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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저항 (롬2-51)
찬양 :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본문 : 롬13:1-7절
‘내가 선 이 곳 주의 향기로 물들이소서.’
오늘은 이 찬양의 가사가 내 고백이 된다. 오늘도 내가 선 곳이 주님의 향기로 물들여지는 그런 삶이 되게 하소서.
코로나19로 바뀌어진 사역의 지형속에 변화와 혁명의 옷을 입고 새로운 사역의 길을 찾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때이다. 진정 작은교회의 신문지 한 장의 정신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 대안이 어떤 것이 있을까?
지금은 원망이나 불평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여전히 이 땅과 역사의 주인이시며 코로나19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교회가 성경이란 기준아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할 때이다. 그리고 리더십의 교체를 시급히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세대들이 일어나고 있기에 이들을 위한 장을 열어주어야 한다. 주님, 인도하소서. 오직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담대하게 확신을 가지고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하소서.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모든 권세가 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니 권세에 복종하라고 한다. 선한 일을 하면 권세가 두려울 것이 없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두려워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 ‘위에 있는 권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4절
‘그는 하나님이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여기서 주목되는 단어는 ‘하나님이 사역자’이다. 두 번이나 반복되어 사역된 이 단어 ‘디아코노스’는 하인, 고용인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당시 로마의 황제를 하나님의 고용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혁명적인 중요한 발언이다. 사람들은 감히 여기에는 도전을 하지 못하고 다른 작은 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겉으로는 로마 황제에게 복종하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그는 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용인에 불과하다고 놀라운 혁명을 전하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고백인지 이것을 오늘 말씀묵상의 주재료로 삼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니 본문 1-7절까지에 걸쳐 무려 6번에 걸쳐서 ‘하나님’이란 단어를 고백하며 로마 황제는 하나님이 정하시고 명하신 일에 고용된 일꾼임을 분명하게 말하며 그런 차원에서 복종하라는 말씀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로마는 자신의 민족을 속국으로 삼은 원수 같은 나라다. 로마 황제는 자신을 신이라 내세우며 자신을 섬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때 바울은 그는 하나님의 고용인, 하인, 일꾼에 불과하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말씀을 바울의 삶과 연결하고, 당시 로마사회를 배경으로 묵상하며 큰 은혜가 된다. 그가 누구인가? 그는 수없이 권세들에 의해 핍박을 받고, 감옥에 가고 매질을 당하곤 했다. 물론 권세들에 의해 그가 곤경을 피한 적도 있다.
그는 외친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니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는 분명 하나님의 종이지만 세상의 권세를 인정하며 그 권세아래 복음을 전하는 자였다. 분명 당시의 권세가 원수임에도 말이다. 그는 분명히 보고 있다. 엄청난 권세를 가지고 자신을 신격화하는 로마황제를 고용한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말이다. 통쾌한 아침이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 믿음을 가지라고 외치는 듯 하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세워졌다. ‘모든’이란 물론 이스라엘을 억압한 로마의 악한 권력들도 포함하는 말이다.
지금 바울은 로마에 사는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어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궁금해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리스도인은 모든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들의 꿈은 해방이다. 그런데 그 권세에 복종하라니 무슨 말인가?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4절에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라는 말이다. 아니 지금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있는 로마가 어찌 선을 베푸는 자란 말인가? 6절은 심지어 ‘그들이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라고 되어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도대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부정한 권력이 들어섰을 때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잘하는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야 누군들 못하랴! 그러나 우리 땅을 빼앗고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권력에 어찌 복종하라는 말인가?
여기 바울의 태도는 두 가지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는 로마 황제가 내민 작은 법들을 저항하기 전에 그가 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고용인임을 믿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가 세운 법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통로를 여실 것이라고 믿으라는 것이다. 그렇다. 잘 알 듯이 로마를 통해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가는 지름길이 되었다.
오늘이라는 시점에서 내가 복종해야 할 권세는 무엇이며, 복종해야 할 구체적인 지침은 무엇인가? 오늘 이 시대는 권위가 무너져 가는 시대다. 아무도 복종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조금만 합당하지 않으면 반항하는 시대이다. 법이 무력화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권세를 인정하고 복종하라는 말씀은 과연 어떻게 들어야 할까?
여기서 다시 점검해 보자. 지금 바울은 황제가 신이 된 세상에 황제는 하나님의 고용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선포하면서 황제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주목해 본다.
세상은 지금 돈과 세상이 주는 명예와 쾌락을 신처럼 섬기고 있다. 또 지금은 코로나19가 마치 신처럼 여기지는 시대다. 이런 때에 바울을 통해 하나님은 코로나19가 신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바람에 불과함을 보라는 것이다. 아울러 돈이 하나님이 아니라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선언하며 살라는 것이다.
바울은 오늘 로마 황제가 다스리는 세상에서 조금도 굴복하지 않고 로마 황제는 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고용인에 불과하다고 선언하며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분명한 길과 기준을 정하고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믿음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진정한 전쟁은 이 싸움이어야 한다. 황제가 하나님의 고용인에 불과함을 고백할 때 나머지는 다 해결되는 것이다.
오늘이란 삶의 자리가 어떠하든 그 자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삶을 대할 때 우리는 분명한 기준속에서 삶을 살아낼 수 있다. 그 자리에 어떤 잘못된 권력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분명한 기준이 있기에 타협하지 않으면서 그 자리에 거룩한 주님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뒤에서 온갖 두려움에 빠져 저항도 하지 못한채 불평과 원망과 음모를 꾸미면서 겉으로는 힘에 굴복하여 아부하는 그런 사람처럼 살지 않고 말이다. 바울은 그래서 빌립보 감옥의 문이 열렸을 때 그는 감옥에서 도망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 계신 참된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수와 그 가족을 구원하는 놀라운 영광을 보았다.
오늘 하나님을 이용하여 나를 즐겁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로마의 황제가 신이라 우겨도 그는 하나님의 고용인에 불과하다고 당당하게 외치며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향기를 뿜어내는 그런 하루의 삶이 되기를 다짐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몇 가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땅의 참된 통치자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고백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의 질서가 세워지면 나머지 행동은 다 질서를 따라 되어지게 된다.
주님, 오늘도 라마나욧의 대표는 주님이십니다. 코로나19가 난리를 피우고 있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바람에 불과함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온 세상의 법률과 통치가 하나님을 대적하려 하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고용된 일꾼에 불과한 자들이 펼치는 일임을 알기에 두려움없이 당당하게 바르게 대응하며 진정한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