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기월식
정지우
수박의 보폭으로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약병 뚜껑을 돌리다가
금이 간 숨,
그 사람은 어쩌다가
약통 안에 갇히게 되었을까
매일 복용한 알약의 효과는
매일매일 사라지는 것의 일부
지병은 약통 속에 갇힐 수도 있겠지
마술 램프에 갇힌 거인의 출구처럼
조금씩 어둠을 먹어 치우며 부푸는 달을 본다
어제 본 공터는 요란한 망치 소리로
그 이전의 형태를 지우며 갇히고,
새로 생긴 창문이 탁, 하고 닫히면
아무도 빠져나오지 않은 풍경이 되듯
달은 왼쪽으로 익고
그 사람은 왼쪽을 다 써버려서
이미 모든 시간을 다 써버린 탓에
익지 않은 오른쪽을 기웃거렸겠지
조금만 가면 닿을 수 있는
저 수박의 마지막 본심
약병 안에서
넝쿨 잘린 달 하나가 달그락거린다
웹진 님Nim 2024, 8월호
가자지구에서 온 메일
불 켜진 창문을 세어보듯 어둑어둑한 서신을 읽는다.
떨어진 포탄 속에서 무너진 건물 속에서 죽은 엄마의 품속에서 어린 난민들은 울먹이는 문장이다.
위로가 모른 척하면
슬픔은 어느 쪽을 바라봐야 할까.
창밖에 함박눈이 내리면 두 눈에 쌓이는 적설량.
녹아 사라진 눈과 코와 팔이 가자지구 장벽을 넘어 내게 도착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보이지 않는 우리를 찾아달라는 당부들
안으로 더 잘 보이도록 숨는다. 그게 전 세계에 알리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굴려온 눈덩이가 점점 사라지면서 사라지기 직전을 증명하는 최후의 발견이니까.
입안에 모은 말들은 소실점과 같아서 멀리 퍼져나갈수록 사라지고.
전쟁은 몇 사람의 말로 셀 수 없는 사람의 울음을 듣는 일. 고통을 속이고 죽음을 속이고, 속이는 일로 들키는 날카로운 초승달.
눈보라의 긴 비명을 읽는다.
그 속에서 눈사람이 태어나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4 6월호