가장 어울릴 터.
그런 시골집이다.
그런 텃밭이다.
내 마음 속의 고향은... 너무나 쓸쓸하게 늙어간다.
나이 많은 동네사람들이 하나둘씩 먼 세상으로 여행 떠날 때마다 더욱 자리가 빈다.
그런 고향인데도... 내 어린시절의 기억과 추억이 아직껏 남아 있다. 비록 사그라지고 희미해지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