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읍(德山邑)
충청북도 진천군 북부에 있는 읍.
남쪽으로 진천읍·초평면, 동쪽으로 초평면과 음성군(陰城郡), 북쪽으로 음성군, 서쪽으로 이월면(梨月面)에 접한다.
동으로 말이장고개를 통해 음성군과 통하며 동남으로 갈티고개를 경계로 초평면과 접한다. 서남으로는 미호천을 경계로 진천읍과 대한다. 면의 중앙부에 음성군에서 발원한 한천이 남류하면서 넓은 들을 형성한다. 대부분이 고도 100m 이하의 평지로서 중앙부에 미호천의 지류들이 남류하고 있는데 일부 구릉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조선 시대 이곳은 덕문면(德文面) · 방동면(方洞面) · 소답면(所畓面) · 산정면(山井面)이 있던 곳이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이들 면 중 방동면이 가장 북쪽에 있으며 인근에 상고척(上高尺) 제언과 하고척(下高尺) 제언이 묘사되어 있으며 한천으로 추정되는 물길이 그려져 있다. 호구 수가 각각 243호, 325구로 기재되어 있다. 산정면에는 옥동(玉洞) 제언이, 소답면에는 통동(通洞) 제언이 그려져 있다. 덕문면은 미호천 우안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신구대조』에 의하면 1914년 이들 3개 면의 47개 리와 북변면(北邊面) 2개 리, 남변면(南邊面)의 일부와 음성군 맹동면의 6개 리가 편입되었고, 덕문면과 산정면의 이름을 따서 덕산면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29년 삼덕리가 진천면에, 오갑리가 초평면에,
-1983년까지 15개리였는데, 상신리와 산척리가 진천읍에 편입되고, 중석리가 초평면(草坪面)에 편입되어 12개리가 되었다.
-2019년 7월 덕산면에서 덕산읍으로 승격되었다.
읍의 대부분이 100m 이하의 평지이며, 그 중앙을 미호천(美湖川)의 지류인 한천천이 남류한다. 일부 구릉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경지로 이용되어 경지율이 높고, 도내의 쌀 주산지인 진천평야의 중심지를 이룬다. 쌀 생산이 가장 많고, 고추·옥수수·콩 등이 구릉지의 밭에서 산출되며 또한 군내 잎담배 생산의 중심지이고 과수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소규모의 저수지와 방축이 산재해 있다. 용몽리(龍夢里)를 중심으로 도로가 방사상으로 발달되어 진천읍·금왕읍 등지로 연결된다.
문화재로는 진천산수리 백제요지(사적 325), 송인묘소(충북기념물 91), 진천산수리 마애여래좌상(충북문화재자료 20) 등이 있다.
현재 용몽리 · 옥동리 · 산수리 · 두촌리 · 기전리 · 신척리 등 12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용몽리는 1914년 몽촌리(夢村里) · 대월리(大月里) · 묘봉리(妙峰里) · 용소리(龍沼里) 및 음성군 맹동면(孟洞面)의 하돈리(下敦里) · 상돈리(上敦里) 일부를 병합하면서 용소(龍沼)와 몽촌(夢村)의 이름을 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몽촌 지명은 『조선지지자료』에 '구말'로 나오며 '夢村里'라는 한자 지명이 대응되어 있다. 광해군 때 문신인 채진형(蔡震亨) 선생이 현몽(現夢)하여 잡은 자리라 하여 '꿈말[夢村]'이라 하였는데 이후 '구말'로 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국어학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구말'에서 '꿈말'로 변한 것으로도 해석한다.
옥동리(玉洞里)는 이곳에서 옥(玉)이 났다고 하여 '옥골(玉-)' 또는 '옥동(玉洞)'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산척리(山尺里)는 1914년 산직리(山直里) · 장척리(長尺里)와 차상리(次上里) 일부를 병합하여 산직(山直)과 장척(長尺)의 이름을 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산직리(山直里)는 경주 이씨의 산지기가 살았다고 하여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전국에 '산직말'이라는 동네가 아주 흔한데 대체로 산직집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척리는 고려 때 임연(林衍) 장군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학문과 덕망이 높은 '장자(長者)'가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전국에 '장자울'이라는 마을이 흔한데, 대부분 '장자'를 '長者'로 보고 '덕망이 있고 나이든 사람이 살던 마을' 또는 '부자가 살던 마을'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면 소재지는 용몽리이며 이곳에 있는 덕산 양조장은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